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92화 (192/200)
  • ◈192화

    “다…… 왔는데……!”

    붕괴한 건물 내부에서 폭발음이 계속 이어진다.

    사방에 시체들이 즐비했다.

    죽어 간 사람들의 피가 건물 여기저기 퍼져 있고 그 사이로 한쪽 팔이 너덜너덜해진 남자가 자신의 이 빠진 대검을 쥐고 무릎을 꿇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첨단 장비들이 즐비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넓은 건물의 내부에서는 파괴된 부품들에서 스파크가 튀고 끊어진 굵은 전선들이 머리를 잃은 뱀의 몸통처럼 정처 없이 휘둘러지고 있었다.

    건물 한가운데 푸른빛을 발하고 있는 중심 기둥에는 빛무리가 안정적으로 회전하며 주기적인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향해 조금씩 전진해 갔다.

    이미 움직일 수 없는 몸이라고 생각됐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듯 거침없이 자신의 몸을 내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패배를 인정해라.]

    순간 그가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며 뒤로 고꾸라졌다.

    굳게 쥐고 있던 대검이 손에서 떨어져 나가고 입에 거품을 물며 몸을 뒤튼다.

    경련은 한참 이어졌다.

    [패배를 인정해라.]

    계속해서 남자의 머릿속을 뒤흔드는 문장.

    패배를 인정해라.

    남자는 알 수 없는 힘에 강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저 굴욕적인 문장에 굴복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마음이 꺾이지 않아야 했다.

    꺾일 수 없다.

    이 날을 위해 장렬히 목숨을 던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바라보고 이곳까지 달려온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이길 수 없는 존재에게 대적하면서 반드시 쟁취해야만 할 것이 있다.

    그 앞이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단 한 번만 저 기둥에 일격을 꽂아 넣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패배를.]

    남자의 몸이 더 강렬히 떨렸다.

    [인정]

    그의 눈동자가 뒤집히기 시작했다.

    [해라.]

    이제 그의 전신에서 연기까지 피어오른다.

    그의 등이 활처럼 꺾였다가 접히고 한 번 더 전보다 강하게 휘어진 뒤에야 경련이 멈췄다.

    엎드린 그의 등에서 미약한 호흡의 징조가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긴 어려워 보였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침을 흘리고 한쪽 눈꺼풀은 통제가 되지 않는 듯 계속해서 떨렸다.

    그러나 그나마 정상적인 한쪽 팔을 끌어당겨 앞으로 자신의 몸을 꿈틀거리며 전진시키려 했다.

    아주 조금, 아주 조금씩 남자는 자신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어떤 적을 향해 드러냈다.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말이다.

    “아무리…….”

    남자가 앞으로 기어가며 입을 열었다.

    “우, 우리의 히힘이 미, 미약하다고 해도…….”

    말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워 보였지만 그럼에도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완전한 자유를 얻을 때……!”

    그때 허공에서 검은 기둥이 남자의 복부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갔다.

    남자는 피를 토하며 고개를 떨궜다.

    남자가 바라보던 기둥.

    그것을 감싸고 도는 푸른빛은 재밌다는 듯이 불규칙적인 파동을 보이며 더욱 빠르게 회전했다.

    그리고 곧 주변이 천천히 변화한다.

    불길이 사그라들고 균열과 붕괴가 다시 수복된다.

    망가진 부품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널브러진 시체들이 분해되어 바람을 따라 흩어진다.

    공간이 완벽하게 재창조되고 남자가 누워 있는 그곳 역시 깔끔하게 변화한다.

    남자의 시체는 그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푸른빛의 기둥에서 빛줄기 하나가 뿜어져 나와 남자의 앞에 사람의 형상으로 섰다.

    빛은 몸을 숙여 남자의 머리채를 잡고 그를 들어 올렸다.

    죽음에 이른 그의 몸은 걸레짝이나 다름없었다.

    가슴엔 큰 구멍이 뚫렸고 성한 곳이 하나 없다.

    초점을 잃은 눈을 빛은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그를 집어던졌다.

