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31화 (131/200)
  • ◈131화

    정혁은 가만히 숨을 고르며 에드가를 주시했다.

    에드가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응접실의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않았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젠트라를 만난 적 있는 존재는 라테뿐일 것이다.

    정혁은 계속해서 라테의 눈치를 살폈지만 라테는 에드가의 등장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반갑다는 뉘앙스의 표현을 일절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뭐랄까 어색하고 불편한 기색으로 계속해서 이 낯선 황금빛 용을 경계하고 있을 뿐이었다.

    적어도 정혁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에트론도 엘라도 조도 상대적으로 편안해 보이는 에드가 앞에서 굳어진 채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전음조차 흐르지 않는 적막.

    정혁은 점점 자신의 신경이 곤두서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으며 다시 한번 깊은 숨을 들이 쉬었다가 내쉬었다.

    이 망나니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까?

    마치 제동장치 없이 설치된 시한폭탄, 아니 핵폭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정혁은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과거의 자신 역시 만만치 않은 미치광이였다고 자부했었다.

    그러나 에드가는 마치 재야의 숨은 고수처럼 미친놈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수준의 농도 짙은 미친놈이었다.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을 기반으로 상대를 짓눌러 버리고 그 위에서 춤이라도 출 놈이었다.

    “잔머리 엄청 굴리고 계시네요?”

    에드가가 빙글거리는 웃음으로 정혁을 쳐다보았다.

    한순간 그의 눈동자가 파충류의 눈처럼 가늘게 모였다가 다시 돌아왔다. 섬뜩했다.

    전후 사정 따위는 잘 모르겠다만 에드가에게 느껴지는 마나는 자신의 마나와 결이 같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변하기 전의 모습도 영락없는 젠트라의 모습이었다.

    그 전설 속에 표현되는 황금빛 드래곤 말이다.

    기운도 기세도, 힘과 마나도 모두 그는 젠트라였다.

    그렇다. 정혁은 지금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태초의 드래곤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과 다시 한 번의 대결을 요구했던 그놈과 말이다.

    “웃기지 않아요? 아니, 뭐 지금은 그런 생각도 안 드시겠지만.”

    에드가는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뭔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나도 젠트라의 일부인데, 왜 내가 당신에게 초대장을 주었을까?”

    에드가는 정혁을 주시하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뻐근한 듯 몸을 푼다.

    정혁은 몰려 올라오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젠트라, 그 양반은 참 영악해. 모르죠? 몰랐죠?”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마치 자아분열이라도 일으키는 것 같은 에드가의 태도에 모두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에드가는 정혁에게 일어나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정혁은 그의 손짓에 특별히 반항하지 않고 일어섰다.

    에트론과 엘라, 그리고 라테까지 모두들 정혁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기 위해 나름의 대안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에드가는 정혁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손가락으로 그의 어깨에서부터 가슴까지 쓸어내렸다.

    그러곤 가슴의 한구석, 심장의 중심부에서 손가락을 멈추고 그곳에 자신의 마나를 집중시켰다.

    에드가의 손가락에서 황금빛 마나가 흘러나와 정혁의 몸을 정확히 관통했다.

    한 줄기의 마나는 정혁의 몸을 관통하자 엄청나게 굵고 거대한 마나 줄기가 되어 그의 등 뒤로 튀어나왔다.

    에드가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봐, 이거.”

    “…적당히 하게.”

    라테가 불쾌하다는 듯이 작게 한마디 했다.

    에드가는 뒤를 휙 돌아보며 쯧 소리를 내곤 손가락을 거두었다.

    그러곤 양손을 들어 어깨를 으쓱한 뒤 한층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 육체는 젠트라지만, 내 힘은 온전히 젠트라가 아니야. 아아, 그렇다고 니네들과 비빌 만큼 약해졌다는 건 아니니까 건방 떨지 마. 특히 너, 옛날부터 짜증났던 너 말이야.”

    에드가가 정확히 라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곤 다시 정중하게 정혁에게 인사를 꾸벅하고는 말했다.

    “제게 정혁 님은 굉장히 중요해요, 굉장히! 당신이 있어야 제 나머지 힘들이 채워질 거거든요? 그날, 당장에 당신을 꿀꺽하고 싶었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지더군요. 영악한 젠트라의 장난질이. 당신을 집어삼키려면 당신의 힘이 농익어야 했어요. 잘 익은 과일을 먹어야 탈 없이 맛있게 삼킬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죠.”

