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56화 (5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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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15. 하북팽가 영지의 안정화 (3)

    ***

    “정말 개 같은 경우잖아?”

    정천우는 툴툴거리면서 오우거가 휘두르는 몽둥이를 피하고는 팔뚝에 역천검을 휘둘렀다.

    “쿠훠엉!”

    “시끄러워!”

    쩌걱!

    정천우가 짜증을 내면서 오우거의 입에 역천검을 틀어박았다. 키 차이 때문에 아래에서 위로 쑤셔 박은 역천검이 오우거의 입천장을 뚫고 뇌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새끼들아! 똑바로 해야 할 것 아냐! 혼자 염병질 할 것 같으면 뭐하러 셋이 뭉쳐 있어!”

    정천우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까는 소리 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젠장! 또 온다!”

    “옛! 알겠습니다!”

    호되게 한 소리 들은 라이언 기사단원이 세이버를 움켜쥐며 긴장했다.

    삼재진(三才陣).

    정천우가 자신이 맡은 라이언 기사단에게 가르친 것은 바로 진법이었다. 중원에서는 흔하디흔한 기초적인 합격술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생소한 것이다. 기사도를 숭상하는 탓에 다수가 소수를 공격하는 걸 전문적으로 가르치지 않은 탓이다.

    물론 난전을 벌이는 경우에는 종종 아군을 구하기 위해 합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합격술을 배우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15명의 라이언 기사단을 맡긴다고 했을 때, 정천우는 가장 먼저 기사들에게 삼재진을 가르쳤다. 한 명이 방어를 전담하고 나머지 둘이 적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효율이 나쁠 것 같지만 장기전에 돌입했을 때는 휴식 시간을 번갈아서 가질 수 있기에 유용한 수법이다. 그 증거로, 다른 기사단에 비해서 정천우가 이끄는 라이언 기사단은 움직임에 여유가 있었다.

    전장을 정리하고 병사들이 열을 맞춘 곳 가장 뒤쪽에 지친 표정으로 정천우와 라이언 기사단이 자리를 잡았다.

    “우와아아아!”

    비명을 지르면서 언덕길을 내달려 오는 병사들의 모습에 정천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를 오우거와 미노타우로스가 쫓아왔다.

    “쉴 틈이 없구만, 쉴 틈이 없어.”

    정천우가 피가 묻어 끈적해진 역천검의 손잡이를 대충 헝겊으로 닦으면서 투덜댔다. 손잡이를 닦아 내는 헝겊도 피에 절은 상태였지만 안 닦는 것보다는 나았다.

    몬스터 토벌은 정말 단순하기 짝이 없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언덕 위에 터를 잡은 대형 몬스터들은 야들야들한 먹이가 나타나자 눈이 돌아가 미친 듯이 쫓아 왔다.

    원래는 이렇게 쫓아오는 몬스터를 참호에 숨은 병사들이 기다란 창으로 공격하고 기사들이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대형 몬스터들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워낙 많은 수의 상위 포식자가 밀집해 있었던 게 그 이유였다.

    처음에는 트롤들을 먹이로 삼았지만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트롤이 씨가 마르면서 먹이가 떨어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인간이 향긋한 땀 냄새를 푹푹 풍기면서 돌아다녔으니 굶주린 대형 몬스터들은 너무나 쉽게 유혹되었다.

    “뛰어!”

    피에 젖은 팽우룡의 목소리가 시끄러운 소음을 뚫고 사방에 울려 퍼졌다. 언덕 밑으로 도망쳐 온 병사들이 참호를 향해 달려와 마침내 몸을 던지는 데 성공했다.

    참호의 용도는 원래 창병이 숨었다가 기습적으로 대형 몬스터를 공격하는 용도였다. 그러나 대형 몬스터들이 워낙 굶주려 있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팽우룡의 세이버가 전방을 가리켰다.

    “발사!”

    투두둥, 투두두둥!

    크로스보우의 활줄이 연달아 쿼렐을 밀어내면서 콩 볶는 듯한 소리를 일으켰다.

    2천 발에 가까운 쿼렐이 파공음을 일으키며 대형 몬스터를 덮쳤다.

    미처 참호에 몸을 날리지 못한 병사가 아군이 쏜 쿼렐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다. 대형 몬스터가 파고들면 위험했기에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창병대! 돌격!”

