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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의 랭킹 1위-16화 (16/200)

◈16화

도돈치아 동쪽 외곽 지역으로 빠져나온 에드리아와 그녀의 어머니는 곧바로 분쟁 지역의 출입 사무소 방향으로 향했다.

따로 함께하는 일행은 없었다.

여기저기 뚫어 놓은 땅굴을 통해 은행밤에서 함께 도망 나온 엘프들과 헤어졌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그들의 일차적인 목표는 출입 사무소를 지나 은행나무 엘프 고유 영토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다.

에드리아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서 불쾌한 고함과 냄새들이 느껴져 오감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도돈치아 중심부에서부터 천천히 확산되어 가는 듯했다.

어머니의 표정을 통해 에드리아의 불쾌함은 불안으로 바뀌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끊임없이 혼자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는데 출입 사무소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중얼거림은 더 커졌다.

“어머니 아파요!”

에드리아는 점점 세지는 어머니의 아귀힘을 버티다 못해 어머니를 불렀다.

그녀는 걸음을 멈춰 서서 에드리아를 내려다보더니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고개를 푹 숙인 채 다시 뭔가를 중얼거렸다.

에드리아가 느끼기에 좋은 이야기들은 아닌 것 같았다.

“어머니? 우리 고향으로 가는 거 아니에요?”

에드리아의 물음에 에드리아의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은행밤으로 가요?”

대답이 없다.

에드리아는 불쾌한 불길함 속으로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겨 나아갔다.

***

은행밤을 공격한 자유 연맹의 분쟁 지역 치안대 소속 아스칼은 더럽고 냄새나는 엘프들의 목을 전부 쳐 버리고 그 성질을 이기지 못해 휘발유를 부어 불길을 당겼다.

은행밤은 순식간에 불타올랐고 아스칼과 그의 부대원들은 그 앞에서 무기를 재정비 했다.

치안대는 총 5개의 제대로 흩어져 분쟁 지역 곳곳에서 아크 제국의 빌어먹을 정신병자들과 싸우며 은행나무 엘프들을 잡아 대고 있었다.

자유연맹에 최근에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곧 은행나무 엘프의 본대가 도돈치아 전체를 집어삼키기 위해 밀고 올 거라고 했다.

녀석들이 좋지 않은 머리를 굴려 자유 연맹에 엿을 먹여 보려 했지만 뒷골목의 소문을 흘려듣지 않은 치안대 대장 박달수의 선견지명 덕에 다행히 큰 화는 면했다.

평소 욱하는 성격이 과하다고 평가받는 아스칼에게는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자신의 화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차라리 잘됐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은 벌어졌어야 할 일이야.”

아스칼은 축축하게 젖은 칼날을 닦으며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분쟁 지역 도돈치아는 매력적인 태산 오르간문드에서 흘러나오는 회복과 번영의 강 호타를 기반으로 성장했고 그 덕분에 모든 도로와 물자가 만나는 요충지가 됐다.

과거 ‘한’이 있었을 때는 그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중립 지역과 분쟁 지역에서 일절 어떤 영토 싸움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 규칙을 지키고 지냈으나 그가 모습을 감추고(사실 이제는 게임을 접었다고 봐야겠다.) 3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다시 영토 싸움으로 들끓고 있다.

아스칼도 영토에 욕심이 많은 자였다.

하찮은 분쟁 지역 자치 관리인들을 얼른 치워 버리고 자유 연맹이 이 노른자 땅을 차지해야 한다.

아크 제국 같은 정신 나간 놈들에게 빼앗겨선 평생을 전장에서 보내야 할지도 를 일이었다.

“우리도 전방으로 합류해야지. 이쪽 근방의 은행나무 엘프들은 정리가 됐을 거야.”

아스칼의 곁으로 로브를 두른 마법사 딜런이 다가왔다.

“확인해 봐.”

딜런의 눈이 파랗게 번뜩이고 그의 지팡이 상부에 달려 있던 보라색 수정이 반짝였다.

“없어. 자유 연맹의 마나 기류 말고 이질적인 것은 느껴지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하지?”

“아직 상업 지구는 반이나 더 남았어. 나머지 상업 지구도 돌면서 정리하자고.”

딜런의 눈이 여전이 빛나고 있다.

“그래, 이동하자.”

아스칼이 몸을 일으켜 채비하자 그의 곁에 있던 사십여 명의 병력들이 일제히 모여들어 제대를 갖추었다.

아스칼은 병력의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기합을 한번 불어넣은 뒤에 아직 돌아보지 않은 상업 지구의 다른 쪽을 향해 달렸다.

