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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24화 (24/200)
  • # 24

    Chapter 7. 활약 (3)

    “닥쳐!”

    정천우가 역천검을 들어 올리며 긴장했다.

    상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와 투기가 지나치게 강하다. 최소한 아까 죽인 2명보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놈이었다.

    주변부터 훑어보았다.

    ‘12명 대 11명!’

    복면인이 한 명 더 많다.

    그러나 오히려 아군이 더 유리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복면인 2명이 따로 빠져서 싸움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빠져 있는 모습이 묘했다. 마치 귀빈을 보호하듯 한 사람이 다른 복면인을 지키는 모양새였다.

    “감히 한눈을 팔아?”

    눈앞의 복면인이 분노한 음성으로 정천우를 꾸짖으며 달려들었다.

    정천우는 살기가 더욱 짙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상대에게 집중했다. 롱 소드가 부드러운 원을 그리며 궤적을 바꾼다.

    “무당파의 검법!”

    정천우가 다시 한 번 정체를 밝혀 냈다.

    “입 닥쳐라!”

    복면인이 크게 고함을 지르며 롱 소드에 마나를 더욱 밀어 넣었다.

    부드러운 검의 궤적 속에 숨은 맹렬한 살기가 정천우를 강하게 압박해 왔다.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지 않기를 원하는지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떻게 우리가 무당파라는 걸 아는 거지? 검술 자세조차 잡지 않고, 검식도 일부러 숨기는데!’

    복면인은 속으로 놀랐다.

    이번 임무를 위해서 음지에서 키워진 비밀 수호대 전원이 나섰다. 무당파의 사람이되 무당파의 사람이 아닌 자들로만 구성된 비밀 결사다.

    무당파라는 것이 밝혀지면 불필요한 마찰이 생긴다. 그것은 자신의 주인이 원하는 일이 아니다.

    “이크! 이 자식, 켕기는 게 있나 본데? 무당파라는 게 뽀록 나면 곤란한가 보다?”

    정천우는 연달아 찔러 오는 롱 소드를 이리저리 튕겨 내며 살살 약을 올렸다.

    무당파라는 말에 발끈 화를 내는 꼴을 보니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무당파의 보법! 이 자식, 확실하게 무당파잖아?”

    정천우는 일부러 크게 소리 지르듯이 떠들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쉬지 않고 역천검을 휘둘렀다.

    “이익! 네놈의 주둥아리를 반드시 찢어 놓고 말겠다!”

    복면인은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면서 고함을 질렀다.

    “오! 무당파의 사자후(獅子吼)!”

    정천우는 되도 않을 소리를 해 대며 무작정 무당파를 언급했다.

    “죽인다!”

    눈이 회까닥 돌아 버린 복면인이 롱 소드를 앞세워 돌진해 왔다. 그리고 정천우가 사정거리 내에 들어왔다고 판단한 순간부터 연속으로 찌르기 공격을 날렸다.

    그때, 역천검이 크게 원을 그렸다.

    따다당!

    세 번의 찌르기 공격이 정천우가 휘두른 한 번의 검격에 무산되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역천검이 멈추지 않고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급선회하면서 자신의 목을 노리고 칼날이 날아들자 복면인이 롱 소드를 들어 올리며 허둥댔다. 혼신의 힘을 다한 찌르기가 무산되면서 과도하게 힘을 쓴 탓이다.

    “개지랄 떨 땐 좋았지?”

    표정을 싹 바꾼 정천우가 역천검을 풍차처럼 휘둘러 복면인을 몰아갔다.

    복면인은 손발이 어지러워지면서 연이어 뒷걸음질을 치기 바빴다.

    “우웃!”

    뒷걸음질 치던 복면인이 갑자기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목이 잘린 동료의 시신에 뒤꿈치가 걸린 것이다. 자세가 약간 흐트러졌으나 몸을 훌쩍 띄워 다시 균형을 잡았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도 복면인은 정천우의 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기에 발이 걸린 건 대수롭지 않은 위기였으며 무사히 넘겼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슝슝슝! 퍼걱!

    “커흑! 이, 이런 비겁한…….”

    복면인이 자신의 배에 박힌 롱 소드를 내려다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복면인이 자세를 바로잡는 사이, 정천우가 바닥에 떨어진 롱 소드를 발로 걷어차서 날린 것이다.

