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39화 (139/200)
  • ◈139화

    “롤란 대장! 대장!”

    지상의 진동이 지하까지 이어진다. 롤란의 이름을 부르며 완전무장한 플레이어 하나가 다급히 지하 계단을 뛰어 내려온다.

    넓은 지하 광장의 가운데 돌로 만들어진 테이블 위로 여덟 명 정도의 플레이어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주변에 빛을 뿌리기 위해 펼쳐 놓은 마법구들 사이로 먼지들이 진동과 함께 떨어진다.

    테이블 주위의 사람들은 각자 비장한 목소리로 다양한 전략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 중심부에는 다급히 내려온 플레이어가 찾는 남자, 드워프 롤란이 있었다.

    롤란은 플레이어다. 그것도 꽤나 희귀한 드워프 플레이어.

    드워프는 굵은 팔뚝에 우락부락한 몸으로 겉으로 보기엔 튼튼하고 싸움에 적격같이 보이지만 실은 작은 키와 민첩하지 않은 동작 때문에 비주류 캐릭터로 전락한 종족이기도 하다.

    다만 굵은 두 팔에서 나오는 비상식적인 힘은 비전투 계열에겐 환영받는 특수 능력이었고 실제로 제논의 보수 팀에도 몇몇의 드워프 플레이어들이 존재한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며 롤란은 드워프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훌륭하게 성장하여 드워프로도 할 수 있다는 강렬한 이미지를 세상에 심어 준 방어 전사였다. 그의 강함은 입증되었고 더불어 그가 얼마나 괴짜인지도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상위 랭커로서 드워프라는 특이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흥미를 가진 것도 사실이었다.

    “바깥은 어떤가?”

    롤란이 달려온 플레이어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모두, 모두 도망가고 있습니다!”

    “제기랄….”

    롤란이 작게 탄식하며 옆에 놓인 투구를 머리에 썼다.

    길게 땋은 머리카락과 풍성한 수염이 전형적인 드워프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았다.

    “가지! 안도리니의 초입을 우리가 내줄 순 없네!”

    롤란은 재빨리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지상은 온통 불바다였다. 하늘에는 거대한 황금빛 드래곤이 괴성을 지르며 날아다녔다.

    불의 정령왕이 곳곳에서 휘하 정령들을 만들어 내 사방을 불지옥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주변의 수비 병력들은 투명하고 빠른 마법구에 의해 자신이 사망하는 줄도 모르고 죽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남자가 있었다.

    불길과 참혹한 살육의 현장 속에서도 두 자루의 단도를 각각 손에 쥐고 제멋대로 휙휙 돌려 대며 정확히 롤란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 말이다.

    롤란은 연기와 화염이 만들어 내는 아지랑이 너머로 보이는 남자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며 온몸에 돋아 오르는 소름을 느꼈다. 그는 마치 ‘한’과 같았다.

    “…말도 안 되지 않나…!”

    롤란이 침을 꿀꺽 삼키며 소리쳤다. 그와 같은 생각을 그의 주변에 있는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롤란은 자신의 거대한 방패를 내려치며 정신을 붙잡았다.

    저자는 ‘한’이 아니다. ‘한’은 사라졌다. 아니, 그는 이미 죽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다. 그가 이곳에 있을 수 없다.

    “겁먹지 말고 일제히, 저자를 공격해 봅시다.”

    롤란이 낮은 목소리로 일행을 지휘했다.

    그들은 각기 자신의 칭호에 맞는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유리한 곳을 찾아 나섰다.

    그를 비롯하여 안타깝게도 저 괴이한 남자와 근접 전투를 치러야 하는 넷만이 현장에 남았다.

    롤란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곤 자신의 개인 칭호를 활성화시켰다.

    엄청난 두께의 보호막이 자신과 근처의 모든 아군들에게 형성되었다.

    오직 롤란만이 할 수 있는 최강의 방어도를 자랑하는 외부 쉴드 스킬이다.

    롤란이 인정받은 것 중 하나는 바로 어떤 전투에서도 자신의 휘하 병력들은 최대한 살려 돌아온다는 부분이었다.

