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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의 랭킹 1위-58화 (58/200)
  • ◈58화

    자유 연맹의 본부가 자리한 부유성은 균열 지구 도타스트림 상부에 거대하게 떠 있다.

    균열 지구는 땅이 그대로 공중에 떠 있는 형태로 중앙의 부유성과 10개의 크고 작은 부유 대지들이 자유 연맹의 훌륭한 장인들이 만들어 낸 에어 브릿지로 연결되어 아름다운 도시로서 밀집 지역을 구축하고 있다.

    평소라면 공중을 다니는 탈것들이 더욱 활발히 부유성 주변을 돌아다니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부유성은 예전만큼의 활기를 띄고 있지 않아 보였다.

    주변은 고요했고 히포그리프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부유성의 각 지구들과 연결된 부유 대지들에도 사람들의 기척은 많지 않았다.

    잭슨은 정혁을 외곽의 부유 대지로 인도했다.

    그곳에 작은 건물이 하나 마련되어 있었는데 검은색 휘장이 나부끼는 집이었다.

    잭슨이 그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정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억지로 엘라를 대장간에 밀어 넣었다.

    그녀를 스태프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잭슨의 사택은 꽤나 고풍스러워 보였다.

    마치 한국의 양반 기와집을 옮겨 놓은 모습 같았는데 대문에는 망루가 있어 올라가 부유 대지의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고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연못과 대청마루 그리고 좌우측으로 여러 문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히포그리프는 마당에 먼지를 일으키며 착지했다.

    잭슨과 정혁이 내리자 그들은 또 한 번 바람을 일으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찰나에 사택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잭슨과 정혁은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사택에서 나온 자가 누구인지 확인했다.

    잭슨은 몸을 흠칫하더니 정혁을 의식하며 그 의문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의회 의장 데릭이었다.

    애초에 잭슨이 이곳으로 정혁을 데리고 온 이유도 자유 연맹의 전체를 총괄하는 의회를 보호하며 더불어 최고 권력자인 의회 의장 데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였는데 이건 생각 외의 전개였다.

    잭슨은 조금 당황했고 급히 정혁을 그에게 소개했다.

    “의장님. 이분이 남쪽의 제논 연합을 이끄는 지도자 정혁 님입니다.”

    데릭이 가벼운 목례를 건넸고 정혁 역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 숙였다.

    다른 인사말은 건네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쫄리는 입장은 그들이니까.

    데릭은 전투보다는 확실히 머리를 쓰는 쪽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짧은 머리카락에 검은 뿔테 안경.

    적당히 차려 입은 복장에 매끈한 구두까지.

    안경에 달린 끈이 귀 뒤로 넘어가 있었고 안경 때문인지 더욱 지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정혁은 과거에 데릭이라는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다.

    강철 망치 본점에 들를 때면 종종 들었는데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고 했다.

    ‘한’이 초보 존에서 벌였던 잔혹한 학살극에 충격을 받고 그를 단죄하기 위함이 목적이었다고.

    그러든가 말든가 무시했었는데 아마 그때부터 사람들을 꾸리고 다루는데 능숙한 면모를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만큼이나 크게 성장한 집단의 리더가 되었겠지.’

    데릭은 안경을 살짝 올리고 대청마루에서 걸어 나와 깔끔한 구두를 신고 내려와서는 정혁 앞에 섰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정혁을 보고 있다가 시선을 옮겨 잭슨을 보았다.

    “사령관님. 북쪽 전선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

    “은행나무 엘프들이 전선에서 조금씩 후퇴 중이에요.”

    “아니, 그럴리가요! 새로운 왕이 아크 제국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영토를 벗어나 진격했다 하지 않았습니까? 박달수는 그곳에서 꾸준히 전력 보강에 힘쓰고 있구요.”

    “그럴 만한…이유가 있습니다. 국왕이 약해졌어요.”

    정혁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아린에게 일이 생긴 걸까?

    그는 재빨리 상태 창을 열어 그가 제작한 아이템 리스트와 소유권자를 살폈다.

