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88화 (88/200)
  • ◈88화

    김창수는 저 멀리 첨탑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싸움을 곁눈질로 살피면서 동시에 거대 가고일과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었다.

    잔챙이는 정혁의 전방위 공격에 의해서 전부 사라졌다.

    레이드 급에 준하는 강한 악마들만이 전장의 필드에 남아 있다.

    어느 정도 체력이 빠진 상태이긴 하지만 녀석들의 상성과 완전히 반대되는 힘에 의해 공격을 받았음에도 살아남을 정도면 그 힘을 얕잡아 볼 수 없다.

    다행히 제논에는 다년간의 레이드로 다져진 드웨이크가 인솔하는 레이드 팀이 있다.

    드웨이크는 재빨리 레이드 팀에서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동료들을 각 분야로 흩어 보냈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고 있는 동료들을 규합했고 역할에 따라 임무를 부여한 뒤 눈앞의 악마들에 대한 효과적인 파훼법을 찾아내 빠르고 능숙하게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김창수 역시 드웨이크의 레이드 팀과 함께 가고일의 왼쪽 다리를 막 절단한 참이었다.

    폭발적인 굉음이 허공에서 퍼져 나왔고 뭔가가 강하게 지면을 강타하는 충격이 발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

    가고일의 주먹이 김창수의 머리 위로 빠르게 내려왔지만 방어 계열의 다른 팀원들이 두 세 개의 방패로 재빨리 주먹을 틀어막았다.

    김창수는 계속해서 전해지는 타격음에 귀를 기울였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는 거대 양날 도끼를 몇 번 휘두르며 공중으로 뛰어올라 상급 결박 마법으로 전신이 묶인 채 약화된 거대 가고일의 머리를 그대로 갈랐다.

    가고일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으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양날 도끼의 날이 붉게 타올랐다가 사그라들고 김창수는 도끼를 굳게 쥔 채 다음 적을 향해 나아갔다.

    지면이 전달하는 불쾌한 충격이 계속해서 느껴진다.

    충격이 전해지는 근원지를 계속 바라보던 김창수는 고개를 돌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알고 있다.

    지금 정혁에겐 차라리 누구도 다가가지 않는 편이 좋다.

    그가 느꼈던 저 악마 군주의 힘은 일반적인 플레이어 수준을 능가한다.

    음유시인을 통해 전해 듣고, 오래된 역사서를 통해서 전설로만 알고 있었던 마계와 천계의 전투.

    그저 허구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저 모든 게임에 있는 전설적인 이야기라고 치부했다.

    물론 악마들이 한두 번씩 세계에 침투하긴 했다지만 그들 역시 시스템이 만들어 낸 이벤트 따위로 여겼었다.

    가끔 소문으로 들었던 군주급 악마들은 모두 소환사를 통해 이 땅에 등장했었기 때문에 그들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예상외로 쉬웠다.

    마계든, 천계든 별것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제약이 풀린 마계의 악마 군주가 이 정도 수준일 줄은.

    그가 알고 있었던 ‘한’이 지금 존재한다면 과연 마계의 군주들을 몇이나 이길 수 있었을까? 군주들의 존재가 확실시 된 이상 천계의 존재들 역시 확실하게 있다고 가정할 수 있으며 대천사장이나 악마왕은 또 어떠할까? 어쩌면 플레이어들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였을 수도 있다.

    “사령관님!”

    주변 동료의 외침을 듣고 김창수는 달리는 걸음에 브레이크를 급히 걸어 몸을 뒤로 젖혔다.

    그의 눈앞으로 도끼 한 자루가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땅에서 검게 썩은 손이 두 개 올라와 김창수의 다리를 붙잡았다.

    동료들이 달려들어 두 손을 그대로 잘라 내고 그들은 곧바로 눈앞의 썩어 빠진 워리어 나이트와의 전투에 돌입했다.

    김창수의 양날 도끼가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최상위급 랭커들은 모두 반대쪽 대륙에 있기에 카탈의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쪽 상황이 이곳의 상황보다 더 안 좋을 수도 있다.

