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간의 랭킹 1위-43화 (43/200)
  • ◈43화

    [오아시스의 대장장이가 탐낼 만한 광물이 등장 했습니다! 채광을 활성화합니까? YN]

    염구가 오른쪽 어깨를 관통하는 순간 정혁에게 등장한 알림 창이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통? 물론 끔찍하게 아프긴 하지만 ‘한’이었을 때 느꼈던 고통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다.

    고통보다 더한 쾌감이 전신을 감싼다.

    자신감이 엄청나게 차올랐다.

    채광을 활성화하면 정혁은 그때의 그 무기들로 중무장한 채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몸놀림을 가지게 된다.

    염구는 화염 속성의 구슬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구슬이라기보다는 동그란 광물에 가깝다.

    화염석이 기본 재질인 염구는 라테가 지니고 있다 보니 화기에 닳고 닳아 매끄러운 둥근 모양이 된 것이다.

    더불어 그 긴 기간 동안 라테의 불꽃을 삼켜 엄청난 힘을 간직하게 된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염구는 드랍 아이템일 것이다.

    주인이 명확하게 지정되어 있지 않으며 엄청난 효과가 붙은 광석을 단지 저자가 마력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는 것 뿐이다.

    정혁은 이를 갈았다.

    그는 엘라의 불안한 표정을 뒤로 하고 마음속에 깊은 분노를 담고 담아 채광을 활성화했다.

    [주변의 위협을 제거합니다.]

    익숙한 경고음과 함께 정혁의 양손에 그때의 그 두 망치가 천천히 형상화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공중으로 날려졌고 눈앞을 가리던 은행잎 장막이 걷어졌다.

    상대가 눈앞에 보인다.

    거만한 포즈와 완전한 우세에 있다는 듯한 표정.

    가려진 마스크 안으로 보이는 굽은 눈, 그 웃음이 역겹다.

    H라 새겨진 마스크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염구를 조종하는 두 손에 그려진 말은 또 무엇일까.

    ‘왜지? 왜 그들에 대한 정보는 없을까.세계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우물 안이었던 것일까?’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수많은 생각의 교차를 경험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정혁은 상대를 향해 왼손을 강하게 휘둘렀다.

    왼손에 쥐어졌던 번개 속성의 망치가 공중에서 낙뢰를 떨어트리며 강렬하게 세 개의 염구와 부딪쳤다.

    낙뢰의 번쩍거림 사이로 당황한 놈의 표정이 스쳐 보였다.

    어깨의 통증쯤은 잊은 지 오래다.

    정혁은 쉬지 않았다.

    곧바로 오른손의 망치를 상대의 우측 발등에 내리꽂았다.

    아직도 그의 몸은 공중에 떠 있었으나 전혀 제한이 없어 보였다.

    내리 꽂힌 자리에 있었던 남자는 어느새 세 보 뒤로 물러나 있었다.

    정혁이 내리친 땅은 곧 불꽃이 폭발하며 위로 분사되었다.

    번개와 화염.

    이전과는 확연히 능력이 달랐다.

    열기나 전력 그 이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몸의 동작에 전혀 관여하지 못했었다면 이번에는 온전히 그의 의지대로 훨씬 향상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은행잎 창이 사방에서 남자에게 날아들었다.

    엘라가 공중에서 도도하게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은행잎 창은 지속적으로 재생되어 남자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남자는 노련하게 창의 움직임을 따라서 자신의 위치를 바꾸었고 위험하면 염구를 이용해서 창의 형태 자체를 분쇄시켰다.

    그러자 엘라는 더욱 거대한 잎 창을 3개를 생성했다.

    낱개의 창들과는 규모 자체가 다른 거대한 창이었다.

    그것은 생성되자마자 곧바로 남자에게 날아들었다.

    염구가 재빨리 창 중 하나를 해체시키려 불꽃 띠를 두르고 관통했지만 창은 순식간에 분산되었다가 염구가 지나자마자 다시 창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대로 유지만 해 줘.”

    정혁의 부탁에 엘라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세는 역전됐다.

    이제 당황한 쪽은 정체불명의 남자다.

    정혁이 어깨를 풀며 다시 몸을 움직였다.

    세 갈래의 낙뢰가 그가 있던 곳을 향해 내리쳤다.

    바닥에 검은 그을음을 남긴 낙뢰가 사라지면 남자가 피한 자리에 거대한 잎 창이 날아든다.

    그와 동시에 정혁의 숙련된 망치질이 도구가 아닌 사람의 각 부위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달려든다.

    한은 연전연승의 암살자였다.

