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78화 (78/200)
  • # 78

    Chapter 20. 영지전 (3)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정천우의 구타는 멈추질 않았다. 이번 기회에 샤칼을 아주 단단히 교육하겠다고 작정했다.

    퍽, 퍼벅, 퍽!

    “죽여 버리려다가 기껏 살려 주니까 엉겨? 새끼가 아주 죽으려고 용을 쓰는구나, 용을 써! 맞는 게 즐겁냐? 망할 새끼가! 오늘 곡소리 나게 좀 맞자!”

    새로운 부하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정천우가 광기까지 드러내며 샤칼을 짓밟아 댔다.

    “다시는…… 컥! 아, 안 덤비…… 안 덤빈다구!”

    샤칼은 필사적으로 정천우의 다리를 붙들고 빌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구타가 멈췄다.

    용서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더 때리면 샤칼이 버티지 못할까 봐서다.

    “좋아, 한 번만 더 개기면 그땐 알아서 해.”

    “무, 물론이다! 크윽…… 다시는 그러지 않겠어.”

    “믿어 보겠어.”

    정천우는 그제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으윽…… 지독한 자식.”

    샤칼은 툴툴거리면서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 쑤시지 않는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어찌나 골고루 얻어맞았는지, 딱히 어디가 더 아프다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ФБЙЭбД…… 치료! ФБЙЭбД…… 치료! 으윽! 그래도 몸이 쑤시네. 지난번보다 더 지독하잖아! 제기랄…… ФБЙЭбД…….”

    몸에 치료 마법을 두 차례나 더 사용하고서야 겨우 통증이 가라앉았다.

    “우우우…….”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말하는 것을 들어 보니 전에도 정천우가 샤칼을 밟았다는 의미였다.

    순식간에 치료 마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소문처럼 대마법사가 맞았다. 저 대단한 하이엘프를 실력으로 눌렀다니, 정말 엄청난 실력자가 아닐 수 없었다.

    “다 됐으면 단원들한테도 해 줘. 저러다 쓰러지겠다.”

    “쳇…… 알았다.”

    샤칼은 정천우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감히 거부하지 못하고 기사단원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치료 마법을 걸어 주었다.

    모든 기사단원에게 치료 마법을 걸어 주는 데 겨우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기사단원들은 더욱 놀랐다. 30명이 넘는 사람에게 치료 마법을 걸어 주면서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대마법사가 확실하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정천우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대단한 존재를 개 패듯이 한 그가 새롭게 보였다.

    “대단한 분이잖아?”

    “더럽게 아프긴 했지만, 지금 기분 좋다. 저런 분과 함께 싸울 수 있다니…….”

    “팽우룡 단장님보다 강할까?”

    “어쩌면……?”

    기사단원들은 몸이 낫자 정천우를 놓고 수군거렸다.

    대마법사급 마법사를 처음 보는 기사단원들이다. 마법이 발달했다는 서대륙에서도 대마법사는 희귀하다고 들었다. 하물며 정령술이 주특기인 엘프 대마법사라면 귀하다고 표현하는 것조차 실례다.

    그런데 정천우는 전혀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두들겨 패고 죽이네 살리네 하고 있다.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기사단원들이 웅성대는 사이, 정천우는 다시 단 위로 올라가 기사들을 내려다보았다. 기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 하고 정천우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경외심을 담아서!

    ‘자식들, 눈빛이 더 마음에 들게 변했어.’

    정천우는 샤칼을 두들겨 팬 효과가 나타난 것 같아 속으로 흐뭇해했다.

    두려움이든 존경심이든 뭐든 좋다. 안 하면 모를까, 책임져야 할 부하가 생겼으니 허무한 죽음을 당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처음 제군들에게 한 말을 기억하라! 나는 제군들이 허망하게 죽는 걸 바라지 않는다.”

    “충!”

    기사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렸다.

    정천우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의 능력을 눈으로 봤고, 그의 실력을 몸으로 느꼈다. 그런 사람이 자신들더러 죽지 말라고 한다.

    더 행복한 건 그렇게나 강한 사람이 자신들의 기사단장이라는 점이다.

