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101화 (101/200)
  • ◈101화

    안나는 어둡고 침침한 복도를 걸어가며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여러 생각들을 정리했다.

    축축하고 서늘한 기운이 몸 곳곳을 감싸고 돌았다.

    마치 오래전에 경험했던 것 같은 어떤 지하 던전을 온 기분이었다.

    주변에 자신을 호위하는 수비대 정예 플레이어들과 함께 파티 사냥이라도 나온 것만 같다.

    앞에 둘은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칠흑같이 어두운 복도 앞을 겨우 비추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조금 멀리서 보랏빛의 마나 결계가 눈에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복도를 지나자 나오는 거대하고 넓은 공간의 중앙엔 네모난 블록 같은 방 하나가 있었다.

    사방이 완전히 막혀 있었고 겹겹이 보랏빛 마나의 결계로 둘러져 있었다. 방의 사분면에 짙은 흑복을 입은 마법사 네 명이서 결계 유지를 위한 마나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들은 기척을 느껴 안나와 일행을 보고는 그들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고 말없이 자신의 임무를 지속해 나갔다. 안나와 함께 왔던 수비대의 플레이어들은 안나를 방의 앞으로 안내했다.

    한 플레이어가 결계 근처에 손을 대자 결계와 이어지는 마나를 관리하던 두 마법사가 각각의 파동을 주입했다.

    결계가 열리며 틈조차 없어 보이는 네모난 방의 중앙부터 천천히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곧 방 전체가 유리창이 되어 내부가 비춰 보였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안나는 내부에서 완전히 결박된 채 눈조차 가려져 있는 E를 확인하곤 물었다.

    “규정상 불가능합니다.”

    “그 규정을 누가 만들었는데?”

    결계를 유지하고 있던 마법사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되돌아온 안나의 날카로운 말투에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안나의 확고한 의지가 비춰 보이자 그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4명의 플레이어들도 함께 들여보내겠습니다. 안나 님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아니야, 혼자 갈게.”

    “안 됩니다. 위험하십니다!”

    결계 마법사가 언성을 높이자 안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법사는 입을 비죽이며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주변의 다른 병력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다들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을 교차할 뿐이었다.

    “열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체를 봉쇄해. 나갈 준비가 되면 내부에서 두드릴께.”

    “…몸조심하십시오.”

    결계 마법사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듯이 유리창에 균열을 내 그것이 천천히 확장되도록 조절했다. 안나가 충분히 들어갈 만큼 균열이 확장되자 안나는 그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균열은 확장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닫혔고 그와 동시에 유리창은 다시 외부에 어떤 막이 쳐지면서 닫혔다. 방 안은 어둠으로 잠식되기 시작했다.

    안나는 마나를 개방해 방 내부의 각각 모서리 부분에 밝은 구체를 쏘아 올렸다. 금세 방 안은 환해졌다. 방 안의 남자는 분명 안나가 들어왔음을 인식했을 테지만 어떤 신체적인 반응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그녀는 손가락을 몇 번 허공에 그었고 그와 동시에 그를 결박하고 있던 각종 구속 장비들이 해제되었다.

    E는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천천히 떴다.

    그리곤 환한 불빛에 눈이 적응되기를 기다리듯 조용한 호흡을 이어 갔다. 몸이 다소 불편했는지 그는 눈을 몇 번 감았다 뜨면서 팔과 다리를 조금씩 움직여갔다.

    다친 신체가 온전히 회복되진 않았다. 자연 회복이 더디다. 알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그러면서 그는 그의 앞에 있는 여자의 실루엣을 확인했다.

    느낌상 상당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E는 그녀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려 했지만 그조차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안나는 조용히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절제된 행동 속에서 옅은 불안함이 느껴졌다. 왠지 그날 모두의 앞에서 보였던 건방진 오만함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오히려 전과 같이 당당하고 뻔뻔하게 바로 어떤 반응을 보여 주기를 바랐었는데 예상 외의 모습에 안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안녕?”

    민망함이 밀려들기 전에 안나는 먼저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환영의 감정도, 반가움의 느낌도 담겨 있지 않은 적대적인 인사였다.

    E는 그의 독특한 인사에 피식 웃음을 뱉었다. 그때서야 안나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그래, 이런 반응이 어울리는 놈이야.’

    “이런데 처박아 놓고 안녕이라니, 웃기는구만.”

    E는 빛에 적응된 시야로 여자를 찬찬히 살폈다.

    일전에 봤던 여자다. 자신에게 상당한 적의를 드러냈던 여자.

    그러나 독특하게도 데이터 확인되지 않는 여자였다.

    물론 자신이 센터 베이스에서 연결을 끊어 냈다고는 하지만 아직 잔여 연결망이 완전히 삭제되진 않은 상태라 처리 속도가 늦긴 할지라도 그녀가 어떤 부류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식별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녀는 아마도.

    “오아시스구나?”

    안나는 남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 녀석이다. 리안을 그렇게 만든 것은 이 녀석이 분명하다.

    혼자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리안의 꼬리를 밟은 것이다.

    그의 강함을 알기 때문에 떼거리로 뭉쳐 덤볐을 테지.

