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24화 (124/200)
  • # 124

    Chapter 31. 단지 말하지 않았을 뿐 (3)

    “그워어어어엉!”

    사이클롭스가 이마 위로 한 줄기 핏물을 흘리면서 포효했다. 맨질거리는 대머리에 상처가 두 개나 만들어져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고통이었기에 몇 배나 더 괴로웠다. 조금만 더 창날이 깊게 들어왔으면 두개골이 꿰뚫릴 뻔한 상황이었다.

    인간으로 따지면 바늘 정도에 꿰뚫린 상처다. 하지만 두개골을 직접 강타했다는 게 아픔의 원인이었다.

    그것도 뇌전의 기운까지 동반된 것이었으니, 사이클롭스의 입장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비록 상처는 작을지라도 말이다.

    “크으…… 망할 입 냄새!”

    정천우는 포효와 함께 밀려오는 역겨운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사이클롭스는 정천우의 불만 섞인 투덜거림을 듣지 못한 것인지 애초부터 관심 없는 것인지, 충혈된 눈으로 노려보았다.

    “좋아,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는 거다.”

    자신을 노려보는 사이클롭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정천우가 살기를 끌어올렸다.

    사이클롭스가 손바닥을 들어 올리면서 이를 뿌드득 갈았다. 정천우를 내리쳐 죽일 심산이었다.

    물론 순순히 죽어 줄 생각 따윈 눈곱만치도 없는 정천우였다.

    질 수 없는 싸움이다. 진다는 건 죽음을 의미한다.

    누가 봐도 무모한 싸움이지만 정천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조금 전 사이클롭스와 격돌하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사이클롭스의 능력은 엄청나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소림의 절대 무공인 금강불괴신공을 익히지 않는 이상 몸으로 때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놈은 가볍게 움직여도 광범위한 공격이 펼쳐진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정천우의 투지가 꺾이지 않는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더 빨라!”

    정천우가 경공을 발휘해 사이클롭스의 손바닥을 피해 냈다.

    콰앙!

    위력만큼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피해 냈음에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주변의 땅바닥이 은은하게 울릴 정도로 엄청난 충돌이었다.

    딸깍!

    정천우는 역천검과 결합된 창 자루를 분리해 집어 던지고는 다시 사이클롭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땅바닥에 손을 내려친 사이클롭스의 손목이 목표였다.

    정천우의 몸이 주욱 늘어지는 것처럼 보일 만큼 이동 속도가 빨랐다. 순식간에 사이클롭스의 손등 위에 도착한 정천우가 역천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서걱!

    촤아악!

    역천검이 피부를 베어 내자 허연 속살이 드러나는 것과 동시에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워어어어! 빌어먹을 인간!”

    사이클롭스가 괴성을 지르며 나머지 손으로 정천우를 내리쳤다. 그러나 정천우의 몸은 이미 빠져나간 뒤였다.

    화가 난 사이클롭스는 정천우를 찾아 눈을 돌렸다. 그러다가 이내 정천우가 빠른 속도로 다시 달려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이클롭스는 열이 뻗치는 와중에도 단발성 공격으로는 놈을 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놈이 있는 부근을 훑어 버리는 거였다. 어디든 걸리기만 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을 거라 믿었다.

    자신의 힘은 지상계 몬스터 중에서 최강이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사이클롭스는 땅바닥에 손을 대고서 정천우가 달려오는 방향으로 크게 손을 움직였다. 땅바닥을 쓸 듯이 움직이는 그의 손을 따라 흙먼지가 날렸다.

    “헛! 무식한 새끼!”

    정천우는 경공을 발휘하면서 달려오다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마치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듯 흙더미가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그를 더욱 긴장시킨 것은 자잘한 돌멩이들이 마구 날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개중에는 어른 머리통만 한 바위까지 뒤섞여 있었다.

    휩쓸렸다가는 그대로 끝장이었다.

