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6화 (6/200)
  • # 6

    Chapter 2. 역천검(逆天劍) (3)

    슈아악! 빠박!

    “어욱!”

    “컥!”

    복면인들은 좌우에서 튀어나온 나무줄기에 얻어맞고 쓰러졌다. 그 뒤를 바짝 따라붙던 복면인은 동료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한데 뒤엉키고 말았다. 경공을 사용하며 달려오던 중이었기에 나무줄기에 제 스스로 들이박은 셈이었다.

    모르긴 해도 충격과 통증이 상당할 것이다.

    “개자식들아! 쫓아올 땐 좋았지?”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목숨을 거둬야 한다. 후환을 남기면 추격자가 더 붙는다.

    정천우는 반격을 경계하며 박도를 휘둘렀다. 부상당한 놈들이라고 해도 반격을 조심해야 할 놈들이다. 그만큼 잘 훈련된 놈들이라 한 방에 끝내겠다는 생각 따윈 버렸다.

    “우욱! 망할 자식!”

    “크아악!”

    두 명의 복면인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정천우가 다리를 베어 내자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정천우는 복면인에게 상처를 누적시켜 의지를 꺾은 뒤에 골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끝내 복면인의 목숨을 끊지는 못했다.

    쉬쉬쉭!

    “이런 제기!”

    복면인들의 몸에 칼질하기가 무섭게 뒤쪽에서 살벌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정천우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앞으로 날렸다.

    바닥을 뒹굴며 연달아 자신을 노리고 찔러 오는 복면인의 협봉검을 피해 냈다.

    “쥐새끼 같은 놈!”

    복면인의 목소리는 분노와 비웃음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제기랄! 뭐가 이렇게 많아?”

    정천우는 몸을 굴려 멀찌감치 이동한 뒤에야 욕설을 내뱉으며 일어났다.

    복면인의 눈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동료들이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모습을 발견한 탓이다.

    새로운 강호를 위해 싸우는 자신들이다. 이런 곳에서 삼류도 안 되는 놈에게 유린당한다는 게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났다.

    “네놈은 곱게 죽여 주지 않겠다!”

    복면인은 씹어 뱉듯이 말하고는 협봉검을 들어 올렸다. 푸르스름한 검기가 협봉검에 맺히더니 검 끝에서 예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일격필살의 기세!

    단숨에 정천우의 심장을 꿰뚫어 버리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살벌한 기세였다.

    “와라!”

    정천우가 박도를 들어 복면인을 겨눈 채 소리쳤다.

    조금 전까지 바닥을 뒹굴었던 모습과는 대조적인 태도였다. 복면인의 검기를 보았음에도 정천우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죽어라!”

    복면인이 살기를 뿌려 대며 몸을 날렸다.

    정천우의 몸에 협봉검이 닿기도 전에 날카로운 예기(銳氣)가 먼저 파고들었다.

    바우웅!

    “으헉!”

    몸을 날린 복면인이 기겁한 얼굴로 협봉검을 회수해 수평으로 누이면서 앞을 가렸다. 쇠못이 숭숭 박힌 낭아곤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텅! 츠각!

    “으아아악! 내 팔! 내 파알!”

    복면인이 괴로워하며 비명을 질렀다.

    느닷없이 날아온 낭아곤을 튕겨 내는 사이, 정천우가 박도로 올려쳐 복면인의 팔뚝을 썰어 놓은 것이다.

    “가끔은 주변도 살폈어야지.”

    스걱!

    “구루룩! 구룩…….”

    박도에 베여 목이 쩍 벌어진 복면인은 바르르 떨면서 입을 뻥끗하더니, 이내 눈을 허옇게 뒤집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잘했어.”

    “살 떨려 죽는 줄 알았네요.”

    정천우가 칭찬하자 화의룡이 질린 얼굴로 낭아곤을 주워 오며 엄살을 부렸다.

    덤벼들기가 두려워 복면인에게 낭아곤을 던졌다. 나머지는 정천우가 어떻게든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결과는 좋았지만 심장이 벌렁거렸다.

    “으, 으으아아아!”

    “끄아아악!”

    정천우는 얼떨떨해하는 화의룡을 놔두고, 비틀거리며 도망치려는 두 명의 복면인을 기어이 쫓아가 목숨을 끊어 놓았다.

    “대형, 너무 잔인한 거 아니에요?”

    “우리 얼굴을 아는 놈들을 놔두면 위험해. 어설프게 적을 동정하지 마! 그러다 골로 간 놈 여럿 봤다. 한 놈 더 해치워야 하니까 따라와!”

    정천우는 굳은 얼굴로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무림인과 엮인 이상 후환을 남기는 건 멍청한 짓이다.

    강호인은 잔인하다.

    정천우가 그동안 보아 온 강호인은 위험한 족속들이었다. 은혜는 잊어도 원한은 잊지 않는 망종이다. 은혜를 베풀어도 오히려 죽임을 당하는 경우조차 있었다.

