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13화 (113/200)

◈113화

- 쿠쾅!

김창수는 넝마가 된 자신의 갑옷을 거칠게 벗어 던졌다.

철퇴를 빼앗았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철퇴는 마치 주인에게 되돌아가려는 듯이 마구 요동쳐 댔고 결국 발작에 가까운 철퇴의 움직임에 김창수는 그것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철퇴는 기세 좋게 주인에게 돌아갔고 김창수는 그대로 다시 마틴의 철퇴에 정통으로 얻어맞아 한참을 뒤로 날아가 처박힌 참이었다.

정혁이 제작해 준 고강도의 중갑옷 세트가 아니었다면 정신도 제대로 차릴 수 없었을 만큼의 강한 타격이었다.

김창수는 다시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마틴은 흐물거리던 다른 군주가 소멸하자 갑자기 폭주했다.

김창수는 승세를 완전히 잡았노라 생각했지만 상대는 역시 악마 군주. 폭주 이후의 마틴은 격렬한 암흑 마나에 사로잡혀 주변에 고농도의 산을 뿌려 댔다.

그것은 파충류에 가까운 그의 피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김창수가 급히 호흡을 참으며 뒤로 물러섰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철퇴가 그의 가슴을 강타했던 것이다.

김창수는 아직 결전의 상태로 자신의 텐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용기사 같은 위용도 그대로다.

문제는 녀석 근처에 다가갈 수 없도록 만드는 놈의 극성 산 공격이었다.

그의 주변은 이미 초록빛 산성 물질로 가득했다.

놈은 희희낙락거리며 김창수를 보고 웃고 있었다.

김창수의 좌우로 수십 발의 화살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화살은 마틴에게 닿기도 전에 녹아 버렸다.

“내가 바로 부패의 군주 마틴이다! 누가 감히 내 옆에서 살아 숨 쉬고자 하는가!”

마틴이 고함을 내질렀다.

그때 안젤리나가 공중에서 양탄자를 타고 등장했다.

그녀는 김창수에게 어떤 알갱이를 하나 던져 주었다.

“먹어!”

김창수는 투명한 알약같이 생긴 알맹이를 받아 들고 그녀를 힐끗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넣고 삼켰다.

[생존의 달인 등급의 안젤리나가 제작한 면역 알약을 섭취하였습니다. 10분간 당신은 모든 상태 이상에서 면역됩니다.]

김창수는 안젤리나가 건넨 알맹이가 꽤 높은 등급의 버프 알약이었음을 깨닫고 온몸에 다시 힘을 주었다.

그 사이 마틴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멀리서 자신을 조롱하듯 공격해 대던 얄미운 궁수를 놓치지 않았다. 그 육중한 몸으로 공중으로 뛰어오른 그는 자신의 철퇴를 있는 힘껏 안젤리나에게 날려 보냈다.

안젤리나는 급히 양탄자를 밟고 뛰어 올랐으나 공중에 띄워진 양탄자는 생각보다 탄력 있지 않았고 결국 철퇴는 피했으나 뒤따라오는 사슬의 고리는 미처 피해 내지 못했다.

철퇴는 그대로 양탄자를 내리찍었고 양탄자는 찢겨떨어졌다.

그와 함께 사슬에 발목이 감긴 그녀가 짧은 비명소리를 내며 철퇴와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노련한 김창수가 그것을 두고 볼 리 없었다.

거대한 투사가 움직여 철퇴를 받아쳤고 그것은 철퇴의 낙하 속도를 감소시켰다.

그와 동시에 김창수는 철퇴 뒤를 따를 사슬에 자신의 도끼를 휘감아 올렸다.

사슬이 도끼에 걸리며 완전히 움직임을 통제해 낼 수 있었다.

자칫 사슬을 당겼다간 감긴 안젤리나의 발목이 잘릴 수도 있었다.

김창수는 온 힘을 다해 도끼를 흔들었고 그 파동이 사슬에 전해져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안젤리나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발목을 빼냈다.

안젤리나는 사슬에서 벗어나며 고함을 쳤다.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그녀는 공중에서 활을 꺼내 들고 화살집의 중앙에 고정되어 있던 딱 하나, 거대한 화살촉을 가진 화살을 꺼내 활시위에 걸었다.

그녀의 활에 화살이 걸리자 화살을 타고 푸른 용이 휘감겼다.

그녀는 있는 힘껏 활을 당겨 사슬을 향해 시위를 놓았다.

철퇴가 땅에 처박히고 마틴이 철퇴를 다시 잡아당기는 사이 그녀의 화살이 굉음을 내며 사슬 하나에 적중했다.

