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49화 (49/200)
  • ◈49화

    잘 훈련된 히포그리프여서 그런지 엔토리아까지 이동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다.

    다만 엔토리아의 중심부로 다가가면 갈수록 이들이 경기를 일으키듯 발광을 하는 터라 결국 더 이상 접근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일차적으로는 히포그리프가 겁을 상당히 먹었다.

    고삐를 틀어쥐고 앞으로 계속해서 비행하게 하려고 해도 비명만 지를 뿐 겁을 집어먹고 더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더불어 화기가 점점 강해졌다.

    이는 그만큼 라테가 분노에 휩싸여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더 가까이 갔다간 히포그리프뿐만 아니라 정혁과 잭슨도 불덩이가 될 것이 뻔했다.

    결국 둘은 엔토리아에서 제일 가까운 작은 마을을 찾아 비행했고 다행히 엔토리아에서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거리쯤 되어 보이는 곳에 있는 소규모의 마을을 발견해 내려갈 수 있었다.

    도착하고 보니 오후여서 둘은 마을의 여관에서 숙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정혁이 히포그리프를 맡길 곳이나 묶어 둘 곳을 찾으려 하자 잭슨이 웃으면서 정혁이 쥐고 있던 고삐를 받아 쥐고 히포그리프의 엉덩이를 두 번 쳤다.

    그러자 두 마리는 힘차게 날아올랐다.

    “알아서 집으로 돌아 갈 겁니다.”

    잭슨은 둘이 나란히 비행하는 모습을 보며 손을 탁탁 털고 여관 입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들어가실까요?”

    ***

    여관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3층짜리 목조 건축물로 1층에는 적당한 분위기의 술집이 있었고 2, 3층이 숙박할 수 있는 방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저 멀리 진열된 술병들 앞에 바 테이블 안쪽에 서 있는 나이든 주인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 망한 마을에 웬일이오?”

    주인장은 컵을 닦으며 힐끗 둘을 보았고 잭슨이 잰걸음으로 주인장 앞으로 다가갔다.

    “하루 정도 묵을 수 있을까요?”

    주인장은 가만히 정혁과 잭슨을 바라보다가 위층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

    “관리 안한 지 한참이지만 괜찮다면 묵어도 좋소.”

    “침대만 있으면 됩니다. 방은 하나…….”

    밝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던 잭슨은 정혁이 인상을 잔뜩 구기자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두, 두 개 부탁드립니다.”

    “3층으로 가쇼.”

    정혁은 잭슨과 함께 3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2층을 보니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다 망한 마을이라고 할 땐 언제고 방마다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다행히 3층은 텅 비어 있어 보였다.

    두 사람은 4개의 방 중 두 개의 방에 각자 들어갔다.

    방은 생각보다 넓었으나 주인장의 말처럼 관리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보였다.

    침대보를 털자 먼지가 올라왔다.

    테이블에 놓인 꽃은 시들어 죽어 있었고 책장에는 거미줄이 한가득이었다.

    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먼저 창문을 열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낡은 창문이 위로 천천히 열렸다.

    약간은 더운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조명을 켜고 잠 잘 곳에 먼지를 털어 냈다.

    죽은 꽃은 꽃병에서 꺼내 버리고 거미줄을 치운다.

    정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자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빼꼼 여니 잭슨이 서 있었다.

    얼굴에 뭘 묻혔는지 검은 자국이 나 있었다.

    아마도 그의 방이 정혁의 방보다는 조금 더 지저분했던 모양이다.

    “방 괜찮아요?”

    “청소 하니 좀 낫네요.”

    잭슨이 이해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자신의 얼굴을 슥슥 닦아 냈다.

    “내려가서 한잔할까요?”

    “술 상태는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그의 말에 정혁이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발아래 비명을 지르는 목조 건물의 소름끼치는 소리를 들으며 2층을 다시 한번 보았다.

    아까의 기척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대신 이번엔 1층이 시끌벅적했다.

    주인장은 신경질이 가득한 얼굴로 테이블에 앉은 여러 무리의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 진열되어 있던 술병들이 대부분 그들의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어디서 그렇게 공수해 왔는지 맛있어 보이는 안주들이 펼쳐져 있다.

    인원은 8명.

    2개의 테이블에 나뉘어 앉아 있었지만 모두 일행인 듯 보였다.

    그들은 정혁과 잭슨이 내려오자 일제히 둘을 쳐다보았다.

    “음.”