    네 번째 리사이클에서 놈들의 행태를 보아 알고 있다.

    이놈들은 그 시즌이 되면 엄청나게 강해진다.

    아무리 떼거리로 뭉쳐 덤볐다고 해도 리안이 저런 모습으로 도망치게 만들기까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힘이 더해졌다면 지금의 상황이 이해된다.

    놈들도 분명 어느 정도 손해를 입었을 것이 분명하다.

    상대는 리안이었으니까. 만약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 녀석이 구태여 이곳을 찾아왔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안나는 이성적으로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 이 감옥에 직접 찾아왔다.

    그러나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리안에게 큰 데미지를 입힌 이 녀석을 아무 감정 없이 대하기가 쉽진 않았다.

    “…그래. 네놈들이 그렇게 이를 갈며 찾아다니는 부류.”

    “내 추측이 맞았구나.”

    “추측?”

    E는 싱긋 웃으며 이젠 완전히 눈에 들어온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

    평범한 인상. 개성 있는 플레이어들의 얼굴들 속에서 그리 크게 눈에 띄지 않을 만큼의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이 이질감. 리안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느낌 그대로다. 그에게는 살 떨리는 강함이 느껴졌지만 이 여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다만 일종의 거북함이라고 해야 하나.

    “이 시기가 되면 네놈들이 뭉치니까. 어떻게든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

    안나는 그의 말에서 대상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는 리안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온 것일까? 아니면 정혁을 만나고 싶어서 온 것일까? 반응으로 보아 그는 안나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찝찝했다.

    행여 놈이 리안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왔다면 지체할 것 없이 없애 버려야 할 것이다. 더 큰일을 당하기 전에 말이다.

    “찾아온 이유는?”

    “이유?”

    안나가 차갑게 묻자 남자는 여전히 웃음 섞인 목소리로 실실거리며 되물었다.

    그는 뻐근한지 목을 풀면서 맨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안나는 여전히 그의 앞에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궁금해서, 너희들이.”

    그는 대답과 동시에 자신의 팔을 걷었다.

    남자의 한쪽 팔에는 길게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그 상처는 멋대로 벌어져 있었고 그 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낸 듯했다.

    전혀 회복되지 않은 채 방치된 상처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갈라짐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게 뭔지 알아?”

    E의 물음에 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회복 마법이 통하지 않는 플레이어나 존재는 없다.

    그 등급에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신체는 회복된다.

    다만 오아시스에는 부활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진 않는다. 그렇기에 회복 시스템은 보다 효율적이고 적극적으로 모든 존재들에게 적용된다.

    다만 이 녀석에게는 자연 회복조차 거부되는 느낌이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있다는 증거지.”

    안나는 여전히 그의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예상 할 수 없었다. 뭔가 답답함이 밀려왔다.

    “무슨 소리야.”

    “하하, 모르는 게 당연하지. 너희 인간들이란, 참 안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야.”

    모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발언이 안나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뭔가 ‘너희들과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며 월등하다’라는 우월주의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역겨운 생각이 만들어 낸 어처구니없는 삶을 마치 너희들의 배려인 양 여기고 있는 게 더 안타깝지 않아?”

    안나가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반응에 E는 어깨를 으쓱하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것까지 나한테 대입하기엔 나는 병졸에 지나지 않아서 말이야.”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E는 두 팔로 자신을 지탱하며 앉은 채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안나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면서 솟구치는 여러 감정들을 억누르느라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집어 던지고 밀어붙여서 원하는 바를 전부 캐묻고 싶었다.

    그러나 솟구치는 감정들 사이에서 자꾸만 알 수 없는 측은함이 고개를 들었다. 안나는 이 감정조차 불쾌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E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 삶이라는 것이 있잖아.”

    그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래, 측은함. 그 감정에 딱 맞는 말투와 느낌이었다.

    “굴욕적이고 불쾌하더라도, 삶이라는 것이 있단 말이지. 그렇기에 너희들은 사력을 다해 삶을 원래 궤도로 돌려놓고자 움직이는 거고. 나아질 거라는 희망? 그래, 희망이라는 단어가 적절하겠네. 희망이 사실 모든 것을 바꿔 놓지. 동기가 되고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좋잖아?”

    E는 고개를 내려 안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천장을 바라봤다.

    “알아듣게 말해. 너하고 만담 같은 걸 하려고 이 더럽고 축축한 곳까지 온 게 아니니까.”

    “…다르다고. 일개의 프로그램 따위와 너희는.”

    E는 큰 숨과 함께 허탈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말했다.

    안나는 그의 말에 담긴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는 자신을 프로그램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걸까? 오아시스의 시스템은 좀 더 사실적으로 분별하자면 플레이어와 프로그램으로 나뉠 수 있겠다.

    NPC니 악마들이니 하는 것도 어쨌든 프로그램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지도 않았다.

    그렇담 이자들은 다르다는 것일까?

    “어때?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이야?”

    E가 씁쓸한 표정으로 안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되레 안나는 그의 말에 화가 나 대꾸했다.

    “역겨우니까 그런 질문은 그만둬. 이게 살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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