맹렬한 폭발과 함께 지면이 폭발했다. 흙먼지가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먼지가 되어 주변을 어지러이 흩날렸다.

김창수는 직감했다. 강한 공격이었지만 뭘로 만들어 처먹었는지 말도 안 되는 강도를 가진 저 무기는 아직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흙먼지를 뚫고 무너져 내린 지면에서 마틴 쪽으로 당겨지고 있는 철퇴를 발견했다.

그는 재빨리 공중으로 뛰어올라 먼지 사이에서도 균열이 가 있는 사슬 하나를 캐치해 내 그곳으로 자신의 도끼를 내려찍었다.

- 까앙!

엄청난 진동이 양손을 타고 전신을 꿰뚫었다.

그 진동을 버티지 못하고 김창수는 도끼를 떨어트렸다.

사슬 하나가 끊어졌을 뿐인데 그 사슬이 끊어지자마자 엄청난 수의 영혼들이 비명을 지르며 공중으로 흩어져 내렸다.

김창수는 모든 사슬이 이 많은 수의 영혼들을 압축시키고 압축시켜 만들어 낸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과 분노를 함께 느꼈다.

반면 무기를 잃은 마틴은 거의 실성한 수준으로 김창수에게 덤벼들었다.

강한 산성의 냄새가 콧속을 밀고 들어왔지만 안젤리나가 건네준 면역 알약 덕분에 신체에 전달되는 고통은 전혀 없었다.

김창수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마틴의 날카롭고 투박한 두 손을 맞잡았다.

진동에 의해 도끼를 놓쳤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의 뒤를 버티고 있는 투사의 힘으로 김창수는 마틴의 무지막지한 힘을 기꺼이 견뎌 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안젤리나의 화살비가 마틴의 등 뒤로 쏟아져 내렸다.

그럼에도 마틴은 고함을 내지르며 김창수에게 쏟아 내는 힘을 거두지 않았다.

김창수는 지면 아래로 천천히 밀려들어감을 느꼈다.

그때 거대한 스피어가 마틴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형님!!”

드웨이크였다. 김창수가 그를 보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니다. 그가 이 전투에 끼어들기엔 아직 실력도, 능력도 부족하다. 지금 이 일격은 결코 치명타가 아니다.

“드웨이크! 물러나라!”

김창수가 고함을 쳤다. 드웨이크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곤 꽂았던 스피어를 빼내려 했다.

그러나 마치 마틴의 몸이 스피어를 물고 있는 것처럼 전혀 반응이 없었다.

김창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그의 힘이 더 강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미친 변태새끼도 아니고 고통을 느끼면 느낄수록 강해지는 타입인 건지, 뭔지.’

악마들은 도통 그 힘의 원천을 짐작할 수 없었다.

마틴의 등 뒤에서 갑작스레 팔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 팔은 거침없이 드웨이크의 뒷덜미로 향했다.

“드웨이크!”

드웨이크는 스피어를 놓고 그 팔을 가까스로 피했다.

다행히 그도 마틴의 산성에 면역이 되는 버프를 팀원들에게 받은 상태에서 덤벼든 모양이었다.

그러나 팔을 피했다곤 해도 마틴의 꼬리를 피하지는 못했다.

꼬리에 가격당한 드웨이크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때 등에서 솟은 팔에 검은 마나가 응집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날카로운 창의 형태로 변했고 공중에 솟아오른 드웨이크를 향해 그대로 투척되었다.

김창수가 어떻게든 발악하며 그의 무게중심을 틀어 보려고 했지만 이미 박혀 버린 하체 때문에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창을 투척하며 마틴은 소름 돋을 수준의 비웃음을 내뱉었다.

안젤리나는 투척되어 날아가는 창을 향해 자신의 화살을 날렸다. 한 발이 정확히 창의 중심부를 때렸지만 아쉽게도 궤도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뭔가 엄청난 것이 날아온다는 것을 느꼈는지 드웨이크가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잔뜩 금이 가고 상한 방패를 들었다.

그럼에도 창은 방패를 뚫고 드웨이크의 어깻죽지를 관통했다.

창의 크기가 상당했기 때문에 드웨이크는 한쪽 팔과 어깨를 거의 뜯겨내진 수준으로 데미지를 입었다. 만약 안젤리나의 화살이 창을 때리지 못했다면 아마 가슴 전체를 관통하고 거대한 구멍을 냈을 것이다.

드웨이크가 공중에서 떨어져 내렸다.

