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69화 (169/200)
  • ◈169화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궈지던 돌체와 그 근처의 분위기가 마치 찬물이 끼워진 것처럼 일순간에 식어 버렸다.

    리안이 급히 양손으로 모아 갔던 마나를 조용히 해제시켰다.

    돌체의 여덟 날개가 그의 분노를 증명하듯 격렬히 진동하다가 그것을 멈추고 에트론의 목을 쥐고 있던 손의 힘을 천천히 풀었다.

    리안의 곁으로 달려 나온 것은 앤이었다.

    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돌체를 매섭게 바라보고 있었다.

    에트론이 공중에서 다시 한번 추락했다.

    리안은 급히 떨어지는 에트론에게 낙하 마법을 걸어 그를 최대한 안전히 받아 냈다.

    에트론은 본래의 형태로 작아졌다.

    녀석은 기절한 것 같았다.

    상황을 주시해야 했다.

    자신이 최대한 정중히 돌체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 마저도 굉장히 불쾌하게 느끼고 격분했던 그였다.

    이때에 앤의 고함은 돌체의 신경을 더욱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돌체가 몸을 돌려 지면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천계의 마나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이었지만 리안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지금은 폭풍전야와 같다.

    안광에서 뿜어지는 빛이 이젠 줄기로 분산되어 그의 눈가에 파직거리고 있고 입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불끈 쥔 주먹에 잡혀 있는 그의 스태프가 금방이라도 박살 날 것 같았다.

    “누가…… 감히……!”

    돌체의 분노가 점점 그의 외부로 발산되기 시작하자 리안은 전신의 피가 끓는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위험하다.

    그는 재빨리 대규모 방어 마법을 펼쳤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피아 구분 없이 펼쳐지는 방대한 대천사장의 공격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앤은 자신에게도 느껴지는 돌체의 쟁쟁한 분노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를 만났다는 것에 기뻤다.

    그가 지금은 자신을 죽이려 드는 죽음의 천사일텐데도 앤은 그의 얼굴에서 옛 돌체의 얼굴을 떠올렸다.

    리안이 잠깐 보여 줬던 그 과거의 모습이 이제는 생생한 현실로 다가왔기에 앤은 그것이 그저 기뻤다.

    자신의 전신이 돌체의 마나에 의해 뒤틀리는 것 같았지만 참을 수 있었다.

    “네년이냐…….”

    돌체가 앤의 몇 걸음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곤 스태프를 공중에 띄워 놓고 양손을 모아 스태프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리안은 기절해 버린 모든 사람들 하나하나의 생명을 붙들어 놓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렇기에 앤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이, 이자는 당신이 아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을,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리안이 소리쳤지만 앤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돌체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스태프에 모인 마나가 동그란 구체의 모습으로 커졌다.

    구체의 주변으로 번쩍이는 빛무리가 맴돌고 금방이라도 앤을 향해 날아들 준비가 되어 보였다.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른 죄를 이곳에서…… 치르리라. 천계의 분노를 맛봐라.”

    돌체는 앤을 향해 구체를 날렸다.

    그리고 곧 맹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리안은 하마터면 집중을 잃고 흐트러질 뻔했다.

    뿌연 연기와 함께 주변의 시야가 흐려졌다가 다시 가라앉으며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마법사에게는 특유의 마나 저항력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의 공격까지 맨몸으로 막아 내기는 어렵다.

    아무리 앤이 용의 가호를 받은 마법사라고 할지라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강력한 공격이기에 최선을 다해 막아 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럴 의지조차 없어 보였고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리안의 깊은 한숨 뒤로 여전히 쟁쟁한 돌체의 마나에 이질적인 당혹감이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먼지가 가라앉자 멀쩡히 서 있는 앤과 도리어 공격을 받은 듯 뒤로 물러선 돌체가 보였다.

    그들의 사이로 스태프가 홀연히 서 있다.

