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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84화 (8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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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22. 불길한 상상 (2)

    ***

    “갔겠지?”

    “그럴걸? 6서클 기가라이트닝에 맞고도 무사할 순 없어! 역천검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말이지.”

    헤이먼과 샤칼은 누구라고 지칭하지 않고서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살아 있으면 어떡하지?”

    “보호 마법이 만능인 줄 알아? 사용자 지정하는 데 1서클, 주변 인식하고 사용자 보호 설정하려면 못해도 4서클 정도의 마법이 필요해. 합이 5서클 마법이 필요하다고. 드래곤이 만들어도 5서클 이상의 마법은 못 막아.”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우리가 그런 거 알면 머리 아파진다.”

    헤이먼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샤칼의 마법이 폭격한 곳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젠장! 언제부터 그렇게 소심해진 건데? 누가 반 토막 아니랄까 봐 간뎅이도 반 토막 난 거냐? 새꺄, 아니면 마는 거지. 몰랐다고 하면 지가 어쩔 건데?”

    “그런가? 어, 돌 날아온다!”

    “저 빌어먹을 새끼들은 지치지도 않냐? 뭔 돌이 쉬지도 않고 날아와? ЦфЖЙПБЫ…… 라이트닝 캐논!”

    샤칼은 투덜대는 와중에도 마법을 완성해 날아오는 바위를 폭발시켰다.

    점점 다가오는 공성용 병기에도 간간이 마법을 날렸지만 마법사들이 보호하는지 번번이 실드 마법에 가로막혔다. 독하게 마음먹고 고위 마법을 쓰려 해도 트레뷔셰가 쏘아 대는 바위 때문에 시간이 넉넉지가 않았다.

    ***

    “으하하하! 성가신 놈이 사라졌구나!”

    슈발리에는 시야가 하얗게 변하면서 대폭발이 일어난 자리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모습에 크게 웃었다.

    절망의 순간에 일어난 뜻밖의 행운이었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마법이 상대하던 정천우에게 떨어졌다.

    정확히는 아군이 쏘아 낸 바위에 마법에 부닥치면서 일어난 폭발이다. 그러나 마법의 위력이 너무나 강렬해 그 아래에 있던 정천우까지 집어삼킨 것이다. 조금만 더 위력이 강했다면 자신 역시 무사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강력한 마법이 날아오는 모습에 무작정 몸을 날려 폭발 범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정천우가 몸으로 마법을 막아 준 탓에 폭발에 휩쓸리지 않은 건 더욱 운이 좋았다.

    “흐흐흐…… 행운은 내 편이라는 것인가? 우선 네놈부터 처리해 줘야 예의겠지?”

    슈발리에가 음침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피 거품을 흘리며 팽우룡이 비통한 얼굴로 세이버가 끼워진 창을 들었다. 죽음을 각오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을 준비하며 힘을 모았다.

    그러나 만신창이로 망가진 육체는 창날에 아지랑이와 같이 흐릿한 마나 쉐도우를 만들어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큭! 마지막 발악인가? 놀아 주고 싶지만 미안하군. 이런 싸움에 시간을 오래 끄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아.”

    “개소리! 누가 순순히…… 훗!”

    창대를 꽉 붙들고 슈발리에를 노려보며 각오를 다지던 팽우룡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웃어? 네놈이 미쳤…… 이건!”

    슈발리에가 가소롭다는 듯 스콜피온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가 감전된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존재감.

    그것이 슈발리에를 긴장시켰다.

    “빌어먹을! 뒈지는 줄 알았잖아!”

    슈발리에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진저리를 쳤다.

    ‘살아 있다니…….’

    슈발리에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천천히 돌아섰다.

    여기저기 그을린 모습으로 정천우가 투덜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엄청난 마법에 직격당하고도 살아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

    더 놀라운 것은……

    “뇌전의…… 샤벨타이거……?”

    슈발리에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정천우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뇌전의 기운이 하나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뇌전의 기운을 역천검이 흡수하면서 기운을 증폭시킨 것이다.

