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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23화 (23/200)
  • # 23

    Chapter 7. 활약 (2)

    “후우…… 이거 야단났군. 영주관에 남은 썬더 기사단만으로는…… 크윽!”

    그란드는 분하다는 얼굴로 주먹을 움켜쥐며 부르르 떨어 댔다. 하지만 정천우에게는 관심 없는 이야기였다.

    중원에서도 대의니 협의니 하는 말들을 징하게 들었다. 그런 것들은 ‘있는 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놈들이 소환단을 노린다면…….”

    ‘소환단(小還丹)?’

    정천우는 그란드의 입에서 나온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소환단이라면 적어도 10년 이상의 내공을 증진시켜 준다는 소림사의 영약이다.

    정천우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내공. 소환단은 부족한 내공을 증진시킬 최고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잠깐! 지금 소환단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놈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 독약일 것입니다.”

    그란드는 정천우가 도와줄 것처럼 말을 걸자 곧바로 대답해 주었다.

    이곳에 파견 나온 기사들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팽우룡을 포함한 썬더 기사단원이다. 팽우룡이 여길 지휘해야 하기에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자신까지 다섯뿐이었다.

    아까 복면인들을 해치울 때 보여 주었던 정천우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란드는 생각했다.

    ‘독약(毒藥)?’

    정천우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중원의 소환단은 대환단에 미치지 못할 뿐이지, 역시 지고한 영약이다. 그런데 이쪽 세계의 소환단은 또 뭔가 다른 것일까?

    “소환단이 독약입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도와주신다면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란드는 썬더 기사단 소속의 기사가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급하게 말했다. 더 늦었다가는 영주관에 남아 있는 썬더 기사단 동료들이 전멸당하고 영주님이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정천우가 도와주든 말든 당장 출발해야 했다.

    ‘왠지 사기당하는 느낌인데? 가? 말아?’

    정천우는 속으로 갈등했다. 그란드는 벌써 몸을 돌려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소환단이 진짜 하북팽가에 있다면 확인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다. 운이 좋아서 소환단을 강탈하려는 놈들이 흘리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소환단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진짜라면 독약일 리 없는 것이니 말이다.

    정천우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튕기느라 열이 날 지경이었다. 만약 진짜 소환단이라면 이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몰라! 궁금한 건 못 참아! 그란드 님!”

    정천우는 그란드가 말에 오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경공을 발휘해 뛰어갔다.

    지친 건 맞지만 싸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전륜공의 유일한 장점인 빠른 회복력 덕분이다. 싸우는 중에도 운공할 수 있을 만큼 안정성 하나는 탁월한 심법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럇!”

    정천우는 기사들이 타고 왔던 말 중에 하나를 잡아타고 옆구리를 걷어찼다.

    다각, 다그닥, 다각, 다각.

    옆구리를 얻어맞은 말이 놀라서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기사들과 달리 정천우는 갑옷을 입지 않아 그를 태운 말이 빠르게 질주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그란드와 말 머리를 나란히 한 채 달렸다.

    “소환단이 어째서 독약입니까?”

    “소환단에 대해서 모르십니까?”

    그란드는 의아한 얼굴로 정천우를 쳐다보았다.

    소환단에 대한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상식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정천우의 얼굴을 보니 그게 더 이상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산속에서만 살아와서 세상 물정을 모릅니다.”

    정천우는 말고삐를 한 손으로 잡은 채 물었다.

    “소환단은 이 나라를 세운 벽력대제 팽진옥 사조님이 중원이라는 곳에서 가져오셨다고 하는 물건입니다.”

    ‘진품(眞品) 소환단!’

    정천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정신을 차렸던 동굴 속에는 수많은 백골이 있었다. 소환단은 아마도 팽진옥이 백골들의 품을 뒤져 비급과 함께 얻은 물건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어째서 독약이라는 겁니까?”

