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6화 (16/200)
  • # 16

    Chapter 5. 복면이라면 지긋지긋해! (3)

    “저거, 수상하지 않은가?”

    바닥을 뒹굴며 키득거리던 드워프는 제럴드를 쳐다보며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저 자식, 나한테도 추파를 던지더니…….”

    “설마…….”

    드워프는 제럴드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의 친구인 샤칼이라면 몰라도 제럴드는 정말 아니올시다였다. 좋게 말하자면 남자답게 생긴 것이었고, 그냥 평범하게 말하자면 인상 더럽게 생겼다.

    “진짜라니까요? 오늘 싫다고 거절했다 두들겨 맞기까지 했습니다.”

    제럴드는 얻어맞은 자신의 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대체 취향을 할 수 없군. 여자 쪽 취향인가? 샤칼한테 하는 짓을 보면 꼭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드워프는 별 쓸데없는 고민을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해 대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비켜!”

    엘프 샤칼은 인상을 긁으며 몸을 일으켰다.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던 고통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그런데 자세가 영 묘했다. 주변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곱지 않은 게 더 마음에 걸렸다.

    “헤이먼! 넌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샤칼은 일어나자마자 짐짓 사람들의 눈빛을 외면하고 드워프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너 그런 취향이었냐? 내가 드워프라는 사실이 이렇게나 안심되긴 처음이다.”

    “뭔 개소리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헤이먼에게 샤칼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거, 처음 봤다.”

    드워프 헤이먼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그렇게 인간 여자들이 다가오는 걸 꺼렸는지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아. 개인의 취향을 가지고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헤이먼은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미친 땅딸보가 어디서 개소리 떨고 지랄이야!”

    가뜩이나 술집 안의 인간들이 자신을 더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게 짜증 났던 샤칼이었다. 그런 와중에 오랜 친구 헤이먼이 염장을 지르자 샤칼의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끄응…… 이 친구는 보는 그대로 엘프야. 이름은 샤칼, 다른 엘프와 달리 성질이 참…… 특이하지.”

    헤이먼은 ‘성질이 참 좆같다’고 하려다가 급하게 말을 바꾸었다. 샤칼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매섭게 노려보는 걸 발견한 탓이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전 제럴드라고 합니다. 이 친구는 정천우라고 합니다.”

    “정천우? 혹시…… 곤륜파의 귀족인가?”

    헤이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300년 전에 팽진옥이 동대륙을 통일한 후부터 특이한 형식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동대륙에 유행처럼 번졌다. 그중 하북팽가의 영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곤륜파의 영주가 정씨 성을 사용한다.

    정천우의 행색으로 보아 귀족 같지는 않지만 범상치 않은 무술 실력이나 정씨 성을 쓰는 것을 보면 혹시나 싶었다.

    “아닙니다.”

    ‘이젠 놀랍지도 않군.’

    곤륜파 같은 유서 깊은 대문파의 이름까지 튀어나오다니, 정천우는 속으로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발란 영지의 사람들은 주로 블레이드를 사용하지 않는가. 자네의 무기가 검인 데다가 정(鄭)씨 성이라니 이곳 사람 같지 않아서 그런다네. 사실 그런 이름은 발음하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잘 안 쓰거든. ‘중원(中原)’이라는 곳의 이름은 참…… 묘하단 말이야.”

    헤이먼은 말을 마치고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헤이먼 공이라고 하셨죠?”

    정천우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헤이먼에게 말을 걸었다.

    “공? 그게 뭐야?”

    제럴드는 정천우가 이름 뒤에 ‘님’이 아니라 ‘공’이라는 말을 붙이자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당연히 존경의 의미를 담은 말이지. 어떻게 연장자의 이름을 막 불러?”

    “그냥 헤이먼 님이라고 부르면 돼. 하여간 넌 좀 이상하다.”

    “그래, 알았어. 헤이먼 님이라고 하셨죠?”

    입에 잘 붙지 않았지만 정천우는 말을 바꾸며 헤이먼을 쳐다보았다.

    여행자라고 했으니 평생을 하북팽가의 영지에서만 살아온 제럴드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암, 내가 바로 불꽃의 망치 일족인 헤이먼이지. 자네도 마시게.”

