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02화 (102/200)
  • # 102

    Chapter 26. 동대륙의 무공 (2)

    우우웅…….

    공지대사의 파르티잔에서 벌 떼가 날아다니는 듯한 진동음이 흘러나왔다.

    전설의 계승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안일하게 대처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야무지게 창대를 움켜쥔 그는 파르티잔을 힘껏 뒤로 젖혔다.

    파박!

    공지대사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면서 지면을 박찼다. 푸르스름한 마나 쉐도우가 물결치듯 파르티잔의 창날을 따라 꼬리를 물었다.

    자세를 잡은 채 상대의 공격을 기다리던 정천우의 신형이 마중을 나가듯 튀어 나갔다.

    한 걸음.

    고작 한 걸음에 불과했다.

    그러나 상대하는 공지대사한테는 끔찍한 상황을 직면하게 만든 한 걸음이었다.

    충분히 거리를 둔 상태에서 정천우에게 강력한 공격을 하려고 타격점을 계산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정천우의 몸이 순식간에 코앞에까지 바싹 다가왔다.

    막 파르티잔을 수평으로 휘두르려던 공지대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우와악!”

    대경실색한 공지대사는 당혹성을 터트리며 휘두르려던 파르티잔을 수습해 전면을 보호했다.

    노란빛을 뿌려 대는 역천검이 창대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쾅! 콰광! 쾅!

    “크윽! 어억! 으윽…….”

    자신만만하게 달려들었던 공지대사가 괴로운 신음을 흘리면서 뒷걸음질을 쳐 댔다.

    ‘무슨 놈의 힘이…… 이대로는…….’

    공지대사가 절망감을 느끼면서 파르티잔을 들어 겨우겨우 정천우의 공격을 받아 냈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찍어 누르는 정천우의 공격은 검에 의한 공격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도권을 빼앗긴 순간부터 공지대사는 궁지에 내몰렸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공격은 그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공격 패턴이 비교적 단순했기에 공지대사가 가까스로 방어할 수 있었다. 만약 공격이 조금만 더 빨랐거나 변칙적인 수법이 섞였다면 벌써 바닥에 쓰러졌을 게 확실했다.

    “쓰러져라!”

    연속으로 좌우 베기를 날린 정천우가 역천검을 머리 위로 들어 장작을 패듯 내리찍었다.

    낭패한 기색의 공지대사는 간신히 파르티잔을 들어 자신을 반으로 쪼갤 듯 내려치는 역천검을 쳐 냈다.

    쾅!

    “우욱!”

    공지대사가 괴로운 신음을 터트리며 거리를 벌렸다. 상대의 무기와 부딪치는 힘을 이용해 몸을 빼낸 것이다.

    정천우가 자신을 쫓으면서 후속 공격할 것에 대비해 파르티잔을 마구 흔들면서 몇 걸음 더 이동했다.

    다행히 후속 공격은 없었다. 공지대사는 탁해진 호흡을 내뱉으며 상대를 찾았다. 그러고는 인상을 구겼다.

    ‘제길! 날 가지고 놀았어?’

    공지대사의 눈에 독기가 흘러나왔다.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수치심이 밀려왔다.

    입가에 맺힌 잔잔한 미소.

    여유로운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무덤덤한 눈빛.

    그게 공지대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차라리 아까처럼 모욕적인 폭언을 지껄일 때가 더 낫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 공격을 막을 때마다 찌릿찌릿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고통을 참으면서 버텼다.

    이제 반격의 기회를 잡았으니 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상대의 입가에 맺힌 희미한 미소와 평온한 눈빛은 어린애를 바라보는 어른의 것과 닮아 있었다. 자신을 싸워야 할 상대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큭! 인정할 수 없어! 인정할 수 없다고! 난, 난! 소림파의 기사란 말이다! 크아아악!”

    공지대사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괴성을 질렀다. 시퍼런 마나가 공지대사의 전신을 아우르며 맹렬하게 휘감고 돌았다.

    잠시 주도권을 빼앗겼을 뿐이라고 믿었다. 이제는 자신의 차례라고 믿었다. 상대의 공격 패턴을 파악했으니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상대가 봐주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의 일이다.

