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3화 (13/200)
  • # 13

    Chapter 4.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라! (3)

    ***

    가장 손쉬운 사냥법은 올무를 놓는 것이다.

    짐승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고리 형태로 올무를 놓으면 손쉽게 사냥감을 잡을 수 있다.

    올무에 사용할 줄로 은사와 같은 날카로운 것은 좋지 않다.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 두어야 하는데 걸린 부위를 절단하게 되니까 말이다.

    올무는 짐승이 걸려들기 전까지 원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뻣뻣한 줄로 만들어야 짐승들이 걸리기 전까지 모양이 망가지지 않는다.

    “다음번에는 쇠 덫을 만들어야겠어.”

    정천우는 나뭇가지를 잡아당겨 마지막 올무를 설치하며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설치한 것은 짐승이 건드리면 나뭇가지가 펴지면서 올무를 죄는 덫이다.

    정천우는 기척을 줄이고 덫을 설치한 장소를 빠져나왔다. 짐승들은 예민해서 사람이 지나다니면 몸을 사리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가 사냥터를 빠져나와 향한 곳은 야트막한 바위산이었다. 무공을 수련하기 위해서다.

    화섭자(火攝子, 불씨를 보관하는 물건)를 이용해 불을 피우고 자리에 앉았다.

    모닥불의 불빛을 빌려 오호단문도의 비급을 읽어 내려갔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동작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 문자는 낮에 확인한 것처럼 중원의 글이었다.

    “대단해! 이런 걸 배우고서도 그토록 형편없는 실력을 지녔다는 게 신기할 정도야.”

    정천우는 책을 덮으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호단문도는 하북팽가의 일반 무사들에게 가르치는 무공이다. 일곱 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진 도법으로, 간결하면서도 사나운 것이 특징이다.

    하북팽가의 자손들이 익히는 무공에 비하면 손색은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정천우가 배운 전륜도법과는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좋아! 이 정도라면 어렵지 않아.”

    정천우는 한쪽에 책을 내려놓고 역천검을 뽑았다.

    약간 자세를 낮추고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낮에 제럴드가 보여 주었던 것보다 훨씬 안정적인 자세다.

    낭인이라고 해도 10년 넘게 무공을 수련해 왔던 정천우다. 무공 자체에 대한 이해도는 제럴드를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후읍! 후우…….”

    숨을 크게 들이마신 정천우는 가늘게 숨을 내뱉다가 어느 순간 호흡을 끊었다.

    어떤 무공이든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인체란 기묘해서 숨을 내쉴 때와 들이쉴 때가 다르다. 가장 힘을 쓰기 좋은 것은 몸에 적당히 호흡을 남겨 두었을 때다.

    슉! 스악! 파밧! 쉬잉!

    역천검이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공간을 갈라내는 소리가 날카롭게 흘러나왔다.

    역천검이 그려 내는 궤적이 교차하면서 흐릿한 검기가 허공에 잔상을 만들어 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초식을 펼친 순간, 이제껏 만들어진 검기의 잔상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그것은 흐릿하지만 중원의 호랑이와 비슷한 형체였다.

    오호단문도의 무공을 사용할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정천우의 내공이 워낙 보잘것없어 한 마리의 호랑이를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것도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대성하면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만들어진다고 하던데, 나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흐릿하게 한 마리를 만들어 냈구나.”

    정천우는 툴툴거리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과연 전륜도법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전륜도법은 단전에 쌓은 내공을 무작정 뽑아서 사용한다. 그러나 오호단문도는 내공을 최대한 아끼면서 검기를 더욱 날카롭게 해 준다.

    명가는 하급 무사들에게 가르치는 무공이라고 할지라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명가의 품격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오호단문도에 깃들어 있었다.

    “계속 수련하다 보면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야.”

    정천우는 오호단문도의 기수식을 잡으며 눈을 빛냈다.

    이제 겨우 한 번 펼쳤을 뿐이다. 내공의 운용과 호흡 조절에 더 신경을 쓰고 수련한다면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믿었다.

    쿠워어억!

    “응? 뭐가 잡혔나?”

    오호단문도를 수련하던 정천우가 수련을 멈추고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귀에 내공을 보내 무슨 짐승인지 파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그의 눈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건 도대체 어떤 짐승의 울음소리지?”

    정천우는 종류를 알 수 없는 울부짖음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정천우는 경공을 발휘해 빠르게 뛰었다.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정천우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마지막에 설치한 올무에 걸린 게 아마도 사람인 모양이었다. 죽는다고 괴로워하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애처롭게 들려왔다.