    아린에게 건네줬던 목걸이의 소유는 여전히 아린에게 있었고 더불어 아직 내구도 상태도 준수했다.

    함께 아크 제국의 발칙한 행위를 보았던 아린이 물러설 리가 없는데 무슨 일일까.

    내부적 단결도 상당한 수준으로 올랐을 것이고 이를 박달수가 충분히 도왔을 것이다.

    북쪽의 넓은 전선에서 은행나무 엘프의 거대 전력이 빠져 버리면 동쪽 경계가 허술해진다.

    만약 은행나무 엘프 왕국이 자국 보호를 우선으로 방어전을 펼친다면 아크 입장에서는 우회하여 자유 연맹의 측면을 치고 그대로 보급로를 끊어 버릴 수도 있다.

    이는 전선 유지에 치명적일 것이다.

    “전선 분배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각 부서 대장들이 지역별로 군대를 규합해 사력을 다해 막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재까지 우리 쪽에서 로그아웃된 플레이어만 오천 명이 넘습니다.”

    히익-

    정혁의 눈동자가 한꺼번에 커졌다.

    제논 연합에 소속된 플레이어들을 모두 모아도 대략 삼천 명 정도.

    그런데 자유 연맹은 잃은 플레이어만 오천 명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크 제국과 여전히 쟁쟁한 혈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소모전은 불리합니다.”

    잭슨이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죠. 알고 있습니다.”

    데릭 역시 동의한다는 듯 대답하고서 다시 한번 안경을 올렸다.

    ‘얘네 근데 이거 다 들으라는 것처럼 말하고 있네.’

    정혁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도와 달라는 말을 빙빙 돌리는구나.’

    “방법이 있을까요?”

    데릭이 정혁을 바라보며 갑자기 질문하자 정혁이 속으로 웃던 것을 들킨 것처럼 흠칫 놀라서 그를 보았다.

    잠깐의 정적.

    정혁은 황급히 말을 더듬으며 역으로 물었다.

    “제, 제게 묻는 겁, 겁니까?”

    그의 말에 데릭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경에 빛이 반사되어 번뜩거린다.

    데릭은 마치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고 정혁은 그를 진지하게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도와 달라는 겁니까?”

    “아니요. 그저, 방법을 묻는 겁니다.”

    교묘하다.

    정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저자는 지금 정혁뿐 아니라 제논의 전력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야 그 속을 알 것 같다.

    이곳에서 굳이 은행나무 엘프의 소식을 꺼낸 이유도 말이다.

    그는 이미 정혁과 은행나무 엘프의 국왕 아린과의 관계를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그쪽 전선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넌지시 흘림으로써 정혁의 관심을 끈다.

    그를 통해서 정혁에게 현재 상황을 분석할 시간을 주고 더불어 자신들의 손해를 꺼냄으로서 그만큼 강한 자유 연맹이 이 정도의 손해를 입으면서도 대륙의 허리를 지키고 있다고 어필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지금 시국에 자유 연맹을 찾아온 이유 역시 이 전쟁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아 놓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도와 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면서도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겉은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속은 늙은 여우 같구나.’

    “글쎄요.”

    정혁이 턱을 만지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자유 연맹이 지든 말든 알게 뭡니까?”

    그의 자극적인 말에 잭슨의 웃는 상이 조금 일그러졌다.

    오히려 데릭은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아, 그래요?”

    정혁의 말에 데릭은 웃음기가 담긴 말투로 호응해 주었다.

    그리곤 곧바로 묻는다.

    “자유 연맹이 무너지면 제논은 안전하리라 보는 겁니까?”

    “어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혁이 역으로 그에게 질문하자 데릭은 바로 입을 열어 대답을 하려다가 말을 꾹 삼켰다.

    데릭은 정혁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감히 120레벨의 플레이어가.겨우 이곳에서 몇 달밖에 지내지 않았을 플레이어 따위가 어떻게 생각하냐고?’

    김창수도 박달수도 단단히 돌아 버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데릭이었다.

