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46화 (146/200)
  • ◈146화

    “예?”

    정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고통을 느끼지 않게 다시 어떻게든 오아시스의 세계 속으로 보내 달라고 할 것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드웨이크는 단호했다.

    “저는, 제논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아마, 그쪽에서도 어떻게든 저를 살려 보려 했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겠죠….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마스터의 노력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신 거잖습니까. 이런 불필요한 장면까지 보실 필요는 없으셨을 텐데, 부디.”

    드웨이크가 거친 호흡을 잠시 진정시켰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를 최대한 오래, 그 세계에서 안전히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 바람은… 그것뿐입니다. 이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마스터밖엔 없습니다. 보셨으니, 아시겠지요. 느끼셨겠지요….”

    어쩌면 드웨이크는 지금 오아시스와 현실 세계에 각각 발을 디딘 어정쩡한 상황일 것이다.

    오아시스의 신체는 이미 가사 상태에 들어 빠른 시일 내로 로그아웃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의 그는 다른 이들처럼 죽거나, 혹은 죽을 만큼의 고통 속에서 버티고 버텨야만 할 것이다.

    정혁은 차마 그의 피폐한 신체와 얼굴을 바라보기 어려웠다.

    드웨이크는 눈을 감았다.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더 이상 말할 기운을 잃은 것 같았다.

    저 멀리서 네 기의 드론이 한데 뭉쳐서 고개를 떨군 어떤 사람에게 다가갔다.

    비닐 팩 안에 담겨 있었지만 그 사람은 죽은 것 같아 보였다.

    네 기의 드론은 그 앞에서 뭔가 확인하는 것 같은 작업을 하더니 흩어져 빔에서 팩을 끊어 냈다.

    사람이 담긴 팩을 들고 어딘가로 날아가 사라졌다.

    폐기, 그뿐인 것 같았다.

    드웨이크는 이미 단념하고 있다.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은 그저 현실이다.

    현실 속 인간은 마나도 없고 마법을 부릴 수도 없으며 엄청난 힘과 역동적인 육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게임 안에서는 거대한 몬스터를 큰 창으로 꿰뚫어도 현실에는 비닐에 갇혀 배터리의 역할만 수행하는 이런 비루한 신세인 것이다.

    정혁은 궁금했다.

    왜일까?

    왜 시스템은 자신을 이곳으로 보냈을까?

    왜 그를 만나게 했을까?

    [주어진 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드웨이크의 동의를 얻어야 그를 에고 장비로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의문이 든 순간 이상한 해답이 도출되었다.

    그간 에고 장비들을 획득하며 경험한 그 과정.

    지금이 바로 그 과정 중이라는 것인가?

    ‘드웨이크를 에고 장비로 만들어야 한다고?’

    그렇다.

    그렇다면 드웨이크는 영원히 그 세계에 묶일 수 있다.

    독특한 시스템 안에 잠기게 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현실 속에 깨어났다가 다시 오아시스로 돌아간 사례가 있을까?

    혹여 드론들이 괴이한 충돌을 느끼고 이곳의 드웨이크의 신체를 붕괴시킨다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이건 도박이나 다름없다.

    드웨이크가 곧바로 죽지 않고 오아시스의 세계에 남아 있었던 이유와 그가 이제까지 자신의 여정을 안내했던 첫 번째 길잡이가 되었던 이유가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라면 정혁의 로드맵을 구상했던 사라진 바이러스, 그가 이 부분 역시 어떻게든 방법을 계산해 내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해도 플레이어를 에고 장비로 만들다니 이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이미 상식선에서 벗어난 자신이라고 해도 플레이어를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접근법이다.

    이게 무슨 소용이, 게다가 드웨이크가 에고 장비가 된다고 해서 지금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그때였다.

    - 쿠구광!

    창고의 저 너머가 폭발했다.

    드론들이 일제히 번쩍거리는 빛을 반복적으로 발산하며 폭발한 곳으로 날아갔다.

    사람들에게 꽂혀 있는 줄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뭔가 벌어졌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어쩌면 오아시스, 그 자식이 괴이한 지금 상황을 눈치채고 이 창고를 통째로 날려 버리려고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창고가 얼마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수천, 수만 개가 있을 수도 있다.