    팽우룡의 목소리가 재차 이어졌다.

    궁병대 뒤에 대기하던 창병대가 사이사이로 빠져나와 창을 꼬나들고 튀어 나갔다. 달려 나가는 가속도를 이용해 기다란 창을 힘껏 던졌다.

    투척용 창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2천여 개의 창이 힘차게 날아갔다. 그 뒤를 따라 대기 중이던 나머지 창병들이 뛰어나와 창을 집어 던졌다.

    대형 몬스터들은 쿼렐과 창날이 몸에 박히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크게 울부짖었다.

    “제기랄! 돌지인!”

    정천우가 욕설과 함께 힘겨운 몸짓으로 크로스보우의 걸이쇠에 활시위를 거는 궁병들을 지나쳐서 돌격했다.

    그렇게 맨 마지막으로 튀어나온 기사들의 수는 대략 80여 명이었다. 모두 온몸에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끄아아아!”

    기사들이 기합과 악을 지르며 대형 몬스터를 공격했다.

    가만히 놔두면 금세 회복하고 다시 공격해 올 놈들이기에 확실하게 목숨을 끊어 놓아야 한다. 대형 몬스터의 상처 수복 능력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흉측한 탓이다.

    “제발 얌전히 죽어랏!”

    정천우가 애원하듯 기합을 지르며 역천검을 휘둘렀다.

    그가 공격하는 미노타우로스는 한쪽 눈알이 쿼렐에 박힌 채 튀어나와 시신경에 매달려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몸에 수십 발의 쿼렐이 틀어박혀 한쪽 팔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한쪽 다리에는 서너 개의 창이 깊숙이 꽂혀 있었다.

    그런 몰골을 하고서도 정천우를 잡아먹겠다는 일념으로 다가오는 중이다. 기가 질리지 않을 수 없는 처참한 집념과 생명력이다.

    뻐걱!

    “크루룩…….”

    역천검의 날카로운 검날이 미노타우로스의 턱관절을 부수고 들어갔다.

    미노타우로스는 도끼를 든 망가진 손을 몇 번 꿈틀거리다가 이내 힘없이 무너졌다.

    “죽여라! 모조리 죽여라!”

    정천우가 고함을 지르면서 역천검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물 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웠다. 역천검을 쥔 손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쉬지 않았다. 한 놈이라도 빨리 해치워야 휴식 시간이 그만큼 길어진다.

    “크락! 크와아악!”

    온몸에 쿼렐이 가득 박힌 트윈 헤드 오우거가 다가오는 정천우에게 흉성을 터트리면서 몽둥이를 마구 휘둘렀다. 관절에도 서너 발의 쿼렐이 꽂혀 있어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동족의 머리가 한 방에 반으로 쪼개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트윈 헤드 오우거다. 자신의 몸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트윈 헤드 오우거는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정천우는 놔줄 생각이 없었다.

    “피곤하니까 빨리 끝내 줄게.”

    정천우는 허리춤의 가죽 가방에 피에 젖은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세 자루의 드로잉 나이프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드로잉 나이프를 손에 쥔 채로 부르르 떨었다. 힘이 떨어져서인지 힘을 과도하게 주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드로잉 나이프에 노란빛의 마나 쉐도우가 맺혔다.

    트위 헤드 오우거가 휘두르는 몽둥이가 심상치 않아 다가가기가 꺼려졌다. 머리 둘 달린 괴물이 몽둥이를 사납게 휘두를 때마다 들려오는 파공음이 워낙 살벌했으니까.

    굳이 맞상대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정천우가 오른손을 턱밑에까지 들었다가 힘차게 뿌렸다.

    퍼버벅!

    “크워어! 워어어어…….”

    두 개의 머리 중 하나에 세 개의 드로잉 나이프가 박혔다. 다른 머리도 고통을 느끼는 모양인지 괴로워하며 몸에서 경련을 일으켰다.

    그 순간을 놓칠 정천우가 아니다.

    빨려 들어가듯 트윈 헤드 오우거의 품에 뛰어들어 비명을 지르는 머리를 향해 역천검을 힘껏 들어 올렸다.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왼손은 폼멜(Pommel, 손잡이 끝)을 받친 상태였다.