    당장은 최상위급 랭커들과 단신으로 비벼 볼 수 있을 법한 정혁의 힘을 믿어 볼 수밖에.

    그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

    “하늬안 님!”

    아린은 어쩌다 전장에서 만난 하늬안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하늬안 역시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 큰 대도를 좌우로 흔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제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전장에서 마주치지도 못했던 그들이었다.

    다행히 상당수의 적이 사라진 지금 제논의 병력들과 은행나무 엘프 병력들은 서로 합작하여 남은 적들을 하나하나 처치해 나가고 있었다.

    전에 봤을 때보다 더 강해진 영혼의 군대들과 늠름해진 아린을 보고 하늬안은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는 국왕이기에 하늬안이 먼저 아린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린은 부끄러운 듯 왕의 검을 내려놓고 악수를 청했다.

    하늬안은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은행나무 엘프 병력들은 그들을 보호하면서 좌우측에 악마들에게 총공세를 펼쳤다.

    “그때 같이 오시지 그랬어요!”

    아린이 주변의 소음 때문에 소리를 치면서 말했다.

    “저는 전부터 은행나무 냄새를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하늬안 역시 장난삼아 소리쳤다.

    그러자 아린이 눈동자를 굴리며 좌우를 살피더니 입모양으로 ‘저두요’라고 대답했다.

    하늬안은 그의 대답에 풉 하고 웃으면서 다시 대도를 붙잡아 올렸다.

    그 순간 등 뒤로 엄청난 타격음이 지속적으로 들렸다.

    아린과 하늬안은 그곳을 동시에 돌아보았다.

    첨탑 근처다.

    누가 싸우고 있을지 정확히 짐작이 된다.

    “이길 수 있겠죠!?”

    “당연하죠!”

    아린의 물음에 하늬안이 당당히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병력들과 합류하여 전투에 임했다.

    ***

    안나는 지금 펼쳐진 변수를 놓고 여러 가지 돌발 상황들을 고려하며 전장을 둘러보았다.

    각 팀장들의 시야와 링크되어 있던 그녀는 마법을 통해서 그들의 눈을 통해 전장의 흐름을 체크해 볼 수 있었다.

    다만 정혁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그의 상황이 어떤지 추측밖엔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세 번째 에고 장비를 획득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예측할 수 있었다.

    그가 사용한 영궁은 이곳의 물건이 절대 아니다.

    ‘오아시스’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안나에겐 너무나 명확히 분별되는 일이었다.

    그가 영궁을 사용했다는 것과 하루 사이에 엄청나게 강해져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통해서 안나는 자연스럽게 정혁의 세 번째 에고 장비와의 계약을 예상했다.

    마계의 존재에 반응하여 무슨 이유에선지 이 땅에 나타나게 된 천계의 존재와 계약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천사장급 이상은 될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선 영궁을 사용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세 번째 계약은 ‘오아시스’라는 칭호를 짊어진 자들에게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암시가 된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반드시 정혁을 반대쪽 대륙에 보내야 한다.

    그곳에서 ‘그’를 만나게 해야 하고 ‘그’와 함께 본격적으로 젠트라를 향한 걸음을 딛게 해야 한다.

    나머지는 남은 사람들이 함께 해 나가면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전투에 집중할 수 없다.

    안나는 저 멀리 첨탑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힘의 충돌을 느끼면서도, 이 전투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것에 계속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믿고 있다.

    정혁이 반드시 이 전투의 끝을 장식해 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카탈은 제논의 손에 끝내 쥐어질 것이다.

    ***

    [정혁! 정신 차리게!]

    정혁은 계속되는 난타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양손이 뜨거워짐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떴다.

    데카는 그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에트론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정혁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거의 바닥으로 떨어진 체력을 발견하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이 자식, 엄청 무서워여!]

    에트론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계속해서 데카 주변을 날아다니며 광휘의 마법으로 데카의 전신에 크고 작은 빛의 화상을 입혀 대고 있었다.

