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49화 (49/200)
  • # 49

    Chapter 13. 약속에 목숨을 걸다 (2)

    “므워?”

    “크웍?”

    상대를 보며 대치하던 미노타우로스와 트윈 헤드 오우거가 동시에 듣기 거북한 울음소리를 냈다. 숨조차 죽여 가며 서로를 노려보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주변에 자신들만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와 대치 상태가 깨진 것이다.

    “빠져나와!”

    정천우가 달려가면서 크게 소리쳤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에 대한 존중 따윈 의미가 없다.

    정천우의 경고가 떨어지기 무섭게 은폐하고 있던 곳에서 기사들이 튀어나왔다.

    “크워억!”

    “므워! 므워어어!”

    미노타우로스와 트윈 헤드 오우거가 포효했다.

    껄끄러운 상대보다 훨씬 더 약한 상대가 무더기로 나타났으니 놈들의 입장에선 서로 싸울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들이는 수고에 비해 상대의 몸뚱이는 그다지 맛이 없다. 야들야들한 인간의 고기가 널렸으니 질기고 냄새나는 고기를 힘들게 구할 이유가 없어졌다.

    “제인 마법사! 마법을 준비해 주시게. 모두 방어 진형으로!”

    “예!”

    팽진우가 몸을 숨긴 장소에서 튀어나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4명의 기사가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고 팽진우의 곁에 섰다.

    나머지 기사들은 개선된 크로스보우의 스티럽스(Stirrups, 등자 : 발을 걸어 시위를 걸기 위한 고정대)에 발을 넣고 후크로 시위를 당겨서 트리거에 걸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쿼렐을 끼우고 포효하는 두 대형 몬스터를 향해 겨누었다.

    “발사!”

    투두둥!

    팽진우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섯 발의 쿼렐이 쏘아졌다.

    “므왁!”

    “크훠엉, 크훵!”

    미노타우로스와 트윈 헤드 오우거가 괴성을 질렀다.

    몸속에 파고든 쿼렐이 주는 고통에 더욱 흉성을 드러냈다.

    “ЭДЁФБЙ…… 파이어 버스터(Fire Burster)!”

    흉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두 대형 몬스터를 향해 십여 발의 불덩이가 쏘아졌다.

    퍼버벙! 퍼벙!

    “크와악! 크훠엉!”

    “므워어!”

    폭발음과 몬스터들의 괴성이 터지고 자욱한 연기가 피어났다. 엄청난 위력의 마법이었다. 2서클의 파이어 마법이 생성되어 연속으로 공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대형 몬스터는 겨우 이런 공격에 쓰러질 만큼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제인 역시 그것을 알고 있기에 곧바로 다른 마법을 준비했다.

    “크와아악!”

    “므워어어어!”

    잔뜩 화가 난 미노타우로스와 트윈 헤드 오우거가 괴성을 질렀다. 파이어 버스터 마법이 아주 효과가 없지는 않았는지, 몬스터들의 피부가 군데군데 그을려 있었다.

    “준비하라! 2조는 트윈 헤드 오우거를!”

    팽진우가 고함을 지르며 마나 쉐도우가 흐르는 세이버를 앞세워 미노타우로스에게 돌진했다.

    곁에 섰던 4명의 기사 역시 비장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크로스보우를 버리고 세이버를 움켜쥔 나머지 5명의 기사들은 트윈 헤드 오우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젠장맞을!”

    정천우는 싸움이 벌어진 장소로 뛰어가며 욕설을 퍼부었다. 역천검을 꼬나들고 경공을 발휘하는 그의 얼굴엔 다급함이 어렸다.

    이건 미친 짓이다.

    이래서 처음부터 그렇게 말렸는데 결국은 우려하던 대로 일이 꼬이고 말았다. 다른 몬스터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몸을 빼내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빌어먹으을! 죽엇!”

    정천우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크게 도약했다. 팽진우를 노리며 괴성을 지르는 미노타우로스가 목표다.

    수평으로 공간을 가르며 날아가는 그의 역천검에는 뇌전의 기운이 미약하게 흘렀다. 마나 쉐도우 자체가 뇌전의 기운을 품었다.

    “므워억!”

    미노타우로스는 다른 인간과 달리 믿기지 않는 속도로 접근하는 정천우를 경계했다.

    당황한 기색으로 거대한 도끼를 힘차게 휘둘러 팽진우와 정찰대원들을 밀어냈다. 그러고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도끼를 사선으로 올려쳐 갔다.

    카앙!