    “마나가 증진된다는 얘기에 소환단을 먹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사인(死因)은 마나 폭주, 혹은 중독에 의한 죽음입니다. 한마디로 저주받은 물건입니다.”

    정천우는 기사들을 쫓아가면서 의문에 빠졌다. 어째서 소환단을 먹고 죽음에 이르렀는지 생각해 보았다.

    ‘마나 폭주…… 여기서는 내공을 마나라고 부르니까 결국은 주화입마에 빠졌다는 말인데…… 그렇군.’

    정천우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말을 달리는 그란드의 몸 상태를 보니 그 역시 내공심법을 익힌 것 같지는 않았다. 기운 자체는 자신보다 훨씬 많지만 사용법이 비효율적이었다.

    내공심법이 없는 상태에서 영약을 먹었으니, 기운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바람에 주화입마에 빠졌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중독으로 죽었다는 얘기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나 지독한 물건이라면 복면을 쓴 놈들은 왜 이렇게 악착같이 소환단을 노리는 겁니까?”

    그게 의문이었다.

    내공을 증진시키려는 목적도 아니면서 왜 이토록 악랄한 수법을 사용하면서까지 소환단을 노리는 것인지, 그게 이상했다.

    “아직 소환단을 노린다고 단언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복면을 쓴 인물들이 소환단을 노린다면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란드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끊었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말을 꺼내기가 두렵다는 태도였다.

    “무엇 때문에 말씀하시다가 마는 겁니까?”

    “후우…… 복용한 사람들이 죽은 뒤로 소환단을 사용하는 경우는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바로 데스나이트를 만들 때뿐입니다.”

    “데스나이트?”

    정천우는 뜻을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란드는 정천우가 산속에서만 살다가 얼마 전에야 내려왔다는 걸 생각해 내고는 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데스나이트는 죽은 사람을 부활시켜 강력한 무기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소환단을 먹으면 죽습니다. 그러나 미리 신체에 마법진을 그려 놓고 소환단을 복용하면 죽지 않고 곧바로 데스나이트가 됩니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으음…….”

    정천우는 신음을 흘리면서 머리를 굴렸다.

    데스나이트라는 것이 마교나 혈교에서 사용한다는 강시의 일종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곧바로 강시로 바꾼다는 것은 생강시를 말하는 게 틀림없었다.

    ‘생강시라면 끔찍하지. 그 빌어먹을 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정천우는 생강시를 떠올리자 온몸의 솜털이 모두 곤두섰다.

    우연한 기회에 생강시가 나타난 적이 있었다.

    5년 전쯤이었는데, 300년 전에 이름을 떨친 정천협(正天俠) 곽진이 남겼다는 장보도가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곽진의 유진이 남아 있다는 곳이 바로 절강성 부근이었기에 길잡이로 정천우가 의뢰를 받았다.

    무덤에서 나타난 것은 곽진의 무공 비급이 아니라 생강시였다. 마교에서 생강시의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 가짜 장보도를 만들어 무인들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거기서 만난 생강시는 실로 끔찍했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을 만큼.

    “거의 다 와 갑니다! 이런! 모두 서둘러라!”

    그란드는 정천우에게 말하다가 마지막엔 썬더 기사단에게 비명처럼 소리쳤다. 화북팽가의 영주성에서 화광(火光)이 치솟고 있었던 까닭이다.

    “옛! 끼랴앗!”

    썬더 기사단원들은 크게 대답하고 고삐를 휘두르며 말의 배를 걷어찼다.

    “영주관 쪽입니다!”

    “서둘러라!”

    기사 하나가 손으로 영주성의 한쪽 귀퉁이를 가리키자 그란드의 얼굴에 다급함이 떠올랐다.

    ***

    챙! 카강! 캉!

    커다란 본관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날카로운 쇳소리가 요란하게 귀를 때렸다.