    특히나 그를 직접 수행하는 롤란의 수호대 8인은 오랜 기간 단 한 번도 플레이어로서의 죽음 없이 롤란이 지금의 자리에 올라올 때까지 함께했다.

    수도 없이 많은, 목숨을 위협받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롤란은 그들을 죽게 만들지 않았다.

    이런 롤란의 철칙은 8인의 수호대가 지휘하는 휘하의 병력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 그들 역시 자신의 병력들을 죽지 않게 만들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노력했다.

    죽지 않는다는 것은, 자칫 죽음이 가벼울 수 있는 오아시스 안에서도 마음가짐을 고쳐먹고 자신의 능력을 꾸준히 갈고닦아 왔다는 뜻이다.

    실제로 롤란의 부대는 안도리니에서도 강도 높은 훈련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침을 한 번 삼키기도 어려운 압박감을 8인의 수호대뿐만 아니라 롤란까지도 느끼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저자는, 저 남자는 ‘한’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한다.

    어느새 그들의 주변으로 롤란의 정예 병력들 역시 몰려들었다.

    얼추 50명. 이 정도면 레이드에 나가고도 남을 만큼의 병력과 전투력이다.

    최종 보스 정도는 가뿐하게 잡을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다.

    “기합 넣고!”

    롤란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목소리와 함께 병력들의 사기가 일제히 치솟았다.

    특수 버프가 모든 병력들에게 동시에 적용된 듯했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격돌, 롤란의 한 걸음으로 승부가 날 것이다. 훈련 받은 대로, 모두!

    그와 동시에 롤란은 자신의 시야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비이성적이었다.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점점 바닥으로 내려간다.

    충분히 거리를 벌려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남자의 허리춤이 눈앞에 있다. 아, 이제는 무릎, 그리고 발이 보인다. 조금 굴러간다. 시야가 구른다. 남자의 앞에 자신의 몸이 보이는 것 같다.

    ‘아, 졌구나.’

    주변의 모든 병력들의 머리가 전부 바닥으로 떨어져 있다.

    ‘어떻게, 어떻게 찰나의 순간에 모든 병력들의 모습이, 아니, 이게 말이….’

    정혁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플레이어는 죽으면 일정 시간이 지나 시체가 사라진다.

    그러나 네임드 플레이어의 경우 이를 쓰러트린 상대 플레이어가 원할 시 그의 일정 부위는 소장할 수 있다.

    정혁은 롤란의 머리를 들었다. 그의 투구를 벗기고 죽은 플레이어이기에 사라진 동공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너는 어디로 갔을까, 롤란.”

    정혁은 그의 두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웃으며 허공으로 머리를 던졌다.

    인벤토리가 열리고 그 안으로 그의 머리가 사라졌다.

    “에드가!”

    정혁이 고함치자 곧 엄청난 강풍과 함께 에드가가 그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정혁이 뛰어올라 황금빛 드래곤 위에 올라탄다.

    에드가의 등에는 조가 만들어 준 안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는 정혁의 손에 쥐어질 수 있는 끈이 연결된 재갈이 물려 있었다.

    에드가는 자신이 말이 된 것 같다며 몸부림쳤지만 정혁은 가뿐히 그의 불만을 무시했다. 사실 그가 데리고 있는 에고 장비들의 성격이 하나같이 정상적이지 않아서 이 정도의 불평불만은 정혁에게 큰 영향을 주지도 못했다.

    잔여 병력들이 무너진다. 안도리니의 현대 기술들, 즉, 현실 세계의 현대 기술들을 그대로 구현해 놓은 이 도시가 불길과 함께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정혁의 눈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저 멀리 이 도시를 향해 전진하고 있는 제논과 욘마곤의 연합 병력이 보였다.

    그는 그때서야 김창수를 떠올렸다.

    사령관을 만나지 않고 독선적으로 행동했기에 그에게 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시간이 금이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정혁이었기 때문에.

    [에트론.]

