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76화 (76/200)
  • # 76

    Chapter 20. 영지전 (1)

    “우리가 누구?”

    “샤벨타이거 기사단입니다아!”

    장난스럽게 느껴지는 정천우의 질문에 기사단원들이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기사단의 대답에 만족한 정천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안색을 굳혔다.

    “그래, 우리는 샤벨타이거 기사단이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

    표정을 바꾸며 정천우가 소리치자 기사단원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샤벨타이거 기사단이라는 건 이제 확실하게 알았다. 하지만 임무에 대해서 듣지는 못했다. 급조한 듯한 기사단의 이름과 어느 날 갑자기 두각을 드러낸 정천우가 단장이라는 게 그들이 아는 전부였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알 수 없으니 기사단원들은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정천우의 얼굴만 올려다보았다.

    “그렇다! 너희는 아무것도 몰라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내릴 명령은 단 두 가지다! 그것은 돌격, 그리고 후퇴다! 난 말 많은 걸 싫어하는 놈이다. 전투가 벌어지면 무조건 내 뒤만 따라와라! 내가 달리면 너희도 달리고, 내가 멈추면 너희도 멈춘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기사단원들은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무력이 한순간에 높아졌다. 모든 게 단상에 선 정천우 덕분이다.

    이상한 갈색 약을 먹고 육합권을 수련했더니 세상이 달라졌다. 활력이 넘쳤고, 이제껏 앞을 가로막았던 벽이 무너졌다. 그것은 검술을 수련하는 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급의 수련기사가 정규기사가 되었고, 원래 정규급 기사였던 사람들은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마나 쉐도우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정천우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스승을 대하는 것과 같았다.

    “그럼 어떻게 싸울 것인가!”

    “…….”

    “아무도 모르는가? 거기! 하스론!”

    정천우는 지난번 몬스터 토벌대에서 자신과 함께 싸운 기사를 알아보고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기사 하스론! 한데 뭉쳐 싸웁니다!”

    “역시!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그렇다! 우리는 뭉쳐서 싸운다! 어떻게 싸우는지 숙련된 조교의 시범을 통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하스론, 레밍턴, 슈라! 위치로!”

    전에 함께 싸웠던 기사들의 이름을 부르자 호명된 기사들이 기민한 움직임으로 튀어나왔다.

    정천우의 더러운 성격을 아는 그들로서는 신속한 행동만이 살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충! 기사 하스론, 방어!”

    “충! 기사 레밍턴, 공격수 하나!”

    “충! 기사 슈라, 공격수 둘!”

    3명의 기사는 정천우의 앞으로 나와 삼각형을 이루고 섰다.

    ‘그때 내가 좀 심했나? 뭐, 잘됐네.’

    정천우는 3명의 기사가 품(品) 자 형태로 자리 잡은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몬스터 토벌전을 나가기 직전에 휘하 기사들에게 가르쳤던 삼재진이다.

    시간이 없어서 기사들을 혹독하게 굴렸다. 몬스터 서식지로 이동하면서 시간 날 때마다 기사들을 가르쳤다. 당시에는 생소한 방식인 데다가 비겁하게 셋이 하나를 상대하라는 것 때문에 기사들의 반발이 심했었다.

    물론 정천우에게 실컷 쥐어 터진 다음에야 생각을 바꿨지만 말이다.

    “준비!”

    채쟁! 터덕!

    “끼야압!”

    정천우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3명의 기사가 쥐어짜는 듯한 기합을 지르며 세이버와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간격을 좁히면서 방어를 맡은 하스론의 뒤에 2명의 기사가 몸을 숨겼다.

    “이것이 너희가 배워야 할 삼재진이라는 것이다.”

    “…….”

    기사들은 침묵했다.

    뭔가 거창한 것을 가르치려는 줄 알았는데 졸렬하게 셋이서 상대를 압박하는 방법이라니…….

    부하들의 반응이 미지근함에도 정천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억지로 가르칠 생각이니까 말이다.

    “자! 실전에서 어떻게 활용하는지 내가 직접 보여 주도록 하겠다.”

    정천우는 단 위에서 내려와 역천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단전의 내공을 일깨워 마나 쉐도우를 일으켰다.