    헤이먼은 술잔을 들고 건배를 해 왔다. 커다란 맥주잔과 작은 위스키잔이 부딪히고 안의 술이 꼴깍꼴깍 잘도 비워졌다.

    정천우는 연거푸 위스키를 세 잔이나 마시고서야 헤이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아까 중원이라고 하셨는데…….”

    “했지.”

    “어디입니까, 거기가?”

    정천우가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어느 쪽으로 가면 중원에 다다를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

    머리로는 중원과 이곳이 별개의 세상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에는 아직도 이곳이 도원경이나 봉래도처럼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고, 같은 하늘 아래 진미령이 살아 숨 쉬고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비록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곤 있었지만 말이다.

    “중원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나?”

    “제가 산에서 살다가 바깥세상이 궁금해 얼마 전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아는 게 없다 보니 생소한 게 너무 많습니다.”

    정천우는 자신이 중원에서 왔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았다.

    중원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이 호의적이기는 했지만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았으니까.

    “확실히 넌 좀 이상하게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긴 했었어. 시골에 짱 박혀 있었구나?”

    옆에 앉은 제럴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정천우가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중원이라는 곳은 상상 속의 세상일세. 아니, 상상 속이라기보다는 동대륙의 근간을 바로 세운 벽력대제 팽진옥 대공께서 살았다는 전설 속의 세상이지.”

    ‘전설…….’

    정천우는 속으로 뇌까리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래서야 세상에 존재하는 정보만으로는 중원에 돌아가기 어렵다. 중원 자체를 전설로 치부하고 있으니 그곳에 되돌아가는 방법을 물어봐야 허사다.

    “중원이란 곳이 세상 밖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만은 모두가 인정한다네. 그만큼이나 달랐지. 언어도, 문화도, 검술도 말일세.”

    헤이먼이 맥주를 쭉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특히 검술은 대단했다지. 역사상 그분보다 강한 기사가 없다네. 그분께서 역천검을 휘두르면 검신에서 벼락이 일어나 감히 대적할 자가 없었다고 하네.”

    침을 튀기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 헤이먼을 바라보는 정천우의 눈이 빛났다.

    익숙한 이름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직후에 보인 반응이었다.

    “역천검이요?”

    “그래, 역천검! 벽력대제께서 동대륙에 오게 된 열쇠가 되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검이지. 벽력대제께서 임종하던 날, 역천검은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졌다고 전해진다네.”

    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헤이먼은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역척검의 생김새를 얘기하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생각난 김에 자네 검 좀 줘 봐.”

    “검이요?”

    정천우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속으로는 뜨끔해하고 있었다. 벽력대제 팽진옥이 사용하던 역천검이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치미 뚝 떼고 검집에서 역천검을 빼내어 손잡이 쪽을 헤이먼에게 내밀었다.

    진품을 받아 들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하하하! 이거 정말 대단하군. 기가 막히게 만들었어. 내가 본 것 중에선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군.”

    “뭐가 말씀이십니까?”

    “한동안 역천검을 흉내 낸 검이 많았다네. 개중에는 쓸 만한 것들도 꽤 나와서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었지. 이 검도 마찬가지일세. 무슨 재질인지는 감이 잘 잡히지 않지만 싸구려로 아무렇게나 만든 건 아닌 모양이군.”

    헤이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역천검을 다시 정천우에게 돌려주었다.

    “진짜 역천검은 대체 어떻게 생긴 겁니까?”

    “글쎄…… 들려오는 얘기와 당시 자료를 보면 자네의 검과 외형은 거의 비슷할 걸세. 다만 룬어가 깊게 음각되어 있고, 마나를 집어넣으면 뇌전의 기운이 일어난다고 하더군.”

    ‘룬어?’

    정천우는 받아 든 역천검을 살펴보았다.

    없다!

    중원에 있을 당시에는 역천검의 검신에 이상하게 생긴 글씨가 음각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이제껏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보니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 역천검은 중원에서의 그것과 다른 것이다.

    “시끄럽고! 이봐, 인간 친구! 정천우라고 했지?”

    “네, 샤칼 님.”

    “너 때문에 개망신당한 건 알지?”

    와인 잔을 흔들며 향을 즐기던 샤칼은 느긋한 행동과는 달리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일이니 상관없어. 대신 방법 좀 알려 줘!”

