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45화 (45/200)
  • ◈45화

    정신없는 며칠이 지나갔다.

    김창수는 자신의 모든 권한을 인계하는 과정을 안나에게 맡겼다.

    그리고 비르파인이 가장 오래 묵었다고 하는 왕의 집무실에 들어가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후 안나는 제논의 기사단의 각 부서 팀장들을 모아 상황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새로운 지도자가 밟아야 할 다음 수순을 준비했다.

    비어 있던 팀장의 자리에 하늬안을 앉히는 것에 대해 논의했고 이는 통과됐다.

    무너진 성채는 석공들과 목수들의 합작으로 순식간에 재건축되었다.

    왕궁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 정혁 역시 엘라와 함께 제논이라는 왕국의 영토 경계를 순찰했다.

    어디까지가 제논의 힘이 닿고 있는지 궁금했고 더불어 외곽에서는 제논에 대한 평이 어떤지도 궁금했다.

    제논의 땅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대륙 카탈의 남부 연안 지역을 넓게 차지하고 있기는 하나 상하로 긴 카탈 대륙의 특성상 영토의 크기에 따른 영향력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보는 게 맞겠다.

    제논과 자유 연맹의 영토 사이에는 몇몇 중립구 그리고 오크 부족의 땅, 하피들이 점령한 지역, 무역 지구, 상업 지구 등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자체 방어 체계를 유지한 채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 위로 카탈에서 가장 위용을 떨치고 있는 자유 연맹이 중심부를 넓게 차지하고 있다.

    최근 도돈치아를 집어삼킴으로서 남하의 야욕을 보이고 있는 아크 제국이 북부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다.

    대륙의 북부와 북서부를 집어삼켰으며 북동부는 다행히 아린이 집권하고 있는 은행나무 엘프 왕국이 차지하고 있어 경계에 닿아 있는 자유 연맹이 그나마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 처지다.

    그나마 중앙해를 지나 반대쪽 대륙인 타이런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다.

    그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대전쟁의 수준은 아니지만 거대한 세 개의 세력이 각자 경계선을 맞닿고 영토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여러 종족 간의 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만약 카탈에서 지금과 같은 긴장의 균형이 이어진다면 타이런보다는 조금 더 나은 생활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보부상들이나 무역 거래인들도 껄끄러운 타이런 대륙 보다는 더 편안한 카탈 대륙에서의 사업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평화를 정혁은 원하지 않는다.

    제논의 외곽을 돌며 정혁은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해 봤다.

    이전에도 이런 고민들의 답을 내린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도 혼자서 랭킹 1위는 현재 자신의 능력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한’은 암살자였다.

    과거 자신은 랭킹 1위를 할 수 있는 최적화된 직업이자 능력이 있는 자였다.

    집단의 머리가 무너지면 결과는 뻔하다.

    더불어 암살자였기 때문에 더욱이 누구도 그를 쉽게 발견하거나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그만큼 피지컬도 능력도 강했다.

    그러나 대장장이인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세력을 규합하고 자신의 아군을 만들고 그들을 전장에 보내고 그들과 함께 점령을 하며 당당히 자신이 머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한 가지 목표를 수립해 본다.

    오아시스 역사상 처음으로 두 대륙을 통합하겠다는 야망을.

    그것이 랭킹 1위가 되어서 빠르게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혁이 엘라와 함께 도성으로 돌아왔을 때 안나와 다섯 명의 팀장들이 성문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벼운 목례와 더불어 그들은 도성 안으로 들어가 어느새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으며 천천히 중앙의 왕궁으로 향했다.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따각거리는 말발굽 소리만 울리며 왕궁을 향할 뿐이었다.

    왕궁에 도착하자 아직 안나는 그를 왕궁 대회의실로 안내 했다.

    왕궁은 거대했다.

    길드 성채에 비교하자면 다섯 배는 더 컸고 성채와 동일하게 하나의 성벽을 더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다.

    중앙의 왕궁 본채와 주변에 여러 화려한 별채들이 자리하고 있다.

    왕궁 대회의실엔 정혁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김창수가 편안한 복장으로 회의실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정혁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김창수는 몸을 일으켜 목례를 건넸다.

    나머지 팀장들이 김창수에게 목례를 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회의실 의자에 자리가 채워졌다.

    정혁이 그의 자리에 앉자 안나가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를 시작합니다.”

