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86화 (86/200)
  • ◈86화

    ‘이 타이밍에 이렇게 알림창이 뜬다고?’

    이게 과연 우연일까? 정혁은 알림 창을 옆으로 젖혀 놓고 한 걸음 더 에트론에게 다가갔다.

    에트론은 우물쭈물 서서 정혁을 곁눈질로 올려다보았다.

    “희한하지.”

    정혁이 에트론을 감싸고 있는 베리어를 양손으로 감싸 쥐고 눈앞으로 가까이 들어 올렸다.

    에트론은 정혁의 얼굴 반대쪽 끝에 붙어서 여전히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나에게 에고 장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거든, 내가 선택할 수조차 없어. 늘 타이밍이 좋게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만 했었는데 지금 이 경우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

    “…무, 무슨 소리신지.”

    “음… 너의 이런 태도는 우리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을 걸?”

    정혁이 한 손으로 구체를 쥐고 다른 손에 망치를 활성화했다.

    전격의 망치가 번개를 번뜩이며 정혁의 손에 쥐어졌다.

    “도… 도통 알 수 없는 소릴 하, 하시네요.”

    “아, 끝까지 발뺌하시겠다?”

    “하, 하하, 핫.”

    “베리어는 한 방이면 깨질 거야, 알지?”

    정혁이 망치를 한 손으로 휙 휙 돌렸다.

    에트론의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녀석은 이내 포기한 듯 베리어를 풀었다.

    그러곤 정혁의 손 위에 앉아 한숨을 깊게 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과거 천계와 마계에서 중간계를 두고 벌어진 대전쟁 이후 천계는 철저히 방관자의 입장을 고수했다.

    당시 중간계인 오아시스의 많은 존재들이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폐허로 변한 오아시스 전역을 보며 큰 후회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신이 그들을 만든 이유는 균형의 유지였다.

    이런 식으로 전쟁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진 않았을 터.

    그들은 마계의 존재들이 중간계로 넘어와 힘을 발산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금제를 걸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도 동일한 금제를 걸어 힘의 원천이 되는 양 날개에 형체화를 제약했다.

    정혁은 에트론의 희끄무레한 날개를 보면서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 긴 시간 대천사장을 비롯한 천사장들은 잠에 들었다.

    세상이 그들을 필요로 할 때 깨어날 수 있도록 말이다.

    최소한의 경계 병력을 두고 천계는 스스로 활동을 중지했다.

    억겁의 긴 시간.

    이 긴 시간은 천계를 관리하기 위해 잠들지 않았던 소수의 천사들 중 누군가의 마음에 존재의 의문을 갖게 했다.

    자신이 이 멈춘 천계의 수레바퀴를 녹슬지 않게 닦아 주기만 하는 자인지,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자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 ‘어떤 천사’는 그렇게 의문의 갈증에 목말랐다.

    그러다 천계의 역사서를 통해 과거 영광스러웠던 대전쟁의 역사를 들춰보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잊혔던 과거와 현재의 비루한 모습을 비교해 보며 드디어 존재의 목적을 깨닫는다.

    타오르는 열망이 심장을 뛰게 하고 자신이 동경해 왔던 대천사장과 나머지 천사장들이 각자 날개를 펼쳐 보이며 엄청난 힘을 중간계에 떨칠 날을 기대했다.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매료된 이 사실을 실제로 만들고 싶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들과 대등히 싸워 줄 적이 필요하다.

    천계가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려면, 대천사장이 긴 잠에서 깨어나려면 마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고민했고 스스로 날개를 끊어 중간계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악마를 신봉하는 자들을 만났다.

    당시 그들은 ‘아크’라고 하는 대악마를 소환하려 하고 있었다.

    군주급의 악마라면 매개체가 필요하겠지만 군주급 이상의 악마를 오아시스에 소환하려거든 그 이상의 힘이 필요했다.

    금제를… 풀어야만 했다.

    그 ‘어떤 천사’는 에트론에게 부탁해 빅토리아에서 따로 보관 중인 천계의 역사서를 비춰 달라고 했다.