    “방법이라면 어떤……?”

    “내게 썼던 방법 말이다. 네 주먹에 맞은 순간, 마나가 흘러들어 와 내 몸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런 기술은 처음 당해 봤다.”

    샤칼의 표정이 무표정에서 열기를 띤 표정으로 바뀌었다.

    정천우가 육합권을 사용하면서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 피부와 근육 안쪽에 충격을 가하는 공격)의 원리를 담았다. 내공이 몸속에 파고들어 충격을 주는 게 무척이나 신기했던 모양이다.

    “그거야 샤칼 님 정도의 실력자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만?”

    정천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샤칼의 실력은 자신보다 윗줄이었다. 내공의 양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고, 권기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수준의 권장술을 익혔다. 그만하면 내가중수법쯤은 알고 있는 게 정상이다.

    “가르쳐 주기 싫은가?”

    “예? 진심으로 가르쳐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진심이다.”

    샤칼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정천우와 눈을 맞추었다.

    “우욱…… 키스하고 싶은가 봐.”

    “속이 느글거려…….”

    샤칼의 행동에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후우…… 일단 자리부터 옮기는 게 어때?”

    샤칼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종족의 특성상 인간보다 귀가 몇 배나 밝기에 수군대는 소리가 다 들렸다. 저 낯 뜨거운 오해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황폐해져 갔다.

    “좋습니다. 자리를 옮기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제럴드, 어디 괜찮은 데 없어?”

    “여기가 제일 좋은 데야. 다른 데는 가 봐야 술주정뱅이들만 그득할걸? 하북팽가 안이 괜찮긴 한데 너무 비싸고…… 여기만은 못해도 집 근처에 하나 있는데, 어때?”

    제럴드는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손등으로 입가에 묻은 맥주 거품을 닦아 냈다. 사실 그로서도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껄끄러웠던 참이었다.

    넷은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 때문에 결국은 ‘발란의 낭만’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목책 근처로 이동했다.

    제럴드의 집이 있는 곳은 목책 마을이라는 작은 곳이다. 대부분의 집주인이 목책 경비병이다. 여관과 술집을 겸하는 곳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짐! 오랜만입니다.”

    제럴드는 이름만 그럴듯한 ‘천국의 향기’라는 곳에 들어서면서 활기찬 목소리로 주인에게 인사했다.

    “그래, 맨정신으로는 오랜만이겠지. 주문이나 해.”

    짐은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헝겊으로 유리잔을 닦았다.

    “여기도 나름 조용하고 좋군. 술맛만 좋으면 딱인데 말이지!”

    헤이먼이 자리에 앉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즐기는 건 맥주지 떠들썩한 분위기가 아니기에 오히려 여기가 더 좋았다.

    “자, 아까 하지 못했던 얘기를 마저 하지. 어떻게 하는 건가?”

    샤칼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궁금한 점을 물어 왔다. 주문은 제럴드가 요령껏 해 주었다.

    “별거 없습니다. 단전의 내공을 끌어내서 상대의 몸속에 심어 두고 빼내면 됩니다. 가장 기초적인 수법이죠.”

    “단전? 내공? 기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샤칼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정천우가 들려준 이야기가 그에게는 터무니없게 들린 탓이다.

    “제가 왜 샤칼 님과 장난을 하겠습니까?”

    정천우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이 정도 말하면 당연히 알아들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화를 내니 기가 막혔다.

    기초적인 내가중수법이야 내공을 수련하는 무인이라면 대부분 익히고 있다. 내공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하다 보면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권기를 발현하는 고수가 내가중수법을 모르는 것도 황당한데 요령을 알려 줘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못 알아듣는 존재가 눈앞에 있으니 이걸 어떻게 더 잘 설명해 줘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 내공은 마나라고 쳐! 그건 좋게 넘어간다 이거야! 하지만 단전이란 건 벽력대제가 남긴 장난질이라는 걸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잖아. 내가 화내는 게 이상한 일이야?”

    “자네가 심했어.”

    “천우, 너 인간이 그러면 못쓴다.”

    샤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이먼과 제럴드가 비난 섞인 눈으로 정천우를 쳐다보았다.

    “대체 왜들 이래…….”

    정천우는 자신 뭘 잘못했나 하고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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