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01화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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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26. 동대륙의 무공 (1)

    “제길! 여기도냐!”

    정천우는 일그러진 얼굴로 투덜거렸다.

    중원에서 지겹도록 들었던 말을 또 들었다. ‘무인은 모욕을 참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무인’이 ‘기사’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런 류의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목숨을 건다. 지금 상황에서 사과한다고 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힐 일이다.

    정천우가 똥 밟았다는 얼굴로 인상을 구기자 공지대사는 그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는지 창끝으로 바닥을 찍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쿵!

    “무기를 들어라!”

    오른손에 창을 쥐고 바닥을 내려찍은 공지대사가 왼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마치 동네 개새끼를 부르는 듯한 행동이었다.

    나름 도발한다고 한 것이지만, 이 꼴 저 꼴 다 보고 산 정천우에게는 그저 귀찮은 일 생겼다고 짜증 낼 일 정도였다.

    “제기랄! 생긴 대로 논다더니 사내자식이 쪼잔하게 말 한마디 들었다고 아주 지랄을 떤다, 지랄을 떨어. 에이, 씨발! 덜떨어진 새끼.”

    정천우가 혼잣말로 투덜거리면서 허리춤에 매달린 역천검을 뽑았다.

    그러자 공지대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정천우의 투덜거림은 그의 귀에 똑똑히 다 들렸다.

    육체를 단련하고 마침내 마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지에 이르면 오감이 일반인보다 몇 배나 발달한다. 나지막하게 욕을 했다고는 해도 청각이 발달한 공지대사에게는 귀에 대고 속삭인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죽여 버리겠다!”

    공지대사는 모욕적인 정천우의 혼잣말에 흥분해 창대를 잡은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사용하는…… 아니, 소림파가 사용하는 창은 단순한 형태였다. 파르티잔(Partisan)이라는 장병기로 정천우가 중원에서 많이 보았던 형태의 창이었다.

    무림의 문파가 사용하는 것이 아닌 병사들이 사용하던 평범한 모양의 창이었는데, 창날의 길이가 한 척 반(55cm)이나 된다는 게 조금 달랐다. 창대에 검날의 폭이 넓은 단검을 끼운 것과 같은 형태였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공지대사가 창대를 들어 두 손에 쥐고는 정천우를 겨누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바뀌면서 흉흉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휘유…… 제대로 해보자 이거지?”

    정천우는 상대의 기세가 보통이 아님을 깨닫고 역천검을 들어 오호단문도의 기수식을 잡아 갔다.

    “우우우우…….”

    “아아아…….”

    순간 남자들의 입에선 기가 죽은 듯한 야유가…… 여자들의 입에서는 놀람이 섞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정천우가 오호단문도의 기수식을 잡으면서 다리를 벌린 채 자세를 낮췄기 때문이었다. 묵직(?)한 무언가가 사타구니 사이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사람 민망하게!”

    정천우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 깨닫고는 툴툴거리면서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은 민망함을 느끼기보다는 상대의 기세에 대항해야 할 때였다. 자세를 가다듬고 호흡을 안정시키면서 역천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잠시 후, 공지대사를 노려보는 정천우의 전신에서 거칠고 난폭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덤벼 봐!”

    정천우가 검 끝을 지면에 가져다 댄 자세에서 왼손을 내밀어 검지를 까딱거렸다.

    그러나 공지대사는 덤빌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정천우의 혼잣말에 발끈해서 일어났을 때보다 더욱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눈이 향한 곳은 정천우의 사타구니였다.

    상대가 덤빌 생각은 하지 않고 민망한 곳을 쳐다보자 정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공지대사의 사타구니를 쳐다보았다.

    “풉! 몸이 가벼워서(?) 좋겠다?”

    “씨, 씨부랄 놈의 새끼! 죽인다!”

    공지대사는 정천우의 도발(?)에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렸다. 정천우의 도발(?)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르티잔을 뒤로 젖히면서 몸을 날렸다.