    정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깨를 털며 망치를 굳게 쥐었다.

    데카는 정혁이 일어났음을 깨닫고 빙글 웃었다.

    에트론도 속도를 줄이고 정혁의 등 뒤에 숨었다.

    [가이아의 파편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걸릴 걸세. 거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어.]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아차 하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첫 타격을 허용하는 순간 얼마나 많이 얻어맞았는지 셀 수도 없었다.

    라테가 적절한 타이밍에 가이아의 파편으로 방어를 해 주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 죽었을지도 몰랐다.

    [데카는 폭력의 군주일세.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폭력은 흥분하면 할수록 과격해지는 법이지. 데카를 자극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일 걸세. 일격에 절단 내야만 해. 일격이 필요하네.]

    실제로 정혁은 데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전보다 더 강렬해졌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빛 속성 공격에 만신창이가 되어 회복조차 되지 않은 넝마에 가까운 몸이었지만 그의 눈빛과 주변에서 퍼지는 악마의 기운은 비수처럼 정혁의 전신을 찌르고 옥죄어 왔다.

    녀석의 텐션은 계속해서 높아져만 갔다.

    지금도 상당히 신나고 흥분되어 보였다.

    “역시 역시 역시이! 일어났네, 일어났어! 너 진짜, 지인짜 최고다아!”

    데카가 양손에 잔뜩 주먹을 쥐어 흔들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아랑곳없었다.

    그는 콧김을 잔뜩 내뿜으면서 달아오른 얼굴로 정혁을 노려보았다.

    “준비 됐어? 다시 간다? 다시 간다? 간다?”

    “하유, 지랄도 풍년이다.”

    정혁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데카는 곧바로 정혁에게 다가와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정혁의 두 망치가 데카의 치열하게 내리꽂히는 두 주먹을 모두 받아쳐 냈다.

    [에트론! 뭐 없어? 한 방에 작살 낼 만한 거!]

    [하, 한 방에요!?]

    [그래, 한 방에!]

    에트론은 정혁의 공격의 사이사이에 추가적인 데미지를 데카에게 입히면서 뭔가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정혁에게 급히 전음을 보냈다.

    [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의 수준에서 가능한 게 하나 있긴 한데….]

    [있긴 한데!]

    정혁은 점점 빨라지는 데카의 공격을 겨우 방어하면서 소리치듯 대답했다.

    떨어진 체력 회복이 더딘 데다가 이 상태에서 한 방이라도 제대로 꽂히면 그 뒤를 예측할 수 없다.

    [타이밍이 맞아야 해요!]

    [설명해 봐, 어떻게 해 줘?]

    정혁은 데카의 주먹이 다시 그의 안면부를 향해 날아오기 전에 두 망치를 데카의 양쪽 옆구리를 향해 동시에 휘둘러 강타했고 데카는 그 충격에 몸을 휘청였다.

    빈틈이 생기자 정혁은 크게 뒤로 몸을 물린 뒤 데카와의 대치 상태를 유지했다.

    데카는 피를 토하곤 일전의 공격으로 구멍 난 옆구리에 자신의 두 손을 넣어 방금 공격으로 박살 난 갈비뼈 조각들을 꺼내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양손 가득 암흑 불꽃을 태워 벌어진 상처를 지져 봉합했다.

    그러면서도 데카는 희번덕거리며 정혁을 주시했다.

    그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왜 아크 제국 녀석들 중 돌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는지 알겠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광기를 그대로 덧입었을 뿐.

    지금 저 광기보다 더한 놈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잠깐만 놈을 붙잡아 놓을 수 있을까요?]

    에트론이 다급하게 외쳤다.

    타이밍은 지금뿐이다.

    데카가 성난 경주마처럼 달릴 준비를 하는 지금 말이다.

    [뭘 소환할 건데!]

    [‘종’이요!]

    [‘종’?!]

    [예! ‘종’을 떨굴 겁니다!]

    정혁은 약간 당황했지만 녀석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는 재빨리 엘라에게 지원을 요청하며 데카에게 달려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