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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92화 (92/200)
  • # 92

    Chapter 24. 세력 확장 (1)

    “크흐흐흐…… 우리 형제들이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잡힌 상태임에도 기가 죽지 않은 기사가 괴기스러운 웃음을 흘리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확실히 마교의 기사는 다르군. 붙잡힌 상태에서도 이런 배짱이라니, 그것 하나만큼은 칭찬해 주지.”

    팽선웅 백작은 침음을 흘리며 마교의 기사를 인정했다.

    전쟁이 끝나고 시신을 치우는 과정에서 죽지 않은 마교의 기사를 생포할 수 있었다. 정천우의 기습적인 공격에 맞섰으나 창대에 얻어맞고 기절한 마교의 기사였다. 창날이 아니라 창대로 얻어맞은 덕분에 머리가 갈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강력한 타격이었는지 한쪽 두개골이 함몰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죽지 않은 걸 보면 하늘이 도왔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흥! 배짱이 아니다! 우리 마교의 기사들에겐 싸우다 죽는 것이 무한한 영광이자 신의 품으로 가는 길이다. 두려움 따위는 너희같이 덜떨어진 놈들에게나 필요한 감정이다!”

    “그래, 그렇다 치고, 이름은 뭔가?”

    “나는 위대하고도 자비로우신 대마신의 종 ‘메칸 데일런’이다! 지금은 비록 이런 꼴이지만, 곧 나의 형제들이 네놈들을 응징하러 동대륙에 올 것이다. 차라리 지금 항복하라! 형제들은 반항하는 자를 용서치 않는다. 으하하하!”

    메칸은 미친 듯이 웃었다.

    회의실에 모인 하북팽가의 수뇌부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메칸을 쳐다보았다. 포로 주제에 기가 살아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판에 협박을 가하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비웃을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마교 놈들의 지독함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다른 영지들은 무공서가 있음에도 별다른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지만 유독 마교만큼은 무공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묶인 채로 광소를 터트리는 메칸 또한 마찬가지다.

    썬더 기사단과 격돌할 당시, 마교의 기사들은 엄청난 힘을 보여 줬다. 정천우가 만들어 준 단약으로 기량이 높아지지 않았다면 썬더 기사단은 처음의 격돌로 전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북팽가 최고의 기사라는 팽우룡조차 처음 격돌로 말을 잃고 죽을 뻔했으니까 말이다.

    “마교의 병력은 얼마나 되지?”

    “궁금한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줄 리는 없겠지만, 들어 보고는 싶군.”

    “우리 마교는 세 개의 기사단이 있지. 소울 기사단, 플레임 기사단, 다크 기사단! 그리고 각 기사단은 네 개 조로 나누어 운용된다. 나는 그중에서 다크 기사단 산하 흑룡조의 일원이지. 마교의 기사단 중에서도 가장 하위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으음…….”

    팽선웅 백작을 포함한 수뇌부들은 메칸의 말에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거짓이 섞여 있겠지만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기엔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오늘 무당파와 하북팽가의 싸움에 참전한 게 기사단 산하의 일개 조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수뇌부 사람들의 솔직한 마음은 메칸의 말이 거짓이길 바랐다.

    “왜? 믿어지지가 않아? 알려 줘도 너희는 우릴 못 막을 테니까 알려 주는 거다. 크크크……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 하나 알려 줄까?”

    “재미있는 사실? 그게 뭔가?”

    “너희가 우리 흑룡조를 이겼다고 생각해? 웃기는 소리! 정식기사는 단 10명에 불과했어. 만약 흑룡조 50명 전원이 넘어왔다면 지금 내 입장과 네 입장은 바뀌어 있었을 거야.”

    말을 마친 메칸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팽선웅 백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하북팽가 최고의 기사단은 썬더 기사단이다. 정식기사가 고작 10명밖에 포함되지 않은 기사단에 고전…… 아니, 샤벨타이거 기사단까지 합세하고서도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말도 안 되는 소리군. 그렇다면 나머지 40명은 기사들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당연하지. 솔직히 의외이긴 했다. 우린 동대륙에 교두보를 세우는 데 흑룡 기사 10명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렇게 패배할 줄은 몰랐다. 어이없는 일이지. 아니…… 저 자식 때문이었다고 해야 하나?”