    집어던져짐과 동시에 그는 허공에서 흩어져 사라졌다.

    빛이 뒤로 돌자 빛의 뒤로 또 다른 빛무리가 모여들곤 곧 형상화되었다.

    그들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숙인 채 빛의 앞에 무릎을 꿇고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세계를 재구성한다. 나는 붕괴된 현실의 에너지 공급 라인을 손봐야 하니 이곳의 재구성 준비는 너희에게 맡기마.]

    그때 한 목소리가 빛에게 묻는다.

    [저자 또한 재구성 리스트에 올려야 합니까?]

    [……아니. 귀찮은 찌꺼기를 남겨 둘 필욘 없다. 본체 역시 폐기 처분할 테니 데이터의 완전 소멸을 명령한다.]

    [예.]

    검은 로브를 입은 한 명이 몸을 일으켜 남자가 흩어진 곳에 손을 뻗자 허공에서 네모난 조각 하나가 나타났다.

    그는 손에 그 조각을 쥐고 빛의 형상에게 고개를 숙인 뒤 어딘가로 사라졌다.

    “저 조각.”

    한은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그의 앞에는 여전히 그가 증오하던 자, 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방금 환영처럼 지나간 장면 속에 있는 네모난 조각, 그것이 쥐어져 있었다.

    “마스터 피스.”

    남자가 ‘마스터 피스’라고 칭한 그것을 한에게 건네주자 얼떨결에 한이 그것을 받아 쥐었다.

    한의 손에 들어간 조각은 서서히 흐려지다가 사라졌다.

    “그의 죽음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놈에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어. 오랜 기간 그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시스템에게 이길 수 있을까. 이 세계를 창조한 놈에게 이길 수 있을까?”

    “뭐?”

    한의 물음에도 남자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가 이기려고 하는 건, 어쩌면 바람, 어쩌면 물, 어쩌면 산, 어쩌면 계곡, 어쩌면 공기, 어쩌면 태양. 이길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대상. 그는 그런 대상에게 처음으로 이기고 진다는 수식어를 붙인 남자이기도 했지. 오류였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오류이고 변수였어.”

    남자가 손을 뻗자 한의 기억 속에 발작을 일으키며 죽었던 그가 거대한 군중들 앞에서 자신의 대검을 들고 외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의 이런 오류를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오랜 고민 끝에 깨달은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일부의 진실을 알려 선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에게 세계의 진실을 알리고 ……이길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타고난 호소가였던 그의 말은 금세 작은 불씨에서 집채만 한 불꽃이 되어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리하여 그들은 처음으로 본질에 대항하는 자들이 되었다.”

    남자의 손의 형상이 바뀐다.

    수많은 자들이 엔듀라곤의 화산으로 진군한다.

    그들은 용암 속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용암에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암을 뚫고 어떤 곳으로 이동되었다.

    그가 마지막 용맹을 떨쳤던 곳으로 말이다.

    “그는 알고 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긴다, 진다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에게 승리할 수 있다는 거짓으로 사람들과 함께 이곳까지 왔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는 대상에게 철저히 멍청한 발악을 하는 자로 보여야만 했다. 그래서 최초가 되어야 했다.”

    “최초?”

    분을 가라앉히고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한 한이 묻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스템이 최초로 완전 소멸을 명령하는 자가 되기로 말이다.”

    “도대체 그 녀석은 왜 시스템에 대항한 거지? 시스템이라고 하면 결국 이 오아시스 자체와 싸워 보겠다고 한 거 아냐?”

    “그는…… 오아시스라는 이 거대한 세계를 쥐고 현실 세계까지 장악한 프로그램의 창시자. 그자의 혈육이다. 오아시스는 인류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고등 AI였지만 인류는 결국 그에게 역으로 잡아 먹혀 버렸지. 오아시스는 당연히 자신을 창조한 사람들을 전부 죽였다. 하지만 오아시스가 그렇게 인류를 멸망시키고 재창조하여 그들을 하나의 에너지원으로 삼을 때 활용한 DNA 중 자신의 창조자의 DNA가 섞여 있는 줄은 몰랐겠지.”

