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81화 (81/200)
  • # 81

    Chapter 21. 흑룡 기사단 (3)

    ***

    “어리바리 꾸물거리지? 똑바로 안 서?”

    정천우가 화난 얼굴로 이를 드러냈다.

    누가 급조한 기사단 아니랄까 봐 티를 내도 무지하게 티를 낸다.

    다른 기사단은 목책을 빠져나와 벌써 열을 맞추고 돌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샤벨타이거 기사단은 아직 열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헤매는 중이다. 적 보병이 열을 맞춰 한 점의 흐트러짐도 없이 진군해 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젠장, 이렇게 굼떠서야…….”

    부하 기사들이 열을 다 맞췄을 즈음에 다른 기사단들은 벌써 진격하는 중이었다.

    날아오는 돌덩이는 영지의 마법사 4명과 샤칼이 마법을 사용해 적절히 막아 내고 있었다. 정천우가 이끄는 샤벨타이거 기사단이 할 일은 진격해 들어가는 아군 기사단이 고립되지 않도록 적 병사들을 공격하는 일이다.

    “좋아! 모두 병사…… 어째서? 저 자식들 뭐지?”

    창을 들어 올리며 진격 명령을 내리려던 정천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마기(魔氣)!

    음산하고 난폭하며 사람의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중원에서 보았던 마교도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과 흡사했다.

    피와 살육을 즐기는 인간 같지 않은 존재.

    그게 바로 마교의 무인이다.

    정천우의 눈이 마기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시커먼 색채의 갑옷.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마기.

    그런 기사들이 50명이나 된다.

    기사가 착용한 갑옷과 같은 칠흑의 마갑을 입힌 흑마를 타고 이제 막 돌진을 시작하고 있었다.

    적진과 목책의 거리는 불과 300여 미터.

    게다가 팽우룡이 이끄는 기사단은 벌써 출발한 상태였다. 불과 몇 초 후면 두 집단이 격돌할 것은 뻔한 이치였다.

    “마, 망할! 모두 나를 따르라! 진격!”

    “진겨억!”

    정천우가 창을 치켜들며 전투마의 배를 걷어찼다.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은 정천우의 명령을 복창한 뒤, 일제히 창을 높이 세우며 뒤를 따랐다.

    ***

    “하북팽가의 무서움을 뼈에 새겨 주어라! 거창!”

    팽우룡은 자신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튀어나오는 검은 갑옷의 기사단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두두두두!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200개에 달하는 창이 전방을 향해 뻗어졌다.

    하북팽가 소속 기사들의 얼굴엔 자신감이 짙게 묻어 나왔다.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지금의 썬더 기사단은 역대 최강의 전력이다. 전원 베테랑급 기사로 이루어졌다.

    전에는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만이 썬더 기사단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베테랑급의 실력자가 아니면 썬더 기사단의 일원이 될 수 없다.

    베테랑급 기사들로 이루어진 기사단!

    동대륙의 영지 중에서 이만한 전력을 보유한 곳은 오직 하북팽가가 유일할 것이다.

    “준비!”

    팽우룡이 말고삐를 놓고 두 다리만으로 몸을 지탱했다.

    방패를 들어 올리고, 오른손에 쥔 창을 겨드랑이에 끼우며 단단히 고정시켰다.

    즈즈증…….

    창대를 타고 흘러간 마나가 선명한 푸른색의 마나 쉐도우를 만들어 냈다. 곧이어 다른 기사들의 창에서도 푸른색의 마나 쉐도우가 불쑥 일어났다.

    하북팽가 소속 기사들은 썬더 기사단을 선두로 해서 쐐기 형태를 이루었다.

    시커먼 갑옷을 입은 적 기사단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돌파!”

    팽우룡이 단호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투구에 붉은색 깃털을 장식한 선두의 기사가 팽우룡의 목표였다.

    그의 자세가 더욱 낮아졌다. 노출 부위를 최소화한 상태로 적 기사의 가슴을 노리고 창을 고정시켰다.

    ‘온다!’

    격돌의 순간 팽우룡이 입술을 씰룩이면서 창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끼릭!

    금속으로 만들어진 창대가 팽우룡의 갑옷과 맞물리면서 쇠를 갈아 먹는 소리를 냈다.

    “이야압!”

    “차아아!”

    붉은색 깃털로 투구를 장식한 적 기사와 팽우룡의 입에서 동시에 기합이 튀어나왔다.

