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84화 (184/200)
  • ◈184화

    전초기지의 으슥한 곳.

    다소 불결한 냄새가 나는 이 어두침침한 장소에서 에트론은 안절부절못하며 이리저리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앤의 말에 의하면 돌체가 이곳에서 자신을 보자고 했다.

    무려 대천사장님께서 자신과 같은 최하급 천사 따위를 보자고 했다.

    게다가 장소도 이렇게 지저분하고 저급하다.

    그렇다는 건 이제 올 것이 온 것이다.

    전투를 핑계로 제대로 매기지 못했던 죗값.

    그것을 이곳에서 치르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더러운 곳에 자신의 죄악에 대한 더러움을 상기시켜 주려고 그를 이곳에 굳이 부른 것이다. 에트론은 입을 딱딱거리며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순간 누군가가 기척 없이 그곳으로 다가와 에트론을 붙잡았다.

    한 손에 잡힌 에트론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을 붙잡을 자를 올려다보았다.

    평범한 인간 남자였다.

    아니, 그러나 이 손에서 느껴지는 것은……?

    “돌체…… 님?”

    남자는 따뜻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에트론은 기겁을 하며 그의 손안에서 벗어나 이 당황스러운 현장에서 자기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바둥거렸다.

    “아니죠? 아니잖아? 그쵸? 당신, 누, 누구야……요?”

    에트론이 발작을 하듯 난리를 부리자 남자는 자신의 등 뒤로 여덟 날개를 펼쳤다가 접어 넣으며 자신이 돌체임을 증명했다.

    그러자 에트론은 혼절하듯 공중에서 떨어졌다.

    돌체는 떨어지는 그를 받아 내 에트론의 머리를 톡톡 쳤고 에트론은 정신을 차리며 다시 날아올랐다.

    “어, 어째서 그렇게도 경멸하시던 이, 인간의 모습을……?”

    “내가 그렇게나 경멸했었나?”

    “그럼요!”

    에트론이 곧바로 반박하자 돌체가 조금 기분이 상한 얼굴로 에트론을 쳐다보았다.

    에트론이 흠칫 놀라서 고개를 조아렸다.

    “흠, 흠. 어쨌든 에트론, 들어라. 나는 이제 이곳에서 이 중간계의 전쟁을 돕기로 했다. 이 전쟁을 통해서 풀어야 할 의문점이 있다.”

    “의문점이요?”

    “그래. 천계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정지되어 있다. 아직도. 그럴 리가 없다. 괴이한 계약을 통해 중간계로 떨어진 너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말이다. 천계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가장 깊은 믿음과 마나를 지닌 내가 제일 먼저, 유일하게 깨어 있을 순 없다. 이건 순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에트론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천계가 다시 생동감 있게 움직인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하급 천사들로부터 시작되어야 맞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몇몇의 하급 천사들은 천계의 유지 보수를 위해서 눈을 뜨고 있었을 텐데요?”

    에트론의 말에 돌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도. 아무도 없었다. 최소한의 유지를 위해 하급 천사들이 번갈아 가면서 천계를 관리하게 되어 있지만 그조차 모조리 정지되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천계의 마나샘. 그 힘을 중간계로 당겨 쓰고 있는 불결한 이가 있다.”

    “……예?”

    에트론이 침을 꿀꺽 삼키며 머뭇거리다 물었다.

    그러자 돌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에트론을 바라보았다.

    “내가 천계에서 발견하지 못한 녀석이 하나 있다. 모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지만 유일하게 자리를 비운 자. 그리고 자네와 가장 친했던 자.”

    “……하……드린 말입니까?”

    에트론이 겨우겨우 그의 이름을 뱉었고 돌체는 여전히 뭔가를 더 바라는 듯 에트론을 지켜보기만 했다.

    “……저, 저도 그를 찾고 싶긴 했습니다만, 아시다시, 시피 여기에서 이렇게 에고 장비가 되어 활약하다 보니……!”

    “활약?”

    돌체가 한 단어를 콕 집어 내자 에트론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예…… 활약까지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

    “그래서 하드린은?”

