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77화 (177/200)
  • ◈177화

    깡-

    무자비하게 방패 돌진을 시전하며 앞으로 달려 나가던 드웨이크는 엄청난 저항을 마주하곤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앞에는 붉은 눈으로 충혈된 아룬이 서 있었다.

    그는 혀를 내밀며 광기 어린 눈으로 드웨이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이- 너 괜찮겠어?”

    아룬이 웃으면서 드웨이크를 조롱했다.

    드웨이크의 시선은 아룬의 등 뒤에 있었다.

    안젤리나는 궁사, 그리고 앤은 마법사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물리적인 방어력이 떨어진다.

    누군가가 보호해 줘야만 그 힘을 월등하게 발휘하는 자들이기에 무엇보다도 이 난전 속에서 그의 힘이 필요할 것이다.

    “이 새끼가…….”

    아룬의 목소리와 함께 드웨이크의 목으로 얇게 벼려진 단검이 스치듯 찔러 들어왔다. 드웨이크는 몸을 뒤로 당기며 검을 피하고 두세 걸음 물러섰다.

    그러곤 자신의 뒤통수로 날아드는 오크의 도끼날을 우측으로 피한 뒤 중심을 잃은 오크의 뒷목에 그의 스피어를 찔러 넣었다.

    스피어를 한 번 털고 드웨이크는 아룬을 노려보았다.

    랭커다.

    저자 역시 용의 가호를 받은 랭커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에드가가 세 마리의 본드래곤과 공중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냉기와 부패의 브레스가 공중을 수놓고 에드가 특유의 황금빛 브레스가 또 한쪽으로 날아간다.

    저 본드래곤들은 아마 이들의 계약에 의해 되살아난 그들에게 주어진 축복의 주인, 그 용들일 터.

    드웨이크는 이 끔찍한 결과 앞에 저들의 만행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다.

    아룬은 자신의 상대가 아니다.

    용의 가호와 악랄한 아크의 저주가 깃든 지금의 아룬은 전보다 더욱 강할 것이다.

    아까의 공격도 예측하지 못했다면 드웨이크는 또 한 번 그 끔찍한 세상에서 눈을 떴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 이 싸움에서 회피해야 한다. 회피……해야 한다?

    드웨이크는 번뜩 자신의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럼 누군가는 아룬을 상대할 수밖에 없다.

    제논의 병력이든 욘마곤의 용병들이든 말이다.

    프로그램이라면 소멸될 것이고 플레이어라면 죽을 것이다.

    어떻게든 이 싸움이 그들에겐 온전한 마지막이 되고 말 것이다.

    드웨이크는 살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수십, 수백 명이 아룬을 통해 죽음에 이를 것이다.

    그것이 맞나?

    그것이 옳은가?

    아니다.

    드웨이크는 스피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도망칠 수 없다.

    물러날 수 없다.

    방패 전사는 적을 앞에 두고 등을 돌리지 않는다.

    안젤리나, 그리고 앤 역시 위급한 건 알겠지만 이 정도의 네임드라면 그들보다 이자를 막는 것이 우선이다.

    “오. 생각을 고쳐먹었구나?”

    “길게, 시간 끌 수 없다.”

    드웨이크가 패기를 토하며 아룬에게 달려들었다.

    아룬은 암살자답게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겨 드웨이크의 재빠른 공격을 피해 냈다.

    드웨이크는 방패 끝으로 지면을 내리치며 주변에 진동을 일으켰다.

    그를 통해 아룬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쫓았다.

    쫓았다고 생각했지만 아룬은 드웨이크의 탐지의 틀을 깨고 더 깊은 틈으로 은신했다.

    혼란한 전장 상황이 드웨이크의 추적을 방해했다.

    드웨이크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에도라의 병력들을 하나하나 분쇄하는 동시에 아룬의 기습에 대비했다.

    [준비해요.]

    그때 드웨이크의 머리로 전음이 날아들었다.

    익숙한 목소리.

    [보고 계신 겁니까?]

    [당신은 제 에고 장비잖아요?]

    드웨이크가 작게 미소 지었다.

    [측면]

    안나의 목소리와 함께 드웨이크는 방패를 기울였다. 까강-하는 소리와 함께 마찰음이 들리고 또 기척이 사라진다.

    [집중하세요. 제 마나를 느끼는 거예요.]

    드웨이크는 자신의 가슴 중심에 뭔가가 점점 차오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모든 스탯이 일시적으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비록 전 전투 능력이 부족하나, 머리 하나만큼은 쓸 만하거든요?]