병력들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산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아크 제국의 잔챙이들과 더불어 괴이한 생명체들, 은신 했다가 공격을 퍼붓는 은행나무 엘프들 모두 즉각적으로 방어와 공격 태세를 갖추는 아스칼의 병력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딜런은 마나의 흐름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파악하여 아스칼에게 경고해 주었고 이를 통해서 그들은 조금 더 수월하게 걸음을 멈추지 않고 엘프들을 베고 쓰러트리며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기를 반복하기를 한 시간째, 딜런의 클리어 사인과 함께 동쪽 상업 지구가 완벽히 자유 연맹의 손에 넘어갔다는 확신을 갖게 된 아스칼은 치안대 본부에 전음을 보내 점령 사실을 알렸다.

이제 그는 본부에서 다른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당분간은 이곳에서 진을 쳐야 했다.

“3인 1개조로 산개한다. 각 조당 거리는 3km를 유지한다. 우발 상황이 생기면 빠르고 신속하게 지원을 요청하되 절대로 상대를 얕보지 마라. 한 조가 두 명의 적 이상을 상대하지 말고 지원 요청 시 좌우측 조가 빠르게 대응한다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나머지 조는 거리를 5km로 벌린다. 이해했지?”

마치 기계와도 같은 아스칼의 명령과 함께 치안대는 빠르게 각자의 위치로 사라졌다.

아스칼은 인벤토리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 입에 베어 물고 훌쩍 뛰어올라 건물의 옥상에 섰다.

북쪽은 여러 물건이나 건물이 타면서 생기는 흑색 연기가 자욱했다.

그는 그곳이야말로 정말 전쟁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올챙이 장난질이나 다름없다고.

대장 박달수는 아마 저곳에 있으리라.

아스칼은 다시 사과를 베어 물고서 오물거렸다.

오늘 이 투쟁으로 도돈치아를 자유 연맹이 손에 쥘 수 있을까? 확실치 않다.

아크 제국의 야욕은 점점 뿌리깊고 날카롭게 카탈 대륙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플레이어들의 연합인 자유 연맹만이 이 공포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저 아래의 그나마 규모를 갖춘 신생 국가 제논은 눈치 싸움 속에 헛물만 켜고 있고 나머지는 각자의 영토 지키기에 바쁜 타 종족이거나 야만인들의 소수 부족 국가들뿐이다.

사과를 물며 여러 계산을 하고 있던 아스칼에게 딜런의 전음이 닿았다.

[아스칼! 기척이다.]

아스칼은 곧바로 아래로 내려가 딜런에게 향했다.

딜런이 마나로 길을 안내했고 아스칼은 눈을 빛내며 마나를 쫒았다.

상업 지구를 통과해서 숙박 밀집 구역으로 돌입한 그들 앞에는 수도 없이 많은 괴이한 생명체들에 둘러 싸여 사색이 되어 대도 두 자루를 휘두르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하늬안이었다.

아스칼은 곧바로 검을 치켜들었다.

딜런이 마나를 두르고 사방에 펼치자 공기 중의 수분이 얼음으로 결정화되어서 내리꽂혔다.

직격으로 맞아도 이 생명체들은 전혀 데미지를 입지 않는 듯 했다.

아스칼의 검무가 시작되고 하늬안은 소리 지르던 것을 멈춘 후 다시 전신에 기합을 끌어올렸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다는 느낌이 든 딜런이 사방을 둘러보더니 조금 멀리서 번쩍이는 빛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대머리의 아크 흑마법사가 빙글빙글 웃으면서 아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스칼, 나는 흑마법사를 쫓을게.]

딜런은 순식간에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하늬안과 아스칼은 괴생명체들을 계속해서 두 동강 냈다.

그러나 베어진 시체는 마치 자성이라도 생긴 것처럼 다른 시체와 엉겨 붙었고 이는 곧 더욱 거대해져 자이언트 구울로 변화되었다.

하늬안은 그녀가 마지막 시체를 베어 넘겼을 때 더욱 거대해진 자이언트 구울 세 마리가 그들의 앞에 버티고 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늬안은 속으로 절망했다.

‘지잉그러어어어!!!’

뭐든 다 베어 넘길 자신이 있었지만 비위가 좋지 않고 음산한 분위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하늬안에겐 이런 끔찍한 현장은 스스로의 사기를 꺾어 내리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정혁이라도 있었으면 강한 척 버티기라도 했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모든 것을 떠넘기고 도망친 정혁 때문에 더욱 궁지에 몰려 버렸다.

이 자유 연맹의 플레이어들이 아니었다면 비명만 지르다 끝났을 것이다.

