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23화 (123/200)
  • # 123

    Chapter 31. 단지 말하지 않았을 뿐 (2)

    사이클롭스의 괴성에 협곡이 쩌르르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하나의 생명체가 내지른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드래곤이 사용한다는 드래곤 로어(Roar)가 이런 느낌일지도 몰랐다.

    아미파의 기사들은 말에서 내려 병사들과 같이 싸우는 중이었다. 소중한 말이 몬스터에 둘러싸여 생으로 뜯어 먹히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아미파의 병사들은 사이클롭스의 함성에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어 좀비 몬스터에게 끌려가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육체가 단련되고 마나의 힘을 사용하는 기사들조차 사이클롭스의 함성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좀비들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아니, 사이클롭스의 함성을 듣고 나서 오히려 더 흉성을 드러냈다.

    “뭐 하나! 병사들을 지원해!”

    “영주님의 안전이 중요합니다!”

    주소용 후작이 자신의 곁에 선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호위기사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주소용 후작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기에 곁을 떠나라는 명령은 들어줄 수가 없었다.

    “싸워! 지금 누가 누굴 보호해! 안 보여? 병사들이 죽어 가! 나의 병사들이!”

    “그래도 안 됩니다. 저들은 영주님을 위해 죽는 걸 영광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미친!”

    주소용 후작은 호위기사가 명령을 무시하자 버럭 고함을 지르고는 앞으로 달렸다.

    “영주님! 영주님! 위험합니다!”

    “닥쳐! 너희가 싸우지 않겠다면 내가 싸워!”

    주소용 후작은 호위기사들의 틈을 벗어나 좀비들에게 달려들었다.

    방패병을 잡아당기던 인간 형태의 좀비를 향해 그녀가 롱소드를 휘둘렀다.

    쩌걱!

    “커룩…….”

    뒤통수에서부터 이마까지 단칼에 날려 놓자 붉은 핏물과 뇌수를 쏟아 내며 좀비가 쓰러졌다.

    “죽지 마라! 힘이 빠졌으면 뒤로 물러나!”

    “여, 영주님! 가, 감사합니다. 싸우겠습니다! 싸울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영주가 직접 구해 주자 병사는 감동한 얼굴로 방패를 더욱 굳게 쥐었다.

    주소용 후작은 그런 병사를 뒤로하고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거대한 체구의 오우거가 방패병을 두들기는 곳이었다. 속도가 느려진 대신 근력이 강화된 오우거는 몽둥이로 방패를 후려치고 있었다.

    병사 서넛이 달려들어 방패를 붙잡았지만 몽둥이에 한 번 얻어맞을 때마다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방패병의 안전을 고려해 금속제 방패로 바꿔 주지 않았다면 죽어도 벌써 몇 번은 죽었을 것이다.

    “제길! 누가 좀! 누가 이놈 좀 공격해 봐!”

    “창병! 뭐 해!”

    방패를 붙든 병사 중의 하나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3명이 한 조가 되어 하나의 조를 이룬다. 오우거를 공격해 줘야 하는데 정작 공격이 없으니 오우거가 날뛰는 것이다.

    “씨발! 내가 창병이잖아!”

    “빌어먹을 이렇게 죽는 거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병사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방패 하나를 셋이 붙들고 있다는 걸 깨닫고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쿠와악!”

    병사들이 소리치는 사이, 좀비 오우거가 승리의 포효를 터트리면서 다시 몽둥이를 들었다.

    어깨가 빠질 듯한 고통에 괴로워하던 세 명의 병사는 이제 꼼짝없이 죽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빠각!

    “그르륵…….”

    그러나 이변이 생겼다.

    오우거의 이마에서 피 묻은 검날이 솟아났다. 몽둥이를 휘두르려던 자세 그대로 오우거가 비틀거리더니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우린 해낼 수 있다! 조금만 버텨라! 희망을 잃지 마라! 지휘관들은 병사들이 지치지 않도록 교대해 주도록 하라!”

    주소용 후작이 병사를 다독이고는 마나를 담아 크게 소리쳤다.

    더 많은 명령을 내리고 싶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좀비 오크가 글레이브를 휘둘러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소용 후작은 손쉽게 공격을 피해 내고는 롱소드로 좀비 오크의 턱을 올려쳤다.

    “취에엑!”

    롱소드에 깃든 마나 쉐도우가 좀비 오크의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뒤를 따라 곧바로 오우거가 달려들었다.

