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61화 (61/200)
  • ◈61화

    데릭은 급히 의회의 주요 인사들을 소집했다.

    사실 아직 자유 연맹은 연맹 전체에 전시 상황을 전파하진 않았었다.

    북쪽 경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기세가 여전하긴 하지만 자유 연맹의 연맹 수비대 병력만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무역상과 상회 연맹, 다른 작은 규모의 집단들과의 연계로 이루어진 자유 연맹의 군집 특성상 전시 상황 전파 시 모든 흐름이 일제히 끊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두고 보자는 의회의 결정이 컸다.

    이런 분위기에서 데릭의 긴급 소집은 의회 인사들의 마음에 불안감을 심어 주었고 이는 곧 당황으로 번져 자리를 비웠던 의회 위원들이 각자 복장도 제대로 착용하지 못한 채 의회장을 뛰어 들어오는 진풍경을 보여 주었다.

    데릭은 의장석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최대한 많은 의회 위원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

    전부가 모이지 않더라도 과반수 이상이 모여 준다면 지금의 문제를 속히 전달하고 결정짓고자 했다.

    겉으로 보기에 데릭은 침착했지만 사실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용광로나 다름없었다.

    방금까지 그가 실제로 목도했던 한 플레이어의 납득하기 힘든 힘, 그는 아직 200레벨을 달성조차 하지 못한 풋내기라는 것, 더불어 남쪽은 제논 연합이 그의 힘을 기반으로 점점 마수를 펼칠 거라는 추측까지 이런 고민들의 얽힘 속에 혼란스러웠던 데릭은 계속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이성을 붙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거의 대다수의 의회 위원들이 모이고 의회장 관리 병사가 문을 닫자 데릭이 주의를 환기 시켰다.

    의회장은 거대한 원형의 건축물이었다.

    천장은 전부 유리로 되어 있어 하늘이 그대로 보였으며 가운데 의장석과 이를 중심으로 계단식 부채꼴로 퍼져 나가는 의회 위원들의 좌석들이 멋들어지게 나열되어 있다.

    전부 격식이 있고 위엄 있어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궁금한 점들이 많을 텐데도 의회 위원들은 함부로 데릭에게 먼저 묻지 않았다.

    수군거림은 분명 있었지만 언성은 높아지질 않았고 묘한 긴장감 속에서도 데릭의 말을 기다리는 모습을 지켜나갔다.

    “자유 연맹은.”

    데릭이 입을 열었다.

    “큰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의 말은 다분히 직설적이어서 한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데릭은 회중을 둘러보며 큰 숨을 들이 쉬더니 말을 이었다.

    “북쪽에서는 아크 제국이 밀고 내려오고 있으며 남쪽에서는 제논이 기세를 불리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위와 아래에서 공격을 받는 형세에 처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기 전에 대책이 필요합니다.”

    한 위원이 손을 든다.

    “루테릭의 아비입니다. 의장님, 저희가 알고 있는 상황으로는 제논은 아직 신경 쓸 만큼의 세력이 아니며 북쪽의 아크 제국도 연맹 수비대에 의해서 잘 막아지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아닙니까?”

    루테릭 상회의 아비 총수가 거침없이 발언을 하자 데릭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비 위원님. 제가 너무 두서없이 말을 했네요.”

    평소의 데릭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른 위원들도 데릭이 조금 더 침착해질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들이 평소 신뢰하던 차갑고 냉철하며 사리 분별에 탁월한 의장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많이 달라 보여서였다.

    데릭은 지금 상당히 불안정해 보였다.

    “전방 상황부터 말씀 드리면 은행나무 엘프의 왕이 갑작스레 병력을 뒤로 물리고 있습니다. 박달수 대장의 보고에 국왕의 정확한 심기에 대해서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아직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최악의 경우 그들은 자국의 국토 방위에만 신경 쓰며 그 이상의 싸움을 벌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회로를 내줄 수 있겠군요.”

    가벼운 천으로 몸을 가리고 머리까지 흰색 천으로 덮어 얼굴을 작게 가린 묘한 느낌의 여성 위원이 한마디 했다.

