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5화 (5/200)
  • # 5

    Chapter 2. 역천검(逆天劍) (2)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른 복면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삐이익!

    “찾은 모양입니다.”

    푸른 점의 복면인이 피리 소리를 듣고는 붉은 점의 복면인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러나 이미 붉은 점의 복면인은 몸을 날려 피리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이동한 다음이었다. 푸른 점의 복면인은 허겁지겁 그 뒤를 따라 경공을 발휘했다.

    “죽었습니다. 두 놈이 합공을 벌인 것 같습니다. 거친 솜씨로 보아 무공의 경지는 높지 않습니다.”

    피리를 불었던 복면인이 붉은 점의 복면인에게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붉은 점의 복면인이 주먹을 들어 보고를 올린 복면인의 턱을 날렸다.

    빡!

    “거친 솜씨? 무공의 경지가 높지 않아? 그렇다면 그따위 놈에게 죽은 이놈은 뭔가!”

    “…….”

    보고를 올렸던 복면인은 붉은 점의 복면인이 하는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대장! 이럴 때가 아닙니다.”

    뒤늦게 도착한 푸른 점의 복면인이 끼어들었다. 붉은 점의 복면인이 화를 내면 일이 꼬여 버릴 판이다.

    “낭인 따위한테 죽는 놈이 나오다니, 어떻게 된 일이지?”

    붉은 점의 복면인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푸른 점의 복면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시잖습니까. 내분이 일어나면서 대원들이 줄어들었습니다. 기본적인 훈련은 끝냈다지만 아직은 실력이 부족한 놈들입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다 다른 추적대가 역천검을 얻는다면 그게 무슨 망신이겠나!”

    붉은 점의 복면인이 못마땅해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장, 이럴 때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시고, 명령부터 내려 주십시오.”

    “좋다. 그러나 이 문제는 돌아가서 반드시 따질 것이다. 다섯은 도망간 놈을 쫓는 것으로 하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먼저 빠져나간 세 놈을 쫓는다. 가라!”

    붉은 점의 복면인이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복면인들은 두 개의 무리로 나뉘어 경공을 발휘해 숲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복면 밖으로 드러난 눈에는 하나같이 살기가 뻗쳐 나오고 있었다.

    ***

    “훅, 후욱…… 제길! 제길! 젠장맞을!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야!”

    “헉, 헉! 대, 대체 누구죠?”

    “난들 알겠냐? 어쩐지 싸하다 했어.”

    정천우는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상처를 입었던 탓에 핏기를 잃은 화의룡이 힘겨워하며 숨을 골랐다.

    정천우의 이십일 년의 내공은 경공을 발휘하는 것만으로도 바닥나고 말았다. 급한 마음에 마구 내공을 낭비한 것이다.

    화의룡의 경우는 더했다.

    상처를 입은 몸으로 무리하게 경공을 발휘했다. 얼굴에 핏기가 가실 정도였다.

    “쫓아올 거다. 어서 내공부터 회복해!”

    “네, 대형.”

    화의룡은 대답하기가 무섭게 가부좌를 틀었다. 도망치려면 내공부터 회복하는 게 우선이었다.

    정천우가 지금의 상황을 정리해 보려고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화의룡의 팔에 상처를 감싼 천이 붉게 물든 것을 보고는 포기했다.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야. 내공을 회복하는 게 먼저다!’

    지금은 고민할 때가 아니라 행동할 때였다.

    정천우는 어금니를 빠득 깨물고는 내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한가하게 적이 누군지 호기심이나 느끼고 있을 때가 아니다.

    도망치던 곳으로 검은색 야행의를 입은 복면인들이 휙휙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한 놈을 죽였으니 추격자가 나타날 게 확실하다.

    싸우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내공을 회복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후우, 후읍, 후우우…….”

    숨을 가라앉히며 텅 빈 단전에 의식을 집중하고 백회혈을 통해 기운을 받아들였다. 머리 정중앙을 타고 들어온 자연의 기운이 이마와 가슴을 지나 단전에 몰려들었다.

    단전에 모인 약간의 기운을 척추로 밀어 보냈다. 척추를 타고 올라간 기운이 백회혈을 지나면서 외부의 기운을 더욱 끌고 들어왔다.

    육체의 중앙선을 타고 흐름을 만들어 내자 기운이 더욱 빨리 움직이며 단전으로 몰려왔다.

    “후우우우…… 이제야 살 만하네. 넌 벌써 끝났냐?”

    정천우는 탁기를 뱉어 내며 급하게 내공을 갈무리했다.

    “내공이랄 것도 없잖아요. 이제 어쩌죠?”

    “어쩌긴 뭘 어째? 튀어야지. 따라와!”

    “대형, 무공 좀 하는 거 맞죠?”

    화의룡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도망치면서 들었던 낭인들의 처절한 비명이 귀에서 떠나질 않았다. 지금 상황은 이제껏 겪는 낭인 생활 중 최고의 위기였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 일단 살아야 할 것 아냐! 싫으면 따로 움직이든지.”

