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71화 (71/200)
  • # 71

    Chapter 18. 시체는 말이 없다 (6)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요동을 치던 십여 발의 라이트닝 볼트가 샤칼의 말이 끝나는 것을 신호로 일제히 뻗어 나갔다.

    슈웅! 슈슈슝!

    “개자식, 누군 놀고 있냐?”

    정천우가 신법을 운용하면서 날아오는 라이트닝 볼트를 피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가 몸을 피한 곳으로 어김없이 살벌한 전격을 담은 라이트닝 볼트가 틀어박혔다. 물리 공격력까지 담은 라이트닝 볼트는 땅에 박힐 때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땅거죽을 헤집어 놓았다.

    ‘내가 이대로 맥없이 죽어 줄 줄 알아? 최소한 팔 하나는 가져간다.’

    정천우의 눈에 독기가 맺혔다.

    마법사라는 존재가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한다는 건 이미 경험해 봐서 안다. 지난번 몬스터 토벌전에서 제인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던가.

    그리고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아냈다.

    마법사들은 기사에 비해 육체적으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육체적인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샤칼을 공격하겠다는 게 정천우가 생각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개새끼! 더럽게 쏘아 대네!’

    정천우가 피할 방위까지 선점하고서 라이트닝 볼트가 날아왔다.

    파박!

    비룡번신(飛龍飜身, 허공에 몸을 띄워 위기를 피하는 신법)의 수법을 사용해 몸을 날렸다.

    이글거리는 뇌전의 기운을 담은 라이트닝 볼트가 애꿎은 땅거죽을 헤집는 사이, 정천우가 허리춤에 매달린 가방에서 드로잉 나이프를 꺼냈다.

    그 짧은 순간에 손가락 사이마다 드로잉 나이프를 끼워서 뽑아내고는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쉬쉬쉭!

    세 개의 드로잉 나이프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서 샤칼을 향해 뻗어 나갔다. 찰나의 순간이었음에도 드로잉 나이프에 마나 쉐도우가 담겨 있었다.

    “бЦфЛ…… 실드!”

    샤칼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오기가 무섭게 푸른색 막이 생겨나 그의 전신을 감쌌다.

    투두둥!

    세 개의 드로잉 나이프는 실드에 막혀 맥없이 튕겨 나갔다.

    “차앗!”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정천우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벼락처럼 기합을 내지르며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드로잉 나이프를 던진 것은 착지할 시간을 벌기 위한 꼼수에 불과할 뿐이었다. 언제까지나 피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에 과감하게 공격을 택했다.

    발바닥의 용천혈을 통해 내공을 뿜어내면서 대지를 박찼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거죽이 뭉텅이로 패여 나갔다.

    “어엇! ЦфЖЙПБЫ…… 라이트닝 캐논!”

    추진력을 얻은 정천우의 몸이 빠른 속도로 접근하자 샤칼이 당황한 음성으로 빠르게 캐스팅을 마쳤다.

    “젠자앙!”

    비명처럼 욕설을 터트리며 정천우가 역천검에 내공을 잔뜩 불어넣었다.

    피하기엔 늦었다.

    “빌어먹을 새끼!”

    그의 눈에 독기가 스며들었다.

    방법은 자신의 운과 내공의 집중된 힘, 그리고 생존 본능.

    부챗살처럼 넓게 펴지면서 날아오는 뇌전의 기운을 피할 곳이라곤 땅을 파고 숨는 것뿐이다. 피할 수 없다면 내공을 일으켜 마나 쉐도우로 상쇄하는 것 외엔 없다.

    전천우는 뇌전의 기운이 체내에 침입하는 것에 대비해 전력으로 내공을 뿜어냈다. 단전이 따끔거릴 정도로 내공을 쏟아부었다.

    단전에 쌓인 내공의 근간은 벽력(霹靂)의 기운.

    혼원벽력신공을 수련하면서 전륜공으로 쌓은 내공이 진화했다. 더욱 짙고 순수한 뇌전의 기운으로 내공이 변화한 것이다.

    정천우가 이를 드러내며 내공을 불어넣은 역천검으로 오호단문도의 제일초식 맹호수참(猛虎手斬)을 펼쳤다.

    날아드는 상대의 마법을 향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세 번의 칼질을 했다.

    콰과광!

    “크아아아!”

    정천우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마법과 역천검이 부딪치면서 연달아 충돌음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엄청난 폭발 속에서도 그는 살아남았다. 비록 입고 있던 옷이 그을려 엉망으로 망가졌지만 육체적인 피해는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느새 역천검의 검신에 빛나는 룬어가 드러나 있었다.