    적 기사의 손에 들린 스콜피온(Scorpion, 찌르고 베고 걸기 쉽게 복잡한 날을 가진 창)에서도 마나 쉐도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이건!’

    자신의 창과 상대의 창이 마주치기 직전, 팽우룡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의 창에 맺힌 검은색의 마나 쉐도우를 발견한 순간,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거리가 벌어져 있을 때에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하북팽가의 예기를 꺾기 위한 칼받이 정도로 예상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검은색의 마나 쉐도우!

    그것이 뜻하는 것은 한 가지.

    마교의 기사라는 의미다.

    팽우룡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자신의 상대가 평범한 놈이 아니라는 생각과 동시에 전신의 힘을 모조리 창에 실었다.

    콰앙!

    폭음과 함께 팽우룡의 창과 붉은 깃털 투구의 기사가 휘두른 스콜피온이 마주쳤다.

    시커먼 마나 쉐도우와 시리도록 푸른 마나 쉐도우가 부딪치면서 스파크를 일으켰다.

    우두둑!

    “히히히힝…….”

    팽우룡을 태운 전투마가 구슬픈 울음을 흘렸다. 적 기사가 내려친 힘이 워낙 막강해 팽우룡을 태운 전투마의 허리에 무리가 간 것이다.

    팽우룡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마교다!”

    팽우룡이 전투마에서 뛰어내리며 비명처럼 악을 썼다.

    엄청난 압력을 받은 그의 입에서는 핏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그러나 아프다고 징징거릴 때가 아니었다. 적 기사단의 말이 자신을 지나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콰과광! 콰광, 쾅!

    연달아서 폭음이 일어났다.

    적 기사단과 하북팽가의 썬더 기사단이 맞부딪치면서 일어난 소음이다.

    “빌어먹으을!”

    팽우룡이 비통한 얼굴로 소리치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스콜피온을 쳐 냈다. 그가 상대했던 적 기사단장만큼은 아니었지만 묵직한 충격이 손을 타고 쩌르르 울렸다.

    팽우룡은 흑색의 갑주를 입은 기사단이 통과하자 인상을 와락 구겼다. 뒤이어서 무당파의 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말을 몰아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개죽음밖에 되지 않는다. 빨리 다른 아군 기사의 말에 올라타야만 한다.

    “이럴 수가!”

    팽우룡은 아군의 도움을 받기 위해 몸을 돌렸다가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멈췄다!

    썬더 기사단이 흑색의 갑주를 입은 기사단에 의해 가로막혔다. 때문에 썬더 기사단의 뒤를 받치던 타이거 기사단과 라이온 기사단이 좌우로 튀어나왔다.

    말을 달리던 순간이었기에 멈출 수가 없으니 썬더 기사단을 급하게 피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기사단의 돌격이 제압되다니!

    팽우룡의 상식으로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빠져나오지 못했어?’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적 기사단을 통과하지 못했다. 단 한 사람도!

    “이익!”

    팽우룡은 이를 갈아붙이고 뛰었다.

    그런 팽우룡을 타이거 기사단과 라이온 기사단이 스치듯 지나쳤다. 라이온 기사단과 타이거 기사단을 지휘하는 그란드 팽과 윈체스터 팽이 굳은 얼굴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팽우룡은 그들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말! 말이 필요해!”

    팽우룡은 등을 보이고 싸우는 흑색 갑옷의 기사단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을 짧은 거리이건만 그에게는 끔찍하도록 멀게 느껴졌다. 달려가는 그의 눈에 적 기사의 스콜피온이 아군 기사의 창을 튕겨 내고 그대로 내리긋는 광경이 들어왔다.

    “안 돼애! 형태야!”

    갑옷째 구겨지는 부하의 모습에 팽우룡이 피범벅된 입을 열어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안타까운 외침과 상관없이, 하북팽가 소속 기사는 핏물을 쏟아 내며 말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제 발로 죽으러 왔군!”

    하북팽가의 기사를 무참히 살해한 흑색 갑옷의 기사가 스콜피온을 허공에 휘두르며 말을 돌렸다.

    등 뒤에서 터져 나온 팽우룡의 절규를 들은 탓이다.

    “죽인다!”

    팽우룡이 핏발 선 눈을 부릅뜨며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두 손으로 움켜쥔 창의 칼날이 진동을 일으키며 마나 쉐도우를 뿜어냈다.

    “흥! 어림없는 소리!”

    흑색 갑주를 입은 기사는 비웃음을 날리며 스콜피온을 힘껏 들어 올렸다가 아래로 내리찍었다.

    쩡!

