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63화 (163/200)
  • ◈163화

    “각 전초기지에서 사방으로 알람이 울리고 있습니다!”

    욘마곤의 제논 진지 본채에 마련된 전쟁 준비실에서 안도리니과 국경을 대고 있는 욘마곤의 외곽 전초기지의 전투 소식을 빠르게 전달하고 있었다.

    안나는 재빨리 에도라 쪽의 병력을 분산시켜 전투 지역에 재배치를 명하고 급히 준비실 내부로 들어오는 김창수를 맞이했다.

    “상황을 듣지!”

    김창수의 말에 안나는 전장 지도를 펼쳐 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산발적으로 이어졌던 안도리니의 공격이 이제 외곽 지역으로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비처럼 쏟아붓던 마나 미사일 공격이 멈추고 3일 만에 전면전입니다. 병력 규모와 범위로 보아 안도리니의 전체 병력이 총집중 된 것 같아요. 우리 입장에서는 에도라를 배제할 순 없긴 하지만 이들이 공격이 그렇다고 제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기에 당장에는 어느 정도 시선을 거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리안? 당신의 의견은 어떤가?”

    김창수의 곁에 있던 리안에게 그가 묻자 리안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직, 우리가 나설 장소는 아닙니다.”

    김창수는 옅은 신음소리를 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안과 에이드윈들은 아직 전면전에 나서면 안 된다.

    그들의 차원이 다른 힘을 다른 병력들이 느꼈다간 오히려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들에게 전쟁은 어려우면서도 성취감 있는 또 하나의 이벤트성 플레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게임이고 그것이 본질이니까.

    앞으로의 사활이 걸린 일이라는 것은 제논의 수뇌부들만 알고 있으면 될 뿐.

    그렇기에 정혁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이들이 나설 수 없다.

    오히려 정혁이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정말 힘들고 고된 순간에 용맹한 사자기를 들고 전장에서 폭발적인 힘과 임팩트를 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로만과 유르겐이 에도라 지역을 좀 지켜봐 주게. 그건 가능하겠나?”

    어둠 속에 몸을 기대고 있던 로만이 손목을 돌리며 알겠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그때 유르겐과 에트론이 준비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유르겐은 곧장 리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우리 꼬마 천사가 할 말이 있다네?”

    에트론이 진저리 치며 리안에게 다가가자 오히려 리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에트론 님 어째서 날개가?”

    에트론은 리안의 눈썰미에 감탄하며 재빨리 전하고자 하는 말을 말하기 시작했다.

    “천계가 깨어날 겁니다. 얼마 걸리지 않을 거예요. 당장 몇 시간 뒤일 수도 있어요.”

    “천계가요? 갑자기요?”

    “네. 그리고 더 중요한건 앤…… 님입니다.”

    “앤은 또 왜?”

    김창수의 물음에 에트론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대천사장께서 깨어나시면 자신의 영령을 파괴한 자를 찾아 제일 먼저 이곳에 당도하실 테니까요.”

    “……영령?”

    “네, 앤 님이 가지고 계셨던 무기가 천계의 무기, 대천사장의 영령이 깃든 스태프 ‘돌체’였거든요.”

    에트론의 말에 다들 사고가 정지된 것처럼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리안은 생각 정리가 필요한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감았고 안나 역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시선을 이리 저리 돌렸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다.

    “……대천사장……이 적이 될 확률은?”

    리안이 물었다.

    “……아마…… 클 겁니다……. 게다가 여기에 저도…… 있잖아요?”

    에트론이 조심스럽게 자기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유르겐이 빵 터지며 껄껄댔다.

    “야, 꼬맹이! 너, 네가 잃어버린 장비잖아, 왜 앤 탓을 먼저 하는 거야앜, 캬하하핫”

    “리안 님이라고 했죠? 저거 양으로 좀 바꿔 줄 수 없나요?”

    리안이 어깨를 으쓱 한번 하자 유르겐이 메에- 소리를 내며 양으로 순식간에 변했다.