    “죽인다!”

    살벌한 기세를 피우면서 정천우가 땅을 박찼다.

    자신의 힘이건 역천검의 능력이건 중요하지 않다. 샤칼의 공격을 막아 냈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자, 잠깐!”

    샤칼이 당황한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정천우는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험악하게 눈을 부라리며 달려드는 정천우의 모습에 샤칼 역시 기분이 더러워졌다. 엘프답지 않게 호전적인 데다가 성질까지 더러운 그다. 일단 때려눕혀 놓고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마음먹었다.

    “ЭДЁФБЙ…… 파이어 버스터(Fire Burster)!”

    이제껏 전격계 마법을 사용한 이유는 역천검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확인되었으니 굳이 전격계 마법만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평소 즐겨 사용하는 마법이 자연스럽게 발동되었다. 7서클에 올라선 덕분인지 몰라도 마나가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이미 마법이 완성되고 있었다.

    쿠구궁…….

    “빌어먹으을!”

    정천우가 역천검을 앞세우며 욕설과 함께 파이어 버스터로 만들어진 불의 장벽을 향해 뛰어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뛰어든 게 아니라 멈출 수가 없었다. 이미 보법을 발휘해 몸이 탄력을 받고 날아가는 중인 상태에서 마법이 발동했으니까 말이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역천검의 검신에 새겨진 룬어에서 더욱 강한 빛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마나의 힘으로 일어난 마법의 불꽃이 좌우로 갈라졌다.

    절망하던 정천우에게 그것은 천우신조(天佑神助)의 기회였다. 사방이 불구덩이였지만 역천검을 중심으로 반경 2미터 이내로는 마법의 불길이 침입하지 못했다.

    정천우는 발이 땅바닥에 닿기가 무섭게 내공을 담아 거칠게 대지를 박찼다.

    “자식이, 좋게 말로 할 때 들을…… 으헉! ЖбДЁ…… 블링크!”

    가소롭다는 얼굴로 비웃음을 던지던 샤칼이 대경실색하며 5서클의 주문을 순간적으로 외웠다.

    그의 몸이 사라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누런 뇌전의 기운을 머금은 역천검이 빈 공간을 가르고 지나쳤다.

    바우웅!

    “칫! 어디냐! 거기냐? 개자식! 반드시 죽이고 만다!”

    정천우는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샤칼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15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샤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뿌드득 갈아붙인 정천우가 역천검을 하단으로 내린 채 바닥에 선을 그리듯 질질 끌면서 달렸다. 그러자 다급한 기색을 드러내며 샤칼이 주문을 외웠다.

    “бЦфЛжБЙ…… 베리어!”

    샤칼은 실드보다 훨씬 더 견고한 방어 마법을 몸에 두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파이어 버스터를 뚫고 자신을 공격할 줄은 몰랐다. 실드 마법을 사용한 상태였지만 마나 쉐도우를 방어하기엔 역부족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블링크로 몸을 피했다.

    “건방진 자식! 감히 나한테 대들어? 아주 껍데기를 홀라당 벗겨 주마! 크흐흐흐! фЛЦфБ…….”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샤칼이 느긋하게 주문을 외워 갔다.

    베리어 마법은 물리 공격과 마법 공격을 막아 내는 강력한 방어 수단이다. 시전자의 수준이 높을수록 더욱 강력한 방어력을 발휘한다. 기사들이 갑옷에 마나를 담아 방어력을 높이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샤칼이 베리어 마법을 완성하고 주문을 외우는 사이, 정천우가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보법을 펼쳐 빠르게 돌격했다.

    “뒈져 버렷!”

    샤칼의 앞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이제껏 돌격해 온 가속도를 이용해 오른팔에 힘을 주었다.

    시퍼런 핏줄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땅거죽에 선을 긋던 역천검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튀어 올랐다. 발검술의 이치를 담은 역천검이 아래에서 위로 떠오르며 샤칼의 베리어와 부딪쳤다.

    ‘어림없다! 그까짓 칼질로 베리어 마법이 부서질 것 같아?’

    “ФБЙ…….”

    샤칼은 비웃음을 흘리며 주문을 완성해 나갔다. 아니, 완성하려고 했다.

    “뭐, 뭐야! 우와악!”

    샤칼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스파크를 일으키며 마나 쉐도우를 머금은 역천검이 베리어를 파고들었다. 베리어와 사캴의 마나 고리가 연결되어 있기에 방어력이 높아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파괴될 뻔했다.

    샤칼이 질린 얼굴로 베리어에 더욱 마나를 퍼부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베리어가 더욱 덩치를 불렸다. 그러나 정천우의 역천검은 여전히 스파크를 일으키며 베리어를 흔들었다.