    “신관 우이에달 위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데릭은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

    “그러나 박달수 대장은 아직 그 정도까지 위험한 상황으로 여기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다행이지요. 북쪽 전선도 현재까지는 문제없습니다. 아비 위원님의 말대로 우리 연맹의 병력은 단단하고 강력합니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 모두가 늘 사력을 다해 지켜 내고 있다는 것은 동일하게 아는 사실이네. 데릭 의장, 본론으로 넘어갈 수 있겠는가? 무엇을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인가.”

    오른쪽 끝에 앉아 있던 남자가 팔짱을 끼며 데릭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중후하면서도 단호했다.

    그는 유일하게 이곳에서 전신 갑옷을 갖춰 입은 자이기도 했다.

    “기사단장 산쵸 님.”

    데릭은 그와 눈을 마주하며 잠시 입을 다물고 마음에 안정을 찾았다.

    부유성 전체의 최종적 수비를 담당하는 기사단장 산쵸는 언제나 강인한 마음과 신체로 중무장하여 데릭을 호위했었다.

    잭슨이 자리를 비우면 항상 모든 병력 통제 권한은 그에게 인계되곤 했다.

    “지금 우리의 영토 내이자 가장 핵심인 이 부유성의 땅에 신흥 연합인 제논의 지도자가 와 있습니다.”

    약간의 술렁임이 또 한 번 장내에 번진다.

    만나 보았느냐, 어땠느냐, 어떻게 들어온 것이냐.

    여러 질문들이 데릭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지만 데릭은 가만히 그를 지켜보고 있는 산쵸의 시선을 느끼면서 말을 이었다.

    “그자는 자유 연맹의 지도자를 만나러 왔었습니다. 무언가 목적이 있어 보였고 이를 먼저 느꼈던 저는 잭슨 총사령관을 그에게 보냈습니다.”

    “총사령관을 말입니까? 그가 여기 있어도 괜찮은 겁니까?”

    어떤 위원의 날카로운 질문에 데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쪽 전선은 잭슨의 부재 속에서도 강인한 철벽처럼 버티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믿으시는 것처럼 저 역시 잭슨 사령관을 믿습니다. 신흥 연합의 지도자를 싸고도는 구설수 들을 여러분도 잘 아시잖습니까. 그가 자유 연맹에 먼저 손을 대러 온다는 사실이 불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자신감의 근원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가장 확실한 인물이 필요했고 적임자는 잭슨뿐이었습니다.”

    “그래서요?”

    또 다른 위원의 말에 데릭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결과적으로만 말씀드린다면 그에 대해 조사해 본 바 이미 잭슨의 실력을 뛰어넘었다고 여겨집니다.”

    이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웅성거림이 장내를 휩쓸었다.

    자유 연맹에서 잭슨 총사령관의 위치는 확실하다.

    적어도 자유 연맹 내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며 오아시스의 전체 랭킹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데릭이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강하다 해도 소문으로 아직 최고 레벨까지 돌파하지 못한 플레이어가 자유 연맹의 총사령관을 실력으로 뛰어 넘었다는 사실이 과연 납득이 가능한 것일까? 데릭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라고 판단하기엔 지금 데릭의 모습은 평소처럼 냉정하다.

    “여러분들은 우리 앞에 어떤 선택지가 놓였다고 보십니까?”

    잠깐의 정적 후 여기저기서 발언들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대개는 두 개의 분류로 나뉘는 것 같았다.

    제논과 손을 잡아야 한다.

    혹은 가능한 병력을 총동원해서 그 플레이어를 죽여야만 한다.

    데릭은 후자가 가능하리라 보지 않는다.

    그를 지켜보는 산쵸의 눈빛이 강렬했지만 데릭은 그의 눈빛이 정혁 앞에 뭉개지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니나 다를까 산쵸가 입을 열었다.

    데릭은 큰 숨을 쉬고서 대답했다.

    “그에게는 두 자루의 에고 장비가 있습니다.”

    혼란은 가중되었다.

    데릭은 이어 연타를 날렸다.

    “그의 에고 장비는 고대 엔트와 불의 정령왕입니다.”