김창수는 자신이 어쩌면 가장 아꼈을지도 모를 드웨이크의 심각한 부상에 이제까지 들어 보지 못한 고함과 욕설을 뱉어 댔다.

그리고.

그가 추락하는 모습을 정혁 역시 보았다.

만타와의 싸움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던 참이었다.

위용 넘치던 만타의 첫 모습과는 달리 그의 갑주들은 산산조각이 났고 거대한 도끼는 날이 다 상해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반면 정혁은 그가 이제까지 사력을 다해 올려 놓았던 숙련도의 대가를 기분 좋게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빛의 화염이 깃든 검과 방패는 더욱 견고하고 날카롭게 공격과 수비에 흐름을 이어 갔다.

움직임은 더할 나위 없이 깔끔했고 만타에게 단 한 번의 유효타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되레 지친 쪽은 만타 같았다.

이제 이 지루한 싸움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김창수의 고함 소리를 들은 정혁이 힐끗 그쪽을 보았다.

드웨이크까지 가세해서 고전하고 있는 김창수와 일행을 볼 수 있었다.

분명 빨리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우였나?

외형적으로 보나 일전의 조롱의 군주 녀석이 한 말로 비추어 보나 이 녀석이 제일 강한 놈 같았는데, 생각보다 저 악어 놈이 둘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도 조금은 의외였다.

순식간에 몇 합을 더 나누고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드웨이크가 공중에서 상체의 한 곳이 뜯겨 나간 채로 비참이 추락하고 있었다.

정혁은 눈이 돌아갔다.

그의 전신에서 빛을 머금은 화염이 미친 듯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열기가 얼마나 강했는지 정혁이 쥐고 있는 검과 방패가 빨갛게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정혁은 방패로 만타는 강하게 밀쳐 내곤 발을 아래로 내려차 그의 무게 중심을 무너트렸다.

만타가 기우뚱 쓰러지자 검 자루로 만타의 머리를 내려친 정혁은 그 반동으로 튕겨 올라오는 만타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곤 그 위에 방패를 수십 번 내려쳤다.

검을 꽂아 넣어도 갑주 때문인지 신체 능력 때문인지 잘 들어가지 않던 그의 몸이 광기 어린 정혁의 연속 공격에 단단함을 잃고 말았다.

검이 그의 몸 안으로 점점 찔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만타가 소리 없는 고함을 치면서 정혁의 신체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거나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나 정혁은 쳐다보지도 않고 모든 공격을 피해 냈다.

검은 만타의 몸에 마치 못처럼 박혀 그를 지면에 고정시켜 버렸다.

그리곤 정혁이 거침없이 몸을 돌렸다.

천계의 힘 때문에 만타는 검이 박힌 부분부터 천천히 지글지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는지 그는 미친 듯이 검을 뽑아 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나 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혁은 드웨이크가 추락하기도 전에 이 모든 일을 마무리하곤 그를 안전히 받아 냈다.

드웨이크는 고통에 이미 정신을 잃은 뒤였다.

상태 창을 보니 아직 죽지는 않았다.

‘회복, 회복을 시켜야…!’

[아니요! 이미 늦었어요!]

정혁의 당황과 혼란을 눈치챈 에트론이 전음으로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악마 군주에 의해, 그것도 마계의 힘이 고밀도로 응축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치유 마법도 듣지 않을 거예요…!]

“…이…저, 이, 개새….”

정혁이 이를 갈면서 마틴을 노려보았다.

엄청난 살기가 그의 전신을 타고 퍼져 나왔다.

분노하긴 김창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초인적인 힘으로 마틴과의 힘겨루기에서 그를 뒤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무기고에 무기가 회수돼요, 곧!]

정혁은 저벅 저벅 마틴을 향해 걸어갔다.

한 손에 쥐고 있던 방패가 천천히 허공으로 사라졌다.

만타의 가슴에 꽂힌 검도 사라졌지만 만타는 이미 소멸 단계로 진행되어 가고 있는 듯했다.

정혁의 빈손에는 오직 빛의 아우라를 띄고 있는 불타는 건틀릿만이 있을 뿐이었다.

순간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곧 마틴의 등 뒤에 등장했다.

정혁은 두꺼운 마틴의 등살에 한 손을 찔러 넣곤 다른 손으로 마틴의 꼬리를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고함을 내지르며 몸을 붙잡을 채로 꼬리를 완전히 뜯어냈다.

마틴은 그의 압도적인 힘 앞에 아무런 반항도 해 보지 못하고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찰나. 정혁은 그대로 마틴의 머리를 잡아 몸과 깔끔히 분리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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