    그중에 하나를 버리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겠지.

    그렇다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드웨이크! 정신 차려 봐요!”

    “…뭔가… 어서, 다시 돌아가십시오.”

    드웨이크가 혼미한 정신으로 정혁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바, 방법은 모르겠지만 당신을 다시, 다시 오아시스로 불러올 수 있어요. 내 말 들려요?”

    정혁이 다급히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어깨라도 잡고 흔들어 깨우고 싶었지만 자신은 이곳의 어떤 것도 쥐거나 만질 수 없었다.

    드웨이크의 의식은 점점 더 깊은 공허 속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차피 그는 창고가 폭파되어 신체가 산산조각 나든, 저 괴이한 드론들에 의해 폐기 처분이 되든 이 절망적인 두 선택지밖에 남지 않아 보였다.

    어떤 메커니즘으로 그가 데이터화, 그러니까 프로그램화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그의 신체를 잃더라도 정신만큼은 온전히 살려 가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정혁은 저 멀리 폭발이 이어지고 있는 아득한 창고 끝을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마치 그의 삶을 인도하는 것 같았던,

    알 수 없는 어떤 존재의 계획 안에 드웨이크의 구원 계획 역시 함께하기를,

    이 폭발이 창고의 무너짐이 아니라, 그를 구하기 위한 폭발이기를 깊이 바랐다.

    정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기다릴 시간은 없다. 그를 붙잡고 깨워야만 한다. 방법이 있을까?

    […30초….]

    알람이 흐른다.

    정혁은 두 손에 가득 마나를 흘려 보았다.

    느껴진다.

    손끝에서 찌릿한 정혁의 황금빛 마나가 응집된다.

    정혁은 이를 전력으로 변환시켰다.

    그리곤 그 마나를 온전히 드웨이크의 가슴 한가운데로 쏘아 보냈다.

    일종의 전기 충격.

    드웨이크의 신체가 크게 한 번 진동하곤 그가 큰 숨을 한 번 다시 들이쉬었다.

    그와 동시에 눈이 떠졌고 거친 숨이 몇 번 오갔다.

    “드웨이크! 저는 아직 당신이 필요합니다! 아시겠어요?”

    “…마, 마스터, 저는….”

    “대답만 해요!”

    [……8……7…….]

    “저와 함께 오아시스의 마지막까지 걸어가겠습니까!!”

    “아… 저는….”

    “드웨이크! 예, 아니오! 하나만! 제발!”

    정혁은 알고 있다.

    이 영악한 시스템은 결코 강요로는 계약을 성립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에고 장비가 되는 대상의 온전한 동의가 있어야만 서로 간의 이 독특한 계약이 이루어진다.

    [……3……2…….]

    “……예…….”

    [……1]

    [축하합니다. 오아시스의 대장장이 정혁이 마지막 에고 장비를 획득하였습니다.]

    시스템 알람과 함께 폭발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드웨이크는 풀린 동공으로 정혁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죽었을까…?’

    아득해지는 시야 속으로 정혁 역시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그때 저 멀리서 엄청나게 빠른 몇 대의 금속 물체가 날아든다.

    드론들이 그것들을 따라다니며 마치 격추시키려는 듯 뭔가를 발포하고 있다.

    그 사이 공격을 피한 한 대의 금속 물체가 쓰러진 드웨이크를 낚아챘다.

    그때, 정혁은 보았다.

    그 금속 물체를 조종하며 드웨이크를 낚아챈 자를 말이다.

    ***

    거대한 빛이 정혁은 눈이 부셔 인상을 구겼다.

    또 어딘가로 자신의 몸이 빨려 나가고 있다.

    이상한 경험들이 자주 일어났지만 이제 정혁은 알고 있다.

    자신이 만들어진 목적에 의거 자신은 이런 경험들을 자주 겪을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지금이 이런 경험들을 합리적으로 납득하는 데 적합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지막 숨겨진 퀘스트마저 완료했다.

    드웨이크는 과연 어떻게 오아시스 내에서 다시 살아날 것인가.