    그 천사는 에트론이 열쇠지기가 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그가 자신의 도움을 원하니 왜 중간계에 내려갔는지에 대해서 큰 궁금증을 갖지 않고 에트론은 그가 원하는 페이지를 찾아 비춰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천사의 피와 악마의 피가 모여 각자의 마나가 융합될 때 금제에 균열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은밀하게 다시 중간계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군주급 악마의 피와 자신의 피를 섞어 의식을 행했고 금제에 균열이 났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닫자 그 균열을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금제의 힘이 천천히 약해졌고 이젠 군주급 악마의 금제가 완전히 풀리게 되었다.

    이때쯤 에트론은 중간계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에 찝찝한 마음을 안고 중간계를 비추는 다론의 창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금제가 풀린 두 군주와 싸우고 있는 정혁을 발견하게 되었다.

    동시에 카탈이 아닌 반대쪽 대륙 전체에 천천히 마수를 뻗치고 있는 악마들과 악마 군주들을 확인했다.

    그때 강렬한 빛이 에트론에게 떨어졌다.

    이 빛은 에트론이 밟고 있던 지면을 완전히 관통했고 에트론은 빛과 함께 중간계로 추락했다.

    그가 정신을 잃은 수일 동안 그는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 시간동안 그에게 ‘정혁’에 대한 정보를 주입해 주는 어떤 힘을 느꼈으며 그와 동시에 그 힘이 자신에게 천계가 중간계와 완전히 분리되었고 남아 있던 천계의 몇몇 천사들조차 깊은 잠에 들었노라 이야기해 주었다.

    천계를 해방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정혁의 힘이 필요했다.

    에트론은 그 힘의 목소리가 신이 자신에게 내리는 명령이라고 믿기로 했다.

    잠깐의 잠에서 깨어난 에트론은 자신에게 부여된 금제의 힘이 약해졌음을 깨달았고 마계의 불결한 힘이 대륙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빠르게 움직였다.

    어떻게든 정혁을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에트론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혁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천계는 뭐 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나, 에트론이 어떻게 이 타이밍에 등장해서 자신의 에고 장비 제작 창이 활성화됐는지까지 말이다.

    어쨌건 지금 오아시스는 개판 5분 전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아직 금제가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네?”

    “네, 그렇다고 생각해요. 만약 모든 금제가 풀렸다면 대악마나 혹은 악마왕까지도 중간계로 달려들 겁니다. 천계의 모두가 잠든 지금이 제일 적기 아닐까요?”

    “하지만 그 천사가 대천사장과 다른 천사장들을 깨우기 위해서 금제를 풀고 오아시스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그렇긴 하죠. 하지만… 글쎄요? 불순한 목적은 언제나 더 강하게 확산되곤 하니까요.”

    “다른 꿍꿍이로 변질되었을 수도 있다는 거네?”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다시 에트론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녀석을 에고 장비로 만들어 봐야 진짜 쓸모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그의 시선이 에트론이 차고 있던 열쇠에 꽂혔고 정혁은 한 가지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너, 열쇠지기라고 했지?”

    “예, 정확히는 천계의 무기고 빅토리아의 열쇠지기죠.”

    “아까 그 방패는 무기고에서 떨군 거야?”

    “음… 네. 무기고는 열쇠만 있으면 열 수 있거든요. 인간들은 무기고에 여러 무기들이 전부 보관되어 있다고 하던데 빅토리아 무기고는 그렇지 않아요. 천사장님들이 각각 사용하시는 무기들이 각 칸마다 보관되어 있거든요. 열쇠 하나에 한 가지 무기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근데… 왜 물어보시죠?”

    “그 무기는 내가 쓸 수도 있어?”

    정혁의 눈이 반짝였다.

    에트론은 그의 눈빛을 보며 알겠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미소와는 달리 고개는 저어지고 있었다.

    “에이, 안 되죠. 이래 봬도 천사장님들의 무기인걸요. 그분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무기이기 때문에 타인이 양도받거나 쓸 수는 없어요.”

    “아니, 그런 귀한 무기를 아까 막 공중에서 떨구고 그랬잖아.”

    순간 에트론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흔들리는 동공으로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 그건 잊어 주십쇼!”

    정혁은 알겠다는 듯이 작게 실소했다.

    녀석은 아마도 폼 좀 잡아 보려 했을 것이다.

    ‘아, 그나저나 그렇다면 정말 이 녀석과 계약해서 얻는 이득이 뭘까.’

    정혁은 깊은 고민에 싸였다.

