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12화 (112/200)
  • ◈112화

    “내가!”

    에트론은 갑자기 빛을 쏘고 사라진 정혁 덕분에 더 사력을 다해 비행하면서 한탄스럽게 소리쳤다.

    “이러려고!”

    에트론의 비명은 계속 되었다.

    “중간계에 떨어진 건 아닐텐데에에!”

    그는 속으로 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불의 정령왕 라테는 건틀릿이었다.

    나름대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는 데다

    그는 대지의 정령왕 가이아의 잔해들로 더욱 견고하게 디자인되었으며 척 봐도 비싸 보이고 또 그 외형적 웅장함에 맞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엘라는 어떤가? 그녀는 스태프였다.

    한마디로 자연의 멋이 그대로 스며든 멋있는 지팡이였다.

    누가 봐도 이건 이 세계에서 절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고결하고 귀한 장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어떤가?

    아무리 그가 처음에 밝은 구체 안에서 자신을 보호해 왔고 그것이 편했다고 해도 하필이면 마법구와 같은 모양이라니.

    게다가 지금은 염구와 크게 비교도 되지 않는다.

    어떤 장식도 없고 그냥 동그랗고 딱딱한 알맹이인 상태로 그게 에고 장비라고 있는 꼴이라니. 너무 우스웠다.

    게다가 정혁은 자신을 마치 입력하면 출력되는 일종의 자판기 같은 느낌으로 활용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염구를 다뤄 봤을 테니 에트론을 다루는 것은 그리 어려워하지 않았던 데다가 오히려 염구보다 더 격하게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무기가 필요하면 자꾸만 압박을 줘서 무기고를 열게 만든다.

    물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와 계약한 이유도 분명히 있고 정혁이 이 싸움에서 이기려거든 반드시 천계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이건 진짜 너무한거 아니냐고.

    정혁이 몰라서 그렇다.

    빌어먹을 천계의 천사장들이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아까부터 계속 없어진 두 개의 단도가 머릿속을 맴돌아 싸움에 도통 집중할 수가 없다.

    이러니 자꾸만 그런 잡생각들이 나지.

    “집중해, 에트론!”

    “여기서 얼마나 더여!?”

    정혁이 에트론의 비행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서 고함을 쳤다.

    그러나 에트론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정혁은 그의 대답이 왜 저렇게 날이 서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아가 만타의 옆구리를 뜯고 지나가는 에트론을 보고선 무기를 고쳐 잡았다.

    만타의 거대한 도끼는 상당히 위협적이다.

    스치기만 해도 주변의 공기를 전부 흡입하는 것 같이 무거운 중압감을 가진다. 한 합, 한 합마다 정혁은 숨이 막혀 오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게다가 범위도 너무 크다. 휘두르는 속도도 빠르고 되돌아오는 동작은 말도 못 할 정도로 빠르다.

    그는 확실히 그 무기에 특화되어 있어서 휘두를 때는 자루 끝에 힘을 실고 다시 되돌아올 때는 손을 자연스럽게 도끼머리 쪽으로 당겨 범위를 최소화하여 빠르게 복귀한다.

    이 경이로운 동작이 1초를 세분화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정혁은 계속해서 놀라는 중이었다.

    게다가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날 끝으로 암흑 마나가 검날이 되어 허공을 가르고 나아갔다.

    그것은 곧 지면을 닿아 폭발하고 그곳을 오염시킨다. 마치 저주를 담은 것 같다. 닿을 수 없다. 닿는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세 개의 분신 중 하나는 에트론과의 협공으로 겨우 분쇄시킬 수 있었다. 에트론이 하나의 분신에 목을 관통함으로서 분신은 공중으로 분해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암흑 마나는 곧 나머지 둘에게 흡수되었고 둘은 조금 더 강해진 모습으로 정혁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다짐했었다.

    이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정리해야만 한다고.

    어쨌든 목표는 대악마 아크이지 않은가.

    그를 쓰러트려야 하고 더불어 악마왕까지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끝나야만 마계의 침공 전체를 정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 만타라는 악마 군주는 생각보다 강했다.