    120레벨짜리 플레이어가 뭐가 그렇게 강하다고 제논이라는 왕국이 뒤바뀌고 은행나무 엘프 군락지를 구해 낼 수 있는지.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기에 감히 건방지게 자유 연맹을 향해 직접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믿을 만한 연맹의 총사령관 잭슨을 보낸 것이었다.

    칭호도 겨우 대장장이인 주제에 무슨 힘이 있다고 이렇게 당당한 것인지 데릭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에고 장비? 그런 게 이 시대에 실재할 리가 없지.’

    에고 장비라고 둔갑하여 아이템을 판매하는 보부상들이나 혹은 특수 마법을 익힌 마법사들의 거짓 상점은 이제까지 수도 없이 경험하고 겪어 봤다.

    결코 그런 것에 속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 데릭은 날카로운 눈으로 정혁의 눈을 깊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단호히 대답했다.

    “당연히 제논 역시 무너질 것입니다. 아시죠? 아크 제국은 흑마법의 천국입니다. 흑마법은 기본적인 마나에 생명력까지 갉아먹는 만큼 두세 배 이상의 힘을 자랑하죠. 더불어 시체에서 병력을 얻고 거기에 마계의 악마들과 개별 계약을 한 군주급 흑마법사들까지 있습니다. 이들의 세뇌는 상당해서 자유 연맹 쪽에서도 몇몇은 이미 그들의 회유에 넘어갔습니다. 이런 자들이 자유 연맹의 모든 영토를 집어삼키고 잭슨 같은 힘을 가진 자들을 되살려 그들의 병사로 활용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군주급 악마들이 대거 제논으로 밀고 들어간다면 어떻겠습니까?”

    마치 속사포처럼 엄청난 말들을 쏟아 내는 데릭을 정혁은 묵묵히 바라보았다.

    완연한 미소를 띠며 말이다.

    잭슨은 마치 그가 데릭의 말을 그저 귀찮은 앵앵거림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느꼈다.

    그 순간.

    단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였다.

    정혁의 왼쪽에 거대한 화염이 오른쪽에 자연의 마나가 한꺼번에 응집되었다.

    이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정령왕 라테가 어마어마한 불길을 전신에 두르고 고함을 내질렀으며 엘라는 고대 엔트 본연의 거대한 은행나무의 모습으로 자리에 서서 라테를 향해 마찬가지로 소리를 내질렀다.

    주워 놓았던 잔해들이 라테의 에고 장비화 이후에 온전히 염구로 변화되면서 염구의 개수가 8개로 늘어났고 이 8개의 염구는 각각 잭슨과 데릭의 관자놀이 그리고 심장 앞에서 정확이 멈춰 섰다.

    정혁의 두 손에는 번쩍이는 전격 망치와 용암이 뚝뚝 떨어지는 화염 망치가 쥐어져 있었다.

    그 둘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무엇이 가능하지?”

    정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대응은 할 수 있었나?”

    그는 화염 망치를 데릭의 얼굴 앞에 들어 가져다 댔다.

    데릭은 면전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얼굴을 피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잘 들어, 여우 같은 자식아.”

    정혁이 망치를 내렸다.

    “내가 너희를 도우려고 한다는 사실에 감사해. 보고 판단하라고. 지금 이 상황에 아크 제국이 밀고 내려온다고 해도 내가 쉽게 무너질 것 같아? 나와 제논의 플레이어들은 반드시 승리할 거다. 헛소리 따위 지껄이지 말고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 자유 연맹이 제논 연합에게 도움을 청한다고 말이야.”

    데릭은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살짝 밀어 올렸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 보았지만 이런 식의 전개는 정말 처음이다.

    허풍이 아니었단 말인가.

    이런 게임의 오류 같은 존재가 실제로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정도의 강한 힘 앞에서는.

    마치 ‘한’을 면전에 목도한 듯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

    그는 천천히 몸을 아래로 숙여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거친 호흡과 함께 정혁에게 말했다.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데릭과 잭슨이 움직이지도 못한 순간에 펼쳐진 모든 압도적인 힘이 거두어지고 라테와 엘라 역시 사라졌다.

    정혁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진작 그럴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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