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10화 (110/200)

◈110화

지체할 생각일랑 정혁에게는 없었다.

시간이 길어지면 사상자만 많아질 뿐이다.

거침없이 길을 내며 정혁은 자신의 일차적 목표인 저 거대한 홀을 향해 나아갔다.

라테는 그의 의지를 이어받아 그의 주변에 거대한 화염 보호막을 펼쳐 놓고 달려드는 악마놈들을 업화의 불꽃으로 소멸시켰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손과 불의 힘으로 저주받은 대지까지 완전히 불살라 버렸다.

검은 비가 내렸지만 라테의 주변에 닿지 못했다.

엄청난 열기에 이미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에트론은 염구와 함께 움직이며 악마들의 심장과 머리를 관통했다.

그도 나름대로 이런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완전히 적응한 모양이었다.

정혁에게서 주입되는 힘을 이어받고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면서 모든 염구에 미약하지만 자신의 빛의 힘을 담아 더욱 빠르고 강렬한 추가 데미지를 부여했다.

이 덕분에 정혁이 나아가는 길은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모양으로 적들이 분쇄되어 없어졌다.

“이거 이거 생각보다 너무 날뛰잖아?”

순간 정혁의 앞으로 거대한 철퇴가 떨어졌다.

정혁은 달리던 걸음을 급히 멈춰 뒤로 뛰어올라 피했지만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떨어진 철퇴는 굉음을 내며 암흑 기운을 폭발시켰다.

거대한 구덩이와 함께 흙덩이들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근처에 있던 악마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조각나 흩어졌다.

라테가 재빨리 화염으로 바람을 만들어 내 주변의 비산물들을 걷어냈고 정혁은 두 손에 자신의 망치를 쥔 채 안전히 지면으로 착지했다.

철퇴의 주인이 뿌연 흙먼지와 함께 나타났다. 마치 거대한 악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은 출렁이는 배에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갑옷을 입고 철퇴를 어깨에 인 채 거대한 입을 벌리고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어깨에는 해골로 장식된 갑옷이 단단히 매져 있었다.

“정혁 님!”

에트론의 경고가 제대로 들리기도 전에 공중에서 암흑 계열의 굵은 낙뢰가 정혁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는 재빨리 전력의 망치를 쥐어 들고 낙뢰를 그대로 흘려 지면으로 보냈다.

그 찰나에 정혁의 앞에는 또 다른 어떤 자가 나타났다.

눈이 하나밖에 없는 그자는 짧은 순간 커다란 눈을 한 번 끔뻑 감으며 눈웃음을 짓더니 양손에 쥐고 있던 정혁의 망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의 거대한 망치를 동시에 그의 양 옆구리를 향해 내려쳤다.

정혁이 몸을 비틀며 가까스로 그 망치 일격에서 벗어나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구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땅을 뚫고 검은 촉수 줄기가 뻗어 나왔다.

그것은 곧 아직 자세를 갖추지 못한 정혁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쳐졌다.

정혁은 중심을 잃은 채로 그것들을 피하려다가 결국 고꾸라졌고 촉수의 난타 공격이 정혁에게 맞아 들려는 그때 라테가 급히 그를 위험에서 구출해 냈다.

“젠장….”

불과 몇 초 사이에 쏟아져 내린 피하기조차 버거웠던 공격들의 주인이 사방에서 정혁을 노리고 섰다.

“모두가… 군주예요….”

에트론이 목소리를 떨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에트론이 천계에서 가끔 드나들던 도서관에는 마계에 대한 정보와 상식들을 정리해 놓은 고전 자료들이 있었다.

정말 오랜 기간 마계에 대해서 어떤 정보도 듣지 못했고 실제로 보지도 못한 에트론에게는 마계 역시 중간계만큼이나 흥미로운 곳이었다.

