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화 (1/200)
  • # 1

    Prologue

    “좋구나!”

    한 명의 노인이 킵(Keep, 성 최후의 방어선으로 사용되는 가장 높은 구조물)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활기차게 움직이는 영지민을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대제시여! 진정이십니까!”

    육중한 갑옷을 입은 사내가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은 채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잭슨 경, 자네 마음은 알겠네만 미련을 버려 주게. 빈손으로 찾아와 이처럼 훌륭한 영지를 내 손으로 만들었으면 되었지 않은가.”

    “하오나! 염원하시던 일은 끝내 이루지 못하셨지 않습니까! 조금 더, 조금 더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기사 잭슨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벌써 내 나이가 120이라네. 살 만큼 살았지 않은가. 염원? 그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마지막만큼은 반드시 중원이라는 곳에서 맞이하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잭슨은 대제가 고집을 꺾으려 들지 않자 떼를 쓰는 아이처럼 울먹였다.

    눈앞의 대제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대제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유랑민처럼 살았을지 몰랐다. 그가 나타나고서 일어난 기적과도 같은 변화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아직도 그의 힘과 지혜가 필요한데 사라진다니, 잭슨은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맞아, 그랬지. 방법을 찾았지만 이미 늦었네. ‘그’가 있는 곳으로 가기에는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지.”

    대제는 잭슨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습니다. 저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감히 위대한 ‘팽(彭)’의 성을 제 이름 앞에 쓰기가 두렵습니다. 좀 더, 좀 더 함께해 주십시오.”

    “잭슨 경…… 아니, 군성아!”

    “하명하십시오, 대제시여!”

    “비록 네 피부와 머리카락이 나와 다른 색이라고 할지라도 내가 널 아들로 인정했다. 네가 아니면 누가 우리 제국을 책임질 수 있단 말이냐? 아들아, 난 널 믿는다!”

    벽력대제(霹靂大帝) 팽진옥은 푸근하게 미소 지으며 한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팽군성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뒤를 잇게 한 기사의 푸른색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람의 목숨이라는 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것이겠느냐? 이미 나의 명이 끝났음을 알고 있으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크흑!”

    팽진옥은 자신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해 주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사십 줄을 바라보는 녀석이 그리 눈물이 많아서야 되겠느냐.”

    마지막 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토록 엄하게 대하던 팽군성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주었다.

    다시 한 번 영지를 둘러본 팽진옥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가 이내 담담하게 바뀌었다. 곧 팽진옥이 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이제 갈 때가 되었구나. 모든 것이 이 역천검에서 비롯되었구나. 이게 아니었다면…… 후…… 아니다.”

    팽진옥은 회환이 가득 담긴 눈으로 손에 들린 역천검을 내려다보았다.

    “중원에 꼭 가 보고 싶었건만…….”

    팽진옥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그렇게 쳐들린 팽진옥의 고개는 한참 동안이나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크흐흑…….”

    바닥에 절하듯 엎드려 팽진옥의 앞에 있던 팽군성이 굵은 눈물을 흘렸다.

    몸을 들썩이며 흐느끼던 팽군성은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팽진옥의 손에 쥐어진 검이 희미해졌다. 그러더니 몇 번 깜빡거리고는 이내 검집만 남기고 사라졌다.

    놀라 고개를 든 팽군성의 얼굴이 구겨지듯 일그러졌다. 믿기 싫다는 기색이 얼굴에 가득했다.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킨 팽군성은 조심스럽게 팽진옥의 몸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생기를 잃은 팽진옥의 몸은 힘없이 흔들거릴 뿐이었다.

    “대제시여! 으아아아!”

    팽군성의 절규가 영지를 뒤흔드는 가운데, 사라진 팽진옥의 검(劍)은 어딘가에서 새로운 희생자를 기다렸다.

    Chapter 1. 낭인 정천우 (1)

    퍽! 퍽! 퍼버벅!

    “커헉! 사, 살려 주…… 그만, 그마안…….”

    으슥한 뒷골목에서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두들겨 맞고 있었다.

    워낙 외진 곳이었기에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내의 상태는 애처로울 만큼 처참했다. 값비싸 보이는 비단옷은 사내들에게 밟혀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허리에 차고 있었을 검은 한쪽 구석에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그러게 왜 나대고 다녀? 그냥 똥 밟았으려니 하고 조금만 더 참아. 나라고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다? 뭐, 그렇다고 재미있다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바닥에 엎어진 사내를 향해 말했다.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복면 밖으로 나온 두 눈에 웃음기가 깃들어 있었다. 다른 사내와 달리 말을 거는 것으로 보아 세 명의 복면인들 중에서 우두머리쯤 되는 모양이었다.