    그의 전음에 에트론이 재빨리 그의 곁으로 날아왔다. 그러곤 무기고를 열어 영궁 아르간티아를 꺼내 주었다. 정혁과 에트론의 유대가 깊어짐에 따라 각 무기들의 고유 능력들의 파괴력이나 효율적인 사용법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했다.

    영궁 아르간티아는 이제 단순한 광역 공격에서 벗어나 원하는 타깃을 완전히 말살시킬 수 있는 타깃 유도 기술까지 가지게 되었다.

    정혁이 활시위를 당기자 전보다 월등히 큰 크기의 화살이 생성되었다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화살비 세례가 불덩이 속으로 쏟아진다.

    도시는 더욱 밝아졌다. 동시에 비명과 고함이 훨씬 커졌다. 그를 뒤로하고 영궁을 다시 무기고에 반납 한 뒤 정혁은 연합의 병력들을 향해 날아갔다.

    [정리해 줘, 전부.]

    라테와 에트론은 정혁의 명령에 따라 군말 없이 주인을 잃은 도시 롤란의 불칼에 잔여 병력들을 깔끔하게 정리해 갔다.

    ***

    “정지.”

    김창수의 말에 모든 병력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정혁의 기운을 느낀 물의 정령왕 녹턴과 이프, 그리고 왈로가 그의 곁에 있었다.

    급히 병력을 추려 불칼을 향해 나아가려는 찰나 녹턴이 합류한 것이다.

    그의 말로는 정혁의 기운이 사뭇 달라졌다고 했다. 김창수 역시 그의 돌발 행동에 대해 약간은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제논의 지도자이자 마스터라곤 하지만 혼자서 독선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행여 그가 잘못되었다간 그의 어깨에 기댄 모든 플레이어들과 세계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절대 다수와 한 개인의 싸움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한 개인의 생사를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이를 너무도 잘 아는 김창수이기에 정혁이 적어도 제논의 병력들에게 기대고 의지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지금껏 사력을 다해 훈련해 오지 않았는가? 그

    러나 지금의 행동은 이제까지의 정혁의 행동에 비해 괴이하다. 그의 심경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녹턴의 말대로 불칼에서 전해져 오는 그의 기운은 뭔가 달랐다. 불쾌…했다.

    그… ‘한’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앞엔 모두가 공포에 떨 만한 크기의 거대한 황금빛 드래곤과 그의 등 뒤에 올라 타 고삐를 쥐고 있는 정혁이 내려앉았다.

    정혁은 가뿐히 드래곤 위에서 내려온 뒤 김창수에게 다가왔다.

    “사령관님!”

    옅은 웃음과 함께 김창수에게 악수를 건네는 정혁이었지만 김창수는 약간의 이질감을 느꼈다.

    그의 악수를 얼떨결에 받으며 포옹한 김창수는 다른 이들과 눈인사를 하는 정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니, 저, 드래곤은… 제, 젠트라 아닌가?”

    김창수가 말을 꺼내기도 전 녹턴이 먼저 놀란 듯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 주변의 병력들까지 웅성거렸다. 정혁은 뒤를 힐끔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에드가라는 드래곤입니다. 젠트라와는 완전히 다른 드래곤이에요.”

    일전의 만남보다는 많이 누그러진 정혁의 반응에 녹턴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아닐 텐데. 세계에 황금빛 마나를 가진 드래곤은 젠트라 하나뿐이야, 내가 그를 아는데?!”

    에드가가 불편한 듯 콧김을 뿜었다. 그리곤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나를, 그와 비교하지 마라. 고작 물의 정령왕 주제에.”

    녹턴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하기야, 그 역시 세계가 만든 존재. 어떻게 보면 젠트라와 동일한 위치에 있는 자다. 그를 무시하는 발언은 녹턴의 입장에선 불쾌하기 짝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 아니군, 너는 젠트라가 아냐.”

    녹턴이 고개를 저으며 이해했다는 듯이 대꾸했고 에드가는 아주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자초지종을 좀 들어야겠네.”

    김창수가 정혁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러자 정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좀 걸을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