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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82화 (82/200)
  • # 82

    Chapter 21. 흑룡 기사단 (4)

    “만리 경, 괜찮습니까?”

    정천우가 역천검을 뽑으면서 소리쳤다. 그러고는 여분으로 말안장에 걸린 창대를 꺼내 역천검을 끼웠다.

    피윳!

    팽만리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정천우의 창이 허공을 갈랐다.

    “컥…….”

    검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가 팽만리를 공격하려다 목에 창날이 박힌 채로 입을 뻐끔거렸다.

    정천우가 창대를 비틀자 상대의 목에 박힌 역천검이 상처를 벌려 핏물이 콸콸 쏟아졌다.

    “조를 이루어 공격하라! 절대 혼자 상대하지 마!”

    “우와악! 공격하라!”

    정천우의 명령을 받은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이 목청을 돋우고 고함을 지르며 난전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위태롭게 맞서던 썬더 기사단의 기사들이 다시금 힘을 냈다.

    “우룡 경은 어디 있습…… 제기랄!”

    정천우는 팽만리에게 말하다 말고 욕설을 터트렸다. 상대 기사단의 후미에서 홀로 고전하는 팽우룡을 발견한 것이다.

    팽우룡은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서 겨우겨우 공격을 받아 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창날에 맺힌 마나 쉐도우가 흩어질 것 같았다.

    “죽어랏!”

    부아악!

    정천우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피 구덩이에서 방금 기어 나온 듯한 적 기사가 스콜피온을 휘둘러 왔다. 흉측하게 생긴 창날에 시커먼 기운이 맺혀 있었다.

    정천우는 생각할 것도 없이 두 손에 움켜쥔 창대를 들어 막았다.

    캉!

    “이익! 터트려 주겠다!”

    피로 범벅된 적 기사가 잔인한 미소를 흘리며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다. 체중을 실어 정천우를 찍어 누를 심산이었다.

    “꺼져라!”

    정천우가 입술을 씰룩이다 버럭 고함을 질렀다.

    팽우룡을 구하는 게 급선무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상대하는 적 기사를 해치워야만 했다. 지금이야 팽우룡이 겨우 잡아 놓고 있지만 그가 당하면 아군이 위험해진다.

    기합과 함께 단전에 힘을 고스란히 창대에 전달했다. 전사경(회전하는 힘을 육체의 최말단 부위로 전달하는 기술)의 원리로 뻗어 나간 힘이 마나 쉐도우를 증폭시키면서 폭발적으로 불어났다.

    쾅!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상대의 스콜피온이 튕겨 나갔다.

    중원 무공의 기초를 이루는 기술.

    폭(爆)!

    내공의 힘을 일순간에 터트려 순간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는 수법이었다.

    당황한 적 기사가 급하게 스콜피온을 회수하려 했지만 정천우는 훤하게 드러난 상대의 가슴에 그대로 창을 밀어 넣었다.

    콰각!

    창대에 연결한 역천검이 갑옷을 뚫으면서 상대의 가슴팍에 틀어박혔다.

    “끄으으…… 혼자 죽진 않겠다!”

    가슴을 꿰뚫리고서도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적 기사가 스콜피온을 내려쳤다.

    “지독한!”

    정천우는 공수탈백인(空手奪白刃)의 수법을 응용해 스콜피온의 궤도를 비틀었다.

    상대의 창대를 오른손으로 쳐 내면서 왼손으로 역천검이 끼워진 창을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말과 함께 딸려오는 적 기사의 머리통을 왼손만으로 창을 휘둘러 강하게 후려쳤다.

    “이랴아!”

    상대가 죽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말을 몰았다.

    팽우룡이 형편없이 밀리는 모습을 보고 조급해졌다. 자신이 도착하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리춤에서 드로잉 나이프를 꺼내 든 정천우가 내공을 일으켜 힘차게 던졌다.

    파우웅!

    “크흐흐흐! 고작, 고작 이건가? 겨우 이 정도의 능력으로 우릴 몰아낸 것이냐? 우습구나, 우스워!”

    얼굴 가득 비웃음을 띠며 흑룡 기사단의 단장인 슈발리에가 스콜피온을 휘둘렀다.

    스콜피온의 창날에서 새어 나오는 음습한 마기가 팽우룡의 창을 마구 두들겼다. 팽우룡의 창날에 맺힌 마나 쉐도우가 마기로 이루어진 창날에 부딪칠 때마다 뭉텅이로 깎여 나갔다.

    “쿨럭!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으을! 으아아아!”

    핏덩어리를 내뱉은 팽우룡이 절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비명에 가까운 기합을 내질렀다.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마나 쉐도우가 그의 창에서 애처롭게 깜빡거렸다.