    정천우가 자신을 봐주면서 싸웠다는 게 그를 미치도록 화나게 하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참을 수 없었다. 이건 자신에 대한 모욕을 넘어서서 소림파의 명예가 달린 일이다.

    “으으으으…… 망할 자식! 본때를 보여 주마!”

    이를 갈아붙인 공지대사가 파르티잔의 창날을 겨누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전신에 골고루 퍼져 있는 마나를 한군데로 끌어모아 파르티잔에 퍼부었다. 마나가 창날에 집중되면서 주변의 기류가 흔들리는 듯한 착각마저 일어났다.

    그러자 이제껏 여유롭게 공지대사를 상대하던 정천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자식이, 적당히 끝내려고 했더니 사람 성격 건드리네? 그래, 오늘 어디 한번 제대로 푸닥거리해 보자.”

    정천우가 내공을 조금 더 끌어올리면서 냉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잔뜩 무게를 잡기에 실력이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러니 자신 있게 나섰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막상 붙어 보니 하북팽가의 기사단장인 팽우룡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었다.

    적당히 상대해 주면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물러설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객기를 부린다.

    ‘하여간 칼밥 곱게 먹은 새끼들은…….’

    정천우가 혀를 찼다.

    중원이나 동대륙이나 안전한 곳에서 칼질을 배운 놈들은 하는 짓들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과 겉멋만 잔뜩 들어 자신의 주제를 모른다는 점이 말이다.

    ‘똥오줌 못 가리는 새끼한텐 그저 매가 약이지.’

    왼손으로 슬그머니 검집을 움켜쥔 정천우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자마자 검집으로 두들겨 팰 생각이었다.

    공지대사가 하북팽가의 기사였다면 남의 눈치 안 보고 작살나게 패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손님의 신분이었기에 한 방으로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신에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강렬한 기억을 뼈에 각인시켜 줄 예정이었다.

    정천우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맺혔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놈이 잠시 후면 바닥을 기며 죽는다고 징징거릴 모습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정천우가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공지대사는 이번 공격에 목숨을 걸었다. 비장한 각오가 느껴지는 얼굴로 자세를 잡아 갔다.

    파르티잔의 창대 끝을 오른손에 쥐고 왼손의 검지와 엄지를 펼쳐 그 사이에 창대를 걸었다. 그런 상태로 오른팔을 뒤로 젖혀 근육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츠즈즈즛…….

    창날에서 날카로운 기운을 풍기는 마나 쉐도우가 일렁거렸다.

    공지대사의 눈은 정천우에게 고정되어 한 점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작은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정천우를 감시했다.

    비장감 넘치는 그의 자세에 그레이트 홀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대감에 사람들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레이트 홀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무공을 배웠다. 그들에게는 정천우와 공지대사의 싸움이 흥미진진한 건 당연하다. 두 사람의 대결이 상당한 수준의 기량을 선보였기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만약 공지대사나 정천우였다면 어떻게 싸워야 할지 생각하면서 둘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먼저 움직임을 보인 것은 공지대사였다. 놀림을 당했다는 분노에 휩싸여 얌전히 공격을 기다릴 만한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차아앗!”

    기합과 함께 공간을 접으며 쾌속으로 질주하는 공지대사.

    정천우 역시 중단의 자세로 겨누었던 역천검을 앞세우며 튀어 나갔다. 그가 준비한 초식은 와호노성(臥虎怒聲)이었다. 무식하게 직선적인 움직임만을 보이는 공지대사를 상대하기엔 최적의 초식이었다.

    한차례 정천우의 날렵한 신법을 체감했던 공지대사는 쾌속으로 접근하는 상대의 몸통을 노리고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파바밧!

    파르티잔이 공간을 꿰뚫으면서 폭발적인 추진력으로 발사됐다.

    창대를 지지하던 왼손은 추진력을 얻는 순간 뒤로 물러나면서 상체의 회전에 힘을 더했다. 오른손이 창대의 끝을 잡고 앞으로 쭉 뻗었다.

    정천우가 움직임을 보인 것도 바로 그때였다.