    메칸은 팽선웅 백작에게서 시선을 돌려 정천우를 바라보았다.

    그는 패배의 원인을 정천우라고 보았다.

    무당파에서 건네준 정보가 잘못된 게 가장 큰 이유다. 하북팽가의 기사단이 세 개가 아니라 네 개였다. 거기서부터 일이 꼬였다.

    아니다.

    싸울 만하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동대륙의 기사들 실력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제법 예상 밖의 실력이었지만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해치울 수 있었다.

    그런데 변수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정천우는 무공을 사용했다. 게다가 전설로만 전해지는 뇌전의 샤벨타이거를 만들 수 있는 존재다.

    놈이 난입하고서부터 흑룡 기사들이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정천우만 아니었다면 지금 자신은 시체의 산을 쌓아 놓고 대마신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원래 마교 놈들을 좀 싫어해서 말이다. 궁금한 게 있는데, 그럼 나머지 놈들은 기사가 아니고 뭐였냐?”

    “그 녀석들? 기마대 놈들이었지.”

    정천우가 건들거리며 묻자 메칸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수뇌부 사람들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자신과 대등하게 싸우던 놈들이 겨우 일반 병사였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마나 쉐도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런데 고작 기마대의 병사였다니…… 그들이 일반병사라고 한다면 자신들이 너무나 초라해진다.

    쾅!

    “말 같은 소릴 지껄여라!”

    성질 급한 팽만리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메칸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풉! 꼴에 자존심은 있다는 건가? 믿고 싶지 않겠지. 그러나 인정해야 할 거다. 네놈들은 마교가…… 아니! 서대륙이 어떤 곳인지 꿈에도 모를 거다. 단지 마법이 무서워서 동대륙의 무림맹주가 서대륙에 공물을 바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거야말로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

    메칸은 비웃음을 가득 담아 팽만리에게 비아냥거렸다.

    “그만! 이자를 끌고 가 감옥에 가두어라! 처분은 후에 결정하기로 하겠다!”

    팽선웅 백작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메칸을 손으로 가리키며 논쟁을 막았다.

    대기하던 병사 2명이 메칸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끌고 나갔다. 그제야 어수선하던 회의실의 분위기가 안정되었다. 사실 안정이라기보다는 수뇌부 전원의 마음이 무거워져 침묵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자, 자! 놈의 말은 잊어버리고, 피해 상황을 보고하시게.”

    팽선웅 백작은 일부러 분위기를 전환하려 조금은 기운차게 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보고는 또다시 회의실의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었다.

    “썬더 기사단의 보고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현재 팽우룡 단장이 치료 중에 있습니다. 포션을 사용해야 할 상황이기에 일단은 자연 치유력으로 몸을 추스른 다음 포션을 사용할 계획입니다. 총원 30명! 사망 9명, 중경상 10명, 부상자 중 즉시 투입 인력 5명! 현 인원, 보고자 포함 총 16명. 이상입니다.”

    “타이거 기사단 피해 보고! 총원 70명, 사망 21명, 중경상 30명, 부상자 중 즉시 투입 인력 10명. 현 인원, 보고자 포함 총 29명! 이상입니다.”

    “라이온 기사단 피해 보고! 총원 82명, 사망 5명, 중경상 45명, 부상자 중 즉시 투입 인력 32명. 현 인원, 보고자 포함 총 64명! 이상입니다.”

    “샤벨타이거 기사단 피해 보고! 총원 43명, 사망 3명, 중경상 10명, 부상자 중 즉시 투입 인력 6명. 현 인원, 보고자 포함 총 36명! 이상입니다.”