    잠깐만.

    정혁은 에드가의 말에서 지금 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환기시킬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내 눈을 번뜩였다.

    그러나 곧 에드가는 알겠다는 듯이 정혁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 웃음마저 섬뜩했다.

    “그래, 당신 그거야.”

    에드가는 순식간에 정혁의 코앞에 서서 양손으로 정혁의 멱살을 쥐고 그를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러나 엘라의 나무뿌리가 지면을 뚫고 올라와 에드가의 두 다리를 단단히 결박했고

    라테의 불덩이가 에드가의 허리를 감싸고 그를 억눌렀으며 에트론이 마법구로 변해 에드가의 뒤통수를 뚫을 기세로 자리잡았다.

    정혁 역시 그의 억센 힘을 느꼈음에도 지금과 그때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양손에 쥐여진 망치, 그리고 지금의 이 힘. 확실히 다르다.

    “하…!”

    그의 하찮다는 웃음과 함께 라테와 엘라, 그리고 에트론은 어떤 파장에 의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러나 정혁은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 나보다 강해?”

    정혁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에드가는 빙글 웃으며 정혁을 쳐다보았다. 아무 말 없이 둘은 그렇게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조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도대체 어떻게 상황이 흘러가고 있는 건지 눈치 보기에 바빴다.

    조의 입장에서는 수십 년 같은 몇 초가 흘렀다.

    “그래! 그래에! 정혁, 야, 한! 그래! 그거야! 그거!”

    에드가가 멱살 잡은 손을 내려놓고 호탕하게 웃어재꼈다.

    그는 손가락으로 몇 번이나 정혁을 가리키면서 계속해서 웃어 댔다.

    정혁은 망치를 잠시 내려놓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오래 기다렸지?”

    그때서야 정혁은 웃으며 에드가에게 농담을 건넬 수 있었다.

    정혁은 깨달았다.

    등장부터 지금까지 놈은 놈대로 최선을 다해 허상의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했다.

    젠트라의 마지막 조각이 맞다. 봉인이 풀린 그의 몸 전체에서 풍기는 힘은 완전히 젠트라의 것이다. 본능적인 전율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에드가가 정혁의 가슴에 손가락을 대고 젠트라의 마나를 관통시키는 순간 정혁은 들었다. 정혁의 가슴 안에서 꿈틀거리며 들려온 전음을 말이다.

    [굴복시켜라.]

    그 한마디였다.

    그러나 그 한마디에는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긴 시간 세상에 버려져 젠트라의 어두운 면을 흡수하며 강해진 에드가는 지금 젠트라의 힘 일부를 취해 젠트라의 모습을 하고 서 있으나 그는 결국 에드가, 젠트라의 마지막 감정의 조각일 뿐이다. 그는 결코 젠트라, 그 자체일 수 없다.

    “싸울 거지? 그치? 한바탕 진하게 그치? 그치? 그렇지?”

    에드가가 흥분한 강아지처럼 안달 난 듯이 정혁을 보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냈다.

    정혁은 자꾸 떠오르는 지난날의 기억을 털어버리며 싱긋 웃었다.

    “진짜만 남는 거야, 알지?”

    정혁의 말에 대답하듯 에드가가 손가락을 딱 쳤다.

    그와 동시에 정혁은 아무도 없는 넓은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대장간과 비슷한 느낌의 이공간이었다.

    오직 전투만을 위해 만들어진 듯 공간에 흐르는 마나는 이질적이지 않고 정혁의 마나와 잘 융합되었다.

    동굴에서의 훈련이 보다 빠르게 활용되는 중이었다.

    저 멀리 황금빛 드래곤이 날아왔다. 드래곤은 우레와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정혁의 위를 높이 날아갔다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정혁은 어깨를 풀었다.

    “에고 장비 활성화.”

    스킬을 읇조리자 어느새 정혁의 양손에 라테의 건틀릿이 형성되었다.

    왼쪽의 빈 공간에 에트론을 각인했다.

    그리곤 바닥에 엘라의 스태프를 꽂아 놓았다.

    에고장비들, 그러니까 모두들 의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들 각각의 힘은 정혁에게 정확히 전달되었고 마나의 흐름을 컨트롤하기 시작한 정혁에게는 본래보다 더 큰 힘으로 와 닿았다.