    “풉! 최후의 발악인가?”

    슈발리에는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스콜피온을 들어 올렸다. 순간, 스콜피온의 창날에서 짙은 검은색의 마나 쉐도우가 타오르듯 일어났다.

    “너희 하북팽가를 시작으로 치욕적인 마교의 역사를 다시 쓰겠다. 그러니 영광으로 알고 이만 죽…….”

    느긋하게 중얼거리던 슈발리에의 인상이 굳어졌다.

    상체를 급하게 틀어 검은빛 마나 쉐도우를 품은 스콜피온을 휘둘렀다.

    콰앙!

    “욱! 대체 어떤 놈잇!”

    슈발리에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눈을 부라렸다.

    ‘대체 뭘 던진 거지? 손아귀가 찢어지는 느낌이었어. 이런 일이 가능한 인물을 동대륙에서 만날 줄은…….’

    호기롭게 소리쳤지만 슈발리에는 지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에도 바빴다.

    손아귀에서 벗어난 물건에 마나 쉐도우를 깃들게 하는 기술을 사용하는 놈이 동대륙에 있을 줄은 몰랐다. 동대륙은 마나 수련법조차 발달하지 못해 미개한 곳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비겁한!”

    슈발리에가 놀란 얼굴로 스콜피온을 들었다.

    창을 들고 말을 달려오기에 창술 대결을 펼치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상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싯누런 빛을 뿜어내는 물체가 자신에게 두 개나 쏘아졌다.

    쉬잉! 쉬잉!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벌 떼가 진동하는 듯한 소음이 한꺼번에 들려왔다. 마나 쉐도우가 주변의 공기를 갉아먹으면서 만들어지는 소음이었다.

    살기가 충만한 두 개의 물체가 자신의 심장과 말을 노렸다.

    “큭!”

    슈발리에는 두 개 모두를 처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심장을 노리는 물체에만 집중했다.

    쾅!

    “히히히힝!”

    슈발리에는 정천우가 던진 드로잉 나이프를 쳐 냄과 동시에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가 처리하지 못한 드로잉 나이프에 맞은 전투마가 앞발을 들면서 구슬픈 비명을 토해 냈다. 전투마가 쓰러지기 직전에 슈발리에가 뛰어내렸다.

    “노옴! 나만 당할 줄 알았냐!”

    슈발리에의 손에는 어느새 여분의 스콜피온이 들려 있었다. 고함과 함께 뒤로 젖혔던 오른손이 마나를 담아 휘둘렸다.

    훙, 훙, 훙!

    그의 손을 떠난 스콜피온이 회전을 일으키며 둔중한 파공음을 만들어 냈다.

    “쳇!”

    정천우가 혀를 차고는 말안장에 오른발을 올렸다.

    상대가 무얼 노리는지 뻔했다. 말안장을 밟은 정천우의 몸이 떠올랐다. 그가 도약하는 순간, 슈발리에가 던진 스콜피온이 말의 다리를 휘감았다.

    빠바박! 쿠당탕!

    정천우가 탔던 전투마는 스콜피온에 맞아 앞다리가 부러지면서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는 사이, 정천우는 허공에서 창대를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하강하는 중이었다.

    목표는 슈발리에의 머리!

    “차압!”

    “흥! 어림없다!”

    슈발리에는 코웃음을 치며 스콜피온을 꽉 움켜쥐었다.

    가속도가 붙어 몇 배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 공격을 막을 생각 따윈 없었다. 하물며 그 상대가 물건에 마나를 담아 던질 정도의 실력자임에야.

    바닥에 착지한 순간을 노려 반격을 가하겠다고 마음먹은 슈발리에가 몸을 긴장시켰다.

    머리를 노리고 떨어지는 창날이 거의 근접한 순간에야 슈발리에가 움직였다. 다리에 힘을 모으고, 움켜쥔 스콜피온에 마나를 듬뿍 퍼부었다.

    상대가 착지하면서 경직이 일어난 순간이 최적의 공격 타이밍이다. 마침내 정천우가 바닥에 내려앉으면서 창으로 땅바닥을 후려쳤다.

    퍼억! 퍼버벙!

    “지, 지독한 놈!”

    슈발리에가 질겁한 얼굴로 물러났다.

    상대가 착지하면서 보이게 될 틈을 노리자는 생각 따윈 저 멀리로 달아났다. 그가 예측했던 것보다 상대의 잔머리가 더 뛰어나다.

    단순한 창질인 줄 알았는데 바닥에 구멍이 두 개나 더 있었다.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그 짧은 사이에 정천우가 두 자루의 드로잉 나이프를 던진 것이다.