    승전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멀찌감치 자리를 물린 상태였다. 사람들이 만들어 준 공간을 꿰뚫으며 달려드는 공지대사의 모습은 한 마리의 멧돼지를 닮아 있었다.

    콧김을 내뿜으면서 일직선으로 달려 나오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옷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정천우가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눈을 빛냈다. 흥분한 상대는 공격 방식이 단순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무공을 배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무공이란……

    살인 방법을 체계화시켜 놓은 기술의 집약체다. 상대를 공격해 빈틈을 유도하고 약점을 파고들어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투지를 일으켜 미치듯이 싸우는 건 좋지만 미쳐서 싸우면 오히려 역습에 쉽게 빠진다. 비슷한 실력자끼리 싸울 때 흥분은 독(毒)이 된다.

    ‘박살을 내 주마!’

    터져 나갈 듯한 근육을 과시하며 달려오는 공지대사의 머릿속엔 오직 정천우를 일격에 박살 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야아압!”

    정천우의 앞에 도달하기 직전, 공지대사의 입에서 몬스터의 울부짖음과 같은 기합성이 튀어나왔다.

    순간,

    앞으로 내밀었던 정천우의 발이 움찔거리면서 짧게 진각을 밟았다. 지면을 밟으면서 일어난 작은 힘이 정천우의 골반과 허리를 지나치면서 힘을 증폭시켰다.

    한껏 당겨졌던 상체의 근육이 원래의 자리를 찾아가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마지막으로 상체가 회전하면서 하단으로 늘어뜨린 역천검이 꿈틀거렸다. 상체가 완전히 돌아가는 것과 때를 같이해, 역천검이 대각선으로 솟구치면서 빛을 뿌렸다.

    카앙!

    공지대사의 파르티잔과 정천우의 역천검이 부닥치면서 불꽃을 일으켰다.

    상대를 터트려 죽이겠다고 작정했던 공지대사는 격돌의 순간 창대에 체중을 얹으며 힘으로 밀어붙였다.

    “어헛!”

    공지대사의 입에서 헛바람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저항감이 사라지면서 몸이 앞으로 쏠렸다. 한 방에 때려죽일 생각으로 힘을 준 게 실수였다. 상대의 검이 맥없이 튕겨 나는 모습이 공지대사의 눈에 들어왔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눈앞에서 별이 번쩍거렸다.

    퍼걱!

    정천우가 정면으로 힘 싸움을 벌이는 척하면서 파르티잔과 역천검이 부닥치는 찰나의 시간에 힘을 빼 버린 것이다.

    오히려 상대의 힘을 이용했다. 역천검이 밀려나면서 전해진 힘을 이용해 한쪽 다리를 지면에서 떼고 어깨를 들이밀었다. 역천검으로 받아 낸 상대의 힘을 이용해 왼쪽 어깨로 공지대사의 턱을 후려쳤다.

    “이익!”

    공지대사는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파르티잔을 회수해 휘둘렀다.

    헤롱거리는 공지대사의 복부에 무릎 차기를 넣으려던 정천우는 파르티잔의 날카로운 창날이 목을 노리자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큭! 그냥 주둥이만 까진 놈이 아니었다는 말이지?”

    공지대사는 얼얼한 턱을 손으로 문지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 되면 그냥 장난이었다면서 끝낼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비록 축하 사절로 왔지만 자신은 소림파의 대표로 참가한 사람이다. 무림맹의 최말단에 속하는 하북팽가에 와서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놈한테 망신을 당할 순 없었다.

    “글쎄? 별것도 아닌 말에 발끈하는 좀스러운 놈보다야 주둥이 까진 놈이 낫지. 안 그래?”

    정천우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다시 도발해 왔다.

    공지대사는 물어뜯어 죽이고 싶을 만큼 얄밉게 말하는 정천우의 도발에 하마터면 다시 뚜껑이 열릴 뻔했다.

    “네놈은 그 방정맞은 입을 원망해야 할 거야. 이제 장난은 없다. 오늘 네놈과 사생결단을 내지 않는다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크아압!”

    공지대사는 창대를 야무지게 움켜쥐고서 기합성을 내질렀다.