    그녀의 말과 함께 다섯 명의 팀장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재 제논의 기사단 길드의 다섯 팀 팀장들입니다. 레이드 팀의 드웨이크, 무역 팀의 샹드레이, 외교팀의 최민식, 보수팀의 리디안,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비대의 하늬안입니다.”

    정혁이 하늬안을 보면서 작게 웃었다.

    그녀도 그의 웃음의 의미를 읽었는지 시선을 피했다.

    이제 정혁은 예전처럼 하늬안이 노발대발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이는 그를 더 이상 골려 줄 수도, 열 받았을 때 쥐어 팰 수도 없다는 것을 뜻하기에 하늬안은 못내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김창수님은 길드의 총사령관이 되십니다.”

    정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더 이상 제논은 왕국이 아닙니다. 이곳도 이제는 왕궁이 아닙니다. 제논은 제논이라는 이름의 연합이 될 겁니다.”

    그의 말에 안나가 짐작했다는 듯이 물었다.

    “연합이라는 말의 의미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서로 간에 전쟁을 하지 않는 거대한 세계를 말합니다. 이 땅에 국한되지 않는 거대한 세계 말입니다.”

    “…전쟁은 필연적입니다.”

    “그렇지 않았던 때도 있었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안나의 말에 정혁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사령관님도 동의하는 바일 겁니다. 강한 힘이 있다면, 그 힘이 중재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면 전쟁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연합은 가능합니다. 저는 그 위에서 관리자가 될 겁니다.”

    “동의한다. 그러나 방법이 문제겠지.”

    조용히 김창수가 핵심적인 문제를 집고 넘어갔다.

    “방법이라면 이런 게 있습니다.”

    [오아시스의 대장간을 활성화합니다.]

    알림창과 함께 황금빛 마나가 정혁의 두 손에서 흘러 나와 이공간으로 향하는 포탈을 개방했다.

    일전의 H라는 마스크를 지닌 정체 모를 남자 덕분에 정혁은 많은 것을 더욱 자유롭게 활용할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염구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특별한 광물.

    즉, 전설급 재료들에 한해서 발동되는 ‘채광 활성화’ 스킬을 발동하면 정혁은 ‘한’이었을 때와 비슷한 힘을 갖게 되며 이는 광물을 채취할 때 불필요한 위협이 될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위해서 두 개의 망치가 소환되며 이 두 망치의 정확한 이름과 능력은 아직 알 수 없지만 꽤나 강력한 힘을 이용해 주변을 정리 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된다.

    염구는 전설급 ‘광물’이다.

    광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어마어마할 뿐 아니라 마나를 주입해서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 누구도 이 아까운 아이템을 제련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제작을 하더라도 파괴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굉장히 어려운 중간 과정 때문에 애초에 이 염구를 장비에 제련할 기술을 가진 자들도 없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오아시스 대장장이의 능력으로 그의 망치가 수도 없이 염구와 부딪치며 7개의 염구 자체 소유권을 쟁취하는 순간 염구는 광물로서 정혁의 완전한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이 광물이 꺼내져 있다면 언제든 채광 활성화 스킬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채광을 지속한다는 것.

    그것은 적어도 이제 정혁이 자신의 몸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더불어, 염구의 개수가 딱 7개 인 탓에 그는 안나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했다.

    팀장과 김창수의 개인 무기들을 전부 회수했고 이를 제논 외곽을 돌면서 그때그때마다 오아시스의 대장간으로 들어가 숙련도를 올리고 염구를 하나씩 그들의 무기에 입혀 제련했다.

    이제 그의 레벨은 120에 달한다.

    대장 기술의 숙련도는 500을 찍어 냈다.

    조 패더럴조차 그의 의지에 놀랐을 정도로 정혁은 잔혹하게 자신을 혹사했다.

    이와 같은 과정의 결과로 쏟아 낸 무기들의 효과는 대단했다.

    정혁이 오아시스 대장간에서 여섯 개의 무기를 차례로 꺼내 왔다.

    이런 정혁의 능력을 처음 본 팀장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더불어 하늬안은 자신의 대도조차 들지 못했던 그의 과거를 떠올리며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성장한 그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가져가시죠.”

    거대한 회의장 테이블에 놓인 각자의 무기.

    김창수를 선두로 팀장들은 모두 그들의 개인 무기를 다시 챙겨 갔다.