    “아주 짜릿한데? 기분 더러워서 그렇지.”

    정천우는 역천검을 들어 뇌전의 기운이 흐르는 모습을 감상하면서 중얼거렸다.

    “아…… 그래, 네가 있었지? 아주 제대로 다져 주겠어.”

    이제야 슈발리에를 발견했다는 듯이 정천우가 이를 갈았다.

    뇌전의 기운이 이글거리는 역천검을 겨누자 슈발리에가 마른침을 삼켰다.

    아까보다 더욱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정천우가 마법에 맞아 쓰러지기 전까지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다가 밀리던 와중이었다. 마나도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더욱 강해진 상대가 자신에게 검을 겨누니 절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으으으…… 이럴 순 없어! 내가! 이 내가! 나 슈발리에가 하북팽가 따위의 기사에게 두려움을 느끼다니!’

    슈발리에는 사색이 된 얼굴을 하고서도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몸을 부들부들 떨어 댔다.

    “젠장! 젠장! 젠자앙! 으아아아……!”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슈발리에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연달아 욕설을 쏟아 냈다.

    동대륙에 교두보를 세우기 위해서 출정한 자신이다. 비록 마교의 하위 무력 집단인 흑룡 기사단이라고 할지라도 동대륙 따위에 거점을 만드는 데 난항을 겪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첫 전투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슈발리에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분노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붉어진 얼굴이 점차 검게 물들어 가면서 기운이 달라졌다.

    순식간에 변화를 마친 슈발리에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제길! 후유증이 오래가겠어. 그래도 기분은 좋군.”

    슈발리에가 이를 드러내며 정천우를 노려보았다.

    피부색이 기괴하게 변했다. 거뭇하게 변한 피부 위로 굵은 핏줄이 꿈틀거렸다. 입술 사이로 드러난 송곳니는 인간의 것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길게 자라나 있었다.

    “역혈대법(逆血大法)? 그게 가능해?”

    정천우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곳의 사람들은 단전이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마교의 역혈대법이라니, 그의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으흐흐흐……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슈발리에는 넘치는 힘을 즐기면서 정천우를 향해 스콜피온을 쭉 뻗었다.

    무거운 창을 들어 정천우에게 겨누었음에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가뿐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고는 손에서부터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스콜피온을 감쌌다.

    마침내 검은 빛깔의 마나가 스콘피온의 창날로 몰려가 마나 쉐도우를 만들어 냈다. 주변의 공기가 빨려 가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부웅! 붕!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두어 차례 스콜피온을 휘두른 슈발리에는 두 손으로 창대를 잡았다. 본격적으로 공격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자세를 낮게 잡으며 정천우의 빈틈을 찾으려 눈을 번뜩였다. 약간의 틈이라도 발견하면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 전신의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킨 상태였다.

    “그 새끼, 더럽게 분위기 잡네.”

    정천우는 짜증이 가득 묻어나는 음성으로 투덜거렸다.

    단순히 투덜거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슈발리에의 살벌한 기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역천검을 늘어뜨린 채 성큼성큼 거리를 좁혔다.

    기분 더러운 마법에 맞은 건 괴로운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전신의 내공이 넘쳐난다. 역천검을 타고 들어오는 뇌전의 기운이 단전으로 빨려 들어와 이제껏 소모한 내공을 단숨에 회복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단전에 내공을 회복시켜 주고도 모자라서 주변에 뇌전의 기운을 마구 뿌려 대는 중이다. 오호단문도의 운용법에 따라 내공을 움직이고 있어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기운은 호랑이의 형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으음…….”

    슈발리에는 자세도 잡지 않고 걸어오는 정천우를 공격하려다가 낮게 침음을 흘리며 몸을 움찔거렸다.

    너무나 당당히 걸어오는 게 불안스러웠다. 달려들었다가 오히려 역습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얍삽하게 싸우던 놈이 갑작스럽게 당당한 태도로 나오니 의심부터 생겼다.

    게다가 뇌전의 기운이 섬뜩한 샤벨타이거의 형상이다. 동대륙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일이 눈앞에서 일어났다.