    “우, 운다인!”

    샤칼은 마법을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물의 중급 정령을 소환했다.

    정령력이 빠져나가면서 알몸의 여인이 그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령을 다루는 자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존재다.

    “주인, 불렀어? 바빠 보이네?”

    “이 자식 좀 어떻게 해 봐!”

    샤칼은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정확한 명령이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함께해 왔던 운다인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챘다.

    파직! 츠즈즛…….

    때를 같이해 베리어가 역천검에 의해 완전하게 파괴되었다.

    정천우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샤칼을 노려보며 역천검을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렸다. 단번에 베어 버리겠다는 살벌한 기세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

    어제 보았던 알몸의 여자가 나타났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쿠아 볼!”

    “뭐?”

    운다인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언령 마법을 사용하자 정천우는 화가 난 중에도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다급하게 역천검으로 전면을 막았다.

    정령이라는 게 어떤 존재였는지 들은 바가 없기에 운다인의 공격은 그에겐 뜻밖의 기습이나 마찬가지였다.

    쾅!

    “크윽! 뭐야, 이 개 같은 상황은!”

    정천우가 당혹성을 흘리면서 운다인이 발사한 아쿠아 볼을 막았다.

    아쿠아 볼이 부서지면서 사방으로 물이 튀었다. 운다인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손을 들어 올리려는 모습에 정천우가 이를 악물었다.

    운다인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샤칼이 몸을 피하면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놔두면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 모르는 상황.

    방어를 위해 안면을 가렸던 역천검의 손잡이를 비틀면서 검날이 전방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빠른 횡베기!

    “아쿠아 실드!”

    운다인은 마나 쉐도우가 이글거리는 역천검에 위협을 느끼고 공격 마법 대신에 방어 마법을 펼쳤다. 공격을 위해서는 본체가 무사해야 정령력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방울이 모여 생성된 아쿠아 실드를 역천검이 강하게 두들겼다.

    투캉!

    “꺄아악!”

    운다인이 비명을 질렀다. 역천검이 아쿠아 실드를 갈라내면서 본체에까지 상처를 입힌 탓이다.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물러나는 운다인.

    “아앗!”

    운다인은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비명을 질렀다.

    정천우가 그녀를 놔두고 샤칼에게 몸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상식 수준을 넘어서는 돌진이었기에 운다인은 마법을 사용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왼 주먹에 내공을 가득 담은 정천우가 샤칼을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보법을 밟았다. 아쿠아 실드를 파괴하느라 역천검에 쏟아부은 마나 쉐도우가 흩어진 상태였다. 역천검에 마나 쉐도우를 생성하기보다는 내공을 담은 정권 지르기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ЭбДЁФжБЙ…… 플레…….”

    “닥쳐!”

    정천우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문을 외우는 샤칼에게 빠른 속도로 접근하며 소리쳤다.

    퍽!

    “커흑!”

    샤칼이 배를 움켜쥐며 신음을 터트렸다.

    미처 주문을 완성하기도 전에 정천우의 왼 주먹이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숨이 턱 막히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천우는 공격이 성공하자마자 몸을 띄웠다. 그러고는 오른쪽 무릎을 차올렸다. 가슴을 움켜쥐고 고개 숙인 샤칼의 턱에 무릎이 작렬했다.

    “끄으으…….”

    턱에 밀려드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샤칼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정천우는 착지와 동시에 자세를 낮추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역천검으로 전면을 보호하며 마나 쉐도우를 만들었다. 운다인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필요한 행동이었다.

    다급하게 날아오던 운다인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정천우에게 공격하려고 손을 들어 올리던 자세 그대로 흩어졌다.

    “씨발! 별 좆같은 게 사람 귀찮게 만들고 있어!”

    정천우가 신경질적으로 몸을 다시 돌렸다.

    바닥에 엎어진 샤칼의 허리 아래에 오른발을 밀어 넣고 발을 슬쩍 차올려서 뒤집었다.

    “으으으…… 컥!”

    이제야 충격에서 벗어나 괴로운 신음을 흘리던 샤칼이 답답한 비명을 질렀다. 정천우가 그의 가슴에 우악스럽게 발을 올린 탓이다.

    그게 끝이 아니다. 역천검을 거꾸로 쥐고서 샤칼의 심장이 있는 곳에 검 끝을 가져다 대었다.

    “개새끼! 때릴 땐 좋았지?”

    정천우가 살기를 감추지 않으며 거꾸로 잡은 역천검의 손잡이에 나머지 왼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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