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13화 (113/200)
  • # 113

    Chapter 29. 치명적인 명령 (1)

    “모두 준비하라!”

    정천우가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이 재빨리 말 위에 올라탔다.

    적의 규모를 보기 위해서 망루에 올라갔다가 내려와 기사단부터 정비하는 중이다.

    이제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정천우에게는 남궁세가의 기사단 중의 하나인 엠버 기사단을 격퇴하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엠버 기사단은 남궁세가에서 중간 정도의 힘을 가진 기사단이다. 정천우가 이끄는 샤벨타이거 기사단과 얼추 비슷한 숫자이기에 그렇게 배치되었다.

    그 외에도 남궁세가는 다섯 개의 기사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기사의 숫자만 해도 800명에 이른다. 단일 영지의 기사단 규모치고는 엄청난 숫자였다.

    반면에 아미파의 기사단은 네 개에 불과했다.

    주소용 후작이 이끄는 200명으로 구성된 골든샤이닝 기사단이 아미파를 대표하는 기사단이다. 그녀의 딸인 주미혜가 이끄는 기사단인 썬샤인 기사단은 150명의 남녀 혼성 기사단이다.

    나머지 두 개의 기사단 역시 150명씩 배정된 정예 기사단으로 각각 로즈메리 기사단과 볼튼 기사단이 있다.

    남궁세가와 싸우기 위해서는 남은 한 개의 기사단을 상대할 전력이 필요하다. 그 전력을 메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샤칼이었다.

    샤칼은 아미파의 마법사 5명과 함께 전투를 준비하는 중이다. 그들 역시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각종 마법 시약을 챙기면서 중무장한 병사들과 대열을 갖췄다.

    정천우는 샤벨타이거 기사단이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망루로 통하는 계단에서 내려오는 주미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달라졌어. 이곳에서도 명문가의 자식은 다르다는 건가?’

    주미혜의 전신에서 풍기는 마나의 기운에 그는 감탄했다.

    겨우 한 알의 단약을 먹었을 뿐인데도 망루 위에서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달라져 있었다. 하북팽가의 팽만리에 거의 근접한 수준의 기세가 느껴졌다. 만약 단약을 한 번 더 복용한다면 팽만리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약을 더 줄 생각이 없었다. 상대가 귀하다고 생각할 때가 좋다. 쉽게 쉽게 단약을 줘 버리면 고마움은 퇴색한다.

    게다가 단약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에 무당파의 수련기사들을 업그레이드(?)하느라 많은 양을 사용했다.

    이제는 정천우의 수련에 필요한 정도의 양만 남았다. 조만간 다시 단약을 제조해야 하는 상황이라 낭비할 순 없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이 강해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훗!”

    정천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주미혜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발견한 까닭이다. 아마도 고마워서 저러는 것 같았다. 불순한 마나가 몸에서 빠져나갔으니 강해진 것을 충분히 실감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말겠다는 자신감이 그녀의 얼굴에 가득했다.

    “준비됐나!”

    “예, 그렇습니다!”

    정천우의 고함에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아미파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죽은 2명의 기사를 제외하면 샤벨타이거 기사단의 전력은 완벽하다. 말과 무기, 그리고 기사들의 사기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아미파의 모든 사람은 들어라!”

    정천우와 샤벨타이거 기사단원이 준비를 마치기 무섭게 날카로운 목소리가 성에 울려 퍼졌다. 목소리는 분노가 녹아 있어 듣는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전쟁을 준비하던 아미파의 모든 병력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하얀색 갑옷을 입은 주소용 후작이 검은색 말 위에 올라 당당하게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사와 병사들은 주소용 후작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이제껏 보아 왔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남궁세가와 싸우는 걸 걱정하던 영주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은 최후까지 싸우겠다는 결사항전의 의지가 물씬 풍겨 나왔다.

    영주의 확고한 의지를 읽은 아미파의 사람들은 이를 악물었다.

    남궁세가와 인접한 탓에 침략의 위협 속에서 이제껏 살아왔다. 상황이 이상하긴 했지만 남궁세가의 영주까지 무력시위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어쩌면 이건 위기가 아니라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미파 사람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만약 이번 전쟁에 승리한다면 더는 남궁세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미파의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키면서 주소용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람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주소용이 때마침 입을 열었다.