    정천우는 역천검을 뽑기보다 허리춤에서 남은 드로잉 나이프 두 자루를 모두 꺼냈다. 마나를 잔뜩 담아 전방에 집중하는 적을 노렸다.

    복면인들은 뒤를 봐 주는 동료를 믿고 있는지, 영주관을 지키는 썬더 기사단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쉬이익!

    드로잉 나이프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정천우는 곧바로 남은 한 자루의 드로잉 나이프를 던졌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내공을 잔뜩 퍼부어 두었다.

    연달아 좌우 끝을 노리고 던졌기에 뒤를 지키던 복면인은 둘 중의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퍽!

    “크헉! 끄으…….”

    드로잉 나이프에 등을 맞은 복면인은 고통에 멈칫하다가 상대하던 썬더 기사단원의 칼에 목이 떨어졌다.

    “차아앗!”

    정천우는 역천검을 뽑아 들고 달리는 말 위에서 몸을 날렸다.

    암기 공격에 허무하게 당할 정도면 실력들이 별로라는 의미다. 낭인 생활을 하면서 겪은 바로는 그랬다.

    목표는 뒤를 방어하며 정천우가 던진 드로잉 나이프를 롱 소드로 튕겨 낸 복면인이었다.

    바웅!

    정천우의 역천검이 사선으로 바람을 끊어 내면서 어깨에 잔뜩 힘을 준 복면인을 노리고 내리꽂혔다.

    깡! 우둑!

    “크억!”

    정천우의 공격을 우직하게 힘으로 받아 낸 복면인의 손목이 기형적으로 꺾이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말 위에서 뛰어내린 충격을 모조리 복면인에게 뒤집어씌운 정천우는 곧바로 역천검을 앞으로 밀어 넣었다.

    “뒤에 적이 나타났다!”

    정천우가 역천검을 비틀어 뽑는데 동료의 비명을 들은 다른 복면인 하나가 소리쳤다.

    “늦었어!”

    정천우가 급하게 뒤로 돌면서 롱 소드를 휘두르는 복면인을 향해 중얼거렸다.

    막무가내로 휘둘러 오는 복면인의 롱 소드에는 힘이 충분히 실려 있지 않았다. 역천검을 힘껏 올려치자 롱 소드와 부딪치면서 불똥이 튀었다.

    퍽!

    롱 소드가 튕겨지면서 훤하게 드러난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내공을 담은 발에 얻어맞은 복면인이 일그러진 눈으로 정천우를 쏘아보았다.

    실력은 허접하지만 훈련은 제대로 받은 놈 같았다. 가슴뼈가 함몰되는 고통 속에서도 상대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잘 가라!”

    정천우가 해 줄 수 있는 칭찬은 최대한 빠르게 고통 없이 보내 주는 것.

    서걱!

    발차기를 날리면서 올렸던 오른발로 진각을 밟으며 역천검을 횡으로 그어 목을 날렸다.

    “쳐라!”

    “죽여라!”

    정천우가 복면인 둘을 해치웠을 때, 뒤이어 그란드를 비롯한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멍청한 자식들!’

    뒤늦게 달려드는 썬더 기사단원들의 모습에 정천우가 속으로 욕을 했다.

    복면인이 반응해 주길 바라는 것처럼 마구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데, 정천우의 눈에는 한심하게만 보였다.

    선발필승(先發必勝).

    기습압승(奇襲壓勝).

    암습무패(暗襲無敗).

    조금만 비겁해지면 생존 확률은 절대적으로 늘어난다. 정천우는 쓰러진 복면인의 시체로 다가가 등에 꽂힌 드로잉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이야압!”

    복면인 하나가 살기로 충혈된 눈을 빛내며 정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드로잉 나이프를 시체에서 뽑자마자 복면인에게 집어던지며 정천우가 옆으로 몸을 날렸다.

    “더러운 자식!”

    드로잉 나이프를 튕겨 내느라 정천우를 놓친 복면인이 고함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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