    “쉿!”

    정천우는 경공을 펼쳐 빠르게 이동하다가 뒤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멈추라는 의미였다. 화의룡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도 군말 없이 제자리에 우뚝 섰다.

    정천우는 더욱 은밀하게 경공을 발휘하며 앞으로 나갔다. 그런 모습을 화의룡이 마른침을 삼키며 쳐다보았다.

    복면인이 은사에 한쪽 발목을 잃고 절룩거리는 사이, 정천우가 달려들어 박도로 단번에 그의 목을 쳤다.

    파바박! 쩌걱! 퉁, 투둥퉁…….

    복면인의 머리통이 장난처럼 잘려 나갔다. 잘린 머리가 저 멀리 바닥에 핏물을 뿌리며 데굴데굴 굴렀다.

    어찌나 빠르게 목을 쳐 냈는지, 복면인의 몸은 목을 잃고서도 앞으로 걸어가려다가 쓰러졌다.

    “휴우…… 이제야…….”

    정천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자신들을 쫓던 다섯 명을 다 해치운 것이다. 뒤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명줄까지 모두 끊어 놓았으니 이제는 무사히 산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끝이다.

    화의룡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던 정천우의 안색이 돌변했다.

    “피해!”

    정천우가 목이 터지라 소리치며 땅을 박찼다.

    걸음을 멈춘 화의룡의 뒤쪽 풀숲이 흔들리는 것을 발견한 탓이다.

    “뭐르…… 어억! 이, 이게…….”

    화의룡은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협봉검을 내려다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정천우는 박도를 휘두르려다가 화의룡이 퉁기듯 날아오자 공격을 포기하고 그대로 끌어안았다.

    “이런 놈들한테 동료가 당하다니, 어이가 없군!”

    화의룡을 발로 차서 정천우의 공격을 막아 낸 복면인이 기가 막힌 얼굴로 중얼거렸다. 동료의 목 없는 시신을 바라보는 복면인의 눈은 잔뜩 찡그려져 있었다.

    이리도 허무하게 죽으려고 그토록 힘든 수련을 견뎌 냈던 게 아니다.

    “이런 놈들한테 죽을 만큼 싸구려 목숨이었나…….”

    복면인은 멀찍이 굴러다니는 동료의 머리를 쳐다보곤 입맛을 다셨다.

    “싸구려……? 빌어먹을 자식!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거다.”

    정천우는 생기가 빠져나간 화의룡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불과 한 시진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장난스러운 얼굴로 말을 걸어 주던 놈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다니, 그 소중한 목숨이 참으로 허망했다.

    박도를 움켜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분노를 참기가 어려워 호흡이 거칠어졌다.

    정천우는 애써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면서 새롭게 나타난 복면인을 노려보았다.

    콰과광! 우르르르!

    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다.

    “무엇 때문에 우릴 쫓는 거지?”

    정천우는 박도를 들어 올려 전륜도법의 기수식을 잡아 갔다. 기수식 따위야 어떻게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차분해졌다.

    “묻지 마라. 나도 지금 헛다리 짚어서 짜증 난다. 피곤하게 하지 말고 그냥 죽어라.”

    복면인은 협봉검을 까딱거리면서 정천우에게 겨누었다. 정천우의 목숨쯤은 언제든지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무척이나 여유로운 태도였다.

    ‘아무리 낮게 쳐줘도 이류…… 빌어먹을!’

    정천우는 복면인의 무공 수준을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아까 죽였던 놈과 비슷해 보였다. 푸르스름한 검기를 겨우 검 끝에 모으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정천우 자신은 그것마저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저 검에 내공을 밀어 넣어 절삭력을 높이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나마 악소추에게서 받은 단약을 먹지 않았다면 싸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빗방울이 전신을 적셨지만 정작 정천우는 갈증을 느꼈다. 까딱하면 자신도 화의룡처럼 죽을 수 있다. 기습이나 암습이라면 몰라도 이류 수준의 무인과 정면 대결은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병기라도 좋은 걸 사용한다면 그나마 경험을 살려 정면 대결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금자 열 냥짜리 박도는 검기와 부딪히는 순간 깨져 나갈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하던 정천우가 결정을 내렸다.

    콰르릉! 쿠궁…….

    “이 버러지 같은 놈잇!”

    복면인의 입에서 험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번개가 치는 순간, 정천우가 몸을 돌려 달아난 것이다. 작정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벌써 사 장(대략 12미터)이나 멀어져 있었다.

    복면인은 분노한 눈으로 내공을 다리에 밀어 넣었다. 질퍽한 흙바닥이 푹푹 파여 나갔다.

    “곱게 죽이진 않겠다!”

    복면인은 쫓아가면서 저주 어린 음성으로 소리쳤다.

    가뜩이나 엉뚱한 놈을 쫓아와 화가 난 판인데 동료의 죽음을 목격하는 바람에 분노가 극에 달했다. 그런 와중에 복수의 대상이 뻔뻔스럽게 도주하는 놈일 줄이야.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더라니!’