    만약 틈을 노리겠답시고 뛰어들었다가는 드로잉 나이프에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운 좋게 드로잉 나이프를 막았다고 할지라도 정천우가 그 순간을 놓쳤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슈발리에는 더욱 긴장한 얼굴로 스콜피온의 창대를 움켜쥐었다.

    “새끼가 눈치는 빠르네. 어이, 우룡 경! 괜찮습니까?”

    정천우가 땅에 박힌 창대에 손을 얹으며 팽우룡을 바라보았다.

    “쿨럭, 쿨럭…… 괘, 괜찮습니다. 그보다 부하들을 도와야…….”

    팽우룡은 각혈을 토하며 괴로워했다.

    정천우는 저런 상태에서도 부하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과연 기사단장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하들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저놈부터 해치우고 생각합시다.”

    정천우는 땅에 박힌 창대를 비틀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역천검과 창대가 분리되었다. 말 위에 올라탔을 때야 무기가 길수록 좋았지만 말에서 내린 지금은 오히려 불편했다. 정천우에게 가장 익숙한 무기는 검(劍)이나 도(刀)와 같은 짧은 병기였으니까 말이다.

    땅속에 반쯤 파묻힌 역천검을 뽑아 든 정천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저런 놈들한테 내가 중원에선 많이 쫄았었단 말이지?’

    역천검의 손잡이가 전하는 차가운 감촉을 음미하며 정천우가 눈매를 좁혔다.

    삼류(三流).

    낭인(浪人).

    두 개의 단어 모두 급이 떨어지는 계층이나 물건을 이르는 말이다. 정천우는 그 둘을 합쳐 부르는 삼류 낭인의 삶을 살아왔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아니, 달라질 거야.’

    정천우는 자신의 힘을 시험할 상대로 슈발리에가 적격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리저리 핍박받으면서 살았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만큼 약했기 때문에 언제나 위험한 곳에 내버려졌다.

    그럼에도 항의조차 해 본 적이 없다. 어설프게 대들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으니까.

    “이젠 자발적으로 위험한 놈들과 어울릴 차롄가? 재미있네, 재미있어.”

    정천우가 역천검을 들어 슈발리에를 겨누었다.

    생각해 보니 우습다.

    실력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위험한 일을 하는 건 마찬가지다.

    ‘결국 마음먹기 달렸다는 건가?’

    정천우는 지금의 상황이 우스웠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삼류 낭인으로 남에게 무시당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정말 간단했다.

    마지못해 싸우는가, 자발적으로 싸우는가!

    “이왕 싸울 거면 멋지게 싸워야 한다는 거겠지? 이봐!”

    정천우는 역천검을 까딱거려 슈발리에를 지목했다.

    “뭔가!”

    슈발리에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정천우의 행동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그의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동대륙의 허접한 놈들쯤은 쉽게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자신이 끌고 온 부하들이라면 하북팽가쯤은 어렵지 않은 상대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직접 싸워 보니 그게 아니다.

    처음 격돌이 벌어지고서 썬더 기사단을 저지했을 때만 해도 흑룡 기사단원들의 사기가 충만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개개인의 실력은 흑룡 기사들이 강하지만 하북팽가의 기사들이 숫자로 밀어붙이자 밀리는 기색이 보였다.

    빨리 자신이 합류해 흑룡 기사단을 이끌어야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거란 생각만 머리에 그득했다. 기사단이란 건 선두의 지휘관이 얼마만큼의 힘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공격력이 달라지는 조직이니까 말이다.

    빨리 기사단에 합류해야겠는데 정천우가 만만치 않아 보여 망설이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놔두고 가자니 뒤통수가 근질거려 싸움에 집중할 수도 없을 것 같아 고민이 컸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정천우의 행동과 표정이 슈발리에의 신경을 건드렸다.

    자신을 무시한다!

    감히 자신을!

    동대륙 따위의 허접한 기사단 주제에!

    ‘겁대가리 없는 놈!’

    슈발리에의 눈에 살기가 맺혔다. 그와 동시에 심장의 피가 끓어올랐다.

    그가 수련한 마나는 폭급하고 음습한 계열의 기운.

    상대의 목을 꺾고 뜨거운 피가 쏟아지는 머리통을 떼어 내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상대의 도발적인 눈빛이 슈발리에의 성질을 건드려 댔다.

    그런 와중에 정천우가 불을 질렀다.

    “멋지게 죽을 준비는 됐냐?”

    “미친놈!”

    슈발리에는 정천우의 도발에 온몸의 마나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쿨럭, 쿨럭…… 천우 경, 위험합니다!”

    팽우룡은 기침과 함께 입으로 핏물을 토해 내며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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