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14화 (114/200)
  • # 114

    Chapter 29. 치명적인 명령 (2)

    그러는 사이 샤칼은 전력으로 7서클의 인페르노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제도 한계에 이르는 7서클 마법을 사용한 다음이었기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그러나 무조건 성공해야만 하는 일이다. 마법에 실패하면 적의 예리한 창날이 자신의 가슴에 파고들 테니까.

    “ДЁФжБЙфЖЙП…… 인페르노!”

    쿠구구궁…….

    샤칼의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사동어가 터지는 순간, 시리도록 푸른빛의 불길이 솟아났다.

    그가 만들어 낸 불은 마주 달려오는 로렌 기사단을 향해 곧장 뻗어 나갔다. 마법의 불꽃이 땅거죽을 녹여 가면서 앞으로 뻗어 나갔지만 로렌 기사단의 거즌 남궁은 오히려 비웃음을 날렸다.

    “훗! 시시하게 화염 마법이냐? 모두 전속력으로 뚫고 나간다!”

    “예, 단장님!”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한 로렌 기사단원들은 거즌 남궁과 마찬가지로 말 위에서 자세를 낮추며 창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대마법 갑옷을 입은 자신들에게 화염 마법 따위는 우습다. 곧장 뚫어 버리고 적의 심장을 꿰뚫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큭! 죽여 주지!”

    거즌 남궁은 마법을 사용한 샤칼이 마법의 불길 너머에서 정신을 잃는 모습에 비웃음을 날렸다.

    감히 남궁세가의 정예기사를 상대로 기만 작전이라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 마법적인 대응이 어렵던 예전에나 써먹던 수법이다. 그러나 이제는 대마법 주문을 새긴 갑옷이 보급됨에 따라 사라진 작전이기도 하다.

    거즌 남궁은 구닥다리 전술로 자신을 기만하려 한 아미파 놈들에게 쓴맛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얼치기 마법기사들을 박살 낸 뒤에는 곧바로 아미파의 다른 기사단을 뒤에서 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만 되면 이름을 하사받는 건 일도 아니지! 흐흐흐…….’

    거즌 남궁은 꿈에 부풀어서는 밀려오는 마법의 불길로 힘차게 달려들었다.

    “헉! 끄으으으! 아아아악!”

    거즌 남궁의 입에서 처참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대마법 주문이 새겨진 마법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급하게 마나를 끌어올렸지만 마법의 불꽃은 그를 순식간에 잡아먹었다.

    히히히히잉!

    대마법 주문이 새겨진 마갑을 입은 전투마가 맥없이 쓰러졌다. 갑옷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아랫부분에 인페르노의 시퍼런 불길이 침입한 탓이다.

    순식간에 털이 홀라당 타 버리고 살이 벌겋게 익었다. 인페르노의 화염은 로렌 기사단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어 놓았다. 가속도를 받고 달리던 중이었기에 로렌 기사단은 시뻘겋게 익어 버린 몸으로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커흑, 으어억!”

    “사, 살려 줘!”

    “으아아악!”

    로렌 기사단은 단장인 거즌 남궁을 비롯해 모두 바닥에 구겨지듯 나뒹굴었다.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로 바닥을 굴렀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벌겋게 달아오른 갑옷이 계속 살을 태우고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에 남궁기정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설마 대마법사급의 마법사가 아미파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째서 당당하게 기사대전을 벌이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빠드득!

    “이런 때려죽일 년을 봤나! 네년을 씹어 삼키고 말리라!”

    남궁기정은 자신의 정예기사단이 허무하게 망가지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머리가 울릴 정도로 이를 갈아붙인 남궁기정은 마주 달려오는 주소용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주소용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쇼트 스피어에 마나 쉐도우를 더욱 진하게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각오를 보일 뿐이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남궁세가와 아미파의 기사단에서 살기가 증폭되었다.

    그것은 다른 기사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뒤를 바싹 따라와라!”

    정천우가 고함을 지르면서 세이버가 장착된 창을 두 손으로 굳게 잡았다.