    “충! 기사 하스론, 천우 단장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하스론은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생각이 들자 선동하듯 한쪽 무릎을 꿇으며 크게 소리쳤다.

    “충! 기사 슈라, 천우 단장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충! 기사 레밍턴…….”

    하스론의 선동에 동료인 레밍턴을 시작으로 기사들이 줄줄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윽고 모든 기사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자 정천우가 기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군들의 마음을 알겠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이번 전쟁에서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더니 지금의 정천우가 그랬다. 사람을 압도하는 듯한 목소리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샤벨타이거 기사단은 오늘 바로 결성됐다. 이제 제군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바로 조직력을 갖추는 것!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목에 힘을 주어 말하던 정천우가 말끝을 늘였다. 그러고는 얼굴에 사악한 표정이 나타났다.

    기사들은 정천우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러는지 몰라서 의아한 얼굴로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정천우의 입이 열렸다.

    “신나게 구르는 거다! 조교, 앞으로!”

    “앞으로오!”

    정천우의 명령에 뒤쪽에 서 있던 하스론 일행이 꽁지가 빠져라 뛰어 나왔다.

    순간 나머지 기사들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안 좋은 예상은 비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껏 열기로 달아올랐던 연무장은 순식간에 비명과 욕설로 점철되었다. 두들겨 맞는 소리는 그저 소소한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

    “빨리빨리 움직여라!”

    팽만리가 우렁차게 고함을 질렀다.

    전쟁이 코앞에 닥쳤다. 무당파의 병력이 진격해 들어오는 게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 싸우기 위해서 숲을 미리 불태운 결과다.

    몬스터는 크로스보우를 사용하지 않지만 인간은 다르다. 나무 뒤에 숨어 쿼렐을 날려 댄다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화끈하게 싸우자는 하북팽가의 급한 성격이 숲을 태웠다.

    하북팽가의 사람들은 병사와 영지민의 경계가 사라졌다. 모두가 발 벗고 나서서 영지를 구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영지민은 당연하다는 듯 병사들의 명령을 받아들이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적들에게 던질 돌을 나르고, 각종 군수 물자를 날랐다.

    하북팽가의 내성과 외성은 그렇게 사람들이 전쟁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모두 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길 바란다!”

    정천우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의 눈에는 미덥지 않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겨우 이틀.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을 가르친 시간이다. 가르쳤다고 할 것도 없었다.

    가장 간단한 삼재진을 가르치고, 곧바로 말을 타고 싸우는 방법을 가르쳤다.

    말을 타고 싸우는 것 역시 별다를 바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하라는 정도였다.

    경험 있는 기사라고 해 봐야 가장 평가가 낮았던 라이언 기사단 출신의 기사 10명이 전부다. 나머지는 수련기사 출신이다. 본격적인 전술을 배운 적이 없었을 만큼 실전 경험이 부족했다.

    이런 기사들에게 기마전을 가르쳐 봐야 의미가 없었다. 그것도 전쟁이 고작 이틀 남은 상황에서라면 더욱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런 점을 고려한 것인지는 몰라도 팽선웅 백작은 샤벨타이거 기사단에게 무당파의 기사단을 상대하라는 임무를 내리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명령인지도 몰랐다.

    무당파의 기사단은 세 개다. 하북팽가의 기사단은 네 개로 늘어났다. 거기에 단약의 효과로 기사 전력이 늘어나 수적인 열세에서 벗어나기까지 했다.

    그러니 구태여 샤벨타이거 기사단까지 격돌에 투입시킬 필요까지는 없었다.

    덕분에 정천우의 부담이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일단은 목책을 방어하면서 상황에 맞게 임무를 수행하면 되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천우로서는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만큼 부하들이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자식들이 바짝 얼었는데?’

    정천우는 절반 이상의 부하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희가 경험이 없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주눅 들지 마라! 오늘! 오늘이 지나면 너희는 막강 샤벨타이거 기사단의 진정한 기사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함성을 질러라! 우와아아!”

    정천우가 역천검을 뽑아 들고 크게 소리쳤다.

    “후와! 후와! 후와아아아!”