    잘 모르겠다.

    다만 그의 신체가 그에 의해서 구해졌다는 것, 그것만큼은 안도할 만한 사실이다.

    어쩌면 오아시스에서 만나는 드웨이크는 그의 정신이 깃든 ‘자신’과 같은 처지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분을 웃프다고 해야 하나.

    동병상련을 겪을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는 사실이.

    황금빛 마나의 따뜻함이 몸을 감싸고 공기의 흐름 속에 오아시스의 마나 향이 스며 들어왔다.

    정혁은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눈을 뜨면 다시 오아시스 속일 거라는 것을 그러나 정혁은 고요함 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은 채로 서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다기보다는 그저 보았던, 혹은 굳이 볼 필요조차 없었던 그곳, 현실 세계.

    그 세계의 참혹함을 다시 곱씹었다.

    “…마스터?”

    적막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드웨이크. 그의 목소리였다.

    정혁은 작게 미소를 띠며 눈을 떴다.

    그의 앞에는 땀에 젖은 면 옷을 입은, 방금 병상에서 일어난 든든한 팀장, 드웨이크가 앉아 있었다.

    정혁은 그와 눈을 마주했다. 오묘한 기분이었다.

    “…이게, 어떻게?”

    “어디까지 기억하나요?”

    정혁이 조용히 물었다.

    아직 그들의 곁에 있던 다른 동료들은 쓰러져 있는 상태였다. 정혁이 잠시 마나를 펼쳐 주변과 공간을 완벽히 분리했다.

    “현실… 제가, 거의 죽어 갔는데.”

    “그곳에서의 기억까지 남아 있나요?”

    “…예… 아니, 그런데, 그럴 리가 없는데.”

    당연한 일이다.

    그에게 주입된 현실의 기억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주입된 기억과 자신이 직접 겪은 기억이 부딪치고 있을 것이다.

    혼란스러울 수밖에.

    “드웨이크, 잘 들어요.”

    드웨이크가 창백한 얼굴로 정혁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신이 고통 속에서 바라본 세상, 그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 세상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이곳에서 하긴 어렵겠지만 그 사실만큼은 잊지 말아요. 직접 경험해서 아시겠지만, 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간….”

    정혁이 아래에 쓰러져 있는 그의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하자 드웨이크 역시 떨리는 동공으로 그들을 돌아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저는 그럼 어떻게 된 겁니까. 현재 제 상태는…?”

    드웨이크는 자신의 신체를 몇 번 만져 보고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지 정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부분은 정혁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정혁이 그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대장장이의 마지막 에고 장비 ‘드웨이크’]

    - 세계에 단 하나뿐인, 플레이어형 무기 ‘드웨이크’를 획득하셨습니다.

    - “정혁”에게 부여된 마지막 퀘스트를 완료 하셨습니다.

    - 이제부터 당신은 세계의 ‘완전한 적’으로 간주됩니다.

    - 이제 당신은 오아시스 프로그램의 바이러스 “A”의 계보를 잇게 됩니다.

    에고 장비는 획득할 때마다 참 해석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정혁은 머리를 긁적인다.

    게다가 이 마지막 문구는 또 무엇인가?

    이에 반해 뭔가를 확인한 듯 드웨이크의 표정이 한 번에 굳어졌다.

    “…마스터… 제겐 이제, ‘주인님’이라고 확인되십니다.”

    “...예?!”

    “그, 주, 주인님이라고 부르… 그래야 된다…고….”

    “…?!”

    정혁이 거의 경기를 일으키는 표정으로 저 땀내 나는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한 단어, ‘주인님’을 듣지 않기 위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니, 아니, 정말로 여기 주인님, 주인님이라고 부르라고.”

    “그, 그만! 그마안!”

    “주인님?”

    “…오아시스 이 개새끼야아아아!”

    어리둥절한 드웨이크와 전신에 소름이 돋아 몸서리치는 정혁, 마나가 걷어지고 쓰러졌던 하늬안과 김창수, 박달수 역시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혁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고 드웨이크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두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하다가 곧이어 제일 먼저 정신 차린 하늬안의 격렬한 포옹에 다시 한번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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