    짐승을 잡겠다고 설치한 올무에 사람이 걸렸으니 정천우는 크게 걱정되었다.

    “크아악! 젠장맞을!”

    “내려 줘야 한다! 저러다 죽는다!”

    “그러니까 내릴 수가 없잖냐! 저놈 눈알 터지려고 한다!”

    굵은 나뭇가지를 휘어서 설치한 올무에 한 사람이 발목이 걸린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무 밑에는 2명이 방법을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 당황한 목소리로 서로 짜증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정천우가 질린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제럴드에게 듣기로는 멀리까지 사냥을 나오는 사람은 없다고 했고, 그래서 거의 반 시진이나 달려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설마 자신이 설치한 올무에 사람이 걸려들었을 줄이야.

    “이, 인간이다!”

    “잘됐다! 먹는다!”

    나무 밑에서 올무에 걸린 사람을 쳐다보며 걱정하던 사람 둘이 정천우의 목소리에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살기는 무척이나 거칠었다.

    ‘인간? 먹어?’

    정천우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살기와 이해할 수 없는 얘기에 다가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기분이 더러워졌다.

    일부러 사람을 잡으려고 설치한 덫이 아니었다. 이런 곳까지 사람이 돌아다닐 줄은 몰랐다.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로 사람을 죽인다? 게다가 먹는다?

    남색이 아닌 이상 같은 남자한테 쓸 말은 아니다. 일단은 참아 주겠지만 여차하면 실력 행사에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 줄 생각이었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행동할 생각이었다.

    “멈추십시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정천우는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두 손을 어깨높이로 들었다.

    그러나 손에는 드로잉 나이프를 쥐고 있었다. 상대가 허튼 짓을 하면 곧바로 반격할 수 있게.

    “무슨 헛소리냐! 인간 먹는다!”

    “저 인간, 무기도 있다! 오늘 우리 운이 좋다!”

    나무 밑의 둘은 어눌한 말투로 크게 소리쳤다. 그와 비례해서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군. 할 수 없지.’

    어둠 속에서 자신을 향해 살기를 뿌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자신을 공격하겠다는 거다.

    살기만 짙을 뿐, 그들에게서는 딱히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찮은 수준이란 뜻이다.

    “싸우면 후회할 겁니다! 멈춰 주십시오.”

    정천우는 협상의 여지를 남겨 두고 역천검을 뽑았다. 드로잉 나이프는 왼손에 쥐고 자세를 잡았다.

    “쿠윅! 순순히 잡혀라, 인간!”

    “오른팔은 내 거다!”

    “좋다! 팔다리만 먹고 나머진 가져간다.”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둘은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댔다.

    ‘식인을 즐기는 놈들인가?’

    정천우는 역천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남색을 즐기는 변태쯤으로 생각했는데 놈들은 진짜로 사람을 먹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식인(食人).

    중원에서도 흉년이 들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끔찍한 행위다. 그러나 눈앞의 두 사람처럼 아예 처음부터 사람 고기를 원하는 놈들은 흔치 않다.

    “헉! 뭐, 뭐야!”

    정천우는 살기를 뿌리면서 천천히 다가오는 놈들을 경계하다가 이내 기겁을 했다.

    머리통이 돼지였다.

    정천우는 괴상망측하게 생긴 인간(?)의 모습에 뒷걸음질을 쳤다.

    “인간 겁먹었다! 우린 빨리 죽인다!”

    “노란 놈이다. 노란 놈이 훨씬 맛있다.”

    살기와 함께 침까지 흘려 대며 다가오는 둘을 보고 정천우는 혼란에 빠졌다.

    ‘피부가 녹색?’

    뒤로 물러나면서 다가오는 둘의 모습을 관찰한 정천우는 제럴드가 말한 몬스터라는 게 이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생각할 것도 없이 왼손에 쥔 드로잉 나이프를 던졌다.

    쉬쉭!

    “크악! 따갑다!”

    “아윽! 인간 놈이 뭘 던졌다! 아프다!”

    두 괴물은 정천우가 던진 드로잉 나이프에 맞고서는 인상을 썼다.

    “무슨 놈의 피부가…….”

    정천우가 놀랍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놈들이 다가오기 전에 견제 목적으로 드로잉 나이프를 던졌다. 그러나 괴물의 몸은 힘으로만 던진 드로잉 나이프 정도에는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굳이 접근전을 고집할 때가 아니었다. 인간이 아닌 놈들이라 어떤 힘을 지녔을지 궁금했다.

