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61화 (61/200)
  • # 61

    Chapter 17. 평화를 원하거든 칼을 들어라 (1)

    “차앗! 이야압!”

    “우욱! 장난 아닌데요? 그럼 이것도 받아 보세요! 타아!”

    제럴드의 공격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잭슨이 즐겁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세이버를 휘둘렀다.

    차자장, 차장!

    연달아 쇳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불똥이 튀었다.

    잭슨의 움직임은 기사단에 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민첩하고 힘이 넘쳐흘렀다.

    그에 맞서는 제럴드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일개 경비대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수준에 올라선 제럴드였다.

    일주일.

    제럴드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물론 그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악마 같은 정천우에게 죽을 만큼 시달렸다는 건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받아랏!”

    연속으로 날아드는 잭슨의 세이버를 막기에 급급하던 제럴드가 두 손으로 세이버를 쥐고서 옆으로 크게 휘둘렀다. 찌르기로 공격해 가던 잭슨의 세이버가 거기에 가로막히는 바람에 검 끝이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 갔다.

    때를 같이해 제럴드의 세이버가 잭슨의 목을 노리고 반원을 그려 냈다.

    “우왁!”

    깜짝 놀란 잭슨이 다급하게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제럴드의 세이버가 바람을 가르며 헛손질을 하고 지나갔다.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 이거죠?”

    잭슨이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눈을 빛냈다.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비록 마나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순수한 검술만으로 제럴드가 이렇게나 자신을 괴롭힐 줄은 몰랐다.

    어쨌거나 자신은 정식기사였던 몸이고, 제럴드는 목책을 지키는 일개 경비대원일 뿐이니까 말이다.

    “오늘 설거지가 너무 많다. 네가 이해해라!”

    “저도 오늘만큼은 사양입니다. 각오하세요!”

    제럴드와 잭슨은 결코 질 수 없다는 얼굴로 사력을 다해 마나를 끌어모았다.

    막 격돌하려는 순간이었다.

    “에라이, 또라이 새끼들아! 설거지 내기 대련에 마나 쉐도우를 쓰냐? 미친놈들! 확 그냥, 눈깔을 쪽 빨아 버릴까 보다!”

    걸쭉한 욕설이 진지했던 분위기를 단번에 날려 버렸다.

    정천우가 밖으로 나오자 제럴드와 잭슨은 세이버에 맺힌 마나를 흩어 놓으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정천우가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까닭이다.

    오늘 내기 대련은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과했다.

    아무리 설거지가 싫어도 그렇지, 대련에서 마나 쉐도우를 생성한 것은 미친 짓이다. 만약 정천우가 제때 말리지 않았다면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야! 둘 다 돌았어? 미친 거야? 제럴드, 넌 뭐 하는 새끼야? 대련에서 마나 쉐도우를 뽑아? 나잇값을 해, 인마!”

    “그, 그래도 이건 연습용 세이버잖…….”

    “닥쳐! 마나 쉐도우끼리 맞부딪치면 파편 생기는 거 몰라? 그거 잘못 맞으면 위험하다고 했어, 안 했어?”

    정천우가 입술을 실룩이며 제럴드를 몰아붙였다.

    초식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대충 무기만 휘두른다고 초식이 아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감안해서 치밀하게 만들어지는 게 바로 무공의 초식이다.

    검기와 검기가 부딪치면서 파생하는 문제점은 무척이나 많다. 때문에 명가에서는 검기의 파편이 어느 방향으로 튀어 나갈 것인지 수없이 검증한 끝에 검의 궤적을 만든다.

    그래서 초식을 정성껏 수련하고 이해도를 충분하게 높여야 한다. 그래야 실전에서 초식의 일부를 잘라서 사용하더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멍청한 자식들! 아주 뒈지려고 작정을 했어.’

    정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두 사람이 하는 짓은 정말 멍청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초식도 뭣도 아니다. 그저 무식하게 치고받는 주제에 검기…… 그러니까 이곳 세상의 말로 하면 마나 쉐도우까지 동원해서 대련하려고 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두 놈이 하는 짓이 딱 미친 짓이다.