    역천검에 가속도가 붙었다. 단지 굽혔던 팔을 편 것만으로도 엄청난 찌르기가 되어 파르티잔을 요격했다.

    피잉…… 쾅! 투두둥!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쏘아진 역천검은 충돌과 함께 굉음을 일으켰다.

    한 번의 공격이 아니었다. 와호노성의 초식은 찌르기를 시작으로 세 번의 검격을 연달아 쏟아 낸다. 최초의 찌르기 공격으로 파르티잔의 창날을 퉁겨 내고, 연이어 좌우로 휘두르면서 창대를 후려 갈겼다.

    “으헉! 제길! 제길! 누가 당할 줄 아는가!”

    전력을 기울인 일격이었기에 처음 공격이 막힌 순간 공지대사는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창대를 굳게 쥐고서 정천우의 세 번 연속 베기 공격에 맞서 창대로 퉁겨 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그게 더 큰 독이 되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왔다. 정천우가 역천검이 튕겨난 힘을 고스란히 되돌려 더욱 강력한 베기 공격으로 응수한 것이다.

    “쿨럭! 쿨럭! 커헉!”

    뇌전의 기운이 담긴 공격을 감당하지 못한 공지대사는 내상을 입고 피를 뿜어 댔다. 정천우는 사정 봐주지 않고 왼손에 움켜쥐었던 검집을 휘둘렀다.

    뻐억!

    “더흑! 크흑…….”

    공지대사가 파르티잔을 놓치며 괴로운 얼굴로 아랫배를 움켜잡았다. 단단한 검집이 아랫배에 틀어박혀 있었다.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검집을 움켜쥐려 했지만 정천우가 매정하게 회수했다. 그러자 지지할 곳을 잃은 공지대사의 몸이 맥없이 주저앉았다. 입으로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 정천우를 원망스럽다는 듯 올려다보았다.

    “왜? 억울해? 너도 참 가지가지 하는 놈이다. 쥐꼬리만 한 실력으로 아무 데서나 꼬라지 부리지 마라. 그러다 골로 가는 수가 있어.”

    정천우가 역천검을 잡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검집에 집어넣기 위해서다.

    그때였다.

    “멈추시게!”

    파라라락!

    그레이트 홀이 웅웅거릴 정도의 커다란 호통과 함께 누군가가 롱소드를 앞세워 날아왔다.

    “또 뭐야!”

    정천우는 역천검을 집어넣으려다가 말고 다시 내공을 끌어올려 마나 쉐도우를 만들었다. 예리한 기운을 뿜어 대는 롱소드를 향해 역천검을 사선으로 올려쳤다.

    쾅!

    “제엔자앙!”

    정천우가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비명처럼 욕설을 터트렸다.

    기습적인 공격에 내장이 쩌르르 울렸다. 싸움이 끝났다고 안심하던 순간의 공격이었기에 대응이 늦었다. 주변에 온통 하북팽가의 기사들이었기에 마음을 놓은 건 더 큰 실수였다.

    터덕!

    바닥에 착지하기가 무섭게 정천우가 역천검으로 전면을 가리며 자세를 잡고 일어섰다.

    “철혈검 정영호 후작!”

    누군가가 비명처럼 외치자 정천우는 나타난 상대의 정체를 깨닫고 긴장했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보통을 넘어선다. 중원으로 따진다면 최소 일류급의 무인이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풍겨 나오는 마나양이 그렇다.

    하지만 겁을 먹지는 않았다.

    흘러나오는 기세가 부담스럽다고 해도 내공을 효율적으로 정제해 사용한다면 최소한 맥없이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쪼잔한 새끼들…… 지네 편이 졌다고 곧바로 기습해?’

    기분이 더러워진 정천우는 자세를 풀지 못하고 정영호를 노려보았다.

    자신의 실력으로 정영호를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하느라 정천우의 머리는 맹렬하게 돌아가는 중이다. 상대의 몸에서 나오는 기세와 마나를 가늠하고 자세를 살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볼수록 조금씩 자신감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만만한 상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가볍다고는 해도 내상을 입었다.

    부담스럽긴 했지만 물러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제인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덤벼!”

    정천우가 역천검에 내공을 주입하면서 호기롭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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