    그는 커다란 무기를 선호하지 않았고 악몽의 비수를 이용해서 치명타를 먹일 수 있는 급소만 집요하게 공격했다.

    다수의 공격에도 한이 그들을 무참히 짓밟을 수 있었던 것은 플레이어든 어떤 생명체든 모든 급소가 눈에 완전히 익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디를 공격해야 상대의 정신까지 무너트릴 수 있는지도 완전히 알고 있었다.

    수분이 지났다.

    정혁의 신체는 전혀 지치지 않았다.

    엘라도 이제 막 몸을 푼 참이다.

    그러나 오히려 상대는 그들에 비해 지쳐 보인다.

    하늬안도 고통이 조금 가시자 급히 회복 물약을 마셔 상태 이상을 회복했다.

    그리고 그들의 급이 다른 전투를 놀란 가슴으로 지켜보았다.

    ‘이럴 거면 스크롤은 왜 준 거야.’

    그녀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엄청나게 강해진 정혁의 움직임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김창수?

    지금의 그라면 김창수도 고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김창수의 압도적인 승리를 단언하기가 힘들다.

    이미 성채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졌다.

    하늬안과 별채는 활성화된 은행잎 보호막이 회전하며 지켜 주고 있었기에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으나 그 외의 검은 보호막 내부 제논의 기사단 영토는 이제 폐허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들의 전투는 그만큼 엄청났다.

    “워후!”

    정혁이 고함을 쳤다.

    뭐랄까,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개운함의 고함이었다.

    입고 있던 옷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그을린 피부와 군데군데 데인 상처들이 보였지만 그의 얼굴에 핀 잔혹한 미소는 여전했다.

    고함과 함께 엘라의 공격도 멈추었다.

    남자 역시 바쁜 움직임을 멈추고 정혁과 엘라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섰다.

    “브라보!”

    다시 남자에게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아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크, 이거 오늘 이 장면을 못 봤다면 우리 정말 큰일 날 뻔했네!”

    남자는 감탄의 목소리로 박수를 치면서 고함을 치듯 한마디 뱉었다.

    그는 분명 ‘우리’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이 정도의 실력자가 더 있다는 뜻이었다.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능력이 가미된 무기를 들었을 뿐 아니라 엘라의 지원 사격이 있다고 해도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강자다.

    그가 비상식적으로 염구를 잘 활용하고 있다는 점, 타고난 전투 감각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정혁은 이 순간에도 경계를 느슨히 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오랜만에 즐긴다! 이야.진짜 재밌다. 그래, 이게 게임이지!’

    그는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본연의 자신을 찾은 느낌이었다.

    물론 지금의 능력이 ‘한’이었을 때와 비슷하거나 거의 근접했다고는 못 하겠다.

    여전히 생각에 비해 몸의 반응이 늦긴 하다.

    그뿐만 아니라 아직 이 두 무기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이건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직접 타격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번 전투를 통해서 완전히 알게 되었다.

    오히려 장차 있을 여러 광물들을 제련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이 정도만 되면 그래도 1인분 이상은 하고 있는 거니까!’

    게임 주제에 내 모든 것을 구속하려 들었던 억울한 지난날들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느낌이다.

    대장장이로 망치질만 하다가 끝낼 수 없지.

    대장장이로 랭킹 1위가 된다 해도 나는 망치를 들고 전장에 있고 싶거든! 게임은 즐기라고 있는 거니까! 그게 내 스타일이니까!

    “어때? 이런 짐짝 본 적 있어?”

    “이 친구, 아주 재밌는 친구야, 어?”

    정혁의 말에 남자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알게 모르게 쿵짝이 맞아 보이는 둘이었다.

    오히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엘라였다.

    엘라는 황당한 마음을 담아 정혁에게 신경질 적으로 전음을 보냈다.

    [야, 더 장단 맞춰 줄 생각은 없으니까. 빨리 끝내면 안 돼?]

    [아니, 이 정도면 됐어.]

    정혁의 대답에 엘라가 인상을 구기며 정혁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이제 적당히 나대시고 돌아가는 게 어때?”

    “오우, 무서워 그냥.”

    어느새 표정이 바뀐 정혁의 다소 격한 언성에 남자가 두 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했다.

    차가워진 분위기에 남자는 마치 서양식으로 한 손을 두 번 돌려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건넸다.

    “그래! 즐거웠어. 왜 E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몸으로 느꼈으니 됐지 뭐. 알려 줘서 고맙고.”

    하늬안은 끝까지 재수 없는 자식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왜일까? 왜 여기서 굳이 마무리하려고 하는 걸까? 애초에 붙잡아서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면 좋을 텐데.’

