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10화 (110/200)
  • # 110

    Chapter 28. 아미파의 위기 (2)

    ***

    “미, 미친! 7서클 마법이라니! 아, 안 돼!”

    남궁세가의 마법사들은 경악하며 절망스러운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6서클 안티 매직(Anti Magic) 마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고차원적인 마법이 펼쳐졌다. 마법의 발현을 억제하는 마나 장벽 따윈 회오리에 휩쓸리는 순간 무너질 게 분명하다.

    콰득! 콰드득! 고오오오오!

    새파랗게 질린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펼쳐 놓은 마나 장벽에 맥없이 부서지는 것을 바라보며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흩어져라! 흩어져라!”

    이제껏 정천우를 약 올리며 으스대던 사내가 당혹성을 흘리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기사들과 병사들은 그의 명령을 듣기도 전에 황급히 대열을 이탈해 도주하는 중이었다. 워낙 엄청난 회오리였기에 가만히 자리를 지킬 엄두가 나질 않았다.

    회오리의 속도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희생자가 엄청났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남궁세가의 진영이 엉망으로 변하는 그때, 도주하던 정천우가 비명을 듣고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는 남궁세가의 진영에서 벌어지는 7서클 마법의 대단한 위력에 입이 떡 벌어졌다.

    “샤벨타이거 기사단 정지! 정지이!”

    정천우가 내공을 담아 크게 소리쳤다.

    정신없이 말을 몰아 후퇴하던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은 정천우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천천히 말을 멈춰 세웠다.

    “아미파가 구원에 나섰다. 모두 말을 돌려 성으로 진입한다!”

    정천우가 손으로 아미파의 영지성을 가리키며 고함을 질렀다.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아미파의 영지성이 활짝 열렸다. 성문을 통해 말을 탄 기사들이 우르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정천우가 급하게 기사단원들을 멈춰 세운 것이다.

    샤칼이 만든 마법이 남궁세가의 진영을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길이 생겨난 상태였다. 하지만 마법의 힘이 약해지면서 혼란에 빠졌던 남궁세가의 병력이 다시 대열을 갖출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지금이 최적의 기회였다. 아미파가 지원 나오고 남궁세가의 전력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이용한다면 돌파하는 것에 문제는 없어 보였다.

    “무기를 뽑아라! 창을 들어라! 방해하는 적들은 가차 없이 베고 돌진한다!”

    정천우가 세이버를 장착한 창을 높이 들었다.

    기사단원들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급하게 몸을 돌려 후퇴하느라 뒤늦게 샤칼의 마법을 보았다. 엄청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마법이었다.

    비록 락 스톰 마법의 이동 속도가 느려 커다란 피해를 입힐 순 없었다. 그러나 시각적인 효과 하나는 제대로였다.

    회오리에 빨려 들어간 병사의 몸통이 돌덩이에 맞아 갈가리 찢기면서 핏물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야말로 피의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맨 위로 휘말려 올라간 살점과 뼛조각까지 떨어지면서 병사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었다.

    공황 상태에 빠진 남궁세가의 진영을 향해 정천우가 이끄는 샤벨타이거 기사단이 내달렸다.

    두두두두!

    “가로막는 놈들을 죽여라! 샤벨타이거 기사단의 무서움을 뼈에 새겨 주어라!”

    정천우가 창을 높이 들었다. 샤벨타이거 기사단의 돌진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남궁세가의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제대로 대열을 갖추지 못한 남궁세가의 기사들은 샤벨타이거 기사단의 발목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죽여라! 사정 보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아미파의 기사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뚫어라!”

    정천우가 앞을 가로막는 기사의 목을 단번에 창날로 베어 내며 소리쳤다.

    베었다기보다는 뜯어냈다고 보아야 맞았다. 창날에 베이기 전에 투구가 우그러들면서 우악스러운 정천우의 힘에 목뼈가 뜯겨 나갔다. 피와 함께 척추가 줄줄이 딸려 가면서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그 끔찍한 모습에 정천우를 공격하려던 다른 남궁세가의 기사가 머뭇거렸다.