    순간 앤의 몸에서 그녀가 통제하지 않은 마나의 결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용의 형상으로 변화했다가 곧 리안이 만나게 해 줬던 돌체의 옅은 모습으로 드러났다.

    앤은 그 형상을 보며 한아름 눈물이 가득 고여서는 무너지듯 주저앉았고 형상은 앤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뒤 스태프를 향해 날아갔다.

    돌체 역시 이게 무슨 조화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그때 스태프에 닿은 형상은 금세 천계의 빛에 휩싸여 스태프에 담겨 있던 돌체의 마나를 전부 흡수해 버렸다.

    그러곤 스태프를 쥔 손부터 점차 마치 돌체의 모습과 똑같은 여덟 깃의 대천사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돌체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 변화의 모습을 지켜봤다.

    다른 것은 하나, 스태프를 쥔 또 다른 돌체는 다른 한 손에 검을 쥐고 있다는 것.

    리안은 또 다른 돌체를 보며 그제야 작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무슨 수작이냐!”

    대천사장 돌체가 고함을 내지르며 자신의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러자 또 다른 돌체가 검과 스태프를 맞부딪치며 대답했다.

    “수작은 무슨, 네놈 버릇을 고쳐 주려는 거지.”

    “……헛소리!”

    돌체가 분노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가 양손으로 허공을 내려치자 열개의 균열이 동시에 열리며 그 안에서 천계의 무기고 소유의 다양한 무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돌체는 마치 자신의 위엄을 보라는 듯이 공중에서 양손을 펼치고 당당하게 소리쳤다.

    “네놈이 무엇이든 상관없지. 이전에도 이후에도 천계의 대천사장은 나 돌체뿐이니!”

    “내가, 너라니까 등신아.”

    또 다른 돌체가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그때 앤이 순식간에 자신의 전신에 마나를 휘감았다.

    앤의 눈동자에 투기가 서렸다는 것을 깨달은 리안이 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이 기회예요. 알죠?”

    “……네!”

    자기도 알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 대천사장을 이길 순 없어도 최소한 그를 후퇴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리안은 이곳 사람들을 지키면서 이 전투의 기회를 완벽히 살릴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자기밖에 없다.

    옛날처럼, 그와 마지막으로 싸울 수 있는 기회.

    앤이 곧바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돌체와 또 다른 돌체가 격돌하기 시작한다.

    스태프가 빛을 발하며 사방에서 천계의 마나로 이루어진 비전 화살을 날리면 그 틈으로 다른 손의 검이 비집고 들어간다.

    대천사장 돌체는 공중에 떠도는 방패와 검을 쥐고 앤의 돌체를 막아섰다.

    그러면서도 자기와 비슷한 이 존재와 싸우고 있는 지금에 대한 의문에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자존감이 강한 이 대천사에게 자신과 똑같은 적을 상대하는 것이 큰 혼란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대천사장의 힘은 강했다.

    앤의 돌체가 쥐고 있던 검이 대천사장 돌체의 창에 박살이 나고 앤의 돌체는 가까스로 스태프를 이용해 다음 공격을 방어하며 물러났다.

    그 사이로 여러 갈래의 화염구가 날아들었고 앤의 돌체는 뒤를 돌아보았다.

    앤이 공중에서 강렬한 붉은 로브를 입은 채로 화염의 인장을 머리 위에 띄운 채 욘마곤의 모든 마나를 흡수하고 있었다.

    그녀는 돌체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돌체는 싱긋 웃으며 공중을 박차고 뛰어 올라 대천사장 돌체가 소환해 놓은 무기 하나를 손에 쥐었다.

    “이…… 무슨!”

    대천사장 돌체는 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앤의 돌체를 노려본 뒤 고함을 내지르며 또 다른 창을 낚아채 앤의 돌체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거대한 불덩이가 작렬하며 대천사장 돌체에게 직격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대천사장 돌체는 창을 돌려 화기를 흡수한 다음 곧바로 앤에게 내질렀고 화기를 잃은 돌덩이는 대천사장 돌체의 손에 의해 박살 나 아래로 떨어졌다.