    전신에서 흐르는 마나가 공지대사의 의지에 반응해 두 팔로 몰려들었다. 창대를 따라 흘러간 마나는 마침내 창날로 흘러들어 가 푸른색의 마나 쉐도우를 만들어 냈다.

    “아쭈? 후회 안 할 자신 있냐?”

    “누가 후회할지는 보면 알겠지. 이젠 빌어도 소용없다. 나를 원망하지 말고 되바라진 네놈의 주둥이를 원망해라!”

    공지대사는 이를 갈며 정천우를 노려보았다.

    한 대 얻어맞고 땅바닥을 뒹구는 수모 정도로 끝낼 수 없게 되었다. 하북팽가의 승전 파티에 와서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다.

    작게는 자신의 체면이 걸렸고, 크게는 소림파의 위상이 걸렸다. 소림파의 기사가 하북팽가의 기사에게 패했다는 소문이 나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이제껏 소림은 무림맹에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문파였으니까 말이다.

    “겁대가리 없는 자식! 그래, 소원대로 해 주지.”

    정천우 역시 이제껏 보여 주었던 장난스러운 기색을 지우고 역천검을 들었다.

    상대가 마나 쉐도우를 일으킨 이상,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왕에 손을 쓸 바에는 확실하게 손을 봐주는 게 지금 상황을 빠르게 해결하는 일이다.

    즈즈즈즈…….

    정천우가 내공을 일으키자 단전에 쌓인 기운과 주변의 기운이 공명하면서 나직한 소음이 일어났다.

    단약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늘어난 그의 내공은 이류 무인의 경지를 상회하는 중이다. 근래 들어서는 단약의 숫자까지 늘린 상황이었다.

    계속 내공이 상승하는 중이었기에 정천우의 내공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내공이 역천검에 주입되면서 누런빛이 검날을 타고 빠르게 마나 쉐도우를 생성해 냈다.검기를 만들어 내고도 내공이 남아돌아 그의 전신을 타고 휘돌았다.

    내공을 가다듬으면서 역천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그의 전신에서 노란빛이 흘러나왔다. 내공이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의 눈에 보일 정도로 형상화된 것이다.

    오호단문도의 기수식에 따라 자세를 잡았던 정천우가 공격을 준비하면서 더욱 자세를 낮추었다.

    정천우의 주변을 흐르는 형상화된 내공이 넘실거리면서 변화를 일으켰다. 금빛을 연상케 하는 형상화된 내공은 점차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크훠헝!

    금빛으로 빛나던 형상화된 내공이 점차 호랑이의 모습으로 변하는 순간, 사람들의 귀에 포효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오오오오…….”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정천우를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뇌전의 샤벨타이거가 나타났다고 해서 놀라는 게 아니다. 뇌전의 샤벨타이거가 더욱 짙어지고 위협적으로 느껴져 탄성을 지르는 것이다.

    그만큼 정천우의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의미였기에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북팽가의 전설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셈이었으니까 말이다.

    “으음…… 샤벨타이거…….”

    공지대사는 정천우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뇌전의 기운인 것만으로도 깜짝 놀랐다. 그런데 뇌전의 기운이 샤벨타이거의 형상으로 변하는 모습에 더욱 놀라고 말았다.

    정천우와 시비가 붙었을 때만 해도 우습게 생각했다. 마나라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수련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양을 가지는 게 당연했으니까. 새파랗게 젊은 정천우 따위는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고 믿었다.

    하지만 자신을 노려보는 정천우의 기세는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게다가 전설의 계승자라니…….

    ‘하지만 물러설 수 없다! 어디, 전설의 계승자는 뭐가 다른지 보겠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른 상태에서 싸움을 그만둘 순 없었다.

    그것은 무기를 손에 쥔 기사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전설의 계승자라는 타이틀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지금은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하는 게 더 급선무였다.

    “각오해라!”

    공지대사는 커다란 외침과 함께 정천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창대를 쥔 그의 두 손엔 시퍼런 핏줄이 투두둑 튀어나와 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대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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