    스탯의 증가 중에 가장 폭발적으로 상승하게 된 건 지능이었다.

    보통 이 정도의 지능 스탯이면 고등 마법사 수준일 텐데 드웨이크는 이 지능으로 상황 판단과 다음 공격에 대한 방어에 촉각을 세웠다.

    [안나 님, 근데 이거 장비와 주인이 좀 바뀐 것 같지 않습니까?]

    [여유롭네요? 바로 뒤!]

    안나에게 농담을 건네다가 드웨이크는 급히 몸을 뒤로 돌려 방패로 허공을 후려쳤다.

    다시 한번 까강- 하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다.

    난잡한 먼지 사이로 아룬이 턱을 쓸며 몸을 드러냈다.

    ‘좀 치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무슨 조화로 이렇게 갑자기 강해진 건진 모르겠지만.”

    아룬이 빙긋 웃으면서 순식간에 드웨이크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이건 드웨이크도 어떻게 반응할 수 없는 속도였다.

    아룬의 양손에 들린 단검이 드웨이크가 입고 있는 정혁 표 최상급 방어구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할 때 드웨이크의 몸을 누군가 급히 당겼다.

    그 덕분에 겨우 드웨이크는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아룬은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찼고 드웨이크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을 돌아보았다.

    “야, 너 약간 나랑 캐릭터 겹친다?”

    그곳엔 유르겐이 서 있었다.

    유르겐의 곁에는 돌아온 에트론이 빙글빙글 돌며 그들 근처로 달려드는 에도라의 병력들의 머리통을 하나둘씩 관통시키고 있었다.

    “안 그래? 그치? 쟤 좀 성격이 나랑 비슷해.”

    유르겐은 드웨이크를 보며 동의를 구했고 드웨이크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르겐이 싱긋 웃고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어이-! 안나, 네 남자친구 내가 구한 거다?”

    [……한 대만 때려줘…….]

    안나의 전음을 들으며 드웨이크가 빙긋 웃음 짓고는 뒤로 물러났다.

    “가서 도와, 저기 저 친구들. 여기는 내가 재미 좀 볼 테니까.”

    유르겐이 저리 가라는 듯 손짓을 하자 드웨이크는 꾸벅 인사를 하고 고전하고 있을 안젤리나와 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유르겐은 아룬의 단검을 보더니 ‘오’ 하는 표정을 짓곤 박수를 두 번 쳤다.

    그러자 에트론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열쇠 꾸러미에서 열쇠를 찾아 허공에 찔러 넣었다.

    유르겐이 신나서는 열린 차원 문 안에 손을 뻗어 아룬과 같은 단검 두 자루를 꺼냈다.

    “그건 정혁 님도 자주 사용하시던 거예요……! 부디 깨끗하게……!”

    “아아, 잔소리, 잔소리.”

    “아-씨, 진짜 또 돌체 님 내려오시면 어쩌려구요!”

    유르겐이 에트론을 저 멀리 밀쳐 버리며 날부터 신성하게 빛나는 단검 두 자루를 빙글빙글 돌렸다.

    “뭐, 랭커라며?”

    분위기가 완전히 역전됐다.

    아룬은 이 황당한 상황에 멍하니 서 있다가 정신을 고쳐 잡고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

    아룬은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 봐도 외부에서부터 이런 기세를 뿜어내는 강한 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 정도의 힘을 가진 강자라면 랭커의 입장으로서 이미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을 것이다.

    근데, 데이터가 전혀 없다.

    “말해 뭐 해, 야. 너랑 나랑 캐릭터가 겹친다니까? 얼른 결판내자 응?”

    유르겐은 어깨를 으쓱하곤 검을 고쳐 잡고 아룬에게 달려들었다.

    드웨이크에게는 한없이 강해 보이던 아룬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반전된 상황에 아룬은 더욱 크게 당황하여 다시 더 깊은 어둠으로 도피했다.

    “이 새끼가.”

    유르겐의 목소리가 이전의 상황과 대비되듯 들리며 어둠 속에 손 하나가 쑥 하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아룬의 차폐 공간으로 유르겐이 따라 들어왔다. 아룬은 더욱 당황에서 벙쩌 버렸다.

    “어, 어떻게?”

    “뭐, 내 힘이 그래. 좀 치사하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래도 제한 시간이 있으니, 금방, 얼른, 빨리 끝내자잉?”

    차폐 공간은 아룬이 가진 고유 스킬이다.