    상대는 다른 기사단보다 수가 적지만 서열 3위의 기사단이다. 숫자가 적은 대신에 실력자로 구성되었을 게 분명하다. 한순간의 방심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다.

    긴장한 얼굴로 창 자루를 움켜쥐던 정천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생겨났다.

    ‘자식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 정천우를 웃게 한 건 그것이다.

    부하들이 전력으로 마나를 끌어올리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방심은커녕 최선을 다해 격돌에 대비하는 게 분명하다.

    그의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가장 강한 놈이 대열의 선두를 차지한다. 화살촉처럼 맨 앞에 선 기사가 중앙을 파괴하고서 좌우로 꿰뚫고 들어간다. 뚫리지 않으려면 기사단의 간격을 벌리거나 선두의 기사를 죽이는 것만이 유일하다.

    ‘죽인다!’

    정천우가 택한 것은 뚫고 나가는 것.

    상대의 날카로운 창날이 심장을 노리고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시퍼런 마나 쉐도우가 강력한 기세를 담고 파고들었다. 상대의 입가에 맺힌 것은 희열이다.

    정천우의 심장을 꿰뚫고 산산이 조각내 버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찬 미소다.

    “차앗!”

    창 자루를 쥔 채로 상대의 공격을 끝까지 지켜보던 정천우의 입에서 기합이 터졌다.

    상체를 비틀면서 상대의 창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세이버가 장착된 창을 슬쩍 움직였다.

    선두 기사의 말 머리와 정천우가 탄 전투마의 머리가 교차하는 순간, 정천우가 휘두른 창날에 노란빛의 섬광이 터졌다.

    서걱!

    창에 장착된 세이버의 날이 빛을 발하며 휘둘러지기가 무섭게 창대를 쥔 상대의 팔뚝이 썽둥 잘려 나갔다.

    정천우는 상대에게 비명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곧바로 창 자루를 비틀면서 투구째 머리를 날렸다.

    뒤이어 정천우의 두 팔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자신에게 창을 찔러 오는 적들을 향해 뇌전의 기운을 담은 창을 마구 휘둘렀다.

    걸리는 것은 뭐든지 썰려 나갔다. 창과 방패 할 것 없이 모조리 잘렸다.

    정천우가 송곳의 끝이 되어 밀려드는 적을 무력화시켰다. 그런 정천우의 뒤를 헤이먼과 잭슨이 받쳐 주었다. 두 사람의 무력 또한 크게 발전한 상태다.

    남궁세가의 기사단은 정천우를 비롯한 삼 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샤벨타이거 기사단은 적 기사단을 반으로 쪼개며 지나쳤다.

    “대회전! 대회전! 내 뒤를 쫓아와라!”

    정천우가 핏물을 잔뜩 뒤집어쓴 채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고는 뒤로 고개를 돌려 부하들의 숫자부터 파악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적 기사단의 실력이 좋아서 부하들이 많이 희생되었을까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피해가 작았다. 기껏해야 10명 안팎의 피해다.

    그에 반해 상대하던 남궁세가의 기사단은 둘로 나눠진 채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도 30명이 채 되질 않는다. 선두에서 정천우가 적 기사를 꿰뚫으면서 피해를 강요한 탓이다.

    말고삐를 잡은 정천우가 크게 원을 그리면서 방향을 전환했다. 적절하게 방향을 틀지 못하면 적의 진영까지 달려가는 수가 있다.

    “나쁘지 않아!”

    정천우가 말 머리를 돌리고 나서 소리쳤다.

    샤벨타이거 기사단이 가장 먼저 격돌을 마치고 빠져나왔다. 다른 기사단은 이제 막 격돌을 마친 상태였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정천우가 만든 대열에 합류하려고 방향을 틀고 있었다.

    샤칼과 격돌하려던 기사단은 바닥을 뒹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으로 보아 마법에 당해 구워진 듯싶었다.

    남궁세가의 나머지 기사단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멀쩡하게 대열을 유지하면서 방향을 트는 기사단을 구경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젠장, 조금 위험하겠는데?”

    “그렇습니다. 아미파의 기사단이 못 버틸 것 같습니다.”