    잭슨이 그들을 둘러보고서 작게 소리를 내곤 빈 테이블에 먼저 가서 앉았다.

    약간은 불편한 기색이었다.

    주인장의 이마에 주름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을 살짝 보고 정적에 싸인 술집을 지나 잭슨의 앞자리에 의자를 당겨 앉았다.

    잭슨이 손을 흔들었다.

    주인장이 분명 그의 손을 봤으나 되돌아오는 것은 거친 응대였다.

    “와서 주문 하슈. 보시다시피 직원은 없수.”

    “어휴, 까탈스럽네요, NPC 주제에. 그죠?”

    잭슨이 작게 웅얼거리고 윙크를 찡긋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서 주인장에게 다가갔다.

    ‘세상에, 남자가 나에게 윙크를 다 하다니.다행이다, 엘라가 옆에 없어서. 저자도 뺨따귀가 남아나지 않았을 텐데.’

    정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각자의 술잔과 이야깃거리로 돌려졌으나 경계가 곤두선 분위기만큼은 사라지지 않았다.

    ‘척보면 척이지.’

    이들은 레이드 팀이다.

    이전에 정혁이 처음 만났던 제논의 기사단 레이드 팀처럼 팀으로 거대 몬스터나 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온 자들.

    어떤 길드의 소속이거나 국가의 소속임이 분명했다.

    다만 그들의 소속이 카탈은 아니라는 점이 조금 낯설었다.

    그렇다는 건.

    정혁이 잭슨을 흘깃 보았다.

    카탈의 가장 우세한 세력.

    지금은 아크 제국이 장성해짐에 따라서 최대 세력의 자리가 위태해지긴 했지만 영토 면적만 봐서는 자유 연맹이 아직은 최강이다.

    물론 이 카탈 대륙 안에서 말이다.

    이는 곧 반대쪽 대륙에서 카탈 대륙 내부로 진입할 때에 당연히 자유 연맹과도 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엔토리아가 중립구이긴 했지만 현재 이 여관이 있는 곳은 엔토리아 경계와 맞닿은 자유 연맹의 영토다.

    ‘이들의 목적? 당연히 라테를 잡기 위한 것이겠지.’

    눈으로 스캔해 봐도 이들의 힘으로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라테에게 어느 정도 데미지 정도는 줄 수 있는 전력인데 이 정도의 규모의 플레이어들이 자유 연맹의 영토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진 않아 보인다.

    ‘알고 있겠지.잭슨도 아마 알고 있을 거야. 모르고 있다면 이거, 일 난 것일 수도 있고.’

    정혁은 내심 재밌는 장면이 벌어지길 바라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입가에 미소가 살짝 돌았다.

    어느새 잭슨이 술과 잔을 들고 정혁에게 다가왔다가 그와 같이 웃으며 물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요?”

    정혁은 급히 웃음을 거두고 헛기침을 했다.

    “아, 아닙니다. 그냥 하하.”

    잭슨이 술과 잔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더니 정혁보다 더 큰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었다.

    “아! 알겠다! 이 사람들 때문에 웃으신 거죠? 허가 없이 우리 땅에 있는 이 사람들 때문에?”

    ‘워…….’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은 건 잭슨의 웃음소리뿐이었다.

    어느새 이 웃음도 점점 소름끼치게 느껴졌다.

    ‘이 정도로 직설적이게 말할 줄이야.그나저나 어느 동네 양반들이길래 이렇게 대담한 짓을 벌였을까?’

    정혁이 앞에 앉은 잭슨의 뒤를 쳐다보았다.

    자세가 흐트러지진 않았으나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시선이 테이블을 향했다가 일행을 향했다가 정혁과 잭슨을 향하기를 반복한다.

    소위 각을 재는 중인 것 같긴 한데.

    “불편하죠?”

    잭슨이 정혁의 눈치를 보고 선뜻 물었다.

    “아니, 불편하기 보다는 재밌어서요.”

    정혁도 솔직해지기로 했다.

    “재밌다구요? 뭐가?”

    “그렇잖아요. 그래도 카탈 대륙에서 제일 잘나가는 연맹인데 아크 제국한테 조금 밀렸기로서니 이렇게 대놓고 영토 외곽에 레이드 팀을 통보나 협조도 없이 파견하는 꼴이 말입니다.”

    정혁의 말엔 가시가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쉽게 좋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잭슨의 얼굴에 웃음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역시 웃는 살인마답네.’

    “그죠? 아, 나도 진짜 웃기다니까. 아주 그냥, 황당해.”

