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35화 (135/200)
  • ◈135화

    정혁이 스킬을 활성화하자 고대룡, 젠트라의 온몸이 순식간에 그의 마나로 다시 뒤덮였다.

    그러곤 전신의 형체가 흐릿해지다가 점점 날렵한 두 자루의 단검의 모습으로 압축되어 변화하기 시작한다.

    [네 번째 에고 장비 ‘고대룡 젠트라’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뭔가, 시스템 알림 창 역시 일종의 업데이트가 된 것 같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네 번째 에고 장비를 획득함으로써 히든 퀘스트이자 세계 퀘스트의 마지막 장을 최초로 클리어했습니다.]

    [마지막 퀘스트: 본질을 깨달은 자 완료]

    [칭호 ‘시간의 주관자’를 획득하였습니다.]

    - 당신은 이제 시스템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시스템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 다만, 매일매일 시간 정지는 10분의 제한을 가지며 앞으로 당길 수도 뒤로 미룰 수도 없습니다.

    - 고대룡 젠트라의 완전한 소멸로 당신은 이제 홀로 유일한 시간의 마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 주의 : 시스템이 당신의 능력을 알아차릴지도 모릅니다. 활용에 주의하세요!

    - 마나에 대한 이해도와 활용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 마나를 이용하는 스킬들과 각종 장비들, 제작 및 수리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효과가 증대됩니다.

    정혁은 자신의 새로운 칭호 창을 잠시 접어 두고 먼저 눈에 띄었던 마지막 퀘스트를 열어 보았다. 본질을 깨달은 자. 퀘스트의 내용은 이러했다.

    -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을 독특한 존재.

    프로그램이지만 플레이어의 기억을 이식받아 스스로를 플레이어의 본체라고 여긴 존재.

    그리고 그 힘과 능력을 온전히 활용하려 노력했던 존재. 앞으로의 행보에 마지막 최종 장의 엔딩이 결정됩니다.

    정혁은 뚱하니 퀘스트의 내용을 읽어 내리곤 양손에 쥐어진 두 단도를 바라보았다.

    고대룡의 기운이 넘치는 단도였다.

    검은색 짙고 탁한 검신을 가졌으나 검날만큼은 황금빛으로 빛난다. 손의 그립감이나 무게는 악몽의 비수와 똑같다. 손잡이 부분 역시 황금색이었는데 까끌까끌한 느낌이 마치 용의 비늘 같았다.

    다른 에고장비와 다른 점이라면 이 녀석과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점과 또 한 가지는 이 에고 장비만큼은 정혁의 마나를 당겨 쓰는 방식이 아닌 자체적으로 마나를 뿜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정혁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러고 보니 의문이었다. 나를 정혁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이 기억, 이 모든 것들 전부 입력된 것이라면 나는 무엇일까?

    “정혁.”

    라테가 다가왔다.

    정혁은 가만히 라테를 바라보았다.

    “지금 자네의 괴로움은… 어쩌면 축복과 같은 걸세.”

    “…무슨 소리야?”

    “기분이 어떤가? 내가 플레이어가 아니라 본래는 일개 프로그램이었다는 사실이. 자, 보게. 이제 나는 어떤가? 저기 저 엘라는 어떤가? 어떤 느낌이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느껴지지 않나?”

    정혁은 엘라와 라테를 돌아보았다. 에트론 역시 그의 곁을 빙글 돌며 날아 엘라의 어깨에 매달려 정혁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그래, 사실 이제까지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플레이어와 프로그램. 즉, 몬스터까진 아니더라도 함께 울고 웃었던 여러 NPC들과 그들이 모여 만들어진 국가들, 어쩌면 아린도 마찬가지 아닌가?

    일전에 만난 나이트엘프 이프 역시도 같으며 은행나무 엘프 왕국 역시 동일하다. 죽으면 결국 끝인 자들.

    그 다음은 없는 자들.

    기억을 모두 잃고 초기화되어 재사용되거나 혹은 아주 복구되지 않는 자들.