    “우리 아미파는 그간의 치욕을 이번 싸움으로 끝내려 한다. 간악한 남궁세가 놈들을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을 것이다. 기사단은 성문을 열고 나갈 것이다. 이제 아미파는 더 이상 안에서 웅크리고 있지 않는다! 싸우자!”

    “와아아아! 싸우자! 싸우자! 싸우자!”

    아미파의 사람들은 주소용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싸우자는 말을 반복하며 함성을 질렀다.

    아미파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오늘처럼 자신의 영주가 든든해 보이고 호쾌하게 느껴지긴 처음이었다. 반드시 남궁세가의 군대를 해치우고 아미파를 지키겠다는 생각에 힘이 불끈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아미파의 병사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출진 준비를 마치고, 기사들은 전투에 대비하라! 성문을 열어라!”

    드드드드…….

    주소용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거대한 철문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기사들이여! 나를 따르라!”

    쇼트 스피어를 치켜든 주소용이 전투마의 배를 걷어찼다. 그 뒤를 따라 그녀를 따르는 골든샤이닝 기사단이 우르르 몰려 나갔다.

    아미파의 기사단이 모두 나가기를 기다렸던 정천우가 마지막으로 손에 쥔 창을 휘두르며 전투마를 출발시켰다.

    성문을 빠져나오는 정천우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심호흡했다. 오랜만의 전투이기도 하고, 하북팽가와 무당파의 전쟁과는 규모부터 다르다.

    성문 바깥으로 나가자 상대 진영에서 뿜어져 나오는 투기와 살기가 피부를 따끔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천우 경! 세 번째!”

    주미혜가 정천우에게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치며 손가락을 펼쳤다.

    정천우와 부하들이 상대할 엠버 기사단이 세 번째 자리에 포진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샤벨타이거 기사단은 질서정연하게 말을 몰아 엠버 기사단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섰다.

    샤벨타이거 기사단이 자리를 잡기가 무섭게 또 하나의 기사단이 성문을 통해 튀어나왔다.

    그들의 수는 고작 50여 명.

    선두에는 샤칼이 다른 마법사들과 함께 갑옷을 입었다. 나머지 중갑보병들이 그 뒤를 따랐다. 언뜻 보기에는 작은 규모의 기사단이다.

    샤칼의 손에 기다란 창이 들렸고, 말안장에도 각종 기사의 장비들로 그득했다. 완전한 기사의 복장이었다. 그들은 기사에 준하는 복장을 하고서 말 위에 올라타는 중이었다.

    샤칼이 상대해야 할 기사단은 로렌 기사단.

    150명으로 이루어진 남궁세가의 서열 두 번째 기사단이었다. 주소용의 입장에선 상당한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아미파의 기사단이 성벽을 뒤로 두고 대열을 정비하자 남궁세가에서도 반응이 있었다. 병사들과 함께 있던 기사단이 대열에서 이탈해 앞으로 전진해 왔다.

    동대륙의 정통적인 관습에 따른 행동이었다.

    기사단으로 승부를 먼저 본 다음에 그 결과에 따라 전면전을 벌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고전적인 방식이었다. 고전적인 방식이라고는 해도 아직까지 이어지는 방식이다.

    1차로 격돌한 뒤에 대회전을 하고서 2차 격돌을 한 다음에 서로의 역량을 평가하는 것이다. 기사단에 심각한 피해를 본 쪽에서 싸움을 이어 갈지 말지를 판단한다. 전멸하는 것보다 후일을 기약하는 차원에서 전해 내려온 실리적인 싸움법이다.

    ‘후우…… 먹혔어!’

    주소용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세가 놈들이 기사대전에 응하지 않으면 골치 아파진다. 놈들이 가져온 공성 병기에 얼마나 큰 피해가 생길지 모를 테니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놈들은 기사대전에 응했다.

    아미파의 기사단 전력이 부족한 것을 알고 우습게 생각한 것이 틀림없었다. 실제로 아미파의 기사단 전력은 그들보다도 훨씬 더 적다.

    남궁세가의 기사단이 대열을 갖추기가 무섭게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멀리 있음에도 그의 몸이 어떤지 느껴질 만큼 우람했다.

