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28화 (128/200)

◈128화

수정뱀의 육중한 움직임이 멈췄다.

녀석은 똬리를 틀고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정혁을 노려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머리가 높은 동굴 천장에 거의 닿으려는 것 같았다. 크기도 크기지만 주변의 마나를 완전히 흡수해서 뱉어 내는 살벌한 입김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 주위를 뭐가 좋은 건지 계속해서 마나 파리 떼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마 이 파리 떼는 저 입김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한두 마리씩 대열에서 이탈해 정혁의 주변으로 다가왔다. 놈들은 위협적으로 비행하면서 불쾌한 날갯짓을 계속했다.

어떻게든 마나를 공명시키는 방법을 알아내고 나서 다행히 정혁은 채광 활성화 스킬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신체 제약이라는 좋지 않은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원활히 움직일 수 있었다.

두 망치의 힘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마나를 기반으로 한 두 망치의 전력과 화염은 어쩌면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았다. 마나의 활용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동굴 여기저기서 별의별 괴생명체들이 다 튀어나왔다.

하나같이 마나석 동굴의 농도 깊은 마나에 취해 일반적인 필드에서는 마주치지 못했을 괴랄한 모습으로 변이된 놈들이었다.

게다가 몸에 축적된 마나의 힘은 또 얼마나 강한지 하나씩 하나씩 격파하기가 고역이었다.

그럼에도 정혁은 마나의 흐름을 천천히 느끼면서 자신이 원할 때 황금빛 마나를 폭발시키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었다.

채광 활성화의 다음 단계 스킬인 에고 장비 활성화 스킬을 사용할 때처럼 전신을 가득 채운 황금빛 마나는 되레 그때보다 더 강렬한 힘을 정혁의 두 망치에 전해 주었다.

비록 더 빠르고 확실하게 적을 공격할 순 없을지라도 적중하게 된다면 파괴력은 전과 차원이 달랐다.

문제는 적중인데

이게 참, 어려웠다.

위급해 보이면 도망가고 만만해 보일 땐 가까이 다가와 정혁을 관찰하던 엘라는 정혁이 허공에 헛손질을 할 때마다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마나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는 둥 또 골치 아픈 소리만 해 대는 것이었다.

그렇게 또 한참을 아웅다웅하며 그들은 어느새 동굴 꽤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나마 엘라 덕분에, 그리고 자신의 마나의 힘에 대한 깨달음 덕분에 다른 플레이어들이나 불법 채굴자들조차 진입해 보지 못한 곳까지 들어온 것이다.

그러다 덩치가 산만한 수정뱀과 끔찍하리만큼 징그러운 마나 파리의 자폭 공격을 받으며 그들은 본의 아닌 속도로 더 빠르게 동굴 안으로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두 망치를 허공에서 두어 번 휘두르며 정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여전히 호흡이 어렵다.

다리는 무겁고 양손 역시 부자연스럽다.

어깨는 입구에서부터 누군가 계속 누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피로도는 이미 한계치 이상을 뛰어넘었다.

대장간에서 만든 여러 스크롤을 제대로 사용하긴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동났다.

이 빌어먹을 동굴이 얼마나 깊은 건지, 엘라는 또 어디까지 도망친 건지 모르겠다.

다만 이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직면해야 한다.

파리 떼의 숫자는 어림잡아 50여 마리. 그 뒤에 당당히 버티고 있는 수정뱀 하나.

과연 혼자서 이 모든 몬스터들을 지금의 페널티로 상처 없이 잡아 낼 수 있을까?

두 손에 힘을 주자 그의 마나가 흘러 들어가 두 망치를 빛냈다.

정혁은 공중에 두 망치를 휘둘렀고 사방이 전력으로 번쩍거리며 동굴 안이 순식간에 밝게 빛났다.

정혁의 주변에서 위협적으로 비행하던 파리 하나에 전기가 통하고 이는 연쇄적으로 다른 파리들에게 전이되어 갔다.

가중된 전기력에 파리 몇이 허공에서 터지며 산성 진액을 사방에 뿌려 댔다.