    화기가 앤을 덮치려 하자 그녀의 앞에 강렬한 바람이 휘몰아쳐 화기를 잠재웠다.

    앤이 아래를 보니 바람의 정령왕 룬다나와 물의 정령왕 녹턴이 어느새 인간의 모습으로 리안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리안은 그들에게 기절해 버린 이곳의 플레이어들과 병력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자초지종이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룬다나를 뒤로 하고 리안은 다시 전신에 마나를 순환시키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들만으로 돌체를 이겨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도 합세해야만 한다.

    [리안 님 저희가, 저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리안에게 앤의 전음이 들려왔다.

    리안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난전이 펼쳐지고 있는 공중을 바라보았다.

    앤은 사력을 다해 사방으로 자신의 주특기인 화염 마법을 발현하고 돌체와 또 다른 돌체는 육탄전으로 맞부딪쳤다.

    리안이 힘을 보탠다면 조금 더 여유롭게 전세를 풀어 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앤은 뭔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괜찮겠습니까?]

    [네...! 저희끼리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예요!]

    리안은 앤의 답변을 듣고 양손에 주먹을 불끈 쥔 채 상황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언제든 엄청난 마법 공세를 펼칠 수 있도록 바닥에 이미 마법진을 그려 놓은 상태였다.

    앤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함께 싸워 가는 이 순간을 만끽했다.

    오랜만이었고 그리웠다.

    앤의 돌체는 그때의 모든 기억들을 전부 구현해 내며 앤과 혼연일체가 되어 전투를 지속했다.

    지치는 기색 없이 기쁘다는 듯 말이다.

    “그만!”

    그것도 잠시 대천사장 돌체의 전신에서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왔다.

    그의 외침에는 짜증이 잔뜩 섞여 있었다.

    앤이 화염 보호막으로 빛의 마나가 심장을 관통하는 것을 막고 앤의 돌체는 곁에 떨어진 방패를 들어 막았다.

    그 방패를 대천사장 돌체가 찢어발기며 순식간에 앤의 돌체 앞에 섰다.

    “네놈은 도대체…….”

    대천사장 돌체의 양손에서 채찍 같은 것이 튀어나와 앤의 돌체 전신을 휘감았다.

    대천사장 돌체는 거칠게 스태프를 그의 손에서 빼앗아 집어던져 버렸다.

    앤의 화염 공격이 측면에서 날아오자 그것을 창으로 휘감아 날리곤 앤을 향해서도 채찍을 던져 그녀의 몸을 묶었다.

    대천사장 돌체는 저항하는 앤의 돌체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너는…… 파괴된 줄 알았던 나의…… 영령이구나…….”

    그리곤 앤을 흘깃 보더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정지의 축복에 들기 전 이 세계의 역사를 지켜보고자 남긴 나의 영령이 이런 식으로 더럽혀져 있을 줄이야.”

    “…….”

    앤의 돌체는 말없이 대천사장 돌체를 바라보았다.

    되레 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오만하고! 교만한! 너희들이 훨신 더 더럽다! 이 세계가 어떻게 되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너희들이!”

    “...하!”

    돌체가 헛웃음을 뱉더니 앤을 돌아보았다.

    그러곤 그녀의 얼굴을 통해 뭔가를 읽어 낸 듯 조소를 띄운 뒤 앤의 돌체를 찬찬히 훑어보며 말했다.

    “네년…… 이 녀석을 사랑하고 있구나. 그건 내 영령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허나, 나는 내 영령에게 사랑 따위를 허락한 적이 없어서 말이야!”

    대천사장 돌체는 다시 앤을 돌아보곤 자신의 손을 앤의 돌체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앤의 돌체 전신에서 마나가 빨려 나오듯 대천사장 돌체의 손안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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