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77화 (77/200)
  • # 77

    Chapter 20. 영지전 (2)

    “하는 짓이 참…….”

    “귀병신아, 저런 인간을 계속 따라야 하냐?”

    “뭐 어쩌겠어. 꼬인 거지.”

    샤칼은 쓰게 입맛을 다시며 인간들의 미친 짓을 구경했다.

    4명과 37명의 싸움.

    상식적으로 미친 짓이다. 전투는커녕 포위되어 순식간에 녹아내려야 정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뭐가 저렇게 비리비리해?”

    샤칼이 눈살을 찌푸리며 툴툴거렸다.

    비록 부하가 되기로 맹세했지만 그의 입장에서 정천우는 얄미운 인간이다. 때문에 37명한테 둘러싸여 죽도록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정천우가 기세등등하게 37명의 기사를 압박한다.

    기가 막힌 상황에 그저 헛웃음만 흘러나왔다.

    “저게 말이 돼? 귀병신아,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니지?”

    헤이먼 역시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그는 정천우보다 3명이 조를 이루고 움직이는 기사들을 주목했다.

    정면을 한 명이 지키고, 나머지 두 사람이 공격에 전념한다. 다른 기사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전면에 세 개의 방패로 벽을 만들었다.

    선두로 나선 기사가 위력적인 공격을 전담하고, 나머지 2명이 공격 때문에 자세가 흐트러진 상대를 무력화시킨다. 3명이 돌아가며 위치를 바꿔 대면서 체력 소모를 최소화한다.

    기발한 전술이 아닐 수 없었다. 저런 식이라면 좁은 지형에서 적은 숫자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에 유리하다.

    특히 헤이먼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발견이었다. 드워프 종족의 수적인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대단한 전투 방식이었으니까 말이다.

    “아주 녹는구나, 녹아! 근데 저 자식은 안 지치나?”

    샤칼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그의 말처럼 녹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마치 얻어터지기 위해서 줄을 선 것 같은 광경이었다. 삼재진을 구축한 기사들과 정천우가 전진할 때마다 상대하는 기사들은 쓰러지기 바빴다.

    “겨우 이런 실력으로 비웃었나? 그런 거냐!”

    정천우가 이를 드러내며 연달아 역천검을 휘둘렀다. 그의 역천검이 움직일 때마다 가사들은 여지없이 픽픽 쓰러졌다.

    운 좋게 역천검을 막아도 소용없었다. 곧바로 발이 튀어나오거나 몸통 차징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쓰러졌다.

    정천우와 삼재진을 구성한 하스론 일행의 진격은 거침이 없었다.

    “너흰 뭐야, 새끼들아!”

    정천우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기사들을 쓰러뜨리고 마지막까지 전진한 끝에 발견한 것은 잭슨과 제럴드였다. 어째 안 보인다 싶더니, 맨 뒤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린 많이 당했잖아. 좀 봐줘.”

    제럴드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며 손사래를 쳤다. 그것은 잭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일같이 수련을 빙자한 구타에 시달리던 두 사람이다. 이젠 척하면 착이다.

    “자식들이 잔머리 굴리기는…….”

    정천우가 싱겁게 웃어 주고는 몸을 돌렸다.

    어차피 제럴드와 잭슨은 교육할 필요가 없기에 오늘은 열외시켜도 무방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뭣들 하나! 다 뒈졌어? 안 일어나지?”

    정천우는 바닥에 쓰러져 낑낑대는 기사들을 둘러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이 새끼들 봐라?”

    정천우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어기적거리면서 일어나지 못하는 기사들의 모습에 화가 치민 것이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 곳이 바로 전장이다. 전장에서 저런 식으로 어기적거렸다가는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겨우 이런 정도의 근성밖에 없는 놈들이 삼재진을 이룬 하스론 일행을 비웃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편하냐? 여기가 침대냐? 이 자식들, 아주 기본이 안 돼 있는 새끼들이네?”

    아직도 낑낑거리면서 꿈틀대는 기사들을 향해 정천우가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역천검을 땅바닥에 꽂더니 허리춤에 걸린 역천검의 검집을 끌렀다. 그러고는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뼈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요란하게 흘러나왔다.