    그러나 정천우는 후퇴마저도 용서치 않았다. 들고 있던 창을 집어던져 가슴을 관통시키고는 말안장의 예비용 창을 손에 잡았다.

    처참한 비명과 함께 남궁세가의 기사가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정천우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창날에 마나 쉐도우를 잔뜩 집어넣고는 앞을 막아서는 적들을 마구 베어 넘겼다.

    뇌전의 기운을 담은 창이 번쩍일 때마다 남궁세가의 기사들이 힘을 못 쓰고 무너지기 바빴다.

    “힘을 내라! 거의 다 왔다! 아미파의 기사들이 우릴 기다린다!”

    “와아아아! 진격! 진격하라!”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창을 휘둘렀다.

    기사단원들은 대열의 양쪽 옆으로 남궁세가의 병력이 몰려드는 게 불안했다. 그러나 아미파의 기사단이 자신들을 기다린다는 것에 희망을 품고 더욱 열심히 싸웠다.

    “꺼져라! 차앗!”

    정천우가 크게 기합을 지르며 좌우에 창을 한 번씩 내리쳤다. 거의 동시다 싶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창에 장착한 세이버에서 뇌전의 기운이 솟구쳐 나와 초승달 형태로 쏘아졌다. 공간을 넓히기 위해서 정천우가 마나 쉐도우를 생성해 발출한 것이다.

    퍼버벅! 퍼벅!

    살벌한 절단음과 함께 초승달 형태의 마나 쉐도우가 병사와 기사들의 몸을 썰었다.

    “빨리! 빨리!”

    적을 베어 넘기기 무섭게 시야가 확 열리면서 아미파의 기사들이 나타났다. 정천우를 향해 여성 특유의 높은 목소리로 재촉하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돌진하라!”

    정천우가 내공을 담아 크게 소리쳤다.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미 샤칼이 만들어 낸 락 스톰은 소멸한 뒤였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7서클 마법의 위협이 사라진 순간, 남궁세가의 기사들이 병력을 이끌고 달려들었다.

    아미파의 기사들은 방패를 들어 적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 퇴로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미파의 기사들은 남궁세가의 기사들에 비해 힘이 부족했다. 남궁세가의 기사들이 철퇴로 방패를 두들길 때마다 아미파 기사들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정천우가 말에 박차를 가하면서 퇴로에 진입했다. 그 뒤를 따라 샤벨타이거 기사단원이 피를 뒤집어쓴 채로 줄줄이 퇴로에 진입했다.

    “성안으로! 성안으로!”

    퇴로 안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아미파의 기사가 마나를 담아 소리치며 성문을 가리켰다.

    여러 생각할 것도 없이 정천우는 앞만 보고 달렸다. 쓸데없이 도와주겠답시고 말 머리를 돌려 봐야 아미파와 손발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럴 바에는 빨리 사라져 주는 게 도와주는 거다.

    “젠장, 괜찮은 거야?”

    정천우는 그냥 도망치기가 미안해 상체를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이 퇴로 안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아미파의 기사들이 진입로를 닫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진입로를 닫는 것만이 아니다. 주변의 다른 아미파 기사가 말을 몰고 달려와 아군을 지원했다. 점점 방어막을 두텁게 만들면서 후퇴하고 있었다.

    정천우는 일사불란한 아미파 기사들의 움직임에 안도하면서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정천우가 이끄는 샤벨타이거 기사단이 성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퇴로를 만들어 주던 아미파의 기사단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아미파의 기사들은 성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말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일렬로 성벽에 기대진 크로스보우를 들고 성문에 마련된 망루 위로 뛰어 올라갔다.

    정천우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뒤이어 몰려올 적들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게 분명했다.

