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Chapter 18. 시체는 말이 없다 (5)
고오오오…….
강하게 몰아치는 대자연의 마나가 샤칼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진동을 일으켰다.
“끄으아아악!”
샤칼이 비명을 지르며 더욱 괴로워했다.
그의 비명을 들은 팽선웅 백작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달려왔다. 끔찍한 비명도 문제였지만 마나가 휘몰아치고 있는 게 심상치 않았다.
샤칼의 수호기사인 헤이먼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러운 파동에 놀라 한달음에 달려왔다. 잠이 덜 깨서 반만 뜨고 있던 눈을 어느새 번쩍 뜬 상태였다.
“이, 이럴 수가!”
팽선웅 백작이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샤칼의 몸이 점점 허공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으으으! 크아아악!”
샤칼의 비명이 더욱 커졌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피부는 붉다 못해 피가 묻어 나올 것만 같았다. 주변의 마나가 그의 전신을 휘감으며 맹렬한 기세로 빨려 들어갔다.
파지직!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그의 몸에서 강렬한 섬광이 튀어나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일순 눈이 부셔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 휘몰아치던 마나 폭풍이 흩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정천우가 눈의 통증을 참아 내고 샤칼을 쳐다보았다.
샤칼의 얼굴은 아까와 달리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입술이 터진 상처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다는 점이었다.
츠즈즈즈…….
또다시 샤칼의 주변으로 마나가 몰려들었다.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마나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주변의 마나 밀도가 엄청나게 짙어졌다. 그렇게 몰려든 마나가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희미하게 겨우 형태만 유지되었던 심장의 여섯 번째 고리가 외부에서 흘러들어 오는 마나를 받아들이면서 밀도를 높였다. 그러고도 여력이 남아 일곱 번째 고리를 심장에 생성해 나갔다.
“아……!”
일곱 번째 고리가 만들어지는 순간, 샤칼의 얼굴이 희열에 물들었다.
자신과 세상이 하나로 이어지는 기분.
대자연의 마나가 자신과 어우러지면서 머릿속에 얼음물이 스며든 것처럼 싸해졌다. 마나를 통해 전해지는 감각이 직접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생생했다.
“후우…….”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마나를 빨아들인 샤칼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눈을 떴다.
세상이 달라졌다.
이제껏 그가 살아온 세상이었지만, 7서클의 경지에 올라서고 보니 미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귀, 귀병신!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헤이먼은 섬광 때문에 잃었던 시야를 회복하고는 샤칼을 향해 물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제껏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에 헤이먼이 가장 잘 안다. 기세가 달라졌다. 전신에서 흐르는 위압감은 이제까지의 샤칼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반 토막! 나 7서클 됐어. 넌 새꺄, 이제부터 개기면 좆 되는 거야! 으하하하!”
“……또라이 새끼.”
헤이먼이 똥 씹은 얼굴로 욕설을 뇌까렸다.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일 줄 알았더니, 저 걸레 같은 주둥이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어휴…….”
정천우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깨어났으니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며 창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만들어 둔 단약들을 챙길 생각이었다.
“인마! 거기 안 서?”
“아, 또 왜요?”
정천우가 귀찮다는 기색을 내보이며 몸을 돌렸다.
‘씨발, 이거 더럽게 귀찮게 됐네.’
정천우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꺼림칙하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샤칼의 기세가 돌변했다.
어제…… 아니, 아까까지만 해도 그냥저냥 만만한 상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달라졌다. 물론 더러운 주둥이는 그대로였지만 전신에서 풍겨 나오는 기세가 확 달라졌다.
이유는 몰라도 덤볐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었다.
육체가 강해졌나 하고 샤칼의 몸을 살폈다. 하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엘프인 그의 몸은 한 대 툭 치면 쓰러질 것처럼 비리비리하다. 작정하고 덤벼들면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정천우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샤칼은 한껏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아직 답을 해 주지 않았잖아?”