다행히 화염 벽이 세워져 정혁의 몸을 산성으로부터 보호했다.

그는 망치에 다시 화염을 끌어 담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파리 하나를 입술을 깨물며 밟은 뒤 다시 다른 한 놈을 도움닫기 삼아 뛰었다.

수정뱀의 입김이 거세게 정혁에게 뿌려졌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농도 깊은 마나였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지만 겨우 중심을 잡은 그는 두 망치를 공중에서 부딪쳐 냈다.

그러자 엄청난 파동이 두 망치 사이에서 발산되었다.

전기를 품은 화염이 파동과 함께 소용돌이치며 뿌려졌다.

이를 피하지 못한 파리들은 모두 터져 버렸고 수정뱀은 굉음을 뱉으며 고개를 저어 댔다.

고통스러운지 녀석은 전신을 동굴 벽에 쳐 댔다.

정혁은 바닥에 구르며 착지해 녀석의 발악 때문에 떨어지는 마나석 덩이들을 피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몸이 다시 엄청 느려졌다.

‘집중… 마나! …흐름!’

정혁은 속으로 계속해서 마나와 흐름을 곱씹으며 느려진 몸을 회복시키려 노력했다.

정신을 차린 수정뱀이 불안정한 정혁의 상태를 눈치챘는지 비늘을 곤두세웠다.

그러곤 몸을 빠르게 떨자 비늘이 사방으로 비산해 마치 정혁에게 타기팅된 듯 일제히 날아들었다.

피해 보려 했지만 몸이 아직 느렸다.

영락없이 비늘 전체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모양이 되었다.

“…야아아아아!”

그때 저 멀리서 엘라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엘라의 목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정신이 차려진 정혁이 화염의 망치를 살짝 던져 전력의 망치로 받아쳤다.

화염의 망치가 열기를 뿜으며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달려드는 모든 비늘을 최소한의 공간으로 막아 냈다.

정혁은 급히 몸을 웅크려 피해를 최소화했다.

여기저기가 찢어져 나갔지만 온몸이 관통되어 쓰러지는 것보단 나았다.

수정뱀이 다시 공격을 준비하려는 찰나 정혁은 동굴 안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엘라가 기겁하며 정혁에게 날아오고 있었다.

“뭐, 뭔데!”

정혁이 그녀를 보며 당황했지만 엘라는 아랑곳 않고 소리쳤다.

“너 빨리! 나를 스태프로!”

“에?!”

그녀의 뒤로 우레와 같은 울음소리와 함께 동굴의 거대한 크기만 한 백색의 호랑이 한 마리가 빠르게 뒤쫓아 오고 있었다.

정혁은 침착하게 몸을 틀며 엘라를 스태프로 변화시켰다.

엘라는 인상을 구기며 빛 속으로 사라졌다가 정혁의 손 안에 스태프로 잡혔다.

[너… 너 나로 파리 잡기만 해!]

“시끄러!”

정혁이 소리치며 동굴 벽에 바짝 붙었다.

거대한 호랑이는 빠르게 달려오는 속도 그대로 수정뱀 앞에 당도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싸울 생각이었다는 듯이 앞발을 높이 들어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수정뱀의 머리를 강타했다.

파리들이 혼비백산 사방으로 흩어졌고 앞발에 얻어맞은 수정뱀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 목덜미를 호랑이가 물어뜯는다.

정혁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동굴 안쪽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스태프에 정혁의 마나가 닿자 이제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마나의 힘이 느껴졌다.

확실히 마나를 기반으로 한 장비답게 정혁의 신체 능력의 제한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몸이 빠르게 반응했다.

이 정도면 바깥의 능력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고 믿을 정도였다.

[나쁘지 않네?]

엘라가 전음으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 정혁을 치켜세워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혁이 외부와 공명하고 있는 균형 잡힌 마나의 흐름이 엘라의 전신에도 동일하게 퍼지고 있었는데 이 느낌이 꽤나 안정적이고 좋아 엘라 본연의 마나와도 잘 어우러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기간의 연습으로 해낸 것치곤 애초에 마나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전혀 없었던 정혁에겐 우수한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저 녀석이 동굴 안에 최종보스 격인 것 같아.]