    비록 흐릿하기 짝이 없어 사기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찜찜한 기분은 숨길 수 없었다.

    “주둥이만 까진 놈이냐? 덤벼 봐!”

    정천우는 비웃음을 흘리면서 계속 다가왔다.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슈발리에는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며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정천우는 그가 순순히 물러나도록 놔두지 않았다.

    파바박!

    땅거죽을 벗겨 내며 박차고 나간 정천우가 늘어뜨렸던 역천검을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으헉!”

    느릿하게 다가오던 정천우가 보법을 발휘해 접근하자 슈발리에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마치 누군가 확 잡아당긴 것처럼 빠르게 다가오는 상대의 모습에 당황한 것이다. 부랴부랴 스콜피온으로 역천검을 후려쳤다.

    카앙! 지지직…….

    “끄아아아!”

    역천검을 막은 슈발리에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무기와 무기가 부닥치는 순간 뇌전의 기운이 창날을 통해 창대를 타고 전해져 전신을 옥죄었다.

    마나를 끌어올려 대항했지만 이미 창대를 통해 파고든 뇌전의 기운은 슈발리에의 근육을 오그라들게 했다.

    으드득!

    “빌어먹을! 죽인다아!”

    마나를 일깨워 고통스러운 뇌전의 기운을 털어 낸 슈발리에가 괴성을 질렀다.

    연달아 자신을 찔러 오는 역천검을 쳐 내고, 스콜피온의 창대를 손에 쥐고 노를 젓듯 마구 휘둘렀다. 창대를 타고 전해지는 뇌전의 기운을 이겨 내기 위해서 더욱 마나를 끌어 올렸다.

    심장이 터져 나갈 듯 쿵쾅거렸다. 미친 듯이 발작하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괴로웠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밀리면 죽는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우아아악!”

    슈발리에는 스콜피온을 마구 휘두르며 전진했다. 정천우를 갈아 버리겠다는 기세였다. 그렇지만 정작 그의 공격은 역천검에 가로막혀 전진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오호단문도의 네 번째 초식인 맹호난방(猛虎亂方)을 사용해 스콜피온이 노리는 방위를 효과적으로 방어했다.

    “죽어! 죽으란 말이다! 차앗! 하아! 이야압!”

    슈발리에는 눈이 찢어질 듯 정천우를 노려보며 더욱 맹렬하게 스콜피온을 휘둘렀다.

    그러나 정작 정천우의 표정은 한없이 편안하게만 보였다. 역천검을 들어 자신의 주변에 칼날의 방패를 형성하는 중이다. 몸이 새털처럼 가볍다.

    ‘맹호난방의 초식이 이처럼 자연스럽게 펼쳐질 줄이야!’

    속으로는 무척이나 놀랐으면서도 정천우의 얼굴은 무표정하기만 했다.

    맹호난방의 초식을 사용하려면 단련된 팔 근육과 만만치 않은 내공이 필요하다. 도기(刀氣)를 이용해 일종의 도막(刀膜)을 형성하는 게 맹호난방의 초식이다. 역천검은 검의 형태이기에 검막(劍膜)이 되겠지만 말이다.

    지금 정천우가 보이는 것은 숙련된 일류 무인이나 가능한 수준의 무공이었다. 그래서 스스로도 놀라는 중이었다.

    눈앞에서 씩씩거리는 슈발리에쯤은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쉽지만 끝을 내야겠다.”

    정천우는 스콜피온을 힘껏 튕겨 내며 중얼거렸다.

    용솟음치던 힘이 점차 약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증거로 정천우의 주변에 흐르던 뇌전의 기운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아울러 호랑이의 형태를 보이던 형상이 점차 작아지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 일순간 강해진 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정천우는 시간을 끌기보다 상황을 빨리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지금은 전쟁 중이다. 한가하게 몸에 일어난 변화를 음미할 때가 아니었다.

    “죽는 거다!”

    스콜피온을 튕겨 낸 정천우의 눈에서 시퍼런 살기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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