    ‘이 녀석이 말한 그 알 수 없는 힘의 목소리가 신이었다면 그는 왜 이 녀석을 악마와 싸우려는 지금 자신에게 보냈을까? 이유가 있지 않을까?’

    “에트론, 아무 무기나 한번 꺼내 볼 수 있어?”

    대장장이인 자신에게 굳이 이 무기고의 열쇠지기를 보낸 이유가 있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에트론은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확고한 정혁의 표정을 보고서 주섬주섬 열쇠고리를 들더니 하나는 골라 허공에 꽂아 넣었다.

    키 홀이 생기더니 곧 문이 열렸다.

    밝은 빛과 함께 검 손잡이가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정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검 손잡이를 향해 다가갔다.

    “이 검은 열망의 천사장 에쿼노르드 님께서 사용하시는 ‘에쿼노르드’입니다. 보통 천사장님의 이름이 무기의 이름이 되기 때문에 무기와 천사장은 동일한 힘을 가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근데 왜… 어?”

    정혁은 자신의 손이 그 검 손잡이에 닿는 느낌을 정확히 받았다.

    이는 에트론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손이 검 손잡이에 닿는 것을 보자마자 에트론은 입을 벌리고 아연실색한 채로 굳어졌다.

    그러나 곧 그의 손에서 손잡이가 관통했다.

    잡히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곧바로 빛 안으로 검 손잡이가 빨려 들어갔고 동시에 문이 닫혔다.

    정혁의 입가에 다시 사악한 미소가 번져 올랐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이 꼬맹이와 계약할 명분이.’

    정혁은 자신의 앞으로 상태 창을 끌어왔다.

    그와 계약하지 않은 채로도 조금은 그 특별한 무기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면 에트론과 계약해 그가 자신의 에고 장비가 되었을 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악마와의 싸움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천계의 무기들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건 엄청난 사건이 된다.

    “좋아. 아주우 좋아.”

    정혁이 박수를 쳤다.

    에트론은 아까부터 혼란과 당황 그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 그의 손에서 떠나 허공에 떠 있는 그는 자신이 바람의 흐름에 따라 어디론가 떠내려가고 있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정혁이 그를 붙들었고 에트론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얼떨떨한 얼굴로 정혁을 보았다.

    “뭐, 뭐예요 당신?”

    “네가 깔보던 인간 놈이지, 짜식아.”

    정혁은 조그만 에트론의 머리를 두 손가락으로 쓰다듬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마무리하지 못한 계약서에 서명 좀 해 보도록 할까?”

    “…아… 아, 넵.”

    에트론이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정혁은 히든 스킬을 발동했다.

    기존처럼 에트론에게도 에고 장비가 되겠냐는 알림창이 전달되었고 에트론은 고민 없이 승낙했다.

    그러자 에트론으로부터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가 일제히 흡수되었다.

    에트론은 날개를 펄럭이며 가슴 안에서 요동치는 빛무리를 품었다가 다시 사방으로 발산했다.

    그와 동시에 에트론은 동그란 구슬이 되어 정혁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오아시스의 대장장이에게 세 번째 에고 장비 ‘천계의 무기고 빅토리아의 열쇠지기 에트론’ 마법구가 귀속됩니다.]

    [세 번째 세계 퀘스트 ‘다가오는 위협’이 완료됩니다. 남은 에고 장비 3/5]

    [칭호 ‘빅토리아 열쇠지기’가 오아시스 대장장이에게 부여됩니다.]

    정혁은 에트론의 무기화가 반가웠다.

    그가 익숙히 사용하던 염구와 비슷한 크기와 메커니즘이었기 때문에 활용하기 편할 것 같았다.

    [윽,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네요. 좀 멋진 무기가 될 줄 알았더니 더 작은 구체에 갇힌 꼴이라뇨.]

    에트론의 투덜거림을 뒤로 하고 칭호의 상세 설명을 확인한 정혁이 만족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근데 이제 슬슬 나가 봐야 하실 텐데요? 바깥 시간으로는 하루 이상이 지났을 텐데…?]

    정혁은 에트론의 말에 마치 주마등처럼 제논의 팀장들과 김창수, 라테, 엘라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감을 느끼면서 에트론에게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내질렀다.

    “그걸 왜! 이제 이야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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