    “왜…… 왜 그러는데?”

    제럴드는 정천우가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쳐다보자 주눅이 들었다.

    요즘 같아선 정말 사는 게 즐겁다. 기사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마나 쉐도우를 자신이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모두 다 정천우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치 떨리는 고통을 받아야 했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아침마다 정천우가 수련 때문에 자신을 깨울 때 경기를 일으킨다.

    그런 정천우가 살벌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심장이 떨리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지금 몰라서 물어? 마나 쉐도우가 장난이냐? 자식들아! 검식은 다 어디 팔아먹고 양아치 새끼들처럼 생지랄 떨어 대는데? 그래, 넌 몰랐다고 치자! 너!”

    “네, 네! 천우 형님!”

    잭슨은 정천우가 고개를 홱 돌리면서 자신을 노려보자 잔뜩 긴장하고 말았다.

    “기사단에서 대련할 때 마나 쉐도우 펑펑 사용하디?”

    “모, 못하게 합니다.”

    “왜 못하게 하는데?”

    “그게…….”

    잭슨은 대답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정식기사였다고는 해도 서열이 낮은 탓에 정상적인 대련을 해 보지 못했다. 그저 홀로 수련하고 근무나 서다가 퇴근하는 일상의 반복이었을 뿐이다.

    대련 규정이야 알지만 어째서 마나 쉐도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지까지는 몰랐다. 아니, 구태여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선배 기사들의 심부름을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말이다.

    “너 기사 맞냐? 이런 새끼들한테 내가 약 처먹여 가면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제기랄! 잘 들어, 새끼들아! 마나 쉐도우는 연습용 칼이라고 해도 파괴력이 그대로 남아. 마나 쉐도우 파편에 실수로라도 맞으면 그냥 아픈 정도로 끝날 줄 알아?”

    정천우가 애써 화를 삭이며 심호흡을 했다.

    말이 빨라지면 녀석들을 두들겨 팰 것 같아 성질을 죽이는 것이다.

    “마나 쉐도우를 사용해서 대련하고 싶으면 갑옷 입어. 그래야 그나마 안전하다. 알았어?”

    “……네, 주의하겠습니다.”

    “알았어, 인마! 내가 잘못했다.”

    잭슨과 제럴드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자 정천우의 눈썹 끝이 그제야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갔다 올 테니까 뻘짓하지 말고 육합권이나 수련해.”

    “어디 가게? 제인 마법사님 만나러 가냐?”

    “아니야!”

    정천우가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부정했다.

    며칠 전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품에 안긴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모른다. 자신더러 나쁘다고 말하며 울어 대는 통에 영문도 모르고 미안하다고 수도 없이 빌었다.

    웃기는 건 실컷 울고 나더니 후다닥 돌아갔다는 점이다. 왜 그랬는지 찾아가서 묻고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특히나 틈만 나면 놀려 대는 제럴드 때문에 그녀를 찾아가는 게 더 망설여지기도 했다.

    제인이 아름다운 여자인 건 분명하지만 자신의 마음은 중원에 두고 온 진미령에게 기울어 있었다.

    솔직한 이유는 따로 있다. 자신은 떠나야 할 사람이기에 그렇다. 제인에게 정을 느끼면 떠나기 싫어질 것 같았다.

    “새끼가, 뭐가 그렇게 심각해? 아니면 마는 거지.”

    제럴드는 정천우의 안색이 흐려지는 모습에 괜스레 미안해졌다. 부러운 마음에 놀려 댄 것인데 그게 좀 지나쳤던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초 캐러 가려고.”

    “많이 만들지 않았어?”

    “조금 있으면 가을이잖아. 미리 캐다가 더 만들어 놓으려고. 그래야 약 떨어져서 고생 안 하지.”

    “아! 오늘은 약 안 줘?”

    제럴드는 이제야 생각났다는 얼굴로 물었다.

    어제만 해도 수련을 시작할 때 단약을 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약을 먹이지 않고 곧바로 수련에 들어갔다. 이상한 생각에 제럴드가 묻는 것이다.