아스칼은 겁에 질려 있는 하늬안을 바라보았다.

제논의 기사단이다.

그녀의 명성을 조금은 들어 알고 있었다.

포효의 검사.

자유 연맹에서 조기에 영입해 보려 했지만 그녀는 왜인지 큰 보수를 제시한 연맹을 두고 신생 왕국인 제논에 합류했다.

아스칼은 제논에 가능성에 대해서 그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다.

이는 자유 연맹에서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지리적으로도 그렇고 속해 있는 플레이어들의 전투력을 봐도 몇몇을 제외하곤 그렇게 큰 힘이 있는 왕국은 아니다.

실망적인 모습의 하늬안이지만 사람마다 역린은 존재하는 법이다.

‘무서운 존재 앞에서는 겁을 먹을 수도 있는 거지.실컷 날뛰면 되겠군.’

아스칼은 다문 입에 힘을 주었다.

“하늬안. 물러서 주시죠.”

역시 말이 통하지 않았다.

하늬안은 가까스로 대도을 쥐고 있을 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스칼이 고유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의 신체가 비약적으로 부풀어 강대해지기 시작했다.

쥐었던 검을 바닥에 던져 꽂아 놓고 평소의 신체보다 두 배는 커진 그가 자신보다 조금 더 큰 자이언트 구울 앞에 맨손으로 당당히 섰다.

하늬안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훌쩍 뛰어 뒤로 물러섰다.

“치안대 아스칼?”

하늬안은 대도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그 대머리 빡빡이는 어디 갔지?’

“저 혼자면 충분하니 당신은 우리 쪽 마법사에게 가 줄 수 있습니까?”

아스칼에 말에 하늬안이 고개를 끄덕했다.

그리곤 순식간에 자리를 이탈했다.

이 정도의 구울을 부리고 강화하는 흑마법사라면 아크 쪽에서 입지가 있는 인물일 것이다.

워낙 베일 속에 숨겨져 있는 제국이다 보니 정보가 많지 않지만 분명 딜런 혼자선 쉽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무투.”

아스칼이 어깨를 돌리며 싱긋 웃었다.

구울 세 마리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아스칼에게 달려들었다.

***

정혁은 의외로 깨끗이 정리된 상업 지구를 보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단 대머리 빡빡이는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상업 지구 곳곳에 은행나무 엘프의 존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작전이 실패한 것일까? 정상적이었다면 은행나무 엘프들의 기척이라도 느껴졌어야 했다.

곧이어 도착한 은행밤.

아니, 은행밤이 있었던 자리.

아린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은행밤 건물 앞에서 잠시 넋이 나간 듯 서 있었다.

그에겐 고통밖에 없는 기억이었을 테지만 왠지 모르게 뒷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정혁은 다시 계산기를 두드려 보기 시작했다.

은행밤이 공격받는다는 것은 계산에 있지 않은 변수다.

계획대로라면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의 엘프들이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문과 창문들을 꼼꼼히 막아 놓고 건물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게 맞다.

은행나무 엘프의 본진인 은행밤이 타오르고 있다는 건 이들의 계획이 틀어졌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잘못된 거야.”

정혁이 중얼거렸다.

아린 역시 눈치챈 것 같았다.

“하긴, 분쟁 지역 속에서 가려진 정보는 없을 테지…….”

그렇다면 결국 은행나무 엘프들은 스스로를 뱀의 입에 먹이로 던져 준 꼴이 된다.

물론 아크와 자유 연맹이 전투를 벌이고 있기는 하다만 아마 서로 간에 불필요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분쟁 지역에 남아 있는 은행나무 엘프들이 주요 목표가 되었을지도.

전세가 그들에게 충분히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크와 연맹은 서로 윈윈을 원할 것이리라.

“잠깐만, 이거 이러면 엘프 본진이 안 오게 되는 거 아냐?”

정혁이 인상을 구겼다.

아린은 쭈그려 앉아서 은행밤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불타고 있던 은행밤 건물 옆에 갑자기 구덩이가 생기더니 손이 구덩이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아린은 그 손을 보더니 순식간에 달려 나가 손을 붙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도와줘요!”

아린의 목소리에 정혁 역시 손을 붙잡고 당겼다.

그러자 구덩이에서 여자 엘프와 소녀 엘프가 함께 당겨져 나왔다.

소녀 엘프는 끝까지 여자 엘프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린이 그녀에게서 흙을 털어 냈고 소녀 엘프는 아린을 보더니 그를 꼭 껴안았다.

“아린!”

“에… 에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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