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81화 (181/200)
  • ◈181화

    결단이 필요했다.

    하늬안은 드웨이크에게 살짝 눈빛을 주곤 롬에게 측면에서 글레이브를 찔러 넣은 린의 움직임을 막아 냈다.

    린이 불쾌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쳐다보는 사이 하늬안은 린을 밀쳐 내고 롬에게 그대로 돌진했다.

    예상대로 롬이 하늬안의 갑작스런 돌진을 막아 내며 그녀에게 양방향에서 검날을 휘몰아쳤다.

    하늬안의 전신에 검날의 상흔이 낭자했다.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빈틈으로 드웨이크가 모아 놓은 스피어 끝의 일격과 안젤리나의 용의 기운이 담긴 화살이 곧바로 날아 꽂혔다.

    롬은 미처 그 공격을 막지 못했고 린 역시 안심하지 않으며 곧바로 공세를 이어 갔다.

    하늬안은 나가떨어졌다.

    공기의 검이 계속해서 주변을 붕괴시키는 것으로 보아 롬에게 공격은 맞아떨어졌지만 그럼에도 롬은 버티고 서서 린과의 공수를 주고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안젤리나, 가야 합니다!”

    드웨이크가 소리쳤다.

    하늬안에게 다시 한번 방어 버프를 주었지만 쌓이는 데미지를 전부 다 받아 낼 수는 없었다.

    자리를 이동해 하늬안을 자신의 메인 방어벽 내부로 들여야 했다.

    안젤리나는 각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웨이크가 펼치는 밀도 높은 방어벽은 그가 움직이지 않아야만 효과를 다한다.

    움직일 때 자체적으로 방어벽을 펼칠 수는 있으나 롬 정도 되는 고위급 실력자의 공격은 몇 번 받아 내지도 못하고 붕괴될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하늬안의 곁으로 가서 다시 방어벽을 펼쳐야 한다.

    드웨이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젤리나는 오감을 단단히 세워 보이지 않는 검날을 최대한 피해냈다.

    그럼에도 몇몇의 검날은 그녀의 팔과 다리를 쓸고 지나갔다.

    공기 자체가 검날이 되다 보니 호흡도 쉽지 않다.

    걸음이 무겁고 시야가 아득해진다.

    드웨이크는 지속적으로 심호흡을 하며 하늬안에게 다가갔다.

    하늬안은 인상을 구기며 바닥에 쓰러져 간신히 대검으로 자신의 상반신을 가려 막아 내고 있었다.

    드웨이크가 그녀 앞에 방어벽을 겨우 펼치고 숨을 골랐다.

    “겨, 겨우 한 번 만들었더니 제대로 꽂히지도 아, 않네.”

    하늬안이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부상이 심각했다.

    하나 남은 대검은 날이 다 상해서 이제 검이라고 부르기 무색할 정도였다.

    안젤리나도 다시 재정비를 거쳐 최대한 정밀하게 화살을 쏘아 댔다.

    그러나 번번이 롬의 검에 막혔고 의미 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긴 시간 수확 없이 이어진 전투는 롬보다도 린에게 더 큰 위기였다.

    롬은 지속적으로 아크에게 마나를 주입받고 있다.

    기존의 악마 군주들과 흑마법사들의 계약이 그러하듯 그들은 서로 공생하며 힘을 나눈다.

    강력한 마나의 원천인 악마 쪽에서 계약자에게 부어 주는 힘이 상당하다.

    비록 롬이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진다 해도 여전히 그는 아크에게 제공 받는 힘에 의해 강할 수밖에 없다.

    비워지지 않는, 계속 공급되는 마나 원천을 등에 달고 린과 싸우는 격이다.

    그러나 린은 한정적인 자원으로 단기간에 승부를 봐야 유리하다.

    이보다 더 길게 싸움이 이어진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부디 정혁이 보다 강한 힘으로 아크를 밀어붙이기를 바랄 때 린의 곁으로 뜨거운 열기가 달려들었다.

    권법이었는데 강한 한 줄기 화염은 곧바로 그와 롬 사이에 끼어들어 자연스럽게 다음 타격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로만이었다.