    그러자 이번엔 양의 울음소리가 마치 웃음소리처럼 전쟁준비실에 퍼졌고 리안이 또 한 번 어깨를 으쓱하며 양의 입을 열지 못하게 했다.

    양으로 변한 유르겐은 포기한 듯 바닥에 웅크려 앉았다.

    “그러니까, 앤이 가져왔던 그 장비 돌체가, 저도 알고 있었던 그가 사실은 천계의 인물이었다는 거죠?”

    “인물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대천사장이라니까요.”

    “아……. 네, 그래요. 대……천사장님.”

    “심각한 겁니까?”

    김창수의 질문에 리안이 고개를 들고 그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천계는 리사이클이 반복될 동안 계속해서 정지되어 있었습니다. 이건…… 시스템의 영향도 크지만 그들을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는 핵심 키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그들은 중간계에 펼쳐지는 악마의 침공 위험이 커지거나 혹은 마계에 시그널이 심상치 않아질 때 정지장의 영향력을 약화시켜 곧 깨어난다는 조건을 걸었어요. 이 조건의 벽을 오아시스, 그 녀석이 더 강화시켰죠. 그리고 사실, 그들이 깨어난다 해도 반갑지 않을 겁니다.”

    “왜요?”

    이번엔 안나가 묻자 리안이 그녀를 돌아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제까지 천계를 표현하는 여러 고서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오만방자하며 겸손하지 못하고 자신들을 존재 위의 존재로 여긴다고 해. 즉, 중간계는 언제나 자신들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나는 처음에 에트론 님을 뵀을 때 좀 많이 이질적이었어.”

    리안의 말에 에트론이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전부가 그런 건 아니에요. 저처럼 날개가 두 개밖에 없는 천사들은 노동계급이라 착한 편이랍니다. 대천사장 돌체 님은 날개가 여덟 개시니까…… 말 안 해도 아시겠죠?”

    모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양으로 변한 유르겐까지 말이다.

    “더불어 천사들의 힘 역시 무시할 것이 못 됩니다. 저와 같은 에이드윈 중에서도 저나 로만 정도가 대천사 계급의 천사들과 밀리지 않는 싸움을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러나 대천사장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악마와의 싸움에서는 이득을 볼 수 있지 않겠나?”

    김창수의 말에 로만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닐세. 그건 철저히 우리의 생각이지. 이들은 제3의 적대 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아. 어차피 이들의 머릿속에 악마 따위는 소리만 쳐도 물러나는 최약체 정도로 생각할 걸세. 상성 자체가 그러니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게지. 그들이 아무리 지상에서 날고 긴다고 해도 자신들의 창끝 아래라고 볼 게야. 그렇다면 그들이 주요 타깃은 자신들의 위대한 대천사장, 그의 심기를 건드린 집단이 되지 않겠는가?”

    “아니, 무슨 천사가 그래?”

    어느새 양 변이에서 풀린 유르겐이 팔짱을 끼고 비아냥거리며 말하자 로만이 한심하다는 듯이 유르겐을 쳐다보았다.

    유르겐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렇잖아?! 이제까지 계속되는 리셋동안 단 한 번도 신경도 안 쓰고, 맨날 악마 놈들이 물밑 작업할 때 그저 정지장 안에서 그냥 뭐, 쳐 자빠져 자다가 갑자기 깨어나서는 ‘우리는 위대한 존좨뉘께’라면서 자기들에게 피해 준 놈들을 먼저 친다는 게 천사라는 이미지하고 안 맞잖아?! 이거 봐, 어? 우리 에트론 보라고. 날개 두 개에, 어어얼마나 착해? 아주 이뻐 그냥, 무기고 열쇠지기이면서 무기 관리도 똑바로 못하지만 그래, 착하면 됐지. 안 그…… 메에-”

    유르겐이 한참 열변을 토하다가 다시 양으로 돌아갔다.