    “샤벨타이거의 기사들은 크로스보우를 들고 성문 위로 올라간다! 아미파의 기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정천우가 말에서 뛰어내리며 크로스보우를 잡았다. 그러고는 샤칼을 찾아 한쪽 옆구리에 끼었다.

    “어억! 주인님! 갑자기 왜!”

    “마법 좀 날려!”

    “제가 무슨 마법진인 줄 아십니까! 마법이 그렇게…….”

    “닥쳐! 까라면 까!”

    정천우는 볼멘소리로 울먹이는 샤칼을 짐짝처럼 옆구리에 끼고서 계단을 올랐다.

    상당한 높이의 계단이었지만 경공을 발휘하는 정천우에게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순식간에 성문의 돌출된 망루에 올라온 정천우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미파의 기사들이 후퇴하면서 성문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남궁세가의 기사들이 아직 완전히 정비하지 못해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샤칼! 저쪽과 저쪽에 마법!”

    정천우는 샤칼을 옆구리에 낀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우와! 씨발, 개…… 주, 주인님! 일단 내려놓고 합시다!”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에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하려던 샤칼이 급히 말을 바꾸었다.

    정천우가 샤칼을 내려 주고는 바닥에 쌓인 기름통 하나를 집었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잡고서 아미파의 기사들을 뒤쫓는 남궁세가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향해 던졌다.

    바우웅!

    콰앙!

    “으아악! 내 다리!”

    “기름! 기름이야!”

    남궁세가의 기사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커다란 기름통이 떨어졌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성벽에 다다른 것도 아니었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다.

    그러나 이내 비명을 지르며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시뻘건 불덩이가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마법이다! 불이야! 불! 피해!”

    병사 하나가 샤칼이 쏘아 낸 파이어 볼을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기름으로 뒤범벅된 상황에서 파이어 볼에 맞았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기겁한 얼굴로 마법을 피해 달아났지만, 불행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휭, 휭, 휭!

    기름을 가득 담은 오크통이 연달아 쏘아졌다.

    이미 불이 붙은 바닥에 새로운 기름이 보충되면서 불길이 더욱더 넓게, 그리고 맹렬하게 타올랐다.

    “으아아아! 살려 줘! 뜨거워! 뜨거워!”

    “끄아악! 차라리 죽여 줘! 크아아아!”

    남궁세가의 병사들이 죽는다고 아우성을 쳤다.

    아무리 뛰어도 불구덩이를 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차라리 정신을 잃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불이 전하는 고통에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기만 했다.

    남궁세가의 병사와 기사가 불구덩이에 휘말려 산 채로 태워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정천우가 다시 기름통을 집었다.

    웬만한 사람은 둘이 힘을 합쳐야 들 수 있는 기름통을 정천우는 가볍게 들었다. 빈 통이라고 해도 상당한 무게였는데 기름까지 가득 들었다. 그런 것을 공깃돌 다루듯 하는 모습에 아미파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입을 쩍 벌리고 놀라워했다.

    “뭐 하십니까! 아군이 위험합니다!”

    정천우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기름통을 밑으로 던졌다.

    샤칼은 정천우가 던진 기름통이 박살 나면서 기름 바다를 만든 곳에 정확히 파이어 볼을 날렸다. 실수하면 무슨 쌍욕을 얻어먹을지 몰라 죽기 살기로 마법을 발사하는 중이었다.

    “아! 뭣들 하는가! 적이 아군을 공격하지 못하게 쏘아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미파의 기사가 명령을 내렸다.

    투구에 가려져 보이진 않았지만 여자가 틀림없었다. 병사들은 남자와 여자가 뒤섞여 있었는데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크로스보우에 장전된 쿼렐을 일제히 발사했다.

    아미파의 기사들이 망루 위로 올라오고 샤벨타이거 기사들까지 올라오자 전황은 아미파로 기울어졌다. 단순히 퇴각을 돕는 차원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헉헉거리면서도 기어이 망루에까지 올라온 제인이 샤칼을 도와 마법을 펑펑 쏘아 대자 남궁세가의 병력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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