    로만은 타오르는 건틀릿으로 린의 공격을 도우며 싸움에 가세했다.

    그는 강하다.

    린보다 더 강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싸움의 주도권을 그에게 넘기면서 동시에 린은 찰나에 급소를 노리는 공격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악마왕과의 직접 계약자라니.”

    로만이 주먹을 날리면서 혀를 찼다.

    “정말 말세로군.”

    린은 로만의 말이 웃겨서 속으로 피식 웃으면서도 전의를 가다듬고 계속해서 날아드는 공기의 검을 걷어 냈다.

    “으아아아, 하늬안 님!”

    “안 죽어, 안 죽어.”

    에트론이 당황해서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하늬안에게 회복 마법을 마구 쏟아 냈다.

    그의 곁으로 유르겐이 퉁명스럽게 앉아 입을 비죽였다.

    “얘는 나한테만 불친절해.”

    유르겐의 말에 에트론이 실수인 척 유르겐의 머리를 한 번 툭 치고 지나갔다.

    유르겐이 딱밤을 치려고 자세를 취하자 에트론은 하늬안의 머리 뒤로 몸을 숨겼다.

    “……안 싸우십니까?”

    사력을 다해 방어벽을 치고 막고 있는 드웨이크가 조금 어이가 없어져서 등 뒤의 유르겐에게 묻자 유르겐이 어깨를 으쓱 하곤 말했다.

    “난 오래 못 싸워. 내 능력이 그래. 이미 아룬인지 머시깽인지 그놈이 쓰는 괴랄한 공간 마법을 카피하느라 오늘 한계치까지 다 썼어.”

    “……그래도 에트론님의 능력을 통해서 육탄전 정도는……?”

    “에이, 저기요, 아저씨. 있잖아요. 저는 걸리적거릴 뿐이에요.”

    “……하하.”

    드웨이크가 허허 웃곤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유르겐의 뻔뻔한 태도가 오히려 그만큼 로만의 강함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쿠콰강-

    저 멀리, 아크와 정혁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곳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높은 하늘에서 거대한 화염의 돌덩어리가 그 구역에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까부터 영창하던 앤의 마법이 하늘에서 불의 비를 화살처럼 떨어트리고 있는 것이었다.

    “얼레? 쟤는 저기서 뭐한데?”

    유르겐이 드웨이크의 등 뒤에서 물었다.

    “애, 앤 님이라도 좀 보호해 주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게? 무슨 깡으로 저길 붙은 거야. 아이씨, 귀찮게 진짜. 야.”

    유르겐이 에트론을 툭 하고 부르자 에드론이 도끼눈을 뜨고 유르겐을 노려보았다.

    “……아, 진짜. 알았어. 안 때릴게. 가자, 일 해야 할 것……?”

    마치 곧 앤을 도우러 가려는 것 같았던 유르겐이 다시 고개를 돌려 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는 뭔가 떠오른 사람처럼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이야…… 역시 마법사. 똑똑하다니까.”

    유르겐의 말에 드웨이크가 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뭐, 도박일 수도 있겠지만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지켜보자구.”

    “예?!”

    “에이, 걱정 마. 죽기야 하겠어?”

    유르겐이 다시 자리에 앉자마자 앤이 있던 자리에 아크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정혁은 젠트라를 고쳐 쥐고 앤의 앞으로 빠르게 치고 나간 아크의 꼬리를 크게 한 번 베었다.

    그러자 아크가 잔뜩 성질을 내며 두 손으로 정혁의 양손을 비틀어 쥐었다.

    정혁은 젠트라를 떨어트린 뒤 두 발로 걷어차 아크의 복부에 동시에 찔러 넣었다.

    아크의 고통에 찬 고함이 주변에 충격파를 전달했지만 그럼에도 아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머지 두 손으로 앤의 목을 움켜쥐었다.

    “조그만 것이 귀찮게.”

    아크의 두 눈에 검붉은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혁은 인상을 구기며 아크의 몸에 다시 제련 망치를 소환했다.

    번개와 화염이 아크의 전신을 두들겼다.