    단단한 갑주는 정혁의 공격을 번번이 버텨 냈고 그의 놀라운 도끼술은 정혁의 오감을 서늘하게 했다.

    그렇다고 정혁이 이 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쪽은 아니었지만 팽팽하다는 사실이 못내 불쾌했다.

    이 상태에서 아크가 뛰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시간은 계속 간다.

    정혁은 조급해졌다.

    자신의 병력들의 비명 소리가 계속해서 귓전을 울리는데도 정혁은 아직 남은 분신을 정리하지 못했다.

    플레이어도 사람이기에 지친다.

    하지만 이 마계의 군주들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아주 미세하게 정혁의 속도가 줄어드는 반면에 만타의 피지컬은 거의 변함이 없는 상태였다.

    상황이 썩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정혁은 자신에게 받아 가고 있는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라테에게 전음을 보냈다.

    [조금 빨리 정리할 수 있겠어?]

    정혁의 말에 라테는 커다란 굉음으로 화답했다.

    이미 카락스와의 싸움은 라테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정혁에게 힘을 받아 다른 정령왕들과는 다르게 전성기에 가까운 화력을 지닌 라테의 불꽃은 서서히 카락스의 전신을 끓어오르듯 태우고 있었다.

    위기를 느낀 카락스는 라테가 펼쳐 놓은 화염막을 뚫고 나가 보려 했지만 그조차도 라테의 맹렬한 공격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애초에 카락스는 암흑 마법에 특화된 터라 드러나는 곳에서의 지속적인 근접 공격 양상은 그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모양이었다.

    처음 화염막으로 향하는 당당한 모습은 어디 가고 그의 형체는 이제 붉은 기운을 잔뜩 머금어서 불안정해 보였다.

    라테는 자신의 심장을 둘러싸고 있던 가이아의 잔해들 몇몇을 앞으로 끄집어내 그 안에 자신의 화염을 응집시켰다.

    그 사이에 빈틈을 혹시나 허용할까,

    화염막에서 생성된 많은 불의 정령들이 끊임없이 카락스에게 달려들었다. 조금이라도 카락스에게 닿으면 그들은 폭발하고 폭발했다.

    카락스가 점점 고립되어 갈 쯤 허공으로 높이 떠오른 라테가 가이아의 잔해에 응집된 거대한 크기의 화염석을 카락스에게 내리 던졌다.

    가이아의 잔해가 아니라면 그의 농도 깊은 화염의 온도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엄청난 힘을 품은 그의 화염석은 불의 운석이 되어서 카락스의 정수리로 떨어졌고 자신에게 달라붙은 정령들 때문에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던 카락스는 운석을 그대로 얻어맞았다.

    이로 인해 파생된 굉음을 정혁은 들었던 것이다.

    만타의 눈이 조금 일렁였다. 마치 인상을 살짝 쓴 것 같았다.

    에딘이 정혁의 일격에 의해 쓰러졌을 때, 그리고 지금은 조금 더. 그의 표정에 변화가 있었다.

    녀석도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정혁과 그렇게 거칠게 싸우면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의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던 그였다.

    그러나 이제 남은 군주가 자신과 마틴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만타의 공격은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만타의 일격 일격은 정혁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만약 방패가 없었다면 정혁은 이미 어딘가 크게 다쳤을지도 몰랐다.

    그는 마치 성난 들소처럼 도끼와 전신으로 그를 들이받아 댔다. 가까스로 피하고 피하던 정혁은 자신에게 라테가 돌아왔음을 느꼈다. 그의 손에 따스함이 깃들며 동시에 건틀릿이 쥐어진 것이다.

    정혁은 떠올렸다.

    일전에 제로니막스와 안트로이아라는 두 악마 군주를 상대하면서 정혁은 진심으로 두 에고 장비를 활용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자신이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엘라를 스태프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힘을 발산할 수 있었다.

    그들의 본래의 목적, 에고 장비로서의 힘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 역시 그런 힘이 필요할 때다.