    정천우는 사력을 다해 경공을 발휘하면서 속으로 툴툴거렸다.

    다섯 놈만 죽이면 끝일 줄 알았는데 새로운 놈이 나타났다. 그렇다는 것은 더 많은 복면인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화의룡과 도망칠 당시에 느꼈던 기운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화의룡이 죽은 건 안타까운 일이나 지금은 자신의 코가 석 자다. 살아남아야 녀석에게 제사상이라도 차려 줄 수 있다.

    ‘조금만 더!’

    복면인이 쫓아오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내공을 모조리 발에 집중했다.

    아까 죽인 복면인의 시신 세 구가 눈에 들어왔다. 저곳까지만 가면 튼튼한 병기를 얻을 수 있다.

    시신의 곁에 뒹굴고 있는 협봉검! 박도보다 훌륭한 무기가 저기에 세 자루나 있다.

    “이거나 먹어라!”

    정천우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박도를 뒤쪽에 집어 던졌다.

    “망할 자식!”

    빗방울을 튕겨 내면서 날아오는 박도를 향해 복면인이 욕을 하며 협봉검을 휘둘렀다.

    투캉!

    날아오는 박도를 튕겨 내느라 복면인의 속도가 떨어졌다. 이를 부드득 갈아붙인 그의 눈에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 또 다른 동료의 시신을 발견한 탓이다.

    “차아아!”

    정천우는 쓰러지듯 몸을 날렸다.

    손을 뻗어 바닥에 뒹구는 협봉검을 들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일어나 달려드는 복면인을 향해 겨누었다.

    “망할 자식! 이게 다 네 짓이냐?”

    “그게 중요해?”

    정천우는 어깨로 숨을 몰아쉬며 말을 받았다.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 상황이다. 누가 죽었든 그건 중요치 않다. 그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너도 죽여 줄 테니까 섭섭해하지 마.”

    정천우가 비장한 얼굴로 말하고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어이없는 행동에 복면인은 황당해하며 협봉검을 앞세워 달려들었다. 접근하자마자 세 번의 찌르기가 정천우의 가슴을 노렸다.

    화려함 따윈 조금도 들어 있지 않은 실전적인 초식이었다.

    “우와앗!”

    차자장!

    정천우는 비명처럼 다급성을 흘리면서 철판교(상체 뒤로 눕히기)의 수법으로 자빠지면서 찌르기를 모두 걷어 냈다. 덕분에 그의 몸은 흙탕물에 적셔져 엉망이 되었다.

    “하는 짓이 추잡하기 짝이 없구나!”

    정천우가 추잡한 행동을 거침없이 하자 복면인이 그걸 보고는 더욱 열을 냈다. 이런 녀석에게 죽은 동료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웃기는 소리! 암습은 무슨 정정당당한 짓인 줄 아냐? 이기적인 새끼! 개소리 집어치워!”

    흙탕물로 범벅된 정천우가 이를 드러내며 눈을 부라렸다.

    화의룡을 암습으로 죽인 놈이 자신을 비웃다니,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욕하는 격이다.

    “닥치고, 그만 죽어라!”

    복면인은 검기를 만들어 내고는 정천우를 향해 협봉검을 마구 찔러 댔다. 협봉검이 다섯 개로 늘어난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오월성(五月星)이라는 초식으로, 검기를 담아 치명적인 요혈을 노리는 악랄한 수법이다.

    삼류에 불과한 정천우가 막아 낼 수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따다다다당! 츠걱!

    “이, 이런…… 이게 무슨…….”

    복면인은 고통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명치 부근을 파고든 협봉검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억울해도 이만 죽어라.”

    콰득!

    “커헉!”

    정천우가 냉랭한 얼굴로 협봉검을 비틀었다. 복면인이 눈을 부릅떴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정천우는 재빨리 협봉검을 뽑아냈다.

    “실전 경험은 없는 놈들인가 보군. 그나마 다행이라는 건가?”

    정천우가 쓰러진 복면인을 내려다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바닥을 구르면서 챙긴 건 협봉검 한 자루가 아니었다. 세 자루 중 두 자루였다.

    오른손으로 쥔 협봉검으로 공격을 막아 내면서 왼손을 휘둘렀다. 팔 뒤에 숨겨져 있던 협봉검이 튀어나와 복면인의 목숨을 거둔 것이다.

    실전 경험이 많은 낭인이었다면 정천우의 왼팔을 경계했을 것이다. 그러나 복면인들은 실력에 비해 경험이 없는 놈들이 분명했고 그게 정천우의 목숨을 살렸다.

    “아예 톱날이 됐잖아?”

    정천우는 오른손에 쥔 협봉검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검기를 씌운 공격을 막아 내느라 날이 엉망으로 망가져 있었다.

    정천우는 망가진 협봉검을 버리고 멀쩡한 협봉검을 새로 챙겼다.

    “제길! 또냐?”

    정천우의 인상이 구겨졌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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