    콰드득!

    턱밑을 뚫고 들어간 역천검이 두개골 안쪽까지 파고들어 마나 쉐도우로 뇌를 망가뜨렸다.

    정천우가 재빨리 빠져나오면서 역천검을 힘껏 뽑았다.

    “헉, 헉…… 이제 좀 쉴 수 있으려나?”

    정천우가 힘겨운 얼굴로 언덕 위를 쳐다보았다.

    병사들이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언덕에서 터덜터덜 내려오고 있었다. 더 이상 유인해 올 대형 몬스터가 없다는 의미였다.

    “꼴리는 대로 아무렇게나 10분간 휴식!”

    정천우가 크게 소리치고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힘이 쪽 빠져나가 움직이는 것도 귀찮았다. 사방이 몬스터의 피로 질척거리고 사체가 나뒹굴었지만 상관없었다.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

    무려 열흘 동안이나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몬스터 토벌이었다.

    팽선웅 백작은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영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엄청난 병력과 물자를 쏟아부었다. 이번 토벌에 쏟아부은 돈만 해도 무려 2만 5천 골드가 넘는다. 쿼렐과 같은 소모성 물자가 많이 소모된 탓이다.

    “그라디안 경, 몬스터는 확실하게 토벌된 것입니까?”

    팽선웅 백작은 지도를 펼쳐 놓은 탁자에 앉아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수하들에게 보통은 편하게 대하는 것과 달리 중년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존중하는 말투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라디안은 6서클의 마법사로, 동대륙에서는 고위 마법사라고 할 수 있었다. 몬스터 토벌 작전에 그라디안이 없었다면 지긋지긋한 전투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습니다. 이제 근방에는 탐지되는 몬스터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몬스터의 번식력을 고려해 마무리를 확실히 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다행이 아닐 수 없군요. 모두 들었다시피 몬스터 토벌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듯하오. 그대들이 고생해 준 덕분이오. 수고가 많았소. 이제 앞으로의 일을 논의해야겠소. 그라디안 경의 말씀처럼 아직 위험 요소가 남아 있다는 걸 명심하고 제안해 주시오.”

    팽선웅 백작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사령실 천막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이제부터는 시간을 지체할수록 불필요한 자금이 소비되는 셈이다. 군대라는 것은 움직이는 족족 돈을 소모한다. 빨리 결정을 내리고 원래의 자리로 보내는 것만이 돈을 아끼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팽선웅 백작은 느긋하다. 왜냐하면 이번 토벌전 덕분에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오크와 고블린의 서식지를 토벌하면서 얻은 부산물이 첫 번째 이유다. 그것은 영지민의 차지였는데, 일정한 비율로 영지와 나누기로 미리 합의해 두었다.

    영지에 소식을 넣어 영주성에 주둔 중인 방패병대를 투입해 대형 몬스터의 가죽과 전리품을 챙기라고 일러두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번에 투입된 2만 5천 골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그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죽은 병사들과 기사 때문에 대놓고 즐거워할 수 없을 뿐, 팽선웅 백작은 앞으로 들어올 돈을 생각하니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제 그 빌어먹을 대형 몬스터라는 게 없어졌다…… 이 말이지?’

    팽선웅 백작의 얘기에 정천우 역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번 토벌전이 힘들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처음 그란드에게 토벌전 참가 제의를 받고서 얼마나 황당해했는지 모른다. 왜 몬스터 토벌전에 자신이 참가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정식기사도 아닌데 너무 많은 걸 바란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곳에 영약(?)들이 무더기로 자란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참가하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영약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몬스터의 위협이 없는 게 훨씬 더 작업하기가 좋다.

    게다가 이왕에 일하려면 확실하게 팽선웅 백작에게 눈도장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더 많은 이득을 건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서 이제껏 싸워 왔다. 덜떨어진 놈들을 15명이나 데리고 싸우라는 명령도 그래서 충실히 따랐다. 자신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싸웠는지 다른 사람에게 알려 줄 놈들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이제야 그동안 고생한 게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야! 반드시 강해져서 서대륙으로 넘어가고 말 테다.’

    정천우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대책 회의를 진행하는 기사단장과 팽선웅 백작의 목소리가 천상의 선율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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