“확실해?”

[그래! 거의 끝에 다다랐단 말이야. 녀석은 뭔가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어. 동굴 끝에 있는 어떤 것을 말이야.]

“저 안에 뭐가 있긴 한 거네?”

스태프가 작게 떨렸다. 정혁은 더 빠르게 속도를 올렸다. 그러나.

“죽여 주마, 인간 녀석!”

뒤에서 우레와 같은 고함 소리가 들렸다.

정혁이 기겁을 하고 뒤를 돌아보자 백색의 호랑이가 미친 듯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고함은 저 호랑이의 것이 분명했다.

“쟤 말도 하잖아!”

정혁이 놀라서 소리치자 엘라는 본인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라는 듯이 전음으로 대답했다.

[모… 몰라! 모른다고!]

광견병 걸린 미친개가 쫓아오면 이런 느낌일까?

사력에 사력을 다한다면 지금과 같지 않을까?

정혁은 잠깐 사이에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발을 굴리고 있었다.

까딱하면 저 호랑이의 날카로운 발톱에 등이 뜯겨 나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느새 저 멀리에 동굴의 끝인 것만 같은 넓은 공간이 보였다.

드디어 끝에 왔다는 벅찬 마음이 들다가도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에 대한 막막함이 고개를 들었다.

그때 호랑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녀석이 정혁을 뛰어 넘어 동굴 끝의 넓은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 앞을 틀어막았다.

녀석은 으르렁거리면서 자리에 꼿꼿이 섰고 정혁 역시 급히 걸음을 멈췄다.

“감히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호랑이는 자신의 앞발을 핥으며 정혁을 노려보았다.

녀석의 발끝에는 일전의 수정뱀을 죽이고 남은 살점들이 붙어 있었다.

앉은키가 4m는 족히 되어 보였다.

앞발을 들고 길게 일어서면 얼마나 커지련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뭘 먹어서 이렇게 덩치가 커진 건지 탄탄한 근육과 몸 크기로부터 흘러나오는 위용이 엄청났다.

백색의 영롱한 털색에는 옅게 동굴의 마나가 돌아 얼핏 푸른색으로 보였고 검은색 짙은 선들이 백색의 털 사이로 멋들어지게 들어가 백호라는 존재의 영험함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눈동자에 담긴 살기가 매서웠다.

금방이라도 정혁을 찢어 죽일 것만 같았다.

게다가… 말도 한다.

정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스태프를 등 뒤에 잘 고정시키고 망치를 쥐었다.

[…뭐하냐 너?]

엘라의 전음이 튀어나왔다.

“왜?”

[너 지금 그걸로 싸울 거야? 저 녀석이랑?]

엘라의 말에 정혁은 곤두세운 신경을 거두지 않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면?”

[…여기 마나석 동굴이야, 정신 차려!]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거냐!”

백호가 움직였다. 순식간이었다. 정혁은 그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했다. 백호의 앞발이 정혁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고 정혁은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아야 했다. 그와 동시에 엘라가 황금빛 마나를 발산했다. 또 한 번, 시간이 멈췄다.

익숙한 시스템 경고창이 활성화되고 카운트다운이 세어진다.

정혁은 정신을 차리고 앞발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넓은 공간을 향해 뛰었다.

정지된 시간이 풀리고 타격감이 전혀 없이 허공을 친 백호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그가 막고 있던 통로를 지나 동굴의 끝,

넓은 공간에 다다른 정혁을 보곤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한달음에 그에게 날아들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성적으로 파악할 시간이 없다.

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몸에 흐르는 정혁의 마나를 자신의 의지로 발산시킨 것뿐이었는데 시간이 멈춰질 줄은 전혀 몰랐다.

한번 그렇게 마나를 터트리고 나자 엘라는 극도의 피로함을 느꼈다.

하지만 곧 정혁을 통해 다시 공급되는 마나에 의해 천천히 자신도 안정화되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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