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61화 (161/200)
  • ◈161화

    에도라의 깊은 숲 속.

    사람들의 인적도 닿지 않고 우렁찬 짐승형 몬스터들의 울음소리만 가득한 이곳에서 앤은 처음으로 오래된 나무의 한가운데 마치 보호를 받고있는 듯한 모습의 낡은 지팡이 한 자루를 발견했다.

    우연은 아니었다.

    에도라 북부 플레이어들조차 찾지 않는 오래되고 낡은 빈민촌에 숨어든 한 마법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물어물어 결국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다.

    앤은 강해지고 싶었다.

    자신이 대륙의 최고가 되고 싶었다.

    그녀는 야망이 있었고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선 평범함을 거부해야 했다.

    머리만 똑똑하다고 모두 같은 힘을 가진 마법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특별한 오브젝트가 필요했고 그것이 마법의 컨트롤을 더욱 정교하게 해 주는 마법사의 필수 무기 스태프라면 금상첨화였다.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보다 역사 속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그런 스태프가 필요했다.

    지금 그녀 앞에 있는 이 지팡이는 그 모든 조건에 딱 맞았다.

    그녀가 막 그 지팡이에 손을 대려는 순간 앤은 예상 외의 공격을 받게 된다.

    어떤 젊은 남자가 그녀를 가로막고 선 것이다.

    전투 마법 계열의 마법사로 보이는 그는 그렇게 앤과 장장 2주에 걸친 거친 싸움을 하게 된다.

    둘을 지루한 싸움을 이어 갔고 남자는 끝내 앤에게 이기지 못할 것 같자 나무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 지팡이 자체를 파괴해 버리고 말았다.

    앤이 절규했지만 그때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지팡이가 파괴되자 그 지팡이에 담겨 있던 마나가 사방으로 폭발해 퍼져 나가다가 다시 남자의 가슴으로 온전히 흡수된 것이었다.

    남자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지친 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으나 몇 시간 뒤 다시 그를 찾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될 것 같았다.

    앤은 그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한참 그를 돌봤다.

    남자의 몸 전체엔 정갈하지 못한 마나가 군데군데에서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을 전체적으로 평온한 흐름을 만들어 내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도 몰랐다.

    마법사라는 직업은 고독했다.

    앤은 그 고독을 씹으며 이제까지의 플레이를 이어 왔다.

    이 괴이한 우연과 인연은 자꾸 앤의 발목을 이곳에 묶어 잡았다.

    남자는 한낱 로직으로 짜인 프로그램에 불과했지만 이제까지 수도 없이 많은 프로그램을 죽이며 게임을 즐겨 온 그녀였어도 이 남자만큼은 그렇게 대할 수 없었다. 이상했다.

    남자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앤은 다시 빈민촌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늙은 마법사는 혀를 차며 앤에게 말했다.

    “그 녀석이 깨어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건가? 그 끝이 결코 좋지 않을 텐데도……? 정, 네 의사가 그러하다면 더 이상 눈 뜰 수 없는 그자를 깨우려거든 그자와 계약을 맺게나. 자.”

    늙은 마법사가 준 마법서에는 자아를 가진 존재와 계약을 맺는 괴이한 마법술식이 담겨 있었다.

    이런 종류의 마법 구성은 보통 소환 계약을 맺을 때 종종 활용하는 계약의 일종인 것 같았으나 디테일하게는 몇몇 술식이 달랐다. 그녀의 입장에선 처음 보는 술식이었다.

    하지만 지체할 순 없었다.

    앤도 알고 있었다.

    그에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앤은 곧장 술식 연구에 들어갔고 온전히 그 술식 전부를 이해하고 나자 바로 남자에게 술식을 펼쳤다.

    남자는 술식에 의해 깨어났고 앤은 남자가 깨어나자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비록 그와 묶인 관계라고 할지라도 그를 구속할 생각은 없었다.

    몇 달을 그렇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어떤 조직과 거래를 하던 앤은 그들의 배신에 의해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녀가 죽음의 문턱에 도달했다고 느낄 때 돌연 그 남자가 자신의 앞에 갑작스레 나타났다.

    앤을 발견한 남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러 온 듯 모습을 숨기고 전투를 시작했다.

    그렇게 주변은 남자에 의해 정리되기 시작했다.

    너무나 쉽게 그녀를 구해 낸 남자는 그때서야 웃으며 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돌체라고 합니다.”

    돌체와 앤의 본격적인 인연은 그때부터였다.

    그들은 그 이후로 정말 오랜 시간 함께 산전수전을 다 겪어왔다.

    더불어 아이러니하게도 돌체가 앤의 통제에 의해 스태프 형태의 무기화가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날의 술식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돌체는 자신의 몸이 지팡이로 변한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며 최대한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둘의 여정은 마냥 즐거울 것 같았다. 그러나 늙은 마법사의 예언처럼 그 끝이 도래했다.

    신생 왕국 축복 연회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들은 이미 돌체라는 독특한 형태의 무기를 알고 있었다.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마법사 앤을 초대하여 그녀와 인맥을 쌓으려 했던 왕국의 입장은 위장이었다.

    연회는 그들을 잡으려는 함정이었고 이들은 방대한 물량과 마법 무효화 스킬을 통해서 그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함께 합을 맞춰 왔기에 전투에서는 거의 일심동체나 다름없었던 앤과 돌체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싸움이 길어지면서 마나도 동이 나기 시작했다. 노련한 전투 흐름을 유지하기엔 벅찬 수준까지 내려가자 그들은 잔혹한 소멸 마법으로 적들의 정신력을 무너트리려 했다. 사지가 절단 나 죽으면서 로그아웃되는 플레이어들이 속속 나왔지만 그럼에도 적들은 완강했다.