    그리고 상태 창을 통해 어마어마한 추가 능력이 부여된 그들의 무기를 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기 하나에 붙은 스탯만 봐서는 전설급 이상의 등급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각자의 칭호에 맞는 고유 능력에 효과를 더해 주는 버프까지 추가되어 있어 팀장들의 전력에 엄청난 상승을 가져다주었다.

    “이 무기들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넋이 나가 있는 팀장들을 보며 정혁이 손가락을 딱하고 치자 그들의 무기가 황금빛 마나에 휩싸이더니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정혁의 뒤에는 일곱 개의 염구가 갑작스레 나타나 회전하고 있었다.

    드웨이크를 제외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팀장들에게 정혁이 웃으며 다시 힘을 불어 넣는다.

    그러자 여섯 개의 염구는 본래의 위치를 찾아 무기에 닿아 사라졌고 팀장들의 무기는 다시 그 능력을 발산하며 붉은 기운을 뽐냈다.

    “모든 무기의 소유권은 제게 있습니다. 제 특별한 능력으로 인해 무기를 제련 이전의 상태와 이후의 상태로 언제든 어디서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무기를 쥐니까 어떠십니까?”

    “저 혼자만으로 군대를 가진 느낌이군요.”

    무역팀장 샹드레이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정도의 힘을 쥐고 있다가 만약 아까와 같이 물거품이 되듯 사라진다면 어떨까요?”

    그의 말에 김창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창수는 힘을 이용한 균형만을 고려했을 때 정혁이 그와 같은 위치에 설 수 있느냐에 대해서 쉽게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일전의 싸움으로 봤을 때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보다 더 강한 자들은 세상에 충분히 많기 때문이었다.

    그럼 무엇으로 균형을 맞출 것인가? 일전에 드웨이크와 왈로의 건으로 들었던 그 위협적인 보험.

    이제 이런 보험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서 그는 세계를 쥐려 하는 것이다.

    분쟁과 전투의 현장에서 핵심이 되는 인물들에게 정혁의 무기나 장비들이 보급된다면? 당장에 그 힘에 취한 자들이 선을 넘으려 하거든 정혁은 그들의 힘을 다시 되돌려 놓을 것이다.

    강대한 힘을 쥐면 무리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데 핵심적인 힘을 빼앗겨 버리면 모든 계획도 종잇조각이 되어 버린다.

    그 스스로 특별한 의미의 균형자가 되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김창수가 바라던 즐길 수 있는 게임의 세상, 오아시스가 가능하게 된다.

    김창수 역시 잔잔한 불꽃이 일렁이고 있는 그의 양날 도끼에 감탄했다.

    휘두를 때마다 정령왕의 불꽃이 임할 것이고 베고 넘길 뿐 아니라 태우고 지지며 추가적인 치명타를 먹일 수 있다.

    이는 엄청난 능력이다.

    어디에서든 우위를 점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이다.

    “이 정도라면 가능할 겁니다. 전 세계가 하나의 연합이 되는 것. 저로 인해서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여러분들이 보시고 깨달았을 거라고 믿습니다. 자, 이제부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정혁이 박수를 두 번 치고 팀장과 사령관의 주목을 끌었다.

    “저는 이제 제논을 떠날 겁니다.”

    그의 말과 함께 팀장들의 얼굴색이 바뀌었다.

    당황스러움이 잔뜩 서려 있었고 김창수 역시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정혁은 아랑곳 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제논을 버리겠다는 이런 말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고. 우리 길드는 제논의 기사단으로 여전히 활동합니다. 왕국에서 연합으로 바뀐 만큼 왕국의 법도를 연합의 규칙으로 바꾸는 작업을 안나 님께서 해 주세요. 각 팀장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연합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활동들을 이전과 같이 유지해 주시되 수비대 팀장님께서는 제논 연합의 영토 경계 수비를 최대한 강화해 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이는 김창수 사령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겁니다. 김창수 사령관의 말이 제 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럼 본인은 어디에 가겠다는 건가?”

    김창수의 물음에 안나만이 알겠다는 듯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어디든 좋습니다. 제논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라면. 제논의 기사단은 오직 연합을 지키는 데만 힘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저 홀로 여기저기에서 제논의 영토 범위를 넓혀 보겠습니다.”

    “그게 가능하리라 보나?”

    김창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에 정혁이 당당히 웃어 보였다.

    “어차피 저는 오아시스에서 랭킹 1위가 될 겁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말이죠.”

    그의 직설적이고 결론적인 발언에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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