    우우웅…….

    “오오오!”

    “샤벨, 샤벨타이거야!”

    기사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감탄성을 흘렸다.

    전신에서 흘러나온 정천우의 내공이 흐릿하게 호랑이의 형상을 만들자 기사단원들이 탄성을 흘렸다.

    말로는 들었지만 정천우가 실제로 ‘뇌전의 샤벨타이거’를 만들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째서 기사단의 이름을 샤벨타이거로 지었는지 확실하게 인식한 것이다.

    “간다!”

    정천우가 짧게 말하고는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누런빛의 마나 쉐도우를 품은 역천검이 하스론의 머리를 노리고 사선으로 떨어졌다. 뇌전의 기운을 품은 마나 쉐도우가 길게 꼬리를 만들며 맹렬한 기세를 드러냈다.

    하스론은 이를 악물고 방패에 마나를 덧씌웠다. 정천우의 공격이 어떤 것인지 예전에 충분하도록 경험했다. 보이는 것만 믿었다간 팔목 나가기 십상이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정천우의 공격은 충돌의 순간에 더욱 증폭되기 때문이다.

    쾅!

    “으윽!”

    하스론이 정천우의 공격을 막아 내며 신음을 흘렸다. 지난번보다 더욱 공격이 강력해진 탓이다. 겨우 한 달 조금 더 지난 사이에 말이다.

    “이얍!”

    “차아!”

    하스론이 공격을 막아 내기 무섭게 뒤에서 대기하던 레밍턴과 슈라가 세이버로 공격을 가해 왔다.

    방패를 발로 걷어차면서 정천우가 두 사람의 공격을 튕겨 내고 몸을 빼냈다. 그러자 세 사람의 위치가 순간적으로 바뀌었다. 슈라가 방패로 전면을 가리면서 앞으로 나오고 하스론이 뒤로 물러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정천우가 역천검으로 방패를 두들기자 뒤에 선 두 사람이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제법이잖아?’

    정천우가 속으로 감탄했다.

    삼재진을 구성한 기사들이 정천우에게 놀랐듯이, 그 또한 기사들에게 놀라는 중이다.

    단약의 효과로 실력이 늘었을 것이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 봐야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 자신 역시 내공이 더욱 깊어지고 집중력이 달라졌다. 혼원벽력신공으로 심법을 갈아타면서 내공의 질이 달라진 덕분이다.

    그런데 예상을 깼다. 마나량이 조금 더 높아졌을 뿐이라고 얕잡아 보던 생각을 고쳐먹어야만 했다.

    삼류의 진법이라고는 해도 삼재진은 연수합격을 위한 진이다. 조금씩 상승한 기사들의 능력은 삼재진과 하나가 되면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정천우는 역천검에 더욱 강한 내공을 주입하면서 어지럽게 휘둘렀다.

    카가강! 카강캉!

    “그마안!”

    정천우가 크게 소리치며 뒤로 물러났다.

    사력을 다해 공격을 막아 내던 3명의 기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대체 뭐야?’

    하스론이 정천우를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약을 먹고 나서 붙은 자신감이 도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전에는 세이버에 겨우 마나 쉐도우를 생성해 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이버 전체에 푸르스름한 마나 쉐도우가 뒤덮인다. 그건 레밍턴과 슈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하스론은 자신 있었다. 정천우가 아무리 기이한 능력이 있다고 해도 3명이 삼재진을 이루어 공격한다면 몰아붙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자신들이 강해진 만큼…… 아니, 자신들보다 정천우의 실력이 더욱 늘어난 것 같았다.

    ‘방패로 막았는데도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어.’

    하스론은 방패를 쥔 왼팔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마나 쉐도우를 방패에 둘렀음에도 정천우의 역천검이 두들길 때면 라이트닝 볼트 마법에 맞은 것처럼 근육이 제멋대로 오그라들었다.

    새삼 정천우를 다시 보게 된 하스론이었다. 삼재진을 구성했던 다른 두 기사의 얼굴도 별반 다를 게 없는 표정이었다.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있었구나!”

    정천우가 흐뭇한 표정으로 삼재진을 구축했던 기사들을 칭찬했다.