    “아……! 어떻게 알아보려고 했는데 그게 참…….”

    “짐작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나?”

    “……그, 그건.”

    에트론이 다시 한번 머뭇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예상은 하고 있다.

    하드린이 결국 다른 길로 갔음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을 것임을.

    이제 이 중간계에 익숙한 친구의 은은한 천향은 없다.

    그러나 그 천향을 머금은 저주스런 악취는 있다.

    이 악취는 천사들만 맡을 수 있는 것.

    바로 그들이 스스로의 믿음을 버리고 날개를 꺾었을 때 나는 냄새.

    배신의 향기다.

    “예상……만 하고 있습니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아닙……니다.”

    에트론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르겐이라는 남자가 나에게 찾아왔었다.”

    돌체의 입에서 의외의 이름이 나오자 에트론이 꺼림직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래저래 하드린에 대해서 알아본 모양이더군. 오히려 너보다 그가 훨씬 더 명확하게 하드린의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또한 이 사실에 대해서 네가 온전히 납득하기를 바란다고 하더군.”

    “납득…….”

    에트론은 한숨을 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드린에 대한 네 생각이 어떠한지 안다. 외로운 시간이었겠지.”

    에트론의 머리에 따뜻한 손길이 닿았다.

    평소의 돌체라면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을 에트론은 경험하고 있었다.

    “그 외로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친구가 잘못된 선택으로 타락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막거나…… 되돌리고 싶었을 거야. 그러나 너도 알지 않나. 타락은 한번 시작되면 복구할 수 없어. 의심이라는 것이 그렇지.”

    “알고…… 있어요.”

    에트론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 유르겐이라는 남자는 자기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내가 너에게 확실히 이야기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는 그래도 너를 아끼는 것 같더군.”

    “그자야 말로 날강도예요. 무기고의 무기를 마음대로 막 꺼내 쓴다구요.”

    “그걸 막아야 하는 자는 누구고?”

    “…….”

    에트론이 다시 풀이 죽어서 고개를 숙였다.

    “천계의 무기고에 있는 장비들은 천계의 마나에 반응하는 이. 즉, 믿음을 가지지 않은 자는 결코 사용할 수 없다. 중간계의 존재들은 믿음이라는 단어의 본질을 모르지. 그렇기에 그들은 아무리 천계의 무기를 사용하려 해도 사용할 수 없어. 그렇다면? 유르겐이라는 남자는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사실, 에트론. 네 의심 한 점 없는 순수한 믿음이 유르겐에게 닿아 그가 너의 힘으로 모든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게야.”

    “……예?”

    “너는 자격이 있단 말이다. 천계의 일원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이 세계의 위에서 정의를 실현할 자격. 그 자격은 곧 나를 대변하며 천계 전체를 대변하지. 그러니 나 천계의 대천사장 돌체는.”

    “에에?”

    “하급 천사였던 너의 직급을 두 단계 올려 천사장들의 대리인으로 영전하며 지금부터 너는 천계의 무기고 열쇠지기가 아니라 천계의 대변인이 되어 이 땅에 천계가 존재하고 또 여전히 강대함을 널리 알리는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가, 갑자기요?”

    순간 돌체의 양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에트론에게 닿았다.

    자그마한 정령의 모양이던 에트론이 평범한 청년의 키로 커졌다.

    그리고 곧 에트론의 등에서 날개가 돋아나더니 이내 여섯 개의 천사의 날개가 순식간에 천계의 마나를 뿜어 대기 시작했다.

    “으이이에에?”

    어리둥절한 에트론이 당황하자 돌체는 그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었다.

    “정지된 천계에서 자네의 열쇠지기 임무를 담당할 천사를 당장 임명할 순 없으니 일단은 그 무거운 열쇠 꾸러미를 내려놓을 순 없겠지. 그러나 더욱 강한 힘으로 나와 이 중간계에서 우리의 일을 마무리하자. 이 여정 속에 하드린을 만나게 된다면…….”

    “……알고 있습니다.”

    에트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이 너의 믿음이며 그것이 천계의 법도다.”