    ‘황당해’라는 표현에 적의가 가득 들어 있다.

    그와 동시에 뒤편에서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났다.

    제일 안쪽에서 누군가가 일어났다.

    “눈감아 줘야 되나요?”

    잭슨이 그 소리를 듣고 약간 킥킥거리며 정혁에게 물었다.

    “오, 그 정도로 저들을 깔보는 거예요? 자신 있나 봐?”

    정혁의 대답에 잭슨이 어깨를 으쓱 했다.

    “에이, 우리 둘이서 라테 잡기로 한 거 아니에요? 이 정도에 쫄면 되나, 저 이래 봬도 자유 연맹 총사령관인데?”

    의자 끌리는 소리가 다시 났다.

    뒤를 보니 일어났던 그 자가 도로 자리에 앉은 것 같았다.

    ‘주제에, 생각은 있나 보네.’

    정혁은 속으로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한 모금 독한 기운이 올라왔다.

    잭슨도 그를 따라 술을 들이켰다.

    짧게 한 모금 마신 정혁에 반해 잭슨은 한 잔을 통째로 비웠다.

    벌어진 이 상황에 딱 맞는 행동이었다.

    ‘웃고 있기는 하지만 천불이 났겠지.명백한 무시 행위니까.’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저자들도 불쌍하긴 마찬가지다.

    나름 머리를 썼을 텐데.

    아크 제국의 남하를 막기 위해 모든 전력이 전부 북쪽으로 향해 있을 때 몰래 라테를 사냥해 보겠다는 뚝심을 크게 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여기서 총사령관을 만나게 될 줄이야.아니, 그리고 대가리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내가 왕년에 혼자서 라테를 잡았다고 해도 이 정도 전력으로 라테에 비벼 보려고 한 거라면 큰 오산인데…….’

    정혁은 다시 한번 주위를 휘익 둘러보았다.

    그래,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

    “맞아요. 저도 동의합니다.”

    ‘응?’

    잭슨이 갑자기 엉뚱한 대답을 했다.

    정혁은 잭슨의 이와 같은 행동에 황당해서 잠깐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들은 정식 레이드 팀원이 아닙니다. 이들로 라테를 잡다니 어림도 없죠.”

    ‘뭐야, 독심술 같은 스킬도 있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정혁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악취미죠.”

    잭슨이 자신의 술잔에 스스로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일종의 정찰 팀 같은 겁니다. 간을 봐야 하니까요. 가서 부딪쳐 보라는 거죠. 죽으면 그만일 거구요. 아시다시피 정령왕들에 대한 연구 기록은 많지 않아요. 그저 ‘한’이 혼자서 잡았다는 정보 정도에 어떤 대표적인 스킬을 사용하더라, 화속성이니까 화염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아이템들을 착용하고 수속성의 원소 공격을 위주로 하면 되겠거니 하면서 준비했을 겁니다.”

    잭슨은 술잔을 들고 몸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마치 정혁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와서 전투를 치릅니다. 아마 다 죽겠죠? 그렇지만 여기에 대한 정보는 실시간으로 이들의 원 소속 길드나 국가에 전달됩니다. 그럼 또 다음 팀이, 또 다음 팀이. 소위 트라이를 이어 갑니다. 죽고, 또 죽고, 또 죽어도 괜찮은 목숨들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들의 윗대가리는 그걸 이용해 먹어요.”

    ‘탱커네, 탱커야.광역 도발을 스킬 말고 말로 하네.’

    정혁은 속으로 감탄했다.

    잭슨은 다시 술을 입에 털어 넣고 각자 찬란하게 일그러진 테이블의 플레이어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아, 지금 상태에 미소는 아마 조롱으로 보일 텐데.

    “이게 잘못된 겁니다. 왜 게임에서조차 수직적인 생활에 목을 매야 하냐구요. 잡고 싶을 때 뭉치고 싸우고 싶을 때 싸우고 뭐, 목숨을 걸 만한 일이라면 자기가 걸고! 남들이 시키는 일에 자기는 따까리인 줄도 모르고 불나방처럼 덤벼들다가 한순간에 죽어 나가는 멍청한 일보다 개인이 자유롭게 게임 속 생활을 누리는 게 나쁜 건가? 하긴.”

    잭슨이 몸을 돌려 정혁을 바라보며 더없이 환하게 웃었다.

    “멍청하면 몸이 고생하는 거니까, 그렇죠?”

    그와 동시에 일행들이 앉아 있던 테이블 두 개가 동시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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