    “대형, 살고 싶어요.”

    “그럼 잡소리 그만하고 시키는 대로 움직여.”

    “예, 대형!”

    “목소리부터 줄여! 웬만하면 고개만 끄떡여. 이제부터 전음을 사용할 테니까.”

    정천우가 얼굴에 웃음기를 싹 걷어 내고 화의룡에게 당부했다.

    놈들은 무공을 지닌 강호인들이다. 오감이 발달해 있는 놈들을 상대하려면 매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냥 죽어 줄 순 없잖아! 그렇지? 내 봇짐 좀 들어.]

    “…….”

    전음을 할 수 없는 화의룡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정천우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곱게 죽어 줄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다. 힘없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죽임을 당하기엔 악착같이 살아온 인생이 너무 아깝다.

    살아남는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삼류의 끈질긴 생존 능력을 보여 줄 테다.

    그것은……

    추격자의 죽음으로 증명할 것이다.

    ***

    정천우는 화의룡을 등에 업고 경공을 발휘해 앞으로 나아갔다.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허둥대느라 내공의 소모가 심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한참을 조심스럽게 경공을 발휘해 숲으로 들어갔다. 일각여를 움직인 뒤에야 화의룡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그의 손에서 봇짐을 빼앗았다.

    봇짐에서 새끼손가락 굵기의 밧줄을 꺼내 들고는 한참을 움직였다.

    [의룡아, 이걸 먹어.]

    정천우가 봇짐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화의룡이에게 내밀었다.

    [악 의원이 준 거야. 두 시진 정도는 평소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더라. 부작용이 있다는데, 지금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잖아?]

    전음을 마친 정천우는 시커먼 색깔의 단약을 입에 넣었다.

    악소추는 낭인촌의 괴팍한 의원이다.

    지금 먹은 단약은 마교의 제혼단에서 착안하여 그 효능을 재현한 단약이다.

    마교에서 개발한 제혼단은 사람의 이지를 상실시키는 대신 육체 능력을 몇 배나 높이는 사기적인 마약이다. 사람 목숨 알기를 개똥으로도 안 보는 놈들이기에 쓸 수 있는 흉악한 것이다.

    괴팍하기로 소문난 의원인 악소추가 제혼단을 흉내 내어 만든 걸 정천우가 술 몇 잔 먹이고 얻었다. 실패작이라는 말과 함께 아무런 미련도 없이 줬다.

    두 시진 동안 이성을 유지하면서 육체적 능력이 향상되지만, 그 뒤로는 지독한 근육통에 반나절 이상 시달려야 하는 부작용이 있다.

    게다가 육체 능력 향상 효과도 제혼단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약하다. 그러니 악소추가 실패작이라고 말했을 테지만.

    “으음…….”

    단약을 먹은 화의룡이 얕은 신음을 흘렸다.

    피가 빨리 돌아가는 느낌과 함께 전신에 퍼지는 이상한 감각 때문이었다.

    [쉿! 내가 뭘 원하는지 알겠지? 신호하면 잘해.]

    정천우는 주변을 살피며 화의룡에게 경고를 보냈다.

    복면인 놈들은 감각이 예민하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때였다.

    정천우의 전음에 화의룡은 수풀 속에 몸을 숨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원하는 것이 함정이라는 걸 인지한 것이다.

    화의룡이 몸을 숨긴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정천우가 이동했다.

    숲으로 들어간 그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바쁘게 돌아다녔다. 봇짐에 든 물건을 꺼내 들고,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함정을 깔았다.

    그렇게 두 낭인의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제발 추적하지 말고 돌아가라.’

    정천우는 만반의 준비를 다했지만 실제로 함정을 사용하지는 않기를 바랐다.

    나무 위에 올라 무성한 잎사귀로 몸을 가렸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교묘한 위장이었다.

    적이 사라졌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이대로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 괜히 도망치겠답시고 움직였다가는 놈들의 추적에 걸릴 확률이 높다. 이렇게나 인적이 없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짐승과 인간의 움직임은 다른 법이고, 추적에 일가견이 있는 놈들은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

    ‘날씨까지 속을 썩이네!’

    정천우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라 빗물에 체온을 빼앗기면 더욱 괴롭다. 그저 내공을 부지런히 움직여 몸에서 열을 내는 게 최선이다.

    부스럭…….

    정천우는 미세하게 들려온 소리에 바싹 긴장했다.

    비까지 오는 날씨라 포기할 줄 알았는데 기어이 추적해 온 모양이었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흔적을 찾은 모양이군. 추적술에 능한 놈이 있어!’

    정천우는 싸우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흔적을 아예 남기지 않았다고 할 순 없지만 많이 남기지도 않았다.

    일부러 나무 위로 올라가 이동하기도 하고, 땅 위로 튀어나온 뿌리를 밟고 이동하기도 했다. 산짐승들이 영역을 표시하느라 망가뜨린 나무를 주로 애용했다.