    “생각해 보게. 결국 플레이어도, 우리도 동일한 입장이었던 거네. 플레이어들은 로그아웃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왜곡된 사실을 주입받은 것이고, 우리는 그런 사실조차 모른 채 이곳이 현실이라 생각하며 살았던 거지. 오히려 모르는 편이 훨씬 좋았을 거야. 사실을 알았다면 자네처럼 정신이 나갈 정도로 심각한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고 삶의 의욕 자체를 잃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자네는 이미 어느 정도 세계에 대한 이상한 점들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들어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 정도에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다른 이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을 수 있어.”

    라테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가이아. 그녀는 이 모든 사실을 알았지. 그리고 오직 나에게만 먼저 이 세계의 진실, 그 일부를 보여 주고 납득시켜 주었어. 젠트라가 말했던 리셋이 진행되면 그녀와 젠트라를 도와주던 ‘그’가 리셋의 과정에서 그들의 정신만 온전히 유지시켜 주었고 가이아는 모든 기억이 초기화된 나를 붙잡고 또 이 모든 사실을 알려 주는 괴로운 짓을 이제까지 다섯 번이나 해 댔던 것일세. 알겠나? 내가 말하려는 것을?”

    정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는 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거네. 자네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겠지. 우리가 고통스러웠다는 것은 결국 이 모든 사실들을 속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들은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거네. 적어도 자기 마음대로 모든 이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소비하는 빌어먹을 ‘오아시스’라는 녀석을 박살내는 것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나?”

    정혁은 라테의 말을 곱씹었다.

    젠트라가 정혁에게 해 줬던 그의 존재 가치에 대한 장황한 말들도 되새겼다.

    혼란스럽고 고통스럽지만 어쩌면 자신은 이제까지 오아시스의 긴 역사 속에서 그 어떤 이도 해내지 못한 일들을 해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일개 보이지도 않을 프로그램이 선택받아 뿌리와도 같은 시스템을 전복시킨다.

    그리고 에너지 자원 취급이나 받던 인간들의 실제 세계의 해방을 돕는다.

    대의와 명분에 목적을 두며 마음을 잡으려 해 봐도, 억울함을 감출 길은 없다.

    ‘한’과 같은 성격 때문인지 이해되지 않고 타산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판단이 강하게 일어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성격을 가졌다 하더라도 정혁은 종종 그와 정반대되는 행동들을 하곤 했다.

    사람들을 챙기고, 무리를 가다듬고, 용기와 힘을 주고자 했던 이제까지의 행동들은 결코 ‘한’과 같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 행동들은 종종 거북하게 다가왔었다.

    자신이 ‘한’이었음에도 그의 본래 성격처럼 완전히 냉철하고 잔혹한 사람이 되지 못했던 것.

    알 수 없는 내면의 이질감.

    이제는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것은 어쩌면 본래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성품과 충돌해서이지 않았을까.

    지금 이 불쾌한 감정 속에서도 정혁은 계속해서 자신의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하늬안을 떠올린다.

    그녀에게만큼은 이 사실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라테의 말대로, 이 사실을 믿어 줄 리도 없고 믿는다 해도 고통일 뿐.

    결국 정혁은 자신의 손으로, 그들과 함께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서 싸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한’의 마음을 누른다.

    억눌러 본다.

    ‘그래, 그것에 정의를 두자. 그것에 목적을 두자.’

    지금 이 존재들.

    나와 함께 엮어 세계의 진실을 알고도 함구한 라테와 엘라, 그리고 에트론.

    제논의 귀한 동료들.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들과 앞으로 걸어갈 길들.

    억울하다고 해서 엄한 곳에 화날 필요는 없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그놈. 그놈 하나만 조지면 되는 것이다.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모든 것이 깨끗해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정혁은 지금 상당히, 이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강해져 있었다.

    새로운 칭호는 그에게 무려 10분이라는 광범위 시간 정지 스킬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일전에 유르겐이 정지시킨 시간보다 월등히 긴 시간이다.

    아마 이 이상으로 사용했다간 ‘오아시스’ 그놈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자신에게 씌워진 사라진 ‘그’의 마지막 위장막이 벌써 걷어지면 안 될 것이다.

    이 시간을 쪼개서 자신이 유리한 타이밍을 잡는데 활용하면 그만이다.