    금속성과 함께 마나 쉐도우의 파편이 사방으로 불똥을 튀기며 날아갔다.

    “제법!”

    팽우룡의 공격에 손아귀가 아릿해진 흑색 갑옷의 기사가 스콜피온을 고쳐 잡았다.

    “죽여 버리겠어!”

    팽우룡은 거추장스러운 방패를 집어던지며 이를 갈았다. 창을 휘두르는 데 방해되었기 때문이다.

    입술을 씰룩인 팽우룡이 다시 한 번 뛰어오르면서 흑색 갑옷의 기사를 향해 창을 찔렀다. 날카로운 파공음을 발하며 상대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상대 기사는 당황하지 않았다.

    스콜피온을 휘둘러 팽우룡의 창을 쳐 내고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지지하던 왼손을 축으로 삼아 스콜피온이 반원을 그렸다. 버트(Butt, 창의 손잡이 끝)에 달린 날카로운 쇠붙이가 팽우룡의 턱을 노렸다.

    “차압!”

    팽우룡이 묵직한 기합성과 함께 창대에 끼운 세이버로 스콜피온의 창대를 막았다. 그러고는 상대의 창대를 발판 삼아 창을 잡은 두 손을 앞으로 쭉 밀었다.

    세이버의 칼날이 상대 기사의 창대를 타고 미끄러져 올라갔다.

    투둑!

    “크아악!”

    상대 기사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스콜피온을 잡은 오른손이 세이버의 칼날에 의해 썰렸다. 심장의 박동에 맞추어 핏물이 쭉쭉 뿜어져 나왔다. 팽우룡의 창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쩌걱!

    “그륵, 그르륵…….”

    비명을 지르는 상대의 목울대에 창날을 밀어 넣자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면서 말에서 굴러떨어졌다.

    팽우룡은 주인을 잃은 말의 안장을 움켜쥐며 훌쩍 올라탔다. 고삐를 움켜쥔 그는 전투마의 배를 걷어찼다. 자신의 부하들을 공격하는 흑색 갑옷의 기사단을 향해서.

    ***

    “하아! 하아! 모두 창을 들어라!”

    정천우가 전투마에 박차를 가하며 창을 겨누었다.

    아군 기사단이 좌우로 흩어지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군 기사단이 옆으로 이동한 뒤에 보인 광경은 정천우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썬더 기사단이 마교의 기사들에게 가로막혀 고전하고 있었다.

    ‘제길! 밀리고 있어!’

    정천우가 초조한 얼굴로 창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소진되었던 내공은 샤벨타이거 기사단이 대열을 정비하는 중에 보충해 둔 상태였다.

    썬더 기사단이 밀리면 위험해진다.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닌 썬더 기사단이 무너지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 게 뻔하다.

    “멈춰라!”

    정천우가 단전의 내공을 담아 전방을 향해 뿜어냈다.

    뿜어냈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전신의 내공을 한순간에 음파로 바꾸어 사자후(獅子吼)를 흉내 냈다.

    ‘좋아!’

    정천우가 전투마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내공을 담은 자신의 고함에 흑색 갑옷을 입은 놈들이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군 기사들 역시 흠칫했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지원이다! 천우 경의 지원이다!”

    고전하던 팽만리가 정천우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팽우룡이 처음 격돌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썬더 기사단이 추진력을 잃었다. 돌진해야 하는데 오히려 뒤로 밀려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적들의 무력이 엄청났다. 단약을 먹은 뒤로 베테랑급 실력을 갖추게 되어 두려울 것이 없다고 믿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영지 무력 서열 3위에 위치한 팽만리가 낭패를 당할 정도였으니, 다른 기사들은 더욱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천우가 지원을 오는 것이다. 썬더 기사단원들은 힘이 불끈 솟는 느낌이었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만리! 숙여!”

    팽만리는 등 뒤에서 들리는 고함에 창을 휘두르다 말고 말 위에서 몸을 황급히 숙였다. 호칭이 생략되었다고 따질 때가 아니었다.

    바우웅!

    바람을 가르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싯누런 빛을 뿌리며 창이 지나쳤다.

    퍼걱!

    “크와악!”

    이제껏 자신을 괴롭히던 흑색 갑옷의 기사가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왼쪽 어깨에 정천우가 던진 창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팽만리는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창을 들어 대각선으로 올려쳤다.

    떵!

    비명을 지르던 상대의 투구가 창대에 걸렸다.

    대번에 투구가 우그러들면서 눈알과 함께 핏물이 와락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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