    돌체는 앤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많이 지쳐 있었다.

    방법이 달리 보이지 않았다.

    그녀와의 여러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선택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앤의 목숨이다.

    앤의 목숨이 끊어져야 그들 사이의 괴이한 계약은 파기된다.

    그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자신에게 강제 계약을 진행하려 할 것이다.

    그럴 순 없다.

    그렇게 둘 순 없었다.

    돌체는 전투 마법사답게 한 손에 쥐고 있던 마법이 각인된 룬 검에 남아 있는 모든 마나를 담았다.

    화염으로 사방을 터트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앤을 바라보곤 그는 옅은 웃음을 보였다.

    앤은 직감적으로 그가 어떤 행동을 하려는지 예상했다.

    동공이 커졌다.

    가뜩이나 터질 것만 같던 심장이 더 크게 요동치는 것 같았다.

    긴 시간 그와 함께 여행하며, 동반하며 걸어간 시간 동안 그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이 있었다.

    그것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녀에게 그 작은 소망을 허락하지 않았다.

    돌체는 자신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다.

    찔러 넣는 순간 그의 몸이 찬란한 빛과 함께 움츠려졌다가 그 빛 속으로 집어삼켜 졌다. 빛은 사방으로 퍼지며 앤을 제외하고 주변에 닿는 모든 생명체들을 폭발시켰다. 그리곤 두 동강 난 스태프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저 년을 죽여라!”

    신생 왕국의 분개한 국왕은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던 폭발 속에서도 그를 보호하던 수호대의 희생에 의해 죽지 않았고 그의 증오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전히 그들에게 남은 병력들이 있어서 사방에서 다시 앤을 향해 밀려들어 왔다.

    앤은 떨리는 손으로 두 동강 난 스태프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달려드는 왕국의 병력들은 그녀가 쳐 놓은 베리어에 부딪쳐 아우성이었지만 앤은 대답 없는 돌체를, 이젠 차가워 아무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 나무 막대기 두 조각을 품에 안고 하염없이 울부짖었다.

    그때였다.

    이미 왕국의 본 성채라고 부를 수도 없는 산산조각 난 그곳에 거대한 드래곤의 마나와 브레스가 뿌려졌다.

    드래곤의 울부짖음은 왕국의 모든 병력들에게 공포를 주었고 사방에 펼쳐지는 살기가 모두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

    드래곤은 공중에서 가볍게 지면으로 날아와 앤이 쳐 놓은 베리어를 입에 물고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앤은 베리어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적막한 숲의 공터에서 드래곤은 조심스럽게 앤을 내려놓았다.

    베리어가 사라지고 앤은 이제 마른 눈물을 지닌 채 드래곤을 올려다보았다.

    드래곤은 가만히 앤을 바라보다가 인간의 형태로 천천히 변화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그는 오래전 앤에게 계약 술식을 알려 줬던 그 늙은 마법사였다.

    앤은 그에게 달려가 로브 자락을 쥐고 흔들며 애원했다.

    다시 한번, 더 어려운 술식이라도 좋으니 한 번 더 방법을 알려 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늙은 마법사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손을 앤의 머리 위에 대고 작게 말했다.

    “아이야, 인연이라는 것은 언젠가 또 찾아오는 법이란다. 대신 내가 너에게 위로의 선물을 주리니.”

    앤은 그렇게 그에게서 용의 가호를 받았다.

    그리고 늙은 마법사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다.

    앤은 자신의 몸에 감도는 또 다른 마나의 흐름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녀가 원한 것은 이 힘이 아니었기에 앤은 그날 그곳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눈물 없는 울음을 뱉어야만 했다.

    * * *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에트론은 고개를 갸웃했다.

    전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특별한 힌트를 찾을 수 없었다.

    대천사장 돌체는 정말 오랜 기간 천계에서 정지되어 있었다.

    모두가 정지의 축복을 받아들일 때부터 자신이 무기고를 맡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긴 기간이었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대천사장은 다른 천사장들과는 다르게 천계 전체를 다스리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누릴 수 있는 무기 역시 다양하나 그중에서도 ‘돌체’라는 스태프는 자신의 영령을 담아 놨을 만큼 애정하는 무기였다.

    “뭐 특별히 없어?”

    에트론의 반응을 살피던 유르겐이 침묵한 채 가만히 에트론을 목이 빠져라 바라보고 있는 앤의 시선을 느끼며 물었다.

    에트론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르겐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푹 쉬다가 손뼉을 짝 치면서 물었다.

    “아니, 근데 너는 그 중요한 걸 어떻게 잃어버렸어?”

    에트론이 유르겐을 노려보곤 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말했다.

    “제가 잃어버린 게 아니에요. ‘돌체’가 자기 스스로 무기고를 벗어난 거죠.”

    “무기고를 스스로 벗어나?”

    “예, 돌체는 ‘영령’이 깃든 무기에요. 이는 당신네말로 ‘에고’가 담겨 있다고 해석해 볼 수 있죠. 다른 무기들이야 무기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 같은 곳에서 머물러도 아무런 감정도, 느낌도 없지만 ‘돌체’는 달라요.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하드린과 더불어 벗이 되어 주었지만 녀석은 무기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무기고에 있고 싶지 않아 했어요. 앤 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에트론이 앤을 힐끔 보고는 말을 이었다.

    “이 중간계에서 그 나름의 행복을 찾은 것 같긴 하네요.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지팡이의 형태를 따로 유지하는 방법도 깨달은 것 같구요.”

    앤의 얼굴에 아쉬움과 아련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랍니다.”

    “……네?”

    “그러나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무엇을요?”

    앤이 에트론에게 재차 물었다.

    “감히 대천사장의 영령을 파괴한 죄를 그분께서 직접 물으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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