    이 전투로 끝이 아니기 때문에 비축할 체력이 있다면 충분히 비축해 두어야 한다.

    라테가 돌아온 이상 이제는 그것을 한번 시도해 봐야 한다.

    “가이아의 심장 각인 해제.”

    정혁은 만타의 공격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건틀릿이 빛나더니 각인 되어 있던 가이아의 심장이 건틀릿에서 사라졌다.

    라테의 전음이 급히 날아왔다.

    [무슨… 짓인가!]

    정혁은 정수리 쪽으로 날아오는 만타의 도끼를 피하고 다른 만타가 자루를 바닥에 내리찍어 생기는 암흑 파동을 한손 검으로 상쇄시키며 대답했다.

    “다 생각이 있어! 에트론!”

    정혁이 에트론을 부르자 에트론이 급히 정혁에게 날아왔다.

    정혁은 에트론을 쥐고 건틀릿에 가져간 뒤 말했다.

    “각인.”

    그 순간 가이아의 심장이 떨어져 나가고 생긴 건틀릿의 빈 공간에 마법구 에트론이 각인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추측이었다. 각인이 되어 있는 건틀릿에 각인을 해제하고 염구를 제련해 다른 무기들을 만들었던 것처럼 에트론 역시 각인을 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추측 말이다.

    정혁은 그 생각을 일전의 에고 장비 전격 활용 전투 건과 매칭시켜 보았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정혁은 대장장이.

    그는 무려 장비를 재구성하고 해제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자신의 무기에 각인을 빠르게 해제하고 다시 각인하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거니와 마법구이긴 하지만 동시에 세부 상태로 분별해 보면 광물 재료로도 분류되어 있는 에트론을 각인시킬 수 있다는 생각 역시 마냥 뜬구름 잡는 행위는 아닐 거라고 믿었다.

    그의 믿음에 화답하듯 건틀릿은 강렬한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정혁의 양손에 맺힌 강한 빛은 마치 불꽃처럼 일렁이면서 타올랐다.

    “으익! 묶였잖아요!”

    에트론이 투덜거렸다.

    이제까진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마음껏 날아다니며 싸웠었는데 갑작스레 건틀릿에 고정된 꼴이라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유쾌하진 않군.]

    라테 역시 자신의 전신을 휘감고 도는 천계의 마나에 약간의 불쾌함을 표했다.

    하지만 그도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자신의 힘을 완전히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정혁이 쥐고 있는 한손검과 방패에 힘을 주자 타오르고 있는 빛의 마나가 검과 방패를 휘감았다.

    정혁은 빙긋 웃으면서 두 만타를 보았다.

    만타의 두 눈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이제까지 군주들이 소멸되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미동도 없던 얼굴이었는데, 놈도 불리하게 흘러가는 상황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정혁은 가볍게 한손검을 한 바퀴 돌렸다.

    한 바퀴 돌린 자리에 동그랗게 타오르는 빛의 고리가 잔상으로 남았다.

    정혁은 그것을 캐치하고는 재빨리 한손검을 휙휙 회전시켰다.

    빛의 고리는 그의 회전과 함께 생성되며 빠르게 앞으로 날아갔고 그것은 점점 커져서 만타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만타가 회전 고리들 사이에서 도끼를 휘두르고 있을 때 채광 활성화보다 더욱 업그레이드되어 에고 장비 활성화 상태로 넘어간 정혁의 말도 안 되는 스피드에 의해 만타의 남은 분신 하나 역시 깔끔하게 반으로 갈려버렸다.

    그리고서 둘의 난타전은 시작되었다.

    분위기는 전과 확연히 달랐다.

    만타는 거의 일방적으로 정혁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엄청난 방어도를 자랑하던 그의 갑주들은 정혁이 한 번 휘두르고 방패로 가격할 때마다 균열이 나 그 사이로 만타의 암흑 마나들이 새어 나왔다.

    거대한 도끼의 공격은 족족 정혁의 무기에 막혔다.

    그의 공격이 막힐 때마다 가열차게 정혁의 연계 공격이 내리꽂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