    지체할 것도 없이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런 정천우의 발밑으로 돌무더기가 빠르게 지나갔다. 뒤이어 사이클롭스의 손바닥이 땅바닥을 엉망으로 파헤치며 지나갔다.

    천근추의 수법을 발휘해 착지하자마자 다시 도약했다. 목표는 체중을 지탱하려고 사이클롭스가 바닥을 지지한 왼팔이었다.

    파바박!

    정천우의 몸이 바람을 가르면서 쏘아졌다.

    두 손으로 움켜쥔 역천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사이클롭스의 살갗이 쩍 벌어졌다.

    정천우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사이클롭스가 따끔한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순간, 정천우의 몸은 이미 자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워억! 죽여 버린다! 우억?”

    분노해 고함을 지르던 사이클롭스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놈을 놓친 것만 해도 화가 날 지경인데 아랫배 부근에서 날카로운 아픔이 일어났다. 그래 봐야 자신의 몸집에 비하면 큰 상처는 아니었다. 하지만 화가 치밀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러다간 놈을 잡기는커녕 몸에 상처만 늘어날 판이었다.

    이를 뿌드득 갈아붙인 사이클롭스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그러고는 마구 바닥을 구르면서 난리를 피워 댔다.

    콩알만 한 인간이 접근전을 벌이면 자신의 거대한 덩치로는 잘 발견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난동을 부리면 놈이 거기에 휘말려 피떡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바닥을 구르며 난리를 피워 댔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최소한 놈을 멀찌감치 떨어뜨릴 수 있겠다는 꼼수도 같이 섞여 있었다.

    “우와악! 이 빌어먹을 새끼가!”

    정천우는 거대한 뱃살이 덮쳐 오자 전력을 다해 경공을 발휘했다.

    아슬아슬하게 사이클롭스의 살덩이에 파묻히지 않아 다행이었다. 만약 놈의 살덩이에 깔렸다면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졌을 게 분명하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거리를 벌렸다. 지진이 일어난 듯이 사이클롭스의 움직임에 맞추어 땅이 흔들렸다. 혼자 지랄발광을 해 대는 사이클롭스에게 다가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염병…….”

    정천우가 쓰게 입맛을 다셨다.

    자신이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작은 상처 서너 개를 만들어 준 게 고작이었다. 겨우 그만한 상처를 만드는 데 내공이 반이나 빠져나갔다. 죽도록 경공을 발휘하면서 상대의 시선을 피하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건 싸우는 것인지 달리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공격 시간보다 달리는 시간이 더 많다. 내공이 부족하자 숨부터 거칠어졌다.

    ‘아프기는 하냐?’

    정천우는 질린 눈으로 사이클롭스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몸뚱이다. 자신이 몇 번의 공격을 성공시키긴 했지만 그래 봐야 조금 긁힌 정도의 수준이다. 워낙 덩치가 커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처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마저도 땅바닥을 뒹굴면서 흙먼지에 가려져 더욱 눈에 보이지 않았다.

    “크헉! 컥, 컥! 망할 놈의 인간! 이렇게 된 이상, 확실히 죽여 주겠다!”

    사이클롭스는 먼지가 입으로 들어오자 기침을 몇 차례 하고는 정천우를 노려보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되었다. 난동을 피우자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거리를 벌린 게 증거다. 이젠 놈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면서 손을 힘껏 말아 쥐었다.

    이제껏 아끼고 아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물리력만으로 승부하려다가는 재빠른 인간에게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처럼 손해만 볼 것 같았다.

    사이클롭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모습에 정천우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뻔했기 때문이다. 또 그 끔찍한 입 냄새를 버텨야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더러운 자식…… 윽!”

    정천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려다가 뜨악한 얼굴로 인상이 굳어졌다.

    “그워어어어…….”

    엄청난 포효가 터졌다.

    정천우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췄다. 온몸에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이건 지극한 살기다.

    수많은 실전을 거친 고수들에게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 짙고도 사나운 살기였다. 몸이 굳어지는 느낌에 정천우가 급하게 내공을 끌어올렸다.