    그런 와중에 비까지 내린다.

    혹시나 싶어서 화의룡이 숨은 곳을 들키게 하지 않으려고 약간의 흔적을 남겼다. 일종의 유인책이었다. 바라지 않은 일이지만 적이 귀신같이 흔적을 쫓아왔다.

    ‘다섯! 전문가들이야.’

    정천우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나무와 풀의 어색한 흔들림과 미약한 소리로 미루어 최소 그 정도 숫자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마저도 사실 정확한 건 아니다. 정천우의 감각을 속일 수 있는 고수가 있다면 더 늘어난다.

    그는 박도의 손잡이를 더욱 움켜쥐고 숨을 가늘고 길게 쉬었다. 흥분하는 것을 막아 주고 기척을 극도로 줄이는 호흡법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그게 강호의 법칙이자 살아가는 것들이 가지는 운명과도 같은 생존 방식이다.

    조심스럽게 사방을 살피며 접근하는 복면인을, 정천우는 살기를 억누르며 기다렸다. 이제부턴 싫어도 살아남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흡!”

    스각!

    덮치듯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 복면인의 입을 가리는 것과 동시에 박도로 목을 그었다.

    ‘큭! 지독한 새끼! 그 와중에 반격하다니!’

    정천우는 인상을 와락 구기며 숨이 끊어진 복면인의 시체를 놓았다.

    확실히 제대로 훈련된 놈들이었다. 숨이 끊어지는 와중에도 팔꿈치를 휘둘렀다. 팔꿈치로 얻어맞은 가슴에 아릿한 통증이 남았다.

    움직여야 한다. 복면인을 해치우면서 발생한 소음을 적들이 놓쳤을 리가 없다.

    정천우는 가슴을 한차례 지그시 눌러 보고는 서둘러 경공을 발휘했다.

    “저기다!”

    서둘러 움직이려는 정천우의 귀에 복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이렇게 반응이 빨라?”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반응에 정천우가 투덜거렸다.

    숨기엔 늦었다. 대놓고 도망치는 편이 훨씬 더 생존 확률이 높다.

    파바박!

    정천우가 곧바로 몸을 날렸다. 비에 젖은 흙더미가 사방에 흩날렸다.

    질척거리는 땅바닥이 움직임을 나쁘게 했지만 그건 상대에게도 마찬가지다.

    다만 내공이 겨우 삼류 수준인 자신이 더 불리하다.

    전력을 다해 경공을 발휘했지만 순식간에 뒤를 따라잡히고 말았다. 약기운으로 육체적인 능력이 향상되지 않았다면 더 일찍 잡혔을 게 뻔하다.

    “칫! 역시 무리였던가!”

    정천우가 투덜거리면서 이제까지와 달리 크게 도약했다.

    경공을 사용해 우직하게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일깨워 준 추격전이었다.

    십 장(대략 30미터) 거리에서 쫓아온 놈이 자신의 뒤에 바짝 따라붙어 똥줄을 타게 했다.

    핑! 쿠당탕!

    “크아악! 내 다리!”

    끈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뒤를 바싹 쫓아오던 복면인이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정천우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다시금 경공에 정성을 쏟았다. 함정에 안 걸리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때, 수리검이 날아와 정천우를 노렸다.

    슈슈슉! 파바박!

    “젠장맞을 새끼들! 별 지랄을 다 하네!”

    정천우는 식겁한 얼굴로 쓰러질 듯 몸을 낮추었다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는 중에도 경공을 펼치는 두 다리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멀찍이서 던지는 것이라 맞힐 확률이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추적자들은 수리검을 계속해서 던져 댔다.

    맞히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수리검을 피하려고 옆으로 뛸 때마다 정천우와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두 놈이나 돼!’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잡히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멈춰!”

    “서라! 멈추지 않으면 죽이겠다!”

    추적자들이 바락바락 고함을 지르며 쫓아왔다. 말하는 동안만이라도 손을 멈춰 주면 좋으련만 악착같이 수리검을 던져 댔다.

    ‘개자식들! 멈춰도 죽일 거면서 아닌 척하고 자빠졌어!’

    정천우는 상체를 틀면서 발을 바쁘게 움직였다.

    수리검이 파공음을 내면서 원래 있던 공간을 꿰뚫었다. 수리검이 앞쪽 나무 기둥에 박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달리면서 그걸 뽑았다. 그러고는 뒤를 향해 내공을 실어 던졌다.

    복면인은 뜻밖의 공격에 기겁하며 아슬아슬하게 수리검을 피해 냈다. 날아오는 수리검을 향해 달려가는 형국이라 피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

    “죽인다!”

    공격받은 복면인이 분노를 드러내며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어디 네놈이나 뒈져 봐라!’

    이를 악물고 달리던 정천우가 이를 드러내며 살기를 머금었다.

    “잘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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