    “아악!”

    도끼가 역천검에 맞부딪힌 순간, 정천우가 비명을 내질렀다.

    생긴 것만큼이나 미노타우로스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손아귀가 찢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그의 몸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다시 날려 갔다.

    “망할 몬스터! 크윽! 죽일 생각보다 상처를 입혀! 놈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야! 쫓아오지 못하게 만들어!”

    다급해진 정천우는 역시나 상대에 대한 존중은 깔끔하게 날려 버리고 소리쳤다.

    “다리! 다리를 노린다!”

    팽진우가 눈치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기사들의 움직임이 변했다.

    3명은 미노타우로스의 눈높이로 공격하며 주의를 끌었다. 그러는 사이 나머지 2명이 놈의 하체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스각!

    “므워어어어!”

    팽진우의 세이버가 대퇴부를 훑고 지나가자 미노타우로스가 잔뜩 화가 나서 도끼를 마구 휘둘러 댔다.

    미노타우로스의 엉덩이 부근에서 검은색에 가까운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제법 깊은 상처였는지 미노타우로스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얕아!”

    팽진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세이버에 충분한 힘을 실었다. 공격에 실패하면 모두가 위험해진다는 생각에 전력을 다해 마나를 집어넣고 힘껏 휘둘렀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세이버의 칼날이 깊이 박히지 않았다.

    놈의 피부와 근육이 비상식적으로 두껍고 탄탄한 까닭이었다.

    “매 일격에 전력을 쏟아라!”

    공격에 성공한 뒤에 한 걸음 물러났던 팽진우가 다시 세이버를 들어 올렸다.

    그의 얼굴에서 필살의 각오가 스며 나왔다.

    “진우 경, 오른쪽!”

    손아귀가 찢어져 괴로워하던 정천우가 팽진우의 곁에 다가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역천검의 손잡이가 흘러나온 피 때문에 끈적거렸다. 이렇게 싸우다가 함께 죽느니 혼자 도망칠까 하고 생각할 만큼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러나 해 놓은 말이 있다.

    한쪽에서 주문을 외우며 땀을 줄줄 흘리는 제인의 모습이 그의 눈에 밟혔다.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을 함부로 하진 않지만 일단 약속한 것은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지키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을 지키지 못한 건 한 번만으로도 충분하다.

    정천우는 피 때문에 미끈거리는 손을 대충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빠드득!

    정천우가 이를 갈았다.

    어째서 이렇게 낯선 세상에 떨어져 흉악한 괴물과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깨달았다.

    살고 싶다!

    “갑니다!”

    “좋소! 이야아아!”

    정천우가 달려드는 것을 신호로 팽진우가 비명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뛰어들었다.

    팽진우가 미노타우로스의 왼팔을 노렸고, 정천우는 오른팔을 노렸다.

    “므워억!”

    마나가 듬뿍 담긴 팽진우의 기합에 미노타우로스가 위협을 느꼈다. 앞에서 깐족거리는 정찰대원의 세이버를 도끼로 후려쳤다.

    “우왁!”

    정찰대원은 갑작스레 궤도를 바꾸며 날아온 도끼를 어쩔 수 없이 세이버로 막아야만 했다. 단지 받아 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검술의 기교?

    압도적으로 우악스러운 힘 앞에서 기교 따윈 무의미했다.

    정찰대원이 밀리는 것을 확인한 미노타우로스가 곧바로 도끼를 자신의 머리 위까지 치켜들었다.

    기겁한 나머지 정찰대원들이 동시에 동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미노타우로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비틀거리는 정찰대원의 투구에 도끼를 박아 넣었다.

    꽈득!

    뭉툭한 도끼날에 투구가 구겨지면서 두개골이 함몰되었다. 눈알이 튀어나와 시신경이 덜렁거렸다. 부러진 이가 후두둑 튀어나오고, 핏물이 입을 타고 콸콸 쏟아졌다.

    정찰대원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숀!”

    동료의 머리가 박살 나는 모습을 보고 공격을 성공시켰던 기사가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그게 실수였다.

    “므워어!”

    미노타우로스가 분노해 울부짖었다.

    도끼를 쥐지 않은 왼 주먹으로 자신의 몸에 세이버를 박아 넣은 정찰대원의 투구를 후려쳤다.

    “크아악!”

    정찰대원이 세이버를 놓치고 4미터나 날아가 땅바닥에 너부러졌다.

    “이노옴!”

    그때쯤에야 미노타우로스에게 도착한 팽진우가 분노한 얼굴로 세이버를 휘둘렀다.