    ‘흐흐흐…… 죽여 버리겠어!’

    사이클롭스는 입을 벌려 소리치면서도 내심 흡족해하는 중이다.

    배틀 로어(Battle Roar)!

    사이클롭스에게 주어진 권능.

    자신보다 약한 적에게 사용해 몸이 굳어지게 하는 효능이 있다. 정천우처럼 빠른 상대에게 사용면 최적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제껏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한 가지다.

    배틀 로어는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다. 그 증거로, 자신이 수족처럼 부리는 좀비들마저 괴로워하면서 버둥대고 있었다. 물론 인간의 군대 역시 괴로워하면서 몸이 굳었다.

    사이클롭스는 배틀 로어를 멈추지 않으면서 정천우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워낙 덩치가 커서 겨우 서너 걸음 만에 정천우의 근처로 다가왔다.

    “그워어어어…….”

    배틀 로어를 멈추지 않으면서 사이클롭스가 오른발을 들었다.

    정천우를 밟아 죽일 생각이었다. 완전히 짓이겨서 뼈째 으스러뜨려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쿵!

    “크워어어어!”

    정천우를 밟아 버린 사이클롭스가 배틀 로어를 이어 가다가 기쁨의 함성으로 바꾸었다.

    이제 거추장스러운 적이 없어졌으니 마음껏 살육을 벌일 차례였다. 인간의 군대가 쓰러지면 그들을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 더욱 거대한 군대를 만들 것이다.

    “으하하하…… 억!”

    기쁨에 겨워 크게 웃음을 터트렸던 사이클롭스가 인상을 구겼다.

    발목에 섬뜩한 느낌이 일어났다. 그것도 양쪽 발목에서 거의 동시다 싶을 정도로 아픔이 느껴졌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사이클롭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놈이다!

    분명 밟아 죽였는데,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놈은 얄밉게도 자신이 내려다보기가 무섭게 멀찌감치 거리를 벌렸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궁금했던 사이클롭스는 오른발을 뗐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워어어어!”

    사이클롭스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주변의 흙(?)을 두 손에 가득 쥐고서 정천우를 향해 마구 뿌려 댔다. 거리를 벌렸던 정천우가 깜짝 놀라며 꽁지가 빠져라 뛰었다. 사이클롭스는 포기하지 않고 주변의 흙을 집어서 마구 뿌렸다.

    “무식한 새끼!”

    정천우가 혀를 차며 경공을 최고로 발휘했다.

    자신의 머리통만 한 돌덩이가 하늘을 빼곡하게 채우면서 날아왔다. 아무리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고 갑옷이 보호한다지만, 저런 걸 맞고서 멀쩡하길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다.

    이건 답이 안 나오는 싸움이다. 놈의 체력이 빠지길 기다리면 좋겠지만 그러다간 자신이 먼저 쓰러질지도 모른다. 놈은 그저 손 한 번 휘젓는 것이지만 자신은 뭣 빠지도록 달려야 하니까 말이다.

    상처를 줄 순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어림없다. 사이클롭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만들 방법이 필요하다.

    ‘제기랄! 이렇게 뛰어다니기만 해서는…….’

    정천우는 폭우처럼 쏟아지는 돌무더기를 피해 달아나면서 주변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군 병사들이 헤롱거리고 있었지만 좀비들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 당장은 위험하지 않았다.

    자신이야 중원에서 생활할 당시 워낙 농도 높은 살기를 자주 접해서 사이클롭스의 괴상한 살기 공격에도 멀쩡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다음 공격을 준비하면서 경공을 발휘하던 정천우는 샤벨타이거 기사단을 바라보다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모든 기사가 해롱거리는데 단 두 사람은 멀쩡했다. 그 둘은 바로 헤이먼과 샤칼이었다.

    “샤칼!”

    경공을 발휘하면 도망치던 정천우가 사자후의 수법으로 크게 고함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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