    살수?

    아니다.

    살수라기엔 복장부터가 어색하다. 허름한 무복에 낡아 보이는 복면을 썼다. 살수라면 검은색 야행복을 입었을 텐데 세 명의 사내들은 그저 얼굴에 복면만 썼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땅바닥을 뒹구는 사내에게는 복면인들이 살수보다도 더 두려운 존재였다.

    “으으으…… 내, 내게 왜, 왜 이러는 거요?”

    “자식이, 이거 진짜 재미있는 놈이잖아? 알려 주면 널 죽여야 하는데? 그래도 알고 싶어? 알려 줄까? 그게 누구냐 하면 말이지…….”

    말을 걸었던 복면인은 쓰러진 사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끝을 흐렸다.

    서서히 살기를 끌어올렸기에 쓰러진 사내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해 갔다.

    “구, 궁금하지 않소! 절대로 궁금하지 않소!”

    “그래, 그게 얻어맞을 새끼의 바른 자세야. 조금만 더 맞으면 되니까 잘 버텨 봐.”

    “어, 언제까지…….”

    비단옷을 입은 사내는 곧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복면 쓴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에이…… 그건 궁금해하지 마. 괜히 더 밟고 싶어지잖아.”

    우두머리 복면인은 몸을 일으키고는 발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다른 두 명의 사내도 발을 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무자비하게 밟아 대기 시작했다.

    퍼벅, 퍼버벅! 퍼버벅!

    “크억! 아욱! 끄아아아…….”

    무지막지한 격타음과 함께 사내의 비명이 끊어질 듯하면서도 계속 이어졌다.

    마침내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정신을 잃고 간당간당하게 숨을 쉴 때쯤에서야 복면인들의 구타가 멈췄다.

    “자, 챙길 건 챙기자고. 신분을 증명할 만한 거나 검 같은 건 안 되는 거 알지?”

    우두머리 복면인의 말에 나머지 복면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자 우두머리 복면인이 먼저 비단옷을 입은 사내의 품을 뒤졌다.

    “난 이거면 돼. 나머진 알아서들 해.”

    우두머리 복면인은 작은 목함을 발견하곤 즐거운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다른 두 명의 복면인은 목함엔 관심도 없이 품속을 뒤져 은자와 금자만 꺼냈다. 상당한 금액이 나오자 기분 좋은지 복면 밖으로 드러난 두 눈에 환한 웃음이 깃들었다.

    “챙겼으면 따라와!”

    우두머리 복면인이 손짓하자 은자와 금자를 챙긴 복면인들이 황급히 그 뒤를 쫓아갔다.

    복면인들은 이각(대략 30분) 정도를 달린 뒤 복면을 벗었다.

    “휴우! 고생들 했어.”

    “고생은 무슨 고생요. 형님이 더 고생하셨죠.”

    “그럼요. 저희야 용돈이 두둑하게 생겨서 좋습니다.”

    우두머리 복면인은 많아야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두 명은 기껏해야 십 대에서 이십 대 사이로 보이는 어린 청년들이었다.

    “오늘은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놀아라. 자, 여기 일당이다.”

    “부수입이 많아서 안 받아도 되는데…….”

    “괜히 미안해지잖아요.”

    어린 청년들은 사양하는 듯 말하면서도 우두머리 사내가 주는 돈을 거절하지 않았다.

    금자 한 냥.

    두 사내의 수고비다. 금자 한 냥이면 두 녀석이 홍루에서 계집 한 명씩 끼고 놀 정도의 돈은 된다.

    “다음에도 부르면 재깍 오라고 주는 거야. 쌩까면…… 알지?”

    우두머리 사내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주먹을 말아 쥔 채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당연하죠!”

    “걱정하지 마십쇼. 형님처럼 계산 확실한 분도 없으니까요.”

    젊은 사내들은 기분 좋은 얼굴로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

    “보람찬 하루인 셈인가?”

    홀로 남은 사내는 목함을 꺼내 들고 씨익 웃었다. 이제 자신도 돈을 받으러 갈 차례였다.

    오늘 일로 부수입을 얻어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자신을 도와준 녀석들이야 은자나 금자가 훨씬 좋겠지만 그에게는 그것보다 목함이 훨씬 더 중요했다.

    사내는 한참을 걸어가 더욱 으슥한 곳으로 골라 들어갔다.

    낭인촌(浪人村).

    무인이라고 하기엔 약하고 일반인이라고 하기엔 강한 놈들이 모인 곳이다.

    정천우(鄭天佑).

    그는 낭인촌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는 무인이다. 무공이 높아서가 아니다. 열다섯 살 때부터 낭인촌에서 일했고, 아직도 일한다.