    “예. 하지만 저는 여전히 유르겐, 그 남자와 운명을 같이 해요. 아시죠?”

    “알고 있다. 나 역시 이곳에서 운명을 같이 하는 자가 있…….”

    돌체가 근엄하게 말을 하다가 눈웃음을 치는 에트론을 보곤 헛기침을 하면서 손짓을 했다.

    “이제 가 보거라. 너는 너의 일을 하라.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겠다.”

    “이거 이거, 왜 갑자기 이렇게 바뀌셨을까 했더니…….”

    “어허.”

    “역시 사랑의 천사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틀린 게 아니었네요?”

    “뭐?”

    “대천사장님도 사랑에 한번 빠지시면 그 고집불통에 똥 군기가 가득한 머리가 한 번에 뚫릴 거라곡……!”

    순간 에트론은 자기의 볼을 부여잡는 강렬한 아귀힘에 놀라 혀를 깨물고 말았다. 에트론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 떠올라 발버둥 치자 그의 뒤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어? 돌체! 또 그런다!”

    방금까지도 에트론을 씹어 삼키려는 듯이 붉게 달아올랐던 돌체의 얼굴이 한 번에 사그라들고 어느새 에트론의 볼에서 손을 놓은 뒤 목소리가 흘러나온 쪽으로 급히 몸을 돌려 뒤통수를 무안하다는 듯이 긁적이며 말했다.

    “아이, 그래도 내가 대천사장인데.”

    “그런 거 이제 필요 없다니까 여기서는?”

    “……네이-”

    “가자. 우리도 우리의 일을 해야지.”

    돌체는 묵묵히 뒷짐을 지고 앤의 뒤를 따랐다.

    에트론은 돌체를 통해 잡혔던 볼 때문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총총 사라지는 돌체의 뒷모습을 보며 자신의 순수한 믿음에 의심이 생기려고 하는 순간을 겨우 참아 냈다.

    중간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곳임이 틀림없다.

    * * *

    “내가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까?”

    회의실을 떠나려 채비를 하는 리안에게 정혁이 대뜸 물었다.

    리안은 챙기려던 짐에서 잠시 손을 떼고 정혁을 보며 피식 하고 웃더니 말했다.

    “그럴리가요.”

    “그렇다면 왜? 왜 나를 그토록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와 다시 맞붙게 하려는 겁니까?”

    “전에도 이야기했잖아요?”

    리안이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이게 이 게임의 진정한 마지막 장이라면 이 마지막 장을 클리어하기 위한 조건이 당신과 그의 만남일 겁니다. 시간이 좀 지났잖아요? 아마 그는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할 거예요. 오아시스는 그 망나니의 자아를 쉽게 저 아래에 가둬 둘 수 없을 겁니다. 게다가 그는 의문을 품었죠.”

    리안은 어깨에 두루마리를 뭉쳐 끼고 정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당신은 그날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 씨앗은 너무도 알맞은 땅에 심겼고 주변/ 환경(삽입)/에 의해서 잘 자랐을거예요. 당신이 심은 씨앗이니 당신이 가서 열매를 거둬 보세요. 맛이 쓸지, 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혹, 그것이 당신을 잡아먹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반드시 가야만 합니다.”

    리안이 뒤로 돌아 회의장 문을 향해 몇 보 걸어가다가 멈췄다.

    그러곤 정혁을 돌아보지 않고 정면을 보며 말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당신이 가져올 결과에 따라 우리 전체의 미래가, 그 마지막 장이 꾸며질 테니까요. 당신을 택한 그가 옳은 선택을 했기를 저는, 진심으로 또 한 번 바라 봅니다.”

    “리안. 확신합니까? 당신의 그 생각, 이길 거라고 확신하냔 말입니다!”

    정혁이 그의 뒤에 대고 소리쳤다. 리안은 묵묵히 걸어가 문고리를 잡고 말했다.

    “우리는 에이드윈입니다. 최초의 ‘A’, 그가 다음 세대를 위해 구해낸, 인류를 위해 구해 낸, 그의 승리를 결정지을 징표. 에이드윈(A the win)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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