    “다 뒈졌어!”

    정천우가 씹어뱉듯이 말하고는 쓰러진 기사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단순히 달려든 것만이 아니다. 쓰러져서 신음하는 기사들을 검집으로 두들겨 패면서 경공을 발휘했다.

    팡! 파방! 카가강!

    “으악! 사, 살려…….”

    “커흑!”

    “으아아아!”

    정천우가 검집으로 쓰러진 기사들의 갑옷을 두들기며 바람처럼 내달렸다.

    얻어맞은 기사들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 댔다.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뇌전의 기운을 담은 정천우의 매질은 끔찍한 고통을 주었다.

    “그래, 누워 있지? 어디, 얼마나 자빠져 있는지 한번 보겠어!”

    으스스한 미소를 베어 문 정천우는 바닥을 뒹구는 기사들을 더욱 모질게 두들겨 팼다.

    낭인들의 방식.

    그것은 짐승들의 방식이다. 확실한 우위에 서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누가 우두머리인지를 각인시키는 작업이다.

    육체를 단련하는 이들에게 가장 확실한 작업은 역시나 육체적인 고통이 답이다.

    “이건 좀 심하…… 커흑!”

    “일어나고 있습…… 끄아악!”

    반항하던 기사단원들은 어느새 애원하는 듯한 말투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정천우의 손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심하게 두들겨 패는 것 같았지만 기절하지 않을 정도로 힘을 조절했다.

    문제라면……

    맞는 사람에겐 전혀 배려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을 셀 동안에 일어나지 않는 새끼들은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라! 하나…… 둘…… 에이, 씨발!”

    정천우는 숫자를 세다가 말고 다시 검집을 들었다. 그러고는 경공을 발휘해 쓰러진 기사들 사이를 누비며 현란한 움직임으로 검집을 휘둘렀다.

    터덩! 텅! 파바방!

    “으악!”

    “커헉!”

    “사, 살려…….”

    기사들은 이제 구타가 끝났다고 안도하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정천우의 매질은 더욱 집요해졌고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훅, 훅, 후욱…… 이 자식들이, 내가 열 셀 동안 일어나랬다고 느그적거려? 다섯까지 세겠다! 이번에도 개기면 어떻게 되는지 시험해 봐도 좋다! 하나, 둘…….”

    절그럭, 철컥, 철컥!

    정천우가 둘을 세면서 겁집이 꿈틀거리자 기사들이 뜨악한 얼굴로 미친 듯이 일어났다. 몸뚱이가 저려 왔지만 또다시 두들겨 맞을 수 없다는 생각에 필사적이었다.

    아픈 건 둘째 치고 창피해 죽을 맛이었다. 다른 기사단 소속의 기사들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구타가 더 이어지면 앞으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은 엉망으로 두들겨 맞았음에도 꿋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줄 안 맞추지? 다시 시작할까?”

    정천우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기사들은 그의 손에 쥔 검집이 꿈틀거리자 꽁지에 불붙은 강아지인 양 빠르게 움직여 처음 사열을 받았던 모습 그대로 오와 열을 맞췄다.

    “이제야 좀 기사들다운 눈빛이라 마음에 든다.”

    정천우가 엉망으로 망가진 기사들의 눈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독기가 느껴진다.

    처음 이들을 마주했을 때 받은 첫인상은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자신의 주제도 모르면서 기사가 되었다는 자부심만 잔뜩 품은 모습이었다.

    무당파 놈들이 진격해 오는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쓸데없는 자부심만 하늘을 찌를 듯하다. 전장에 나가서 겉멋 부리다가 칼 맞아 죽기 딱 좋은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개처럼 두들겨 팬 자신에 대한 증오심이라도 상관없다. 지금 필요한 건 어떻게든 싸워 이기겠다는 독기(毒氣)다.

    이런 눈빛이라면 최소한 멍청하게 허둥대다가 허무하게 죽어 버리지는 않을 정도는 되어 보였다.

    “샤칼!”

    “왜, 이 새꺄!”

    정천우가 부르자 샤칼은 퉁명스럽게(?) 욕으로 응수했다.

    “이 개새끼가! 확 눈깔을 후벼벌라! 주둥이 똑바로 안 놀리지?”