    “단장님에 비하면 아직 한참이나 모자랍니다.”

    하스론은 존경스럽다는 얼굴로 정천우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정천우였지만 스승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3명이 진을 형성해 합격술로 공격해도 정천우를 어찌할 수 없었다. 틈틈이 손발을 맞춰 온 그들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하하하!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별로 내키지 않는 것 같은데? 어때? 저들 모두 감당할 수 있겠어?”

    정천우는 별것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그 말씀은…….”

    “얼굴을 봐. 영 껄쩍지근하다는 눈빛이잖아. 처음 내가 이걸 가르쳤을 때 너희가 보였던 표정하고 같지 않아?”

    빙그레 미소를 지은 채 정천우가 다른 기사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하스론을 비롯해 슈라와 레밍턴이 고개를 돌렸다.

    과연 정천우의 말 그대로였다.

    기사들의 얼굴에는 회의적인 기색이 가득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뇌전의 샤벨타이거를 보았을 때와는 다른 반응이었다.

    만약 뇌전의 샤벨타이거를 선명한 형태로 만들었다면 조금은 반응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정천우의 내공이 부족해 오호단문도를 사용하면서 만들어진 호랑이 형상은 너무 흐릿했다.

    셋이 뭉쳐서 겨우 한 사람을 상대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은 것 같았다.

    “모두 표정이 영 개운하지 않은 걸 보니 삼재진을 배울 마음의 자세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나와 여기 세 사람이 한편이 되어서 너희를 상대하겠다. 모두 무기를 뽑아랏!”

    정천우가 하스론 일행에게 묻지도 않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기사단원들은 무슨 헛소리냐는 듯이 주뼛거렸다.

    “하스론! 준비한다!”

    “옛! 단장님!”

    하스론은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방패를 앞세웠다.

    시키면 무조건 한다!

    정천우가 얼마나 꼴통에 막무가내인지 경험했던 탓에 몸이 절로 반응하고 말았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농담일 거야…….”

    기사들은 하스론이 방패를 앞세우는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정천우의 목소리에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오늘 화끈하게 조지는 거다!”

    “충!”

    정천우의 명령에 하스론이 크게 대답하며 천천히 전진했다.

    그 뒤를 레밍턴과 슈라가 보조를 맞추며 함께 행동했다. 그들의 손에는 마나 쉐도우를 머금은 세이버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사열식을 위해 모두가 갑옷을 입은 상태라 삼재진을 구성한 세 사람은 마나 쉐도우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약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자유 대련이다!”

    정천우가 역천검에 마나 쉐도우를 일으키며 크게 소리쳤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제기랄! 만나자마자 이건 좀 너무하잖아?”

    기사들은 그제야 지금 상황이 진짜라는 걸 깨닫고 부랴부랴 세이버를 뽑고 방패를 왼손에 들었다.

    기사들은 정천우가 자신들을 너무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기사들은 혀를 찼지만 그러지 못하는 2명이 있었다.

    “혀, 형님!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뒤로, 뒤로 튀어!”

    샤벨타이거 기사단에 배속된 제럴드는 잭슨을 끌고 슬금슬금 뒤쪽으로 물러났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정천우가 즐겁다는 듯 하스론의 옆에 거리를 벌리고는 보조를 맞추며 걸었다.

    비웃음을 흘리던 기사들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삼재진을 이룬 기사들과 정천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겨우 4명이 37명의 기사를 상대로 덤비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게 기사들에게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심어 주었다.

    “지는 쪽이 술값 내기다! 이야아!”

    정천우가 일부러 과장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역천검을 휘둘렀다.

    꽈앙!

    “으으윽! 끄아아아!”

    엉겁결에 방패를 들어 막은 기사가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에 쓰러졌다. 전신을 벌벌 떨면서 괴로워하는 게 심상치 않았다.

    뇌전의 기운을 품은 마나 쉐도우다. 그걸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방패로 받아 낸 대가였다. 역천검을 막은 방패는 흉하게 구겨졌다.

    정천우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면 방패와 팔이 통째로 잘려 나갔을 일격이었다.

    “고, 공격해!”

    기사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세이버에 마나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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