마계의 악마왕이나 3명의 대악마, 그리고 아홉의 악마 군주는 그림으로 봤을 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에트론이 실제로 마주한 데카라는 악마 군주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과 같은 전투 계열이 아닌 천사들은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하고 그만큼 독한 모습들이었다.

“정혁!”

그때 그의 뒤에서 김창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녹턴과 룬다나와 함께 정혁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이로 강렬한 힘이 담긴 거대한 화살 하나가 빠르게 스쳐 지나 정혁의 앞에 있던 악어 형상의 악마 군주 가슴에 꽂혔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가슴에 박힌 화살을 보더니 껄껄 웃어 제꼈다.

그의 주위에 있던 나머지 군주들도 그와 함께 자지러지듯 웃었다.

“마틴, 네가 당첨인 거다?”

눈이 하나밖에 없던 호리호리하고 전갈의 꼬리를 가진 악마가 조롱하듯이 말하자 마틴이라 불린 악어 형상의 악마는 웃음을 멈추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재미들 보라고.”

그는 정혁을 보며 못내 아쉬운 듯이 중얼거리더니 갑작스레 사라져 그의 뒤에 달려오고 있던 김창수와 두 정령왕의 앞을 가로막았다.

가타부타 말은 없었다. 그의 철퇴가 그대로 그들에게 향했고 그렇게 마틴이라는 악마 군주와 그들의 싸움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소개부터 해야겠지요?”

외눈의 악마가 싱글거리면서 말했다. 정혁은 녀석의 기괴한 몰골에 어디를 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으로 검은 구름 형태에 보랏빛 안광만 가진 어떤 자가 스스륵 모습을 드러냈고 굉음을 내며 전신에 검은 갑주를 입은 기사 같은 악마 역시 당당히 등장했다.

검은 갑주를 입은 악마는 전신에 검붉은 전력을 두르고 있었다.

일전의 낙뢰는 저자의 것이 분명했다.

“이거 영 상황이 좋진 않네.”

정혁은 작게 중얼거렸다.

라테가 한 녀석을 맡아 준다고 해도 둘은 자신이 상대해야 한다.

자신 있게 말하긴 했지만 실제로 마주치고 보니 생각보다 강한 기운에 조금 위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데카만큼의 혹은 더 강한 것 같은 느낌이 갑주를 입은 악마에게서 느껴졌다.

“저는 조롱의 군주 에딘입니다. 저기 흐물거리는 녀석은 모멸의 군주 카락스이구요. 마지막으로 우리 군주의 우두머리이신 타락의 군주 만타이십니다.”

외눈의 악마는 특유의 역겨운 눈웃음을 지으며 한 명 한 명 친절하게도 소개를 해 나갔다.

역시나 갑주를 입은 악마가 제일 강한 놈이었다.

‘저자는 대악마 아크와 비교한다면 얼마나 차이가 날까? 적어도 저 악마만큼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제압을 해 내야만 한다.’

‘자신… 있다.’

정혁은 생각했다. 아무리 그들이 강하다 한들 정혁이 이겨 내야 할 제일 아래의 계단에 불과하다.

아크를 짓밟고 악마왕까지 물리쳐야만 한다.

그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첫 계단부터 자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라테. 가능하지?]

[실망시키지 않겠네.]

라테가 맹렬한 화기를 띠고 카락스라는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형체가 없어 보이던 카락스는 라테의 화염막에 갇혔고 라테는 그 안으로 당당히 들어가 그와의 결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정혁은 자신의 마나와 힘이 라테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나머지 두 악마 군주를 주시했다.

에딘은 전투를 시작한 카락스를 부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시 빙글 웃으면서 정혁에게 말했다.

“고귀하신 우리 만타께서는 다수 대 혼자의 싸움을 싫어하신답니다. 일전의 일제 공격은 당신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해 보고자 했던 행동이었구요. 걱정하세요. 이번엔 저와 함께….”

“조잘조잘.”