    작정하고 날려 보낸 롱 소드에는 무시 못할 힘이 담겨 있어 복면인의 가죽 갑옷이 맥없이 뚫렸다.

    “비겁? 이건 임기응변이 좋다고 하는 거다, 모자란 자식아!”

    슈걱!

    정천우가 복면인의 목을 역천검으로 단번에 날리면서 외쳤다.

    복면인이 롱 소드를 들어 막으려 했으나 복부를 뚫고 들어간 롱 소드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하고 머리를 잃었다.

    “다 죽었어!”

    정천우의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싸움이 되었다. 적과 아군의 숫자가 같아졌다. 그러나 적군 복면인 중에서 2명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나 마찬가지다.

    주변은 불바다였지만 오히려 밝아서 좋았다. 아군이 유리하니 암습에는 최고의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콰과광!

    역천검을 움켜쥐면서 첫 번째로 희생될 제물을 고르는데, 폭음이 터져 나왔다.

    “또 뭐야!”

    정천우가 인상을 찡그리며 짜증을 냈다.

    영주관의 문이 폭발을 일으키면서 복면인 4명이 튀어나왔다.

    “뭐 이래? 아주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만!”

    정천우가 지친다는 듯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엉클어뜨렸다.

    복면인은 4명이 튀어나왔는데 아군은 겨우 2명이 뒤쫓아 나왔다.

    “소환단을 내놓아라!”

    복면인들을 뒤따라 나온 2명의 사내가 콧김을 씩씩 뿜어 대며 소리쳤다.

    “멍청한 소리! 돌려줄 것이었다면 뭐하러 이런 짓거리를 벌이겠나?”

    영주관에서 튀어나온 복면인 중의 하나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비웃었다.

    “우리가 곱게 보내 줄 것이라고 생각하나!”

    복면인을 뒤쫓아 나온 사내 중의 하나가 얼굴을 붉히며 보석이 박힌 호화로운 세이버(Saber)로 복면인을 가리켰다.

    “그건 네놈 생각이지! 막아라!”

    대장으로 보이는 복면인의 외침에 함께 나왔던 4명의 복면인 중 둘이 퇴로를 차단하며 롱 소드를 들고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정천우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인상을 쓰며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이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뒤늦게 쫓아온 인물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환단’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먼저 밖으로 나온 복면 쓴 놈들이 소환단을 빼냈다는 의미다.

    ‘저 자식들이 가지고 있다는 말이지?’

    정천우는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금슬금 자리를 이동했다. 근처에라도 있어야 소환단을 얻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으하하하! 드디어! 드디어! 이것이 손에 들어왔다. 이리 오너라!”

    “예, 조장!”

    복면인 대장이 크게 웃으며 함께 영주관 밖으로 튀어나온 복면인을 불렀다. 다른 복면인들은 싸움에 열중하고 있어서 명령에 따를 수 없는 상태였다.

    “받아라!”

    복면인 대장은 품속에 손을 넣어 작은 상자를 열더니 그 안에서 작은 환약을 꺼냈다.

    ‘저렇게나 많아?’

    정천우는 눈을 부릅떴다.

    복면인 대장이 꺼낸 상자에는 적어도 일곱 개에 달하는 환약이 들어 있었다.

    정천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저 상자 하나를 되찾아 주면 일곱 개 중 하나쯤은 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겨났다.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섣불리 다가갈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복면인 대장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너무나 강했다. 중원으로 따지자면 대략 이류 급 무인 이상의 수준이었다.

    “щДю…… 아이스 볼트(Ice bolt)!”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지친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시퍼런 무언가가 복면인 대장을 향해 날아갔다.

    “어딜!”

    파앙!

    복면인 대장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아이스 볼트를 롱 소드로 쳐 냈다.

    마나를 담은 롱 소드는 마법의 화살을 박살 냈다. 그러나 복면인 대장이 과도하게 힘을 쓰면서 움직이는 바람에 그의 손에 들린 상자가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그것은 정천우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상자 안에 들었던 몇 알의 소환단이 상자 밖으로 튀어나와 바닥을 굴렀다.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정천우는 재빨리 한 알을 주워 주머니에 챙겨 넣고 다른 소환단을 향해 달려갔다.