    “너와 잭슨은 이제 약 먹어도 소용없어.”

    “응? 왜?”

    제럴드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굳이 약을 더 만들 이유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잭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천우가 준 단약을 먹고 수련한 뒤로는 예전과 다른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랬는데 앞으로는 약을 먹어도 소용없다니 의아함을 넘어서 당황스러웠다.

    이대로 계속 실력이 늘어나면 ‘팽’이라는 성을 받을 날이 조만간 자신에게도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게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약을 먹고 강해지는 데 한계가 있는 것 같아. 어쩌면 단전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단전이 없는 것하고 약하고 무슨 상관인데?”

    제럴드는 믿고 싶지 않은 마음에 따지듯이 정천우를 향해 말했다.

    이제야 뭔가 길이 보이는 것 같은데 지금 수준에서 정체되고 싶진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기사의 작위를 얻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왕이면 욕심을 부려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싶은 게 제럴드의 속마음이었다.

    “육체가 더 이상 마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된 거야. 나 같은 경우에는 단전에 내공을 계속 담아 둘 수 있지만 너희는 그게 안 돼.”

    “그, 그래도 달라질 수 있는 거잖아.”

    제럴드가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계속 억지를 부렸다.

    그러나 정천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불필요한 희망은 애초에 주질 말아야 한다. 지금 수준으로 성장한 것만 해도 제럴드에겐 충분한 기연이다.

    “그렇지 않아. 너와 잭슨의 몸은 지금 마나를 담아 둘 수 있는 한계치에 와 있어. 넌 어제 약 먹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 잭슨은 반응이 약했을 테고. 내 말이 틀려?”

    “…….”

    “…….”

    잭슨과 제럴드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정천우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내공을 다루는 데 있어 동대륙에서 정천우를 따를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공을 운용하고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그가 유일한 상황이었으니까.

    정천우는 두 사람의 몸 상태를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약을 먹였다. 둘의 몸 상태쯤은 이미 파악이 끝났다. 이제는 약을 먹여 봐야 의미가 없다고 결론이 났다.

    “이대로 끝이라고? 젠장…….”

    제럴드가 안타까워하며 말끝을 흐렸다.

    핑크빛 미래를 그리고 있었는데 그게 좌절됐으니 기운이 쪽 빠졌다.

    상심한 제럴드에게 정천우가 얼굴을 굳히며 다가갔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뻐억! 쿠당탕!

    “아욱! 왜 때려, 인마!”

    자신을 위로해 줄 줄 알았던 정천우가 주먹으로 턱을 날리자 제럴드는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수련해! 잭슨한테 마나 수련 배우면 되잖아. 새끼가, 한번 맛 들리더니 계속 날로 먹으려고 들어! 확 그냥 조져 버릴까 보다. 나랑 대련 한번 할까?”

    “싫어! 내가 잘못했다. 제발 그것만은…….”

    제럴드가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

    대련을 빙자한 구타.

    얼마나 교묘하게 때리는지 멍조차 들지 않는다. 그러나 맞은 곳을 손으로 만지면 극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아직도 이틀 전에 얻어맞은 곳을 만지면 짜릿짜릿할 정도였다.

    “약은 준비된 육체에 마나의 기운이 스며들기 쉽게 도와주는 것뿐이야. 네 몸이 단련되면 더 많은 기운을 품을 수 있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약은 그저 거들 뿐이야. 몸부터 만들어. 약은 그다음이야.”

    “……알았다.”

    제럴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목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 보니 도둑놈 심보였다. 몸을 단련할 생각보다 약에 의존해 강해질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일단 잭슨한테 마나 수련법부터 배워. 몸을 단련하면 약이 필요한 날이 올 거야. 그럼 난 약초 캐러 간다.”

    “그래, 다녀와!”

    “천우 형님, 다녀오십쇼!”

    “갔다 와서 확인해 볼 거니까 농땡이 피우지 마!”

    정천우는 제럴드를 째려보며 겁을 주었다. 농땡이를 부릴 가능성이 농후한 놈이라 더 신경 써야 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라 정이 가서 그런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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