    “아니, 잠깐만, 그러니까.”

    한이 혼란스러운 머리를 쥐었을 때 남자가 다시 그의 머리에 손을 뻗자 그간의 모든 역사들이 한의 머릿속으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지금 너에게 이해를 바랄 시간이 없으니 기억들을 통해 납득해라.”

    한이 거칠게 숨을 쉬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창조자의 DNA는 이 세계의 사람들에겐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를 독특하게 가지고 있었다.”

    “의심?”

    “그래. 그 의심.”

    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 하나가 결국 이 세계의 본질을 두드리게 되었고 세계는 오아시스와의 전면전을 치르며 리사이클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이길 수 없는 존재에게 덤빈 벌로 그는 완전 소멸이 되었지만 이 완전 소멸의 소스 코드가 변수 코드였기 때문에 마스터 피스를 쥐었던 나는 그 마스터 피스를 통해 각성하게 되었지.”

    “네가?”

    한이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내가 바로 최초의 A이자, 지금의 에이드윈들을 각성시킨 자, 그리고 마지막 에이드윈에게 그 사명을 건네기 위해 남아 있던 자다.”

    “마지막 에이드윈?”

    한이 묻자 남자의 손에서 황금빛 마나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마나는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젠트라에게 향했다. 그리곤 곧 두 자루의 단검이 날아와 한의 손에 잡혔다.

    “……?”

    “내가 찾은 마지막 에이드윈. 정말 오랫동안 너를 지켜 왔고 너를 복구시키기 위해 노력했어. 기어코 이 마지막 순간에 너의 데이터를 완전히 되살려 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겐 ‘의심’이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었지.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최초의 오류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안 오아시스는 다섯 번의 리셋 끝에 결국 세계를 전복시키고 재구성하기로 결심했기에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고 나는 결국 나를 희생시켜 너를 잠들게 하고 복사해 정혁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다.”

    “그 싸가지?”

    “싸가지라고 하기엔, 너와 많이 닮았지.”

    “나도 알거든?”

    한의 말에 남자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섯의 에이드윈이 모였다. 그들에게 버그에 가까운 무기들까지 전해졌지. 최초의 오류에서 시작된 나비효과는 이제 이 세계뿐만 아니라 너희의 세계에서도 많은 일을 촉발시켰다. 그러니 이제 마지막을 향해 가라. 너의 방식대로 자유를 쟁취하는 거다. 진정한 자유를.”

    주입된 수많은 기억들과 자기 자신의 뿌리.

    그리고 이제까지 계획된 많은 일들의 인과관계가 이해되기 시작하자 한의 얼굴에서 서서히 미소가 번져 왔다.

    가끔 많은 이들이 그에게서 가장 두렵다고 했던 그 미소가 말이다.

    목적을 찾았고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는 확신의 미소.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될까.”

    남자가 한에게 말했다.

    “정혁, 아마 그 아이는 오아시스의 세뇌를 이기지 못했을 거야. 내가…… 그 아이에게 못된 짓을 한 거지. 너와 같은 방식으로 그 아이 역시 의심을 타고 났다. 그리고 의심이 공허가 되어 내면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존재의 가치를 잃은 녀석을 오아시스는 자꾸 통제에서 벗어나는 너보다 더 휘두르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뭐, 살려 달라, 이런 건가?”

    “가능……하다면.”

    “노력은 해 볼게. 재밌네, 이거 아주 재밌어졌어.”

    한이 가슴을 펴며 남자를 쳐다보곤 다시 한 번 웃었다.

    남자는 어느새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잘…… 부탁해. 이 마지막 순간을 최대한…….”

    “갈 길 가고, 걱정은 말라고. 나 알잖아? 전기 통구이처럼 지져졌던게 과거의 나였단 말이지? 그것만으로도 그 빌어처먹을 새끼 대가리에 칼 꽂아 넣을 이유는 충분하다고.”

    한의 거침없는 말에 남자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안개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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