“뭐, 뭘 대답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샤칼의 얼굴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으스스한 미소에 정천우가 불안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단약을 매일 꾸준히 복용하고 내공심법도 혼원벽력신공으로 갈아탔다. 점차 실력이 꾸준히 늘고 있었다.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그래 봐야 이류 언저리의 실력이지만, 그 정도만 해도 베테랑급에 오른 팽우룡 정도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내공을 운용하는 법을 모르는 이쪽 세상의 기사에 비해 월등하게 빠른 반응 속도를 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샤칼을 상대하기는 꺼림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정천우가 조심하는 중이다.
“역천검의 진위 여부!”
“그게 말이 됩니까? 싫다고 했잖아요!”
정천우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직도 저 소리다. 역천검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 전격 마법에 얻어맞으란다. 상대가 꺼림칙해 알아서 기어 줬는데 마법을 얻어맞으라는 말에 울컥했다.
예전에 무당파의 침입자들과 정신없이 싸울 때 역천검이 마법을 막아 낸 건 그야말로 운이 좋아서다.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마법이라는 건 끔찍했다. 그런데 그 짓을 또 하라니 화가 났다.
잘못되면 어쩌라고 그걸 맞으란 말인가!
“처, 천우 경!”
“예, 영주님!”
정천우는 자신을 부르는 팽선웅 백작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팽선웅 백작은 지금 잔뜩 주눅이 든 상황이었다.
샤칼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얼굴에 흐르는 자신감과 은은하게 느껴지는 강렬한 마나의 파동.
조금 전에 그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팽선웅 백작은 눈치챌 수 있었다. 기사 혹은 마법사가 일정한 수준을 벗어날 때 일어난다는 현상과 일치했다.
마나의 폭풍이 일어나고, 일시에 모든 마나가 방출했다가 소강상태가 일어나고, 곧바로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는 현상.
마법사가 7서클의 대마법사로 올라서거나 기사들이 마스터의 반열에 들면 일어난다는 마나 오버로드!
마나가 과잉 공급되면서 한계를 부수고 경지가 깊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는 것은 샤칼이 대마법사의 반열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비록 말로만 들은 것이기에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샤칼의 비위를 거스르면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의 존재감은 가만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하게 다가와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샤칼 님을 자극해선 안 되네. 그, 그분이 원하신다면 받아들이게.”
팽선웅 백작은 마른침을 삼키며 정천우에게 말했다.
대마법사에 올라서기 전에도 5서클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물의 정령을 마음대로 다루는 엘프였다. 그 개 같은 성질머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하이엘프의 신분을 가진 인물이다. 어설픈 기사들은 그의 정령술과 마법에 농락당하기 일쑤였다.
이제 7서클의 대마법사가 되었으니 무슨 괴랄한 짓을 벌일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조심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지름길이었다.
“……지금 영주님께서는 저더러 죽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천우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배신감에 그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렸다. 지난번 그를 찾아갔을 때 느꼈던 호감이 급속도로 사라져 갔다.
하지만 샤칼의 요구가 무엇인지 모르는 팽선웅 백작이다. 정천우가 어째서 자신을 향해 상처받았다는 얼굴로 쳐다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샤칼 님은 위대한 하이엘프라네. 무엇을 요구하는지 모르겠지만 무리한 것이 아니라면 들어주는 것이 좋은 관계를 이어 가는 데 유리할걸세.”
“무리한 요구라서 말입니다, 빌어먹을! 이렇게 된 바에야!”
정천우가 역천검을 뽑아 들었다.
샤칼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어림도 없는 얘기다.
겨우 남의 호기심 따위나 충족시키자고 목숨을 희생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목숨이 걸린 일이다. 예의 따윈 지킬 만큼 지켜 줬다.
“크흐흐흐…… 드디어 결심한 거야? 진작에 그랬으면 서로 좋았잖아. 우리 피곤하게 굴지 말자고.”