    리안은 곧이어 그의 입을 봉해 버렸다.

    “예상을 했었어야 했는데, 리셋을 몇 번 겪고도 여전히 변수가 많군요.”

    리안이 옅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김창수는 의자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았다.

    “현재 다른 팀장들은 전부 안도리니와의 전면전에 파견되었습니다. 박달수도 곧 그쪽에 합류할 예정이구요. 다행히 왈로 대장에게서 카탈은 이상 없다는 보고가 들어와 우리는 타이런 상황만 주시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로만 님이 에도라 접경 지역으로 파견 가는 것이 옳을까요?”

    안나가 차분히 상황을 정리하여 김창수에게 묻자 김창수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러곤 눈을 떠 리안을 보며 말했다.

    “당신들의 존재를 제논의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르는 것이 아니오. 물론 어떤 자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마스터만큼의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라고 알고 있겠지. 소문이란 그런 것 아니겠소? 당신들이 움직여 줘야 우리 전체의 사기도 올라갈 것이니 그들의 기대에 응하기 위해서 움직여 줘야만 합니다. 리안, 당신만큼은 이곳에 남아서 상황을 주시해 주시고 에도라에서 빠진 병력들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기 위해 로만과 유르겐이 그쪽으로 이동해 주는게 좋겠네. 동의하는가?”

    로만은 아까와 같이 침묵으로 동의를 표했지만 양으로 변한 유르겐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김창수가 콧방귀를 뀌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가 안도리니 전선으로 가겠네.”

    안나를 보며 말하자 안나가 손사래를 쳤다.

    “안돼요. 여기 계셔야죠. 마스터가 없는데 사령관이라도 본성을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아니지. 이미 나보다 강한 자가 이곳에 있고.”

    김창수가 리안을 보며 말하자 리안이 잠잠히 존경을 표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자가 우리를 지켜 줄 거라고 믿네. 어차피 우리는 한 배를 탄 사이 아닌가?”

    그는 옅은 웃음을 띠며 목을 한 번 풀고는 준비실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멈칫했다.

    김창수는 리안을 돌아보며 말했다.

    “제논 식구들의 죽음을…… 쉽게 막을 수는 없겠지만 마스터가 돌아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 보겠네. 이들의 미래가 정말…… 좋아질 수 있겠는가?”

    “우리가 노력한다면 말입니다.”

    리안의 무게 실린 말에 김창수는 문고리를 잡고 당당히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로만은 이번에 생각보다 오래 양 변이가 이어지고 있는 유르겐을 어깨에 끼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리안은 그제야 의자에 앉았다.

    엘라가 스태프에서 정령 모습으로 변해 공중을 부유했고 리안은 고민에 휩싸였다.

    리안은 전투 마법사였던 돌체를 기억한다.

    사실 그는 오아시스에서 마법사로서 어느 정도 이름을 날린 자들을 전부 기억하는데 그중에 돌체도, 앤도 있었다.

    그러나 돌체는 늘 자신의 마력을 어떤 스태프와 공유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지리적인 제약을 크게 받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의 실력은 출중했고 마법의 이해도도 좋았으며 특유의 마나 질이 굉장히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기에 근접 전투 능력까지 겸비한 자여서 개인적으로 놀라웠다.

    그랬던 돌체가 에고 장비가 되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가 파괴되었다는 것도 그저 떠도는 소문과 이야기로 들었을 뿐 언제나 리안은 세계에 관여하지 않으며 내일을 향해 걸어가기만 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유심하게 지켜볼걸.

    그가 천계의 마스터키였다면 조금만 더 유심히.

    천계가 깨어난 순간이 지금이 아니라 더 앞이었다면 현재가 어떻게 변했을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다 리안은 문득 입가에 미소를 띠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래, 어차피 그의 설계 안에 지금 이 순간도 있었을 테니, 이제 그 결과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는 수밖에.”

    “네?”

    안나가 묻자 리안은 그저 고개만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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