    “아미파의 주소용 후작은 들어라! 감히 나 남궁기정을 무시하다니,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내 약혼녀를 허락도 없이 다른 놈에게 보내는 게 말이나 되는가!”

    우람한 체구의 사내는 남궁세가의 남궁기정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느껴졌다.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그는 이번 일에 화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

    “닥쳐라! 누가 네 약혼녀라는 것이냐! 미혜 경은 원래부터 혼처가 정해져 있었다. 감히 남의 여자를 탐한 것으로도 모자라 미혜 경의 남편을 죽인 것은 네놈들이다! 하늘이 두렵지 않더냐!”

    주소용은 화난 얼굴로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소리쳤다.

    천금 같은 자신의 딸이 행복하길 바랐는데, 사위는 결혼한 지 채 열흘도 되지 않아 명을 달리했다.

    주미혜의 남편은 가벼운 정찰 임무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었다. 시체를 부검한 결과, 남궁세가의 기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롱소드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주미혜를 탐낸 남궁기정의 짓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작 화낼 사람은 아미파의 주소용과 주미혜다. 그런데 남궁기정이 억지를 부리고 있으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남궁기정은 뻔뻔스럽게도 주소용의 호통에 껄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우습구나! 그 허약한 놈을 남편이랍시고 들인 게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주미혜를 나에게 첩으로 준다면 곱게 물러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뜨거운 맛을 보여 주마!”

    “헛소리! 말이 필요 없다! 돌격하라!”

    “흥! 어디 계집년들은 어떻게 싸우는지 보자! 출겨억!”

    주소용과 남궁기정이 명령을 내리자 양쪽으로 나눠진 기사단이 일제히 앞으로 튀어 나갔다.

    ***

    “출격하라! 출격하라!”

    남궁세가의 로렌 기사단을 맡은 ‘거즌 남궁’은 희열에 가득한 얼굴로 말을 몰았다.

    얼마만의 전투인지 모른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게다가 자신이 맡은 기사단은 기도 안 찰 놈들이었다. 복장도 제대로 통일되지 않았으며 말에 올라탄 모습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차징을 한답시고 앞으로 겨눈 창끝이 마구 흔들리고 있다. 정규기사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도 기사단의 수를 맞추기 위해서 급조한 게 분명했다.

    거즌 남궁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맺혔다.

    “이번에 큰 공을 세워 반드시 정식으로 이름을 받고야 말겠다! 끼랴앗! 으하하하!”

    말을 몰던 거즌 남궁이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이내 웃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상대해야 할 기사단의 행동이 석연치 않았다.

    50명에 불과한 기사단이다.

    격돌에 대비해도 모자랄 판에 맨 앞에 달려오는 놈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 가속도를 붙여 상대를 타격하는 게 일반적인 기사단의 전술인데 놈의 행동은 지나치게 이질적이었다. 다른 기사들도 덩달아서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무슨 개수작인가 의심하던 거즌 남궁이 못 참겠다는 듯 키득거렸다. 상대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달려오면서 마법을 사용한다는 게 놀랍기는 했지만 그로서는 우스웠다.

    선발대로부터 엄청난 마법에 당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긴 했다. 설레발치는 선발대의 기사단장은 엄청나게 과장하며 상대의 마법을 부풀렸다.

    싸움에 패배한 놈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행동이다. 상대를 크게 부풀려서 자신의 잘못을 무마하려는 얄팍한 속셈이다.

    선발대 기사단장의 말에 따르면 마법으로 폭풍을 일으켰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5서클의 스파이럴 토네이도일 게 분명하다. 마법이 귀한 동대륙이라 당황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도 과장이 너무 심했다.

    무엇보다 거즌 남궁은 믿는 게 있었다.

    선발대로 차출되었던 어설픈 기사단과 달리, 자신은 남궁세가의 정예 기사단이다. 5서클의 마법쯤은 무효화할 수 있는 대마법진이 새겨진 갑옷을 입었다.

    처음 대마법진이 새겨진 갑옷을 받았을 때는 영주가 돈지랄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믿음직스럽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다.

    “우리는 마법을 튕겨 낼 수 있는 갑옷을 입었다. 멍청한 적들에게 기사의 무서움을 보여 주어라!”

    “와아아아아!”

    로렌 기사단원들은 거즌 남궁의 우렁찬 격려에 함성으로 대답하며 더욱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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