    기사들이 뒤이어 함성을 내질렀다.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털어 내기 위한 것이다. 목이 찢어져라 함성을 지르면 없던 자신감도 생겨나기 마련이니까.

    “우리가 사수해야 할 곳은 여기다. 모두 무기를 점검하고 병사들과 함께 목책을 지킨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모두 무기를 창대에 장착한다! 실시하라!”

    정천우가 세이버를 꺼내 쇠로 만들어진 창대와 연결했다.

    장기전이 될 것을 우려해 기사들은 두 자루의 세이버를 휴대했다. 한 자루는 창대에 끼워 거리를 벌린 채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자루는 만약 창을 놓치거나 쓸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를 위한 여분이다.

    농성전과 마상전에서는 주로 창을 사용한다.

    적의 원거리 무기에 당하지 않으면서 상대를 공격하려면 세이버보다 창이 훨씬 효율적이다. 말을 타고서 휘두른다면 더욱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개발된 것이 세이버를 창대에 끼우는 무기였다.

    뿌우우우…….

    하북팽가의 병사 하나가 나팔을 입에 대고 길게 불었다. 적이 가까이 도착했으니 싸울 준비를 하라는 경고의 뜻이다.

    그러자 멀리 새끼손톱만 하게 보이는 무당파의 나팔수 역시 힘차게 나팔을 불었다. 먼지가 휘날리고, 꼬물꼬물 전진하던 무당파의 병사들이 제자리에 섰다.

    잠시 후 느긋하게 말을 몰고 앞으로 나서는 일단의 기마들이 있었다. 번쩍이는 갑옷을 두른 무당파의 기사들이었다.

    “숫자가 꽤 되잖아?”

    정천우가 무당파의 병력을 대충 헤아려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못해도 만 명에 이를 듯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기사 전력도 상당했다. 말을 탄 이들이 모두 기사라고 가정한다면 최소 150명은 넘는다.

    “천우, 모조리 끌고 온 모양인데?”

    정천우의 옆에 선 헤이먼이 무당파의 전력을 살펴보고는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얼마 전까지 무당파에서 지냈기에 대충 주워들은 게 있다. 무당파의 기사들은 모두 120명가량, 그런데 말을 탄 사람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병사의 숫자도 총병력이 1만 3천 명이라고 들었는데, 멀리 보이는 병력은 아무리 적게 쳐줘도 1만 명이다. 영지를 수비할 최소의 병력만 놔두고 모조리 끌고 왔다는 의미다.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이렇게 많이 몰려온 거야? 젠장맞을 새끼들.”

    “하북팽가에는 항구가 있잖아. 아마도 그게 탐나는 거겠지.”

    “하여간 그놈의 돈.”

    정천우가 혀를 차며 눈에 내공을 모았다.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기사들의 무장 상태가 무척이나 뛰어나 보였다.

    “뭐가 오는데?”

    적진을 살피던 정천우가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적 진영에서 하얀색 전투마를 탄 병사가 등에 백기를 매단 채 천천히 말을 몰아오고 있었다.

    대략 100미터 거리쯤까지 다가오던 병사는 둘둘 말린 종이를 꺼냈다.

    “하북팽가는 들어라! 자비로우시고 현명하신 우리 무당파의 장천근 후작께서는 피를 원하지 않으신다. 순순히 항복한다면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병사는 길지 않은 글을 읽으면서도 힘겨워했다. 먼 거리에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쳐야 했기에 숨이 딸리는 것이다.

    다시 내용을 읽어 가려는 병사를 노리고, 하북팽가의 목책 중앙 부근에서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쏘아져 나갔다.

    쉬이잉! 파바박!

    “히이히힝!”

    “우왁! 워, 워!”

    기다란 창이 병사가 탄 말 앞의 땅거죽을 파헤치며 박히자 놀란 말을 진정시키느라 병사가 허둥댔다.

    정천우를 비롯한 하북팽가의 사람들이 창을 던진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뾰족하게 깎은 목책 위에 한쪽 발을 올린 팽선웅 백작이 있었다.

    “이미 무리한 요구다! 하북팽가에 항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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