    정혁의 양손에 망치가 쥐어졌다.

    화염의 망치에서는 열기가 넘치다 못해 흘러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전력은 정혁의 전신을 타고 흘러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황금빛 마나가 정혁의 심장에서부터 눈에 보일 정도로 두껍게 흘러나왔다.

    그것은 정혁의 양 어깨를 타고 두 망치까지 이어졌다가 하나로 합쳐지며 엘라의 스태프까지 나아갔다.

    엘라의 스태프는 정혁의 마나를 받아 순식간에 엄청난 수의 은행나무 잎을 사방으로 펼쳤다.

    그것들은 이제 정혁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에드가는 비상을 멈추고 아래로 빠르게 낙하하기 시작했다.

    정혁은 고개를 들어 낙하하는 에드가를 정확히 노려보았다.

    수많은 은행잎들이 잎창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떨어지는 화살의 수보다 많고 두꺼운 잎창에 전력과 화염이 하나둘 둘러지기 시작했다.

    모든 잎창에 엄청난 힘이 응집된다. 정혁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든다.

    휘익-

    정혁이 휘파람을 한 번 불자 모든 잎창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에드가는 공중에서 순식간에 회전했다.

    엄청난 바람과 마나의 소용돌이가 에드가의 곁에서 발생했다.

    그것들이 잎창들과 부딪쳐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인간으로 변한 에드가가 튀어나왔다.

    에드가는 그대로 정혁에게 달려들었다.

    에드가, 그는 정혁이 기억하기로 타고난 검사였다.

    광기 어린 그의 공격 스타일과 베이고 꺾이면서도 재차 달려들었던 투지를 잊을 수 없다.

    자신의 팔, 혹은 다리를 내어 주더라도 전투를 이어 갈 수 있다면 능히 그렇게 할 작자였다.

    “좋아요! 좋습니다아아아-!”

    에드가의 양 손에 휘어진 모양의 한 손 검이 각각 쥐어져 있었다.

    문제는 검 전체에 둘러진 그의 검기였다. 검기가 거의 2m 가까이 길게 날이 선 채로 드러나 있었다.

    “…해보자.”

    정혁은 이빨을 꽉 깨물면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전력의 망치를 먼저 던져 화염의 망치로 자루를 맞췄다.

    전력의 망치가 직선으로 솟아오르며 일정 거리를 올라가자 사방으로 엄청난 전기를 뿜어냈다. 정혁은 정신을 집중했다.

    마나는 온전히 전력의 망치에 연결되어 망치의 힘을 증폭시켰고 전기는 거의 시야를 잃어버릴 만큼 밝게 빛나며 공기마저 태워 버릴 정도로 강하게 근방에 퍼졌다.

    이 정도로 강하게 힘이 방출될 줄은 예상치 못해 하마터면 본인도 그의 공격 범위에 들어갈 뻔했다.

    그럼에도 에드가는 그 빛을 뚫고 곧바로 정혁에게 다가왔다. 검기가 날카롭게 정혁의 머리 정수리와 옆구리를 스쳤다. 정혁은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검기를 피하고 동시에 빠르게 쇄도하는 에드가의 두 검을 화염의 망치로 튕겨 냈다.

    타이밍 좋게 전력의 망치가 다음 공격을 이어 가려는 에드가의 뒤통수로 내려왔고 정혁은 에드가의 다음 공격을 피해 내며 그의 어깨를 걷어차 반동으로 전력의 망치를 쥐었다.

    그러나 그 틈에 에드가는 정혁의 발을 낚아채 저 멀리로 집어 던졌다.

    정혁은 마냥 날아가지 않았다.

    엘라의 은행잎들이 분산되어 정혁을 막아 주고 에드가를 공격했다.

    다양한 무기의 모양으로 밀집했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마치 엘라가 그것들을 디테일하게 조종하고 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정교하게 움직였다.

    에드가는 귀찮다는 듯이 그것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손짓을 할 때마다 은행잎들은 그 자리에서 소멸했다.

    “이런 거 말구요오!”

    에드가가 혀를 내밀고 눈이 뒤집어진 채로 은행잎들을 거침없이 걷어내며 정혁에게 곧장 달려들었다.

    “젠트라, 당신 도대체….”

    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에 응수하듯 에드가를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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