    “좆 까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내 입으로 내가 말하는데 니 새끼가 왜 지랄염병이야!”

    샤칼은 잔뜩 꼬인 얼굴로 쌍욕을 퍼부었다. 나이도 어린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동네 똥개 부르듯 하자 열이 뻗친 것이다.

    좋아서 정천우의 부하가 된 게 아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그의 부하가 되었다. 존경심 따윈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자식이, 기껏 분위기 잡아 놨더니 조져 놓네?’

    정천우의 눈매가 좁아졌다.

    생각해 보니 지금 기사단의 군기를 잡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놈이 제일 문제다.

    “너 이 개자식! 오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어!”

    이를 뿌득 갈아붙인 정천우가 검집을 들어 올리며 샤칼에게 다가갔다.

    순간, 샤칼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인간 따위의 부하가 된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운데 말투를 걸고넘어지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우우웅…….

    “누가 순순히 맞아 줄 것 같냐!”

    샤칼이 분노한 얼굴로 마나 서클을 활성화시키며 소리쳤다.

    정천우는 잘 걸렸다는 얼굴로 보법을 밟으며 샤칼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샤칼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역천검을 들지 않은 이상은 자신의 마법을 무효화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ЦфЖЙПБЫ…… 라이트닝…… 커헉! 으윽! 아아악!”

    막 주문을 완성해 가던 샤칼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정천우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이겠다는 생각까진 좋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금제(禁制)가 걸려 있다는 것을 망각한 대가는 컸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마나 서클이 형성된 심장이 욱신거렸다.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절로 입이 쩍 벌어졌다.

    “멍청한 자식!”

    정천우가 스산하게 웃으며 검집으로 샤칼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빡!

    “크학!”

    샤칼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부터 치욕의 순간이 찾아왔다. 정천우가 쓰러진 샤칼을 검집으로 두들기고 발로 자근자근 밟았다.

    “처, 천우! 그만하면 안 될까?”

    보다 못한 헤이먼이 쭈뼛거리며 정천우를 말렸다.

    그러나 정천우는 으스스한 미소를 지으며 헤이먼을 노려보았다. 물론 샤칼을 두들기는 검집과 발은 전혀 멈추지 않은 채로.

    “너도 맞고 싶냐?”

    “제, 젠장…… 마음대로 해라.”

    헤이먼은 정천우의 협상 불가능한 대화법에 얼굴을 붉힌 채 뒤로 물러났다.

    샤칼이 두들겨 맞아도 도와줄 방법이 없다. 수호의 펜던트를 샤칼이 자의로 건네준 까닭에 헤이먼은 정천우를 공격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샤칼과 똑같은 꼴을 당할 수 있다.

    “헤, 헤이먼, 도와…… 컥! 도와줘!”

    “몰라, 인마!”

    헤이먼은 죽어 가는 목소리로 애원하는 샤칼을 외면하며 먼 산을 쳐다보았다.

    정천우는 신이 나서 검집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부하들 앞에서 자신을 물 먹인 샤칼의 버릇을 고쳐 놓겠다는 생각에 작정하고 손을 댔다.

    “으으으…… 마, 말도 안 돼!”

    “하이엘프님과 용맹하기로 소문난 드워프가 꼼짝도 못해…….”

    정천우의 무지막지한 구타에 군기가 바짝 든 기사들은 샤칼이 얻어터지는 모습에 기가 죽었다.

    7서클의 대마법사라고 소문난 샤칼이 마법을 구현해 보지도 못하고 얻어맞는 걸 보니 개길 마음이 싹 달아났다. 워낙 제대로 얻어터진 탓에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부단장이라고 소개한 헤이먼이 찍소리도 못하고 꼬리를 말았다.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은 급조된 샤벨타이거 기사단이 사실은 정예기사단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생겨났다.

    정천우가 얼마나 강하기에 드워프 전사가 군소리 없이 물러난다는 말인가!

    샤벨타이거 기사단원들은 자신들의 상관으로 대단한 사람을 모시게 되었다는 것에 두려움과 함께 자부심이 생겨났다. 어쩌면 최정예 기사단이 될지도 모를 샤벨타이거의 일원이 되었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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