    정천우는 허리띠에 걸린 가죽통에 손을 집어넣고 드로잉 나이프에 내공을 발휘해 암기 수법으로 던졌다.

    “꾸위익! 더럽게 아프다!”

    “죽인다, 인간! 덮친다!”

    드로잉 나이프가 피부를 뚫고 살에 깊숙이 박히자 두 괴물은 광분하며 정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 놈은 날이 길쭉한 창을 들었고, 나머지 한 놈은 철퇴를 들고 있었다. 두 개의 무기 모두 녹이 잔뜩 슬어 있었다.

    부와앙!

    청룡언월도를 닮은 기다란 창이 정천우를 향해 둔중한 파공음을 흘리며 날아들었다.

    창은 정천우의 목을 베어 왔다. 정천우는 보법을 사용해 미끄러지듯 창의 진행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괴물에게 접근했다.

    “뀌익!”

    다른 괴물이 돼지 같은 소리를 내면서 철퇴로 정천우의 옆구리를 노렸다.

    정천우가 쓰러지듯 주저앉으면서 몸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청룡언월도를 닮은 창이 허망하게 애꿎은 허공을 갈랐다.

    캉! 츠걱!

    “꾸룩! 꾹…….”

    정천우는 회전력을 담아 역천검을 휘둘러 철퇴를 튕겨 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철퇴를 휘두른 괴물의 목을 베어 냈다.

    괴물이 목이 쩍 갈라지면서 돼지 같은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철퇴를 놓치고 자신의 목을 손으로 틀어막았지만 그런다고 피가 멎을 리가 없었다.

    “가쿠라! 뀌익! 나쁜 인간!”

    크게 헛손질을 하고 창을 고쳐 잡은 괴물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자세를 바로잡는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동료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눈이 붉게 충혈된 괴물은 콧김을 내뿜으며 창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무식하군.’

    정천우는 괴물의 어설픈 공격에 코웃음을 쳤다.

    힘을 앞세운 공격은 그저 빈틈만 더 노출하는 격이다. 수많은 싸움을 경험한 정천우에겐 우습기만 한 공격이었다.

    역천검을 들어 창날을 쳐 내면서 몸을 뒤로 뺐다. 그와 동시에 허리춤의 가죽 통에서 드로잉 나이프를 꺼내 내공을 담아 던졌다.

    츠걱!

    “뀌익! 아프다! 죽인다! 죽인다!”

    허벅지에 드로잉 나이프가 박히자 괴물이 더욱 난폭하게 창을 휘둘렀다.

    정천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픈 건 괴물이지 자신이 아니다. 지친 적을 상대하는 편이 훨씬 편하다.

    창날이 눈앞으로 스쳐 가는 순간, 정천우의 역천검이 창날의 뒤를 쫓았다.

    쩡!

    “뀌익! 아, 안 돼! 이, 인간!”

    괴물이 당황해 고함을 질렀다. 창을 휘두르던 방향으로 힘이 더해진 탓에 무기를 놓친 것이다.

    정천우는 뒷걸음질 치는 괴물에게 역천검을 밀어 넣었다.

    처걱!

    “꾸이익……”

    가슴을 꿰뚫은 역천검의 손잡이를 비틀자 괴물이 경련을 일으키며 무릎을 꿇었다.

    괴물이 앞으로 쓰러지려고 하자 재빨리 역천검을 뽑아내고 허공에 한차례 휘둘러 피를 털어 냈다.

    “무식하게 힘만 강한 놈들이야. 저놈만 남았군.”

    정천우가 뻐근해진 팔목을 주무르며 굵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괴물을 올려다보았다.

    몇 번 무기와 무기를 부딪쳤을 뿐인데 팔목에 무리가 왔다. 선천적으로 힘이 강한 놈들인 모양이었다.

    “뀌익! 사, 살려 줘라! 살려 줘라, 인간!”

    거꾸로 매달린 괴물이 최대한 애처로운 목소리로 매달렸다.

    빠각!

    살려 달라고 고함을 지르던 괴물의 이마에 드로잉 나이프가 틀어박혔다. 눈을 부릅뜨던 괴물은 한차례 경련을 일으키고는 축 늘어졌다.

    “미안, 뒤끝 남겨서 좋은 꼴 본 적이 없다.”

    정천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그대로 뛰어올라 늘어진 나뭇가지를 역천검으로 잘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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