    보통 낭인들은 낭인촌에서 구른 지 몇 년 되지 않아 죽거나 병신이 되어 사라진다. 그런 낭인촌에서 무려 팔 년이나 낭인으로 활동해 왔다. 그의 이름처럼 하늘이 돕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여어, 대형! 오늘 좀 만졌어?”

    정천우가 낭인촌 안으로 들어가는데 허름한 마의에 까치집 머리를 한 놈이 알은척을 해 왔다.

    “인마, 작작 퍼마시고 다녀. 그러다가 골로 간다.”

    정천우는 혀를 차며 타박을 주었다.

    저런 놈들이 흔하게 돌아다니는 곳이 바로 낭인촌이다. 지금이야 웃고 있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놈들이다.

    아름다운 도시 항주의 뒷골목은 낭인들의 세상이다.

    정천우 역시 낭인촌의 낭인이지만 이런 곳에서 뒹구는 삶을 좋아하진 않는다. 정천우에게는 언젠가는 대박 한번 터트려서 호화롭게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눈이 돌아갈 정도의 아름다운 미녀와 알콩달콩 살고 싶었다.

    비록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꿈까지 포기하진 않았다.

    “누가 삼류 아니랄까 봐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발악을 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낭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늦은 저녁이 되도록 일을 찾지 못한 놈들이 술을 처먹고 난장을 부리고 있었다.

    정천우는 걸음을 빨리했다. 술 먹은 놈들이 엉기면 성질날 일만 생긴다.

    제 성질을 가장 잘 아는 정천우다. 술 처먹고 깝죽대는 놈들은 이제껏 봐준 적이 없다. 돈 받으러 가는 길에 술 취한 낭인 놈들이 엉기면 그저 귀찮을 뿐이다.

    “자식들이 일할 생각을 해야지, 처놀기 바쁘니 언제 돈을 모아?”

    정천우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낭인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돈을 받고 심부름을 해 주는 일이다. 가끔은 험한 의뢰를 받는 경우도 있다.

    난이도에 따라 의뢰비의 액수가 달라진다.

    살수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살인까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살인 의뢰는 없고 의뢰를 행하다 살인을 할 때가 아주 가끔 있는 정도다. 그러니 일거리가 많을 리 없다.

    정천우야 이 바닥에서 워낙 오래 활동한 탓에 일이 끊기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말이다.

    낭인들이 우글거리는 거리를 지나온 정천우가 허름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거 돈 좀 쓰지, 죽을 때 싸 들고 가려고 그러나. 하여간 궁상은…….”

    정천우는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은 식당 앞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이내 안으로 들어갔다.

    “어? 천 형, 오랜만이오.”

    정천우는 계산대에 앉은 중년 사내를 발견하곤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중년 사내의 이름은 천명호.

    낭인촌의 수많은 의뢰소 중에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만큼 마당발이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 이곳을 떴거나 세상을 뜬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계산대에 앉아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천우구나! 아직도 일하고 있었어? 용케 잘 버티네?”

    “워낙 명줄이 긴 놈이오, 내가.”

    정천우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쿡 눌렀다.

    “일 년 만에 왔더니 사람들이 그새 또 바뀌었어.”

    천명호가 쓰게 입맛을 다시며 식당 안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모두가 낭인이다. 일을 받지 못하고 지금까지 시간만 죽인 놈들이다. 일을 받지 못했다는 건 무능하다는 뜻이고, 무능하다는 건 경험 없는 신참이라는 뜻이다.

    낭인촌에서 오래 구른 놈들치고 무능한 놈 없고, 덜 굴렀어도 유능하면 일을 못 받았을 리 없다.

    “그러게 왜 무리한 의뢰를 맡아서 애들 다 죽였습니까?”

    문득 정천우가 일 년 전의 일을 언급했다. 사람들이 또 바뀐 게 바로 그런 식으로 애들이 다 죽었기 때문 아니냐는 질책이었다.

    “내가 그랬어? 알았으면 내가 말렸지. 자리 비운 사이에 벌어진 일을 나보고 어쩌라고?”

    “누가 뭐랍니까?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안에 있습니까?”

    정천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턱짓으로 주방을 가리켰다.

    “들어가 봐.”

    “네.”

    심드렁한 표정의 천명호를 뒤로하고 정천우가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름조차 없는 식당의 주방치고는 무척이나 넓다. 주방 안에는 비대한 몸의 숙수가 한창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가 정천우의 등장에 멈칫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굳어진 인상을 풀었다.

    “에이, 뭐야? 대형이었수? 거, 기척 좀 내고 다니시우. 괜히 긴장했잖수.”