순간 정혁의 손에 빛나는 단검 두 개가 쥐어졌다. 어느새 에트론이 무기고를 열어 단도 로저드를 소환해 준 것이었다. 정혁이 검을 쥐자마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에딘의 얼굴 앞에 다가갔다.

그러곤 그의 눈에 두 단도를 정확히 밀어 넣었다. 에딘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단도는 그대로 그의 얼굴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빛의 힘이 에딘의 전신을 감쌌고 정혁은 멈추지 않으며 그의 전신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빛이 닿는 곳이 타올라 재로 변했다.

에딘은 그렇게 순식간에 정혁의 손에 정리되어 소멸됐다.

그의 소멸은 싸움을 진행하던 다른 악마 군주들에게 작은 충격을 전해 주기에 충분했다.

명색이 마계를 주름잡는 악마 군주였음에도 정혁의 힘 앞에서 이렇게 손쉽게 제압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만타만큼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등 뒤로 김창수의 것보다 훨씬 크고 날카롭게 연마된 도끼가 검은 전력을 파직거리며 위용 넘치게 등장했다. 만타는 천천히 손을 등으로 가져갔다.

라테는 여러 촉수들의 공격을 전부 태워 버리면서 손에 쥐고 싶어도 쥐어지지 않는 모멸의 군주 카락스와 대등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손에 쥘 수만 있다면, 유효타를 먹일 수 있다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도 카락스는 쉽게 그에게 틈을 보여 주지 않았다.

하지만 카락스로 닿기만 하면 촉수 전체가 녹아 버리는 엄청난 화염막을 통과해 내지 못했다. 그때 에트론이 높게 비상하며 화염막 안으로 침투했다.

강렬한 빛이 사방으로 퍼지자 카락스가 주춤했다.

“악마한테는 빛의 힘이 보약이죠!”

마법구 에트론이 맹렬하게 비상했다.

그는 카락스의 근처를 빠르게 비행했다.

회전하는 빛줄기에 카락스의 형체가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고 점점 뭉쳐지기 시작했다. 보랏빛 안광에 당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라테는 카락스의 형체가 점점 굳어지는 것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양손으로 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화염구를 응집시켰다.

더하고 더해진 그의 화염구는 지면의 모든 물까지 증발시켰다.

에트론 역시 엄청난 불길을 느끼면서 자칫 자신의 날개가 타 버릴까 염려했다.

[지금이요!]

에트론이 전음으로 라테에게 소리쳤다. 그러곤 순식간에 공중으로 치솟았다. 틈이 열리자 라테의 화염구가 빠른 속도로 카락스의 중심부를 향해 날아갔다.

빛줄기 때문에 일정 형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카락스는 날아오르는 화염구를 눈치채고 촉수를 지면으로부터 끌어올려 몇 겹의 보호막을 펼쳤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솟아오른 촉수들이 불길에 재로 변하는 동시에 화염구는 카락스의 몸 중앙을 정확히 때렸다. 그러나 카락스는 그 짧은 순간의 여유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응집된 자신의 몸을 빠르게 분산시켜 라테의 화염구가 지닌 고농도의 화기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트론은 그가 다시 흩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에트론은 그의 비행을 저지하려는 촉수들을 전부 꿰뚫으며 다시 카락스에게 접근했다.

라테는 범위를 좁히기 위해 자신이 펼친 화염막의 크기를 줄였다.

그때 화염막을 뚫고 정혁이 난입했다.

정혁은 깨진 단도를 바닥에 내던지곤 살짝 스며 나온 코피를 닦아 냈다. 라테가 자신의 앞으로 미끄러지듯 튕겨나와 거친 숨을 쉬고 있는 정혁을 보며 물었다.

“버거운가?”

정혁은 라테를 보며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버겁긴, 재밌는데.”

라테는 그의 허세를 조금 인정해 주기로 하며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살짝 들어올렸다.

정혁은 에트론을 부르면서 화염막을 뚫고 나갔다.

그사이 온갖 날카로운 것들로 변한 카락스의 촉수가 라테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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