    두 개째 챙기려는 순간, 복면인 대장이 눈을 번뜩였다.

    “이놈! 꺼져라!”

    쐐애액!

    “이크!”

    정천우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롱 소드를 피해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멀찌감치 물러났다.

    “무엇을 하느냐! 어서 삼켜라!”

    복면인 대장은 정천우가 다가오는 것을 경계하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복면인 대장의 명령을 받은 다른 복면인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당연한 일이다.

    먹으면 100퍼센트 죽음에 이른다는 무시무시한 소환단이다. 아무리 목숨을 버릴 각오로 충성을 맹세했어도 이걸 삼키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щДю…… 아이스 볼트!”

    “흥!”

    또다시 마법 화살이 날아오자 복면인 대장이 어렵지 않게 롱 소드로 박살 냈다.

    “저년부터 해치우지 않고 무엇을 하는가!”

    복면인 대장은 짜증스럽다는 말투로 애초부터 싸움에 가담하지 않은 복면인 중의 하나를 노려보았다.

    “рйёП…… 라이트닝(Lightning)!”

    목석처럼 서 있던 복면인의 정체는 마법사였다.

    그의 입에서 어눌하고도 음산한 목소리로 시동어가 흘러나오자 누런색의 뇌전이 번쩍였다.

    번개를 닮은 라이트닝 마법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마법을 준비하던 하북팽가의 마법사에게 쏟아졌다.

    “꺄아악!”

    마법에 직격당한 후드를 깊게 눌러쓴 마법사의 입에서 앳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북팽가의 여마법사는 몸에서 스파크를 일으키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았다.

    “허튼수작하지 마라!”

    “쳇!”

    정천우가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복면인 대장이 한눈판 틈을 타고 바닥에 떨어진 소환단을 집으려는데 귀신같이 눈치를 채고 롱 소드를 휘둘러 왔다.

    “이봐!”

    “뭔가!”

    복면인 대장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정천우의 반응속도도 만만치 않으니 제대로 맞붙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좋은 건 나눠 먹자고.”

    “개소리!”

    기도 차지 않을 얘기에 복면인 대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순간, 정천우가 몸을 날렸다.

    잔뜩 긴장했던 복면인 대장은 정천우가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가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저런 놈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이내 허리를 구부려 바닥에 떨어진 소환단을 주워 들었다.

    “멈춰라!”

    복면인 대장은 소환단을 줍기가 무섭게 정천우를 힐끔 훔쳐봤다가 크게 놀라 급히 달려갔다. 정천우가 교활하게도 주의를 잔뜩 끌어 놓고는 다른 곳에 떨어진 소환단을 주우러 간 것이다.

    복면인 대장은 마나를 잔뜩 담아 롱 소드를 휘둘렀다.

    캉!

    “큭! 어디서 이런 놈잇!”

    복면인 대장의 눈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일검(一劍)에 죽여 버릴 생각으로 전력을 다해서 공격했는데 오히려 자신의 손아귀가 저렸다.

    “더러운 새끼! 혼자 다 처먹으려다간 탈 나는 법이다! 응! 사이좋게 너 하나 나 하나! 그럼 되잖아!”

    정천우는 추가로 얻은 소환단을 바지 주머니에 마저 넣으며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느긋하게 역천검을 허리 뒤로 가져가며 뒷짐을 졌다.

    마치 ‘너 따위는 하나도 겁나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강해 보이진 않는데…….’

    복면인 대장은 정천우를 훑어보며 고민에 휩싸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일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 냈다.

    어쩌면 하북팽가에서 비밀리에 키운 놈일지도 모른다. 감추고 있는 실력을 드러내면 자신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게 불안했다.

    ‘지독한 새끼!’

    한편, 정천우는 죽을 맛이었다.

    겉으로는 복면인 대장을 보며 웃고 있지만 사실은 비명이 튀어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는 중이었다.

    찢어진 손아귀에서 끔찍한 통증이 느껴지고,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역천검의 손잡이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랬군! 허풍쟁이 놈!”

    심각한 얼굴로 정천우를 노려보던 복면인 대장의 눈에 비웃음이 묻어 나왔다. 눈치챘다는 기색이 잔득 묻어나는 기분 나쁜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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