    일부러 마나를 담아 주의를 끌었음에도 자신의 부하 둘이 당했다는 것에 화가 치밀었다.

    마나 쉐도우를 품은 그의 세이버가 미노타우로스의 목을 노리고 수평으로 공간을 갈랐다. 그러나 거대한 도끼가 분노의 일격을 가로막았다.

    “죽어!”

    하지만 미노타우로스는 팽진우에 못지않은 실력자를 간과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팽진우가 분노의 일격을 날리는 사이, 정천우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보법을 밟아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며 미노타우로스의 뒤로 돌아간 것이다.

    팽진우의 공격을 막아 내느라 신경이 분산된 틈을 노리고 역천검으로 넓적다리 뒤쪽을 깊게 찔렀다.

    쯔걱! 지지직!

    “므워어억!”

    미노타우로스가 괴성을 지르며 학질에 걸린 듯 몸을 떨었다. 역천검에서 흘러나온 뇌전의 기운이 미노타우로스를 감전시킨 것이다.

    미노타우로스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도끼를 휘둘러 팽진우를 밀어냈다. 그러고도 여력이 남아 정천우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정천우는 자신에게 도끼가 날아들자 손잡이를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차아!”

    우렁찬 기합과 함께 정천우가 역천검의 손잡이를 우악스럽게 비틀면서 뒤로 몸을 날렸다.

    “므워어어억! 므워어! 므워!”

    미노타우로스가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역천검이 휘젓고 빠져나간 상처에서 시커먼 피가 콸콸 쏟아졌다.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정천우를 쫓으려던 미노타우로스가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저쪽!”

    정천우는 미노타우로스가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역천검으로 트윈 헤드 오우거를 가리켰다.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하던 정찰대원들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 트윈 헤드 오우거가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방어를 지시했던 2조에서도 희생자가 나왔다.

    시체의 상태는 처참했다.

    트윈 헤드 오우거에 어떻게 당했는지는 몰라도 머리가 통째로 날아간 상태였다.

    “ЭбДЁФжБЙ…… 물러서요! 플레임 토네이도(Flame Tornado)!”

    막 정천우 일행이 달려가려는데 제인이 낭랑한 목소리로 마법을 영창했다.

    “크워! 크허헝! 크룩! 크와아!”

    뜨거운 불꽃이 전신을 휘감자 트윈 헤드 오우거가 발버둥을 치며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제인이 만들어 낸 마법은 트윈 헤드 오우거의 몸에 들러붙은 채 회오리를 일으켰다. 전의를 상실한 오우거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정찰대 사람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트윈 헤드 오우거는 도망쳤고 미노타우로스는 충혈된 눈으로 정찰대를 노려볼 뿐이었다.

    “젠장! 숀과 커넥이 당했군! 잭슨!”

    “하명하십시오!”

    잭슨은 군기가 바싹 든 채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트윈 헤드 오우거를 상대하느라 지쳐 있었지만 팽진우의 호명에 바싹 긴장했다.

    자신의 재채기 한 번으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참았어야 했는데…… 크윽!’

    잭슨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유능한 기사가 2명이나 죽었다. 그게 모두 자신의 실수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네 녀석이 앵거드를 책임져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이번 일의 책임은 복귀한 뒤에 묻기로 하겠다!”

    팽진우가 냉막한 얼굴로 잭슨을 노려보았다.

    그가 가장 아끼는 부하가 바로 잭슨이다. 그러나 이번 실수는 용서하기가 어려웠다.

    재채기라니!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기사라면 재채기쯤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재채기 따위를 참지 못했다는 것은 정신을 놓고 있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복귀한다!”

    팽진우는 더 이상 정찰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둘이 죽고 의식을 잃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임무는 실패다.

    ‘그의 말을 들을걸…….’

    팽진우가 씁쓸한 눈빛으로 전천우를 슬쩍 쳐다보았다.

    그의 말을 들었다면 양심에는 걸려도 사태의 심각성을 전하는 것에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부하를 2명이나 잃고 나니 앞이 캄캄했다.

    겨우 정찰 임무 정도에 팽가의 기둥으로 자라날 전력이 사라졌다. 이건 무사히 다녀오라는 주군의 첫 번째 명령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서둘러 벗어난다.”

    팽진우는 애써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접어 두고 명령을 내렸다.

    “망할! 제인 마법사님, 마법! 마법!”

    정천우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싸우면서 발생한 소음을 듣고 오우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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