    헤이먼이 피로 얼룩진 눈 주변을 손바닥으로 대충 훔쳐 내고는 뜨거운 숨을 내뿜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아미파의 기사들이 샤벨타이거 기사단이 정렬한 곳으로 말을 몰아오고 있었다. 언뜻 보면 숫자가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상태들이 엉망이었다.

    머리를 잃은 기사를 태우고 달리는 전투마가 많았다. 워낙 오랜 시간 동안 훈련한 탓에 주인이 죽었음에도 습관에 따라 다른 말과 보조를 맞추어 무작정 달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승부가 어떻게 갈릴지 예측할 수가 없다. 말의 숫자는 많지만 싸울 수 있는 기사의 숫자는 누가 많은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아, 하아…… 천우 경!”

    “어서 오십시오, 주소용 후작님.”

    정천우는 자신의 곁으로 말을 몰고 온 주소용을 반겼다.

    그녀는 거의 중상에 가까운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눈빛이 살아 있다. 복부의 갑옷이 뜯겨 나가고 출혈이 심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투지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한 번 더 격돌해야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녀의 투지가 꺾였다면 성으로 돌아가는 데 무리가 있을 게 뻔했다. 주소용 후작의 투지가 꺾이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남궁기정, 그놈의 한쪽 어깨를 못 쓰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주소용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지만 자신은 그보다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상태라 다시 격돌하기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녀의 눈빛이 뭘 의미하는지 알기에 정천우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이 싸움은 아미파의 것이지 자신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소용은 이 싸움을 반드시 이기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긴…… 이번 전투에 진다면 모든 게 끝장일 테니…….’

    정천우는 이를 악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이 전쟁에서 자신은 무엇을 얻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그러나 의외로 생각은 빨리 정리되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그저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 크다.

    서대륙의 기사들에 비해서 한 수 쳐진다고 알려진 동대륙의 기사들이다. 이들과의 싸움에서 몸을 사린다면 서대륙의 기사들과 싸울 생각은 엄두도 내지 말아야 한다.

    “제게 맡기십시오. 확실하게 보내겠습니다.”

    정천우는 손에 묻은 피를 갑옷에 대충 슥슥 닦아 내고는 다시 창 자루를 굳게 잡았다.

    패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40년의 내공을 쌓았으며 대주천을 통해 내공을 더욱 정제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자신은 최선을 다해 보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그게 아미파의 싸움에 끼어든 이유다.

    “고마워요, 천우 경.”

    주소용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정천우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자신이 직접 남궁기정을 끝장내고 싶었다. 그러나 현재의 몸 상태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그녀가 잘 안다.

    현재 남궁기정을 가장 확실하게 끝장낼 수 있는 사람이 정천우였다. 남궁세가 기사 서열 두 번째인 엠버 기사단의 단장인 남궁건을 해치우고도 정천우는 상처 하나 입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적들이 돌격하려 합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그래요, 천우 경! 알았어요. 모두 대열을 갖춰라! 천우 경의 뒤에 서라!”

    주소용은 부하들에게 크게 소리친 다음, 정천우의 뒤에 포진했다. 아무리 상처가 깊다지만 뒤로 물러나 구경만 할 순 없는 일이다.

    “헤이먼! 주소용 후작을 부탁한다!”

    “예, 주인님!”

    헤이먼은 크게 대답하고는 주소용을 안으로 밀어 넣고 바깥쪽에 섰다.

    민망해진 주소용이 거부하려 했으나 헤이먼의 눈빛이 워낙 고집스러워 순순히 그의 뜻에 따랐다. 상대가 격돌을 위해 출발한 마당에 실랑이를 벌일 시간이 부족했다.

    정천우를 주축으로 구성된 대열에 아미파의 기사들이 합쳐져 거대한 삼각형의 대열을 이루었다. 헤이먼과 잭슨, 그리고 주소용과 주미혜가 정천우의 뒤를 받치며 선두를 보강했다.

    격돌을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한 번의 격돌로 이번 전투의 향방이 결정된다.

    정천우가 창을 높이 들었다.

    “기사단! 돌진!”

    “우와아아아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