    아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눈에 마나를 모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앤은 결연했다.

    마치…… 자신이 원하는 결말이라는 듯 그녀는 조여 오는 숨통을 꾹 참고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 낼 공격을 기다렸다.

    정혁은 앤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줬다고 생각했다.

    아크가 공격을 받으며 움찔거릴 때 분명 그의 손에 쥔 힘이 조금씩 풀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앤이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자 정혁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앤! 뭐 하는 겁니까!”

    그러나 앤은 아무 대답 없이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크의 두 눈에 검은 섬광이 다 모여 앤의 정수리를 향해 발사되려는 순간.

    꾸과가강-

    전장 전체를 뒤덮고도 남을 강렬한 섬광이 번쩍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순수한 빛의 기둥이 하늘에서 지면을 향해 내리꽂혔다.

    그 빛은 정확히 아크의 머리 위로 떨어졌는데 아크는 그 빛에 닿는 순간 정혁의 공격을 맞았을 때보다 더 큰 비명을 지르더니 몸을 꼬며 즉시 자리에서 이탈했다.

    공중에서 천천히

    8개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지상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창 전투를 벌이던 지상의 모든 존재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강렬한 빛이 전장에 임했다.

    그 모습 앞에 그 누구도 쉽게 상대와 검을 겨누지 못했다.

    악마들은 기겁을 했고 다른 자들은 넋을 잃은 듯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아크의 손에서 벗어난 앤이 바닥에 털썩하고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그녀 앞에 빛 속에서 내려온 천사, 그의 발이 보였다.

    앤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선 영광스러운 천사의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돌체.”

    “늦어서…… 미안하다.”

    돌체는 앤을 내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에 올려 그녀 앞에 예를 표했다.

    천계의 대천사장 돌체가 티끌만도 못한 존재로 여기던 인간에게 말이다.

    에트론은 충격을 받고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에트론-!”

    돌체의 외침에 에트론이 정신을 번쩍 차리고 우렁차게 소리쳤다.

    “네에에에!!!”

    에트론은 반사적으로 돌체의 곁으로 날아갔다. 여덟 날개의 위용 앞에 에트론은 함부로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이전과는 다른 강렬한 분노가 그의 전신에서 느껴졌다.

    “모든 무기고를 열어라. 모든 무기가 나의 분노에 반응할지니.”

    “예, 대천사장님!”

    돌체의 말과 함께 에트론이 처음으로 열쇠 꾸러미에 연결 고리를 끊었다. 그러자 열쇠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흩어져 허공에 꽂힌 뒤 돌아갔다. 돌체의 등 뒤로 많은 수의 공간이 열렸다. 그 안에서 천계의 천사장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무기가 돌체의 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감히-”

    돌체가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크는 입술을 움찔거리며 자신의 평생의 숙적 천계의 존재를 향해 맹렬한 증오를 쏟아 냈다.

    “우리와의 약속을 어기고 이곳에서 이렇게 불결한 행위를-”

    돌체는 투구를 벗어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곤 두 개의 창을 움켜쥐고 아크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이 행위의 대가. 버러지 같은 네놈이 짊어져야 할 것이다.”

    아크가 고함을 내지르며 네 개의 팔에 쥔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돌체는 그것을 전부 튕겨 내며 일격에 아크의 네 팔 전체를 잘라냈다.

    그러곤 순식간에 아크의 목을 쥐었다.

    “몰랐느냐. 악마왕이 죽는 날. 오랜 평화가 깨어지고 우리 천계의 맹위가 지하 끝 마계까지 닿는다는 사실을. 아둔……하구나.”

    금방 아크의 네 팔이 재생되어 돌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막아요!”

    순간 정혁이 고함을 쳤다.

    아크의 위험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수많은 악마들이 눈앞의 적을 내버려 두고 아크를 지키기 위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롬과 싸우고 있는 린과 로만은 그들을 막을 여력이 없었다.

    롬조차도 아크를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든 아크를 향해 가려 했기 때문이다.

    “부질없는 것을.”

    돌체가 이빨을 까득이며 주변 상황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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