    “그래, 조심해서 가고. 다음에는 이렇게 말고 좀 더 격식 있게 보자고?”

    정혁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까딱하며 손안에 화염 덩어리를 모아 퍼트렸다.

    그러자 공중에 거대한 철문이 천천히 화염 속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리고 환한 빛이 그 안을 비추었다.

    내부가 어떤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정혁이 소리쳤다.

    “아! 아, 야, 하나만 하나만.”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빛 속에 한 발을 넣고 정혁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정혁이 싱긋 웃으면서 손가락을 한번 공중으로 휘저었다.

    동시에 아래에 내려놓았던 두 개의 망치가 황금빛 마나와 함께 사라지고 남자의 주변을 부유하던 염구가 일제히 남자의 전신을 관통했다.

    남자가 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고꾸라지는 몸을 간신히 붙잡아 버텼다.

    그러나 곧 입 밖으로 붉은 피를 토해 냈다.

    마스크 때문에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건방진 새끼가, 그냥 가려고?”

    어느새 7개의 염구는 정혁의 근처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염구 : 불의 정령왕 라테의 잔재 – 오아이스의 대장장이에게 귀속됩니다.]

    -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가진 광물 조각입니다. 5개 이상이 모였을 때 전투에 효율적인 세트 효과가 부과됩니다. (추가 화력, 추가 데미지 적용)

    - 보유자의 의지에 따라 일정 마나를 소모하며 숙련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 장비 제작 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화염 내성을 자동으로 포함합니다.)

    - 광물 상태를 유지할 경우 채광 모드 활성화 유지가 가능합니다.

    정혁은 자신의 앞에 뜬 염구에 대한 상세 상태 창을 걷어 버리고 엘라에게 눈짓을 줬다.

    그러자 알겠다는 듯 그녀는 순식간에 거대한 잎 창을 만들어 내 남자에게 그대로 날려 보냈다.

    잎 창이 정혁의 오른쪽을 스쳐 지난다.

    공기가 바람과 함께 빨려 들어갔다가 뒤쪽으로 불어 내쳐지며 옆머리를 간지럽혔다.

    남자는 가까스로 거대한 화염 마법을 펼쳐 날아드는 잎 창의 모든 나뭇잎을 태워 버렸다.

    ‘이야, 이걸 막네.’

    그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빛 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지는 순간까지 그는 분명히 정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정혁은 빙긋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두 손 가득 말이다.

    그의 망치는 앞서 말했듯 대인 전투용은 아니다.

    제련 및 채광용 장비인데 오아시스의 대장장이가 망치를 쥐었다는 것은 결국 무언가를 만들어 내거나 캐낸다는 것을 뜻한다.

    잠깐의 전투였지만 수도 없이 망치와 염구가 맞닿았다.

    아마 놈은 엘라와 자신이 상극이라는 것 하나만 믿었을 것이다.

    게다가 저 정도로 염구를 잘 다루는 자라면 충분히 교만해질 만했다.

    그러나 변수는 정혁의 전투를 가장한 망치질을 통해서 염구의 소유권이 점점 정혁에게로 넘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채광 진행도가 100%를 달성했을 때 정혁은 화끈한 클라이막스를 위해서 싸움을 마무리했다.

    ‘애초에 놈은 우리를 이곳에서 마무리할 생각이 없다.오만 방자하게도 간이나 보려고 왔겠지. 재수 없게.’

    그가 사라지자 철문 역시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모든 외부 신호를 차단했던 성채를 둘러싼 검은 보호막이 옅어지며 사라졌는데 사라진 보호막 너머로 다수의 길드 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하늬안은 피식 웃으면서 그들의 당황과 혼란에 공감했다.

    길드원들 사이에서 드웨이크가 재빨리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는 이미 익숙하다는 듯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다만 그의 도움이 필요한 것만은 그의 걸음걸이를 통해서도 잘 느껴졌다.

    “정혁… 님!”

    그의 부름에 정혁이 뒤를 돌아보았다.

    “괘, 괜찮으시면 왕궁으로 함께 가시겠습니까? 도움이 필요합니다!”

    “아, 예.”

    정혁이 곧장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드웨이크를 따랐다.

    “아, 이거 성채가 난장판이 돼서 어쩌죠?”

    정혁의 말에 드웨이크가 허허 웃으며 말 위로 올라탔다.

    “이제 성채는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도성 전체가 우리 것이 될 테니까요.”

    그의 말에 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 위에 올라탔다.

    그와 동시에 치유 계열의 마법들이 정혁에게 시전되었다.

    관통된 어깨와 누적된 피로도까지 확실하게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이동간 그들의 치유를 지속적으로 받으며 정혁과 일행은 왕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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