    아무리 강력한 탐지 마법이라도 세계와 분리된 이 이공간 속에 숨으면 찾을 수 없었다.

    공간 속에서 적의 빈틈을 노리고 한 번에 일격으로 즉살하는 것이 아룬의 특기였다.

    용의 가호를 통해 얻은 특수 스킬이자 ‘어둠의 귀수’라는 아룬의 칭호와 어우러져 그의 명성을 드높인 기술이기도 했다.

    단 한 명의 외부인도 침입한 적 없는 공간, 누구에게도 들킨 적이 없던 공간.

    그곳에 아이러니하게도 저 이상한 남자가 ‘들어왔다’.

    어찌 이해할 겨를도 없이 유르겐의 검이 또 한 번 허공을 갈랐다.

    아룬은 반사적으로 반응하면서 공격을 회피했다.

    “또 숨을 데는 없는 거지?”

    “……이익.”

    아룬이 이를 갈았다. 유르겐은 싱글벙글 또 한 번의 휘두름으로 아룬의 목덜미를 향해 달려든다.

    드웨이크는 뒤를 돌아보다가 그들이 사라진 것을 눈치채고 의아한 얼굴로 다시 시선을 돌려 앞을 계속해서 뚫고 나갔다.

    꾸웅-

    그러다 우측에서 강한 충격과 함께 밀려 나간 드웨이크는 자신의 옆에 서서 고함을 내지르는 두 머리의 오우거를 보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녀석은 양팔에 도끼 자루를 완전히 심어 놓은 괴이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몸에는 고철 덩어리들을 여기저기 박아 넣었다.

    초점 없는 눈엔 영혼이 담겨 있지 않았다.

    굉음이 또 한 번 울리고 드웨이크는 패턴 없이 이어지는 녀석의 무자비한 도끼날을 피하고 막으며 하체를 공략했다.

    드웨이크의 스피어가 녀석의 정강이를 꿰뚫는다.

    낭패다.

    녀석의 발악에 드웨이크는 스피어를 잡은 손을 놓치고 말았다.

    순간 반대로 떨어지는 도끼날을 방패로 틀어막았지만 육중한 무게가 그대로 실린 도끼 공격에 드웨이크는 한쪽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쾅-쾅-쾅-

    계속해서 내리찍는 공격으로 드웨이크는 방패를 거두고 틈을 만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때 반복적인 공격이 멈추고 파직하는 소리와 뭔가 터지는 불쾌한 소음이 들렸다.

    거구가 쓰러지며 진동이 일고 드웨이크는 급히 방패를 내렸다.

    손을 내민 건 안젤리나였다.

    “괜찮나요?!”

    “예…… 감사합니다.”

    “도와주러 오신 거죠?”

    화염구가 둘 곁을 스쳐 그들의 뒤로 달려들던 구울 네 마리를 연달아 타격했다.

    앤도 많이 지쳐 보였다.

    드웨이크는 안젤리나의 손을 잡고 일어나 쓰러진 오우거의 정강이에서 스피어를 꺼내 들었다.

    “주변에 달려드는 놈들을 제가 막아 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많이 처리하시죠.”

    드웨이크의 말에 안젤리나와 앤은 여유를 찾고 더욱 신중히 주변의 적을 없애 나갔다.

    * * *

    “웃긴 분이시네요?”

    하늬안이 피를 토하며 부러진 대검 자루를 쥐고 고꾸라졌다.

    그러나 다른 손으로 입가를 닦고 대검 자루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앞에는 어린 소녀가 스스로의 머리카락을 쓸며 멀뚱히 하늬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징글……징글하구나, 너.”

    하늬안이 고개를 몇 번 가로저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하늬안은 유라라는 랭커를 알고 있다.

    그녀는 평소에 곰 인형을 쥐고 다니며 어린아이 코스프레를 한다고 했다.

    하늬안은 그것이 참 역겹다고 생각했었다.

    만나게 된다면 크게 무안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기엔 상대가 너무 강했다.

    랭커는…… 랭커다.

    듣기론 소환사라고 해서 성난 동물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상대를 무너트린다고 했었는데 지금 유라가 소환하는 것들은 차원이 달랐다.

    마계 어딘가에서, 어둠 끝자락에서 오랫동안 피에 굶주린 괴이한 괴물들이 소환진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하늬안이라도 그들을 혼자서 막아 내기란 쉽지 않았다.

    “질기네요, 정말. 아줌마.”

    불끈-

    하늬안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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