    이제 장내의 분위기는 절망적으로 바뀌었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과 어서 그를 쫓아내야 한다는 원망 섞인 목소리가 낭자했다.

    병력이 비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현재 자유 연맹 본부의 상황상 재앙급의 힘을 가진 두 존재가 발악을 시작한다면 이는 자유 연맹의 역사에 충격적인 사건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유 연맹의 역사를 끝맺어 버릴 수도 있을 만큼의 위협이었다.

    데릭은 박수를 쳐 장내를 환기시켰다.

    그리곤 무거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시키고자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을 급히 이곳으로 모셔야 했던 이유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들어서 느껴지시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별다른 선택권이 없습니다. 현재 은행나무 엘프 왕국의 군대를 회유하여 전장에 다시 투입시킬 수 있는 희망도 그자가 쥐고 있는 상태입니다.”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결국 우리는 눈앞에 불씨를 먼저 끄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그자는 아직 자유 연맹에 척을 지려 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그를 이용하면서 뒷심을 길러 보는 것으로 갈피를 잡아 보려 합니다.”

    “가능할까요?”

    우이에달 신관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데릭을 바라보았다.

    숨기려고 해 보았지만 그의 난색의 표정이 얼굴을 스쳤고 다른 몇몇의 위원들은 낯선 데릭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껴야 했다.

    “확신은…할 수 없습니다. 그럴 가능성에 희망을 거는 것이죠.”

    “제논에서는 병력을 파견할 계획이 있는 겁니까?”

    산쵸의 질문에 데릭은 고개를 저었다.

    “그 혼자가 전부입니다.”

    산쵸는 코웃음을 쳤다.

    “그가 과거의 ‘한’도 아니고 혼자서 아크 제국의 끝없는 병력 앞에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만약 정말로 혼자서 아크 제국 앞에 버티고 선다면 오히려 우리가 병력을 물려야 할 겁니다. 개죽음은 따 놓은 당상이니 말입니다.”

    그의 말투에 불쾌함과 어처구니없음의 뉘앙스가 잔뜩 느껴졌다.

    목소리가 컸던 산쵸의 의견에 동조하는 위원들의 한마디들이 이어진다.

    아쉬웠다.

    데릭은 그들이 자신이 보았던 장면을 그곳에서 함께 경험했더라면 하고 느끼며 씁쓸한 가슴을 눌러 삼켜야 했다.

    기사단장 산쵸는 앞뒤가 조금 막힌 자다.

    자신보다 경험이 적고 또 어린 자가 이 자유 연맹에 총사령관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도 은연중에 고까워하던 인물이었다.

    “존경하는 위원 여러분들의 당혹감은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늘 저를 믿어 와 주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믿고 맡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장에 자유 연맹에는 여유가 없습니다. 이번 전쟁을 통해 카탈의 전 대륙을 자유 연맹의 권한으로 쥘 수도 있는 어떻게 보면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그는 다시 조용해진 의회장을 둘러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변수가 생겼지만 아직은 커다란 눈덩이가 되지 않았습니다. 위기는 중간에서 끊어 버리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멈추기 마련이죠. 다룰 수 있을 때 잘 다뤄져야만 합니다. 최대한 어부지리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상황을 저희 쪽으로 이끌어 가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데릭은 오른손을 올려 손바닥을 보이게 들었다.

    “안건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현 상황에 대해서 자유 연맹의 불청객을 최대한 도와 북부 전쟁터에 합류시키는 계획에 찬성하시면 거수해 주십시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과반수 가까이 되는 위원들이 손을 들었다.

    산쵸는 고개를 저으며 끝내 손을 들지 않았다.

    데릭은 의회를 마무리했고 어두운 밤이 지나 내일이 되면 정혁을 만나 정확히 그의 계획을 듣고 다음 그림을 그려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의회가 끝나고 날아온 전음은 데릭을 또 한 번 좌절시키게 만들었다.

    [데릭 의장님! 총사령관입니다! 정혁 님이 사택에서 사라졌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얼핏 자신의 심장이 대장 끝까지 떨어져 내리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