    “인마, 네가 예민한 거야. 생긴 대로 놀아. 그러다 살 빠진다.”

    “더 많이 먹으면 되우.”

    “살 뺄 생각은 없는 거냐. 알았다, 수고해.”

    정천우는 툴툴거리는 숙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안으로 더 들어갔다.

    이래서 주방이 넓다.

    모든 의뢰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주방의 통로가 좁으면 의뢰를 받기가 어렵다. 숙수의 몸뚱이가 워낙 컸으니까.

    정천우가 한쪽 귀퉁이에 만들어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염소수염의 나이 든 사내가 주판알을 퉁기고 있었다.

    “황 노야, 저 왔습니다.”

    “응? 왔어? 기다려 봐. 요것만 마저 하자고.”

    “네.”

    정천우는 황 노야의 맞은편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일각(약 15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황 노야의 손이 멈추었다. 그러고는 금자를 세어 정천우의 앞에 내밀었다.

    “에계? 이것밖에 안 돼요?”

    정천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금자 일곱 냥을 손에 쥐었다.

    비단옷을 입고 거들먹거리던 애송이를 손봐 주느라 들어간 돈이 꽤 되었다.

    주제에 무공을 익히고 있어서 마비산을 사는 데 들어간 비용만 금자 두 냥 반이다. 의뢰비가 일곱 냥이면 두 냥 반밖에 남는 게 없다. 동조자로 부른 놈들한테 금자 한 냥씩 수고비로 주었으니까 말이다.

    “사람 하나 두들겨 패고 금자 일곱 냥이면 잘 받은 거야.”

    “무인이었다고요.”

    “내가 네놈을 모를까 봐? 약 썼지?”

    “칫! 하여간 눈치는…… 갑니다! 다음엔 돈 되는 걸로 줘요.”

    “안전하고 돈 되는 일이면 내가 하고 만다, 이놈아!”

    황 노야는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안전하지 않은 일이 돈이 된다. 그가 보기에 정천우는 도둑놈 심보를 가졌다. 그래서 낭인 생활을 오래하고도 아직 목이 붙어 있는 거겠지만 말이다.

    “니미! 먹고살기 힘드네.”

    정천우는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판잣집에 들어와 주머니를 내려놓으며 툴툴거렸다.

    낭인이 늘어나면서 일거리가 확 줄어들었다. 반년 전에 표국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낭인들이 떼죽음을 당하고부터다.

    그때부터다. 낭인들이 의심 가는 일은 하려고 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정천우와 일거리가 겹쳤다. 정천우는 원래부터 안전제일을 외치고 다닌 낭인이었으니까.

    “그래도 오늘 부수입 하나는 건졌어.”

    정천우가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목함을 꺼내 곧바로 뚜껑을 열었다.

    짙은 약향(藥香)이 목함에서 흘러나왔다.

    목함 안에 든 것은 밀랍에 싸인 작은 단환이었다. 밀랍을 벗겨 내자 더욱 진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정천우는 윗옷을 벗고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튼 다음 몇 차례 심호흡했다. 그러고는 단환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서 삼켰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하던 정천우의 몸이 붉어지고, 전신에서 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전륜공(電輪功).

    번개의 기운을 키우는 내공심법.

    이름은 그럴듯했지만 실상은 삼류 내공심법이다. 열 살 나이부터 꾸준히 하루 한 시진 이상 내공을 단련했음에도 이제 겨우 이십 년 정도의 내공을 쌓았다.

    당시 정천우에게 전륜공을 가르쳤던 낭인은 허풍을 떨어 댔었다. 대성하면 하북팽가의 혼원벽력신공(混元霹靂神功)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이다.

    “후흡, 후…….”

    정천우는 단환을 흡수하면서 쌓인 탁기(濁氣)를 내뿜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대략 일 년 정도의 내공이 늘어났다. 일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련해야 쌓일 내공이 한 번의 운기행공으로 늘어난 것이다.

    “제길, 약이 좋긴 좋네. 이러니 있는 놈들일수록 더 빨리 고수가 되지.”

    정천우는 늘어난 내공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입맛이 썼다.

    명문이라고 말하는 무가(武家)에서는 이런 단환을 사용해 빨리 내공을 쌓을 수 있다. 겨우 일 년 정도의 내공 상승효과가 있지만 이런 약이라고 해도 기본이 금자 오백 냥이다. 상황이 이러니 가난한 놈들은 무공도 약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늘어난 내공에 즐거워하던 정천우의 인상이 구겨졌다.

    “씨발! 그냥 팔아 버릴걸.”

    본전 생각나는 정천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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