    주소용 후작은 자세를 바꿀 틈도 없이 내리쳐 오는 몽둥이에 롱소드를 휘둘렀다.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지금은 방어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퍼걱! 퍼걱!

    그러나 두 개의 롱소드가 튀어나와 그녀를 공격하던 좀비 오우거의 두개골을 꿰뚫었다.

    “영주님! 물러나십시오!”

    좀비 몬스터를 해치고 이제야 호위기사들이 도착한 것이다.

    “나는 싸운다! 영주가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날 위해 싸워 주겠나!”

    주소용 후작은 호위기사들에게 무기를 휘두르려는 좀비 인간을 두개골을 반으로 쪼개 놓았다.

    호위기사들은 그녀의 모습에 못 말리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호위기사 단장인 주성애가 혀를 차고는 크게 입을 열었다.

    “영주님의 명령이시다! 이제부터 호위기사단은 영주님을 보필해 몬스터를 공격한다!”

    ***

    아미파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고군분투하는 사이, 정천우가 이끄는 샤벨타이거는 마침내 좀비들의 벽을 뚫고 사이클롭스의 앞에 도착했다.

    “니미럴! 저런 거하고 싸우겠다고?”

    제럴드가 얼굴에 묻은 피를 신경질적으로 닦아 내며 소리쳤다.

    커도 너무 크다.

    싸우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이건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주먹 하나가 트레뷔셰에 사용하는 바위 크기보다도 더 크다.

    다리 굵기는 어떠한가? 이건 다리라고 부르기가 민망하다. 건장한 어른 대여섯 명을 합쳐 놓은 듯한 굵기다.

    “헤이먼! 귀찮은 놈들이 오지 않게 막아 줘! 샤칼! 마법 지원!”

    “예, 단장님!”

    “알겠습니다, 주인님!”

    헤이먼과 샤칼이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등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정천우의 싸움이다. 자신들이 할 일은 좀비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은 여분의 창을 꺼냈다. 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지면 창을 꺼낼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지막을 각오한 사람들처럼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비장감이 드러났다.

    “자식들…….”

    정천우는 샤벨타이거 기사단의 박력 넘치는 기세에 헛웃음이 나왔다.

    죽음을 각오한 그들의 모습에 괜스레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억지에 가까운 자신의 명령에도 토 달지 않고 따라와 준 것이 그저 고마웠다.

    이제껏 기사들을 굴리면서 낯간지러운 소리를 해 본 적이 없다. 칭찬이라고 해 봐야 더 빡세게 굴리기 위한 사탕발림뿐이었다.

    그래선 안 되겠지만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게 혹시라도 마지막이 될까 그게 아쉬웠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약해지면 안 된다.

    반드시 사이클롭스를 쓰러뜨리고 이 지저분한 전투를 끝내는 것만이 살길이다.

    “간다! 모두 뒈지지 마라!”

    정천우가 말 등에서 뛰어내리며 크게 소리쳤다.

    사이클롭스와 같이 거대한 놈과 싸우려면 전투마는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젠장, 더럽게 크네.’

    경공을 발휘해 달려가면서 정천우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싸우기 위해서 달려가지만 점점 더 거대해지는 상대의 덩치에 살짝 기가 죽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달려가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는 평지였기에 경공에 탄력이 붙었다.

    “큭…… 어리석은 인간! 후웁!”

    사이클롭스는 콩알만 한 인간이 겁 없이 맨몸으로 뛰어드는 모습에 기가 막혔다.

    기사단 전체가 자신에게 덤벼들 줄 알았는데, 겨우 한 놈이 싸우러 오겠다니 우스웠다. 그렇다고 마스터급 기사도 아닌 주제에 말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사이클롭스가 정천우를 향해 입김을 불었다.

    콰과과과과!

    흙먼지와 함께 사이클롭스의 입김은 강풍이 되어 정천우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정천우는 강풍이 몰아치는 것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 천근추의 수법을 발휘해 몸이 날려 가지 않도록 하면서 달렸다. 강풍을 맞기 전보다 속도는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빠른 속도였다.

    “으으으…….”

    정천우는 괴로운 신음을 흘리면서 달렸다.

    강풍을 버티면서 달리느라 상당한 내공이 소모되었다. 잔뜩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고통을 참아 내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내 사이클롭스의 입김이 끝났다. 그와 동시에 정천우가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창에 맺힌 마나 쉐도우가 엄청난 크기로 증폭되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정천우의 눈이 사이클롭스를 노려보았다. 분명 위협적인 덩치와 생김새다. 그러나 사이클롭스의 겉모습은 오히려 정천우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더러운 새끼! 끔찍한 입 냄새였다!”