    또한 마나석 동굴에서의 시간들이 마나에 대한 숙련도를 올려 주고 젠트라와 마나를 공명하면서 이젠 숨 쉬듯 마나를 유연하게 회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에고 장비들에게 안정적으로 마나를 공급하고 그 힘을 폭발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정혁은 단도를 두어 번 돌려 뒤춤에 찔러 넣은 뒤 양손에 마나를 집중해 사방으로 퍼트렸다.

    그러자 다시 시간이 멈춘 그 순간으로 돌아갔다. 에드가의 검날이 자신의 목 안쪽으로 파고드는 그 순간 말이다.

    정혁은 조심스럽게 손을 목 옆에 댔다.

    그리고 시간이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곧 그의 손엔 에드가의 검날이 딱 들어와 잡혔다.

    완벽히 그의 목을 베고 들어갔다고 판단한 에드가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검을 놓치곤 바닥을 몇 번 굴렀다.

    재빨리 자세를 취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목이 아니라 수치로 잴 수 없는 수준의 강도를 가진 강철과 부딪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정혁이 있었다.

    라테와 엘라 그리고 에트론 역시 함께 있었다.

    정혁은 에드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짜가 주제에.”

    그의 도발은 에드가의 이마에 핏줄을 세우기에 충분했다.

    그가 다시 달려들려 하자 정혁은 그의 에고 장비들에게 뒤로 물러나 있으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그

    러곤 자신의 새로운 단검 ‘젠트라의 송곳니’를 사용해 에드가의 강렬한 검기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순간 에드가는 깨달았다. 자신의 검기는, 그리고 검은 결코 정혁을 벨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짧은 순간 정혁은… 진짜 젠트라를 만난 것 같았다.

    전신에 휘몰아치는 마나와 힘, 저 특별한 무기. 이 모든 것이 증명한다. 정혁은 젠트라를 만났다.

    에드가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감히 이 세계에 나를 감정 찌꺼기 수준으로 여기며 방치해 놓고 오랜 시간 고독했던 자신에게 유일하게 나타난 장난감마저 채 가려고 한 것이 아닌가.

    아니다. 그렇게 둘 순 없다.

    녀석에게 젠트라의 초대장을 준 것도 강한 힘을 탐하며 결국 이곳까지 오게 만들기 위함이었지 그가 진정으로 젠트라를 만나길 원한 것은 아니다.

    젠트라는 없어졌으니까! 사라졌으니까! 더 이상 만날 수 없으니까!

    그저 토큰 안에 담긴 젠트라의 아주 작은, 소량의 마나가 정혁에게 작은 희망을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왜, 어째서 젠트라는… 젠트라는 자신이 아니라 이 인간 나부랭이를 만나 준 것인가!

    그 마지막 힘을 다해서, 왜 자신이 아니라 이 빌어먹을 자식에게 자신의 나머지 힘들을 모두 부어 준 것인가?

    ‘나는, 나, 에드가는 아무리 감정의 조각이라고 해도! 결국 젠트라인데 왜 나는 아닌 것인가!’

    정혁은 느꼈다.

    에드가의 움직임과 검의 끝에 감정이 실려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농도가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녀석은 지금 평정심을 잃고 있다.

    구태여 시간을 정지하지 않아도 이젠 그보다 월등히 강해진 정혁이었다.

    천계에서 빌렸던 단도는 악몽에 비수에 근접했지만 그만큼의 힘을 발휘해 내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이 녀석은, 이 무기는 정말 완벽 그 이상이다.

    또한 자신의 마나와 공명하여 장비 자체의 능력치가 극대화되어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이 짜릿하고 좋았다.

    그때서야 정혁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정말 압도적인 강함을 이 타이런 대륙 전체에 떨칠 수 있겠구나

    .

    어쩌면 그 회색 옷을 입었던 오아시스의 남자나, 리안과 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뒤처지진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에드가.”

    정혁이 자세까지 흐트러지고 있는 에드가의 오른쪽 품속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에드가는 시선으로 그를 쫓지 못했다.

    “억울해?”

    그는 물음과 함께 에드가의 오른 팔을 날려 버렸다.

    “억울하냐구.”

    그와 동시에 왼쪽 팔도 날아갔다. 에드가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정혁은 천천히 에드가를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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