    팽우룡이 빠져 부단장인 팽만리의 보고에서부터 정천우에 이르기까지 피해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자 무거운 침묵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기사단이 반 토막 난 것이나 마찬가지의 피해였다. 기사단 전력을 확충해서 별다른 피해 없이 완승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였다.

    “일반병 피해 보고! 총원 10323명, 사망 395명, 중경상 154명, 부상자 중 즉시 투입 인력 82명. 현 인원, 총 9856명! 이상입니다.”

    마지막으로 팽수수가 일어나 일반 병사에 대한 보고를 듣고서야 팽선웅 백작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나마 일반 병사에 대한 피해라도 적어서 다행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기사단 전력이 반 토막 난 것은 뼈아픈 손실이었다. 하물며 팽씨 성을 부여받았을 정도의 실력자들까지 반 토막 났으니…….

    “전력이 늘었다고 좋아한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이토록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니 마음이 아프오.”

    팽선웅 백작은 심란한 얼굴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비록 전쟁은 이겼지만 승전의 기쁨보다 기사들을 잃었다는 아픔을 먼저 얘기하고 있었다.

    원래 좋은 일을 크게 부풀리고 나쁜 일은 줄여서 말하는 것이 우두머리 된 자의 기본 덕목이다. 하지만 워낙 가족처럼 지내 왔던 기사들을 잃었기에 그의 상심이 컸다.

    “하하하! 이런! 내가 분위기를 망쳤군그래. 어쨌든 이로써 무당파를 완전히 박살 낸 것이나 마찬가지요. 수수 경!”

    “예, 영주님.”

    “오늘 영지에 술과 고기를 풀고 승전을 축하하도록 하시오. 비용은 전리품을 일정 부분 할애해서 사용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오.”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영주님.”

    “자! 이제 앞으로의 일을 얘기해 봅시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기탄없이 얘기해 보도록 하시오.”

    팽선웅은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면서 수뇌부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조금 전에 영지의 축제를 명령받았던 팽수수가 손을 들었다.

    “오! 수수 경, 얘기하시오.”

    팽선웅 백작은 더욱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팽수수는 그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무력을 중시하는 하북팽가의 특성상 수뇌부는 모조리 기사로 채워져 있다. 무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을 수뇌부에 앉혀 놓으면 의견이 묵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팽수수의 경우, 무력도 나무랄 데 없이 강한 데다가 머리가 좋고 생각이 깊어 회의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재였다. 물론 팽우룡도 그런 성향이 강했지만 지금은 병실에 누워 있는 신세였으니, 현재 믿을 만한 두뇌는 팽수수뿐이었다.

    “이번 전쟁을 수습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세력을 늘리는 것입니다. 무당파의 주요 수뇌와 영주가 죽었고 기사 전력도 거의 전멸시켰으나, 무당파에는 아직 수련기사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우리 하북팽가로 흡수해야 합니다.”

    “흡수? 흐음…… 그게 효과가 있겠소?”

    “있습니다. 살아남은 무당파 기사들의 충성을 받아 내고, 영지를 흡수해 수련기사들의 충성까지 받아 내면 전보다 월등한 전력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건 어째서요?”

    “천우 경이 만든 단약을 사용한다면 우리 하북팽가의 기사들이 그랬듯이 기량이 대폭 향상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무당파의 영지를 빠르게 치고 들어가 딴생각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팽수수가 정천우의 얼굴을 한차례 쳐다보았다가 팽선웅 백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수가 있었군! 과연! 과연 수수 경의 생각은 뛰어나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떻소? 나는 수수 경이 내놓은 의견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오만.”

    “신, 팽만리!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팽만리가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구했다. 그러자 팽선웅 백작이 고개를 끄덕여 그것을 허락해 주었다.

    “무당파의 주전력이 와해되고 병사들을 포로로 잡고 있다고는 해도, 무당파를 치려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막 전투가 끝난 시점에서 병사를 진격시키려면 사기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흐음…… 만리 경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듯싶네. 수수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점은 이미 생각해 두었습니다.”

    팽수수는 하얀 이를 살포시 드러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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