샤칼은 기분이 좋아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해 보면 눈앞의 인간은 복덩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단약이 주는 고통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괴로웠지만 결과적으로 7서클의 경지를 개척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이제 신탁이 말하는 주인공이 정천우가 맞는지 확인하면 끝이다. 자신이 받은 신탁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기에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천우의 입장에선 지금의 상황이 즐거울 리가 없었다.
샤칼의 웃음이 그에게는 지독한 비웃음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샤칼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믿었던 팽선웅 백작이 무조건 샤칼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하는 것 또한 짜증스러웠다.
정천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닥치시지! 옥수수를 왕창 털어 버리기 전에!”
정천우의 입에서 상소리가 튀어나왔다.
목숨이 걸린 일이고 보니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샤칼이야 장난처럼 말하지만 당해야 하는 정천우 입장에선 장난이 될 수 없었다.
“뭣? 이 개새끼가, 예쁘다 예쁘다 해 줬더니 아주 지랄염병을 하고 자빠졌네? 야, 좆만아! 죽고 싶냐?”
마지막 확인 작업만 남은 상황에서 쌍욕을 들은 샤칼의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7서클의 경지를 개척해서 한껏 들떴던 그의 기분은 바닥을 모르고 곤두박질쳤다.
“개소리 떨지 마라! 덤벼! 씨발 새꺄, 어디 누가 죽나 해보자!”
정천우가 역천검을 움켜쥔 채로 샤칼을 노려보며 씹어 뱉듯이 욕하면서 노려보았다.
강해지겠다는 일념으로 손바닥이 너덜거릴 만큼 죽도록 수련했던 오호단문도의 기수식이었다.
“처, 천우 경! 그, 그게 무슨 망발인가! 어서 사과하게!”
“영주님도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하찮다고 해도 충성을 맹세한 부하에게 죽으라고 명령하시다니…… 다시 봤습니다.”
“그, 그게 무슨…….”
팽선웅 백작은 말문이 막혀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원만하게 일을 처리하고자 했을 뿐인데 원망을 들으니 기가 막혔던 것이다.
“빌어먹을 새끼! 간단하게 확인만 하면 된다니까?”
팽선웅 백작이 더듬거리면서 헤매는 사이, 샤칼이 끼어들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웃기는 소리! 마법으로 지지는 게 간단한 확인이냐? 누가 순순히 죽어 줄 것 같아?”
“개자식, 이렇게 된 바에야 속전속결이다! ЁФжБЙДЁ…… 라이트닝 랜스!”
정천우가 삐딱하게 나오자 빠르게 확인하기 위해서 샤칼이 뇌전의 기운을 담아 창의 형태로 만들어 던졌다.
하위 마법인 3서클 수준의 마법이었기에 샤칼은 순식간에 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마법의 발현에, 화가 난 상태라도 샤칼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러나 라이트닝 랜스가 정천우에게 날아가는 순간, 그의 몸은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콰광!
“쌍놈의 새끼! 어디 죽어 봐라!”
정천우가 신법을 발휘해 마법을 피하고는 샤칼을 향해 쇄도했다.
“쌍놈의 새끼? 씨부랄 놈의 새끼가 주뎅이를 함부로 놀려? ФБЙбДжБ…… 라이트닝 볼트!”
이어지는 욕설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샤칼이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올리면서 주문을 완성했다. 그러자 전기로 이루어진 원뿔 형태의 물체가 십여 개나 생성되었다.
“모, 모두 피하라!”
팽선웅 백작이 아연실색하며 크게 고함을 지르고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러자 영주를 호위하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그 뒤를 따랐다. 7서클의 대마법사가 펼치는 마법에 당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심지어 샤칼의 수호기사를 자처하는 헤이먼까지 함께 몸을 피하기 바빴다.
“넌 뒈졌어!”
샤칼이 눈을 부릅뜨며 고함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