    정천우가 비명처럼 괴성을 내지르며 창 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입김 공격에 정천우가 괴로웠던 것은 그 엄청난 입 냄새였다. 육식, 그것도 몬스터와 인간을 생으로 씹어 먹는 놈이다. 오만 가지 괴상한 냄새들이 한데 뭉쳐 정천우를 괴롭혔던 것이다.

    “크워!”

    사이클롭스는 정천우가 뛰어오르기 무섭게 커다란 손바닥을 펼쳐 휘둘렀다. 한 방에 피떡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힘만 놓고 보면 드래곤을 제외하고 사이클롭스가 최고다. 인간 따위는 손에 맞는 순간 내장이 터진 채로 훨훨 날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자신의 입김에 꿋꿋하게 버티는 놈이라 약간은 긴장했다. 그래서 사이클롭스의 손엔 약간의 방심도 묻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사이클롭스는 이내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아야만 했다.

    정천우가 창을 휘둘러 사이클롭스의 손바닥을 먼저 때렸다. 그러고는 반동을 이용해 몸이 날아가는 궤적을 바꾸었다.

    “이야압!”

    정천우가 내공이 충만한 기합을 질렀다.

    사이클롭스의 손바닥을 두들기면서 더욱 높이 튀어 올라 머리 위로 창을 들었다. 창 자루를 굳게 잡은 그의 손등에 퍼런 핏줄이 꿈틀거렸다.

    바우웅!

    정천우는 전력을 다해 창을 내리찍었다.

    목표는 사이클롭스의 머리!

    누런 마나 쉐도우를 잔뜩 머금은 창날이 사이클롭스의 머리를 향해 쏟아졌다.

    쾅!

    “그워어어어!”

    사이클롭스가 괴로워하면서 포효했다.

    자신의 머리 위에 올라탄 정천우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정천우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공격이 성공하기가 무섭게 몸을 허공으로 띄운 것이다.

    단순히 사이클롭스의 손을 피한 것만이 아니다. 허공에서 내공을 움직여 방향을 틀고는 천근추의 수법을 발휘했다.

    창 자루를 거꾸로 쥐고서 사이클롭스의 머리를 노렸다. 천근추의 수법을 발휘해 사이클롭스가 손으로 가리지 못한 부위를 노렸다. 창 자루에 달린 역천검이 스파크를 일으키면서 맹렬한 기세를 일으켰다.

    마침내 역천검이 사이클롭스의 머리에 닿았다.

    누런 뇌전의 기운이 폭발을 일으키면서 피부를 파헤쳤다. 역천검이 두개골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제, 젠장!”

    정천우가 당혹성을 흘렸다.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역천검이 자루까지 박혀야 사이클롭스의 두개골을 뚫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천검은 3분의 2가량 틀어박히고 멈췄다.

    “그웍! 그워어억!”

    뒤늦게 사이클롭스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워낙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한 박자 늦게 고통이 밀려온 것이다. 머리통에 번개를 맞은 듯한 아픔이었다.

    사이클롭스는 머리를 흔들면서 손을 마구 휘저었다.

    퍽!

    “크아악!”

    정천우는 거대한 손에 얻어맞고 몸이 날아갔다.

    내공으로 전신을 보호하고 있었음에도 사이클롭스의 무지막지한 물리력에 전신이 으스러지는 느낌이었다.

    쿠당탕!

    경황 중에도 자세를 잡으려 노력했지만 가해진 힘이 너무나 강해 자세를 완성하기도 전에 바닥을 뒹굴었다.

    “쿨럭! 쿨럭! 헉! 빌어먹으을!”

    전천우는 피 기침을 토할 사이도 없이 비명을 질렀다.

    거대한 발이 자신을 덮쳐 오고 있었다. 그것은 엄청난 공포였다. 몸의 뼈가 덜그럭거리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몸을 날렸다.

    쿠궁!

    거대한 발이 정천우가 서 있던 자리에 떨어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피떡이 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땅거죽이 30cm가량 움푹 들어갔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캬악, 퉤! 무식한 새끼!”

    정천우는 엄청난 크기의 발자국을 보고는 바닥에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살이 떨려